병과 고통은 우리의 삶에 시련을 가져다 준다. 병을 앓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과 한계, 유한성을 체험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죽음을 예감한다. 그래서 환자는 몸만이 아니라 마음마저 약해져 하느님께 실망하거나 반항하기도 한다. 교회는 질병 때문에 육체적·정신적으로 중대한 위험에 처한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통해서 병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즉 병고로 허약해진 환자의 마음과 신앙을 굳세게 하고, 병자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면 잃어버린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병자성사를 통해 하느님께 은혜를 청한다.
병자성사의 기원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예수께로부터 파견된 열두 제자도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면서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준다.
“이 말씀을 듣고 열두 제자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들을 많이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주었다.”(마르 6,1213) 사도시대에는 병자들을 위한 특별한 예식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치유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415)
위로와 희망의 성사
병자성사는 환자에게 육신의 고통과 그에 따르는 영신적 나약함을 극복하도록 힘과 용기를 준다. 병자는 이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통과 부활에 참여하고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 만일 임종을 하게 될 경우 잘 준비하여 은총을 받게 해주면 병자에게 매우 유익한 성사가 된다. 또한 병자성사는 병자를 악마의 유혹과 죽음의 번민에서 해방시켜 주고,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인다운 참회의 완성으로 이끌어 준다.
병자성사를 통하여 받게되는 은혜들
첫째, 병자성사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강화함으로써 병이나 노쇠의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평화와 용기를 준다. 인간 사회는 병들고 노쇠한 이들을 외면하는 경향이 만연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런 이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큰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신다. 병자성사는 이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해준다. 또한 죽음에 직면한 사람은 병자성사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더욱 신뢰하도록 도와준다.
둘째, 병자의 영신적 구원에 적합한 경우에는 건강이 회복되는 은혜를 받는다. 예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는데, 그 목적은 그들의 믿음을 견고히 하여 구원을 얻게 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데 있다.
셋째, 병자성사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병자 자신의 고통을 일치시키도록 돕는다. 그리스도께서도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몸소 감수하셨다. 기도를 해도 병이 낫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합치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넷째, 병자성사는 아직 남아 있는 죄를 용서해 준다. 야고보 사도는 병자를 위한 기도와 도유(기름 바름)가 “병자를 구할 것이고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병자에게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받을 것이다”(야고 5,15)라고 덧붙인다.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지만 혹시라도 남아 있는 죄가 있다면 병자성사를 통해서 용서를 받게 된다.
병자성사 예식
병자성사는 말씀의 전례로 시작해서 성사의 핵심 부분인 안수와 도유로 이어진다. 이는 말씀과 성사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말씀 전례에 이어서 사제는 말없이 병자에게 안수하는데, 이는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청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교가 축성한 성유를 병자의 이마와 두 손에 바르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병자를 도와주소서. 또한 이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주소서.”(병자성사 예식서) 그러고는 마침기도를 바친다. 죽음에 직면한 환자는 병자성사 외에도 성체를 영하게 된다. 이렇게 죽음에 임박해서 영하는 성체를 노자성체(路資聖體)라고 한다. 먼 길을 떠날 때 노자를 지니고 가듯이 천상의 고향으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