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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마리애란 무슨 의미일까?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는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평신도 사도직 단체이다. 라틴어인 이 명칭은 “마리아의 군단(The Legion of Mary)”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 명칭을 비롯한 주요 용어와 조직의 형태는 고대 로마, 정확히 로마군단(Legio Romae)에서 사용하던 것을 따온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시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강력 한 지휘 아래, 세속과 그 악의 세력에 맞서는 교회의 싸움에 참가하기 위하여 설립된 영적 군대이다.

이 군대를 총지휘하시는 분은 성모님이며, 레지오 단원들은 충성덕행용기 로써 위대한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님께 자신을 맡기고 싶어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서 분단되어 나온 성 패트릭 협의회(회장 : 프랭크 더프)는 기존의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운영하던 애덕사업에 어린이들을 위한 교리교육, 매일미사 참례 권장, 절대 금주 개척회 운영 등을 포함 시킴으로써 여성회원들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자 여성들도 정회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조정하고 감독하기 위한 관리기관을 두어 한 달에 한 번씩 월례회의를 갖게 되었는데, 어느 월례회의 때 몽포르의 성루도비코 마리아께서 쓰신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에 관한 것이 거론되어 이 책과 몽포르의 가르침을 토의하기 위한 특별한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이 모임 후, 한 회원이 평상적인 활동인 더블린 유니온 병원에서의 활동에 대한 보고를 하게 되었는데 이에 감명을 받은 두 명의 부인이 토허 신부와 프랑크 더프에게 “여자들도 남성들처럼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하고 프랑크 더프가 “물론 할 수 있다”고 대답함으로써 그 부인들은 모임에 참석한 여성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첫 모임을 1921년 9월 7일 (성모성탄 축일 전야) 수요일에 13명의 여성과 토허 신부, 프랑크 더프 등 15명이 더블린(Dublin)시 프란시스 거리에 있는 마이러 하우스 (Myra House)에서 갖게 되었고 그 모임의 이름을 ‘자비의 모후’(the Association of Our Lady of Mercy)라고 이름을 하기로 한 것이 그 시초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聖化)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 단원들은 교회의 지도에 따라 뱀의 머리를 바수고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는 성모님과 교회의 사업에 기도와 활동으로 협력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탄생은 성경에 예언되었다?
창세기(3, 15)에 보면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라고 되어 있는데, 레지오는, 하느님께서 사탄에게 하셨던 이 말씀이 죄와의 싸움에서 확고한 신념과 힘의 원천이 된다고 믿는다.

레지오 탄생에 대한 이 성서의 예언으로 레지오는 그 자체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고, 태초부터 하느님의 계획하에 있었으며, 하느님께서 때가 되어 당신의 성령을 보내시어 창설한 하느님의 군대라는 확신에 차 있다. 특히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교리 결정과 성모님의 모든 발현을 사실상 예언한 몽포르의 루도비코-마리아 성인은 그의 저서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레지오 마리애의 탄생을 예언하였다. 그 책 114항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악마들은 이 작은 책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어두운 구석이나 궤짝 깊은 곳에 처박아 두게 하고, 더욱이 이 책을 읽어 실천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박해할 것이다.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시대에 세속과 악마와 부패된 육체에 맞서 싸울 예수와 마리아의 군단인 용감무쌍한 전투 부대가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도입
1953년 5월 31일 당시 광주교구장 서리였던 해롤드 헨리 현 신부(5대 광주교구장)의 지도로 광주교구 산하 목포 산정동본당에 "치명자의 모후" 쁘레시디움과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탄생되었고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장되어 서울에는 1955년 8월 흑석동(구 명수대)본당에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첫 번째로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1957년에는 혜화동 본당에 "상지의 좌" 꾸리아가 설립되었으며, "상지의 좌" 꾸리아는 1960년 3월 30일 한국 무염시태 꼬미씨움으로 승격되었으며, 1974년 9월 25일에는 레지아로 다시 승격되었다.

이와 같이 레지오가 활발히 발전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레지오 도입 25주년을 기념하여 꼰칠리움 경축 사절로 내한한 맥그래드 신부가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질적, 양적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 레지오의 발전을 위하여 서울 레지아를 국가 최상급 평의회인 세나뚜스로 승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꼰칠리움에 제시하여 1978년 12월 23일 서울 대교구에 정식으로 세나뚜스가 승격 설립되었다.
(참고로 한국 ‘중재자이신 마리아’ 꼬미씨움이 1958년 7월 13일 세나뚜스로 승격된바 있다.)
1980년 2월 18일에는 주교단의 공동 집전으로 세나뚜스 승격 미사를 성대히 거행하게 되었고, 단원들은 레지오 마리애의 알찬 활동과 조직 확장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였다. 2006년 2월 28일 현재 서울 세나뚜스 산하 행동단원 수는 155,196명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바로 성모님의 정신이다. 특히 레지오는 성모님의 깊은 겸손, 온전한 순명, 천사 같은 부드러움, 끊임없는 기도, 갖가지 고행, 티 없는 순결, 영웅적인 인내심, 천상적 지혜, 자기를 희생하는 용맹한 하느님 사랑을 자체안에 갖추고자 열망한다. 무엇보다도 그분의 믿음, 곧 그분에게서만 볼 수 있는 그 비할 데 없는 최고의 신덕을 레지오는 갈망하고 있다. 마리아의 이러한 사랑과 믿음에 감화된 레지오는 어떤 일이든지 감당하려 하고, "할 수 없다는 불평은 결코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할 만하고 또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