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1)


복음성서는 그 산지인 신앙 공동체의 고유한 당대 여건과 필요에 따라 씌어졌다. 도밍고회 소속 저명한 성서학자인 W.J. 헤링턴 신부는 이런 바탕을 깔고 예수님 자신의 입을 빌어 직접 이야기를 하는 시도를 통하여 복음 이야기를 색다르게 펼쳐 보인다. 다행히 필자는 보스턴에서 한 학기 동안 그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먼저 마르코 복음에 이어 요한 복음을 다룰 예정이다. 이 글은 그의 저서 《예수 이야기》를 크게 참고하였음을 밝혀둔다.


첫째 마당 : 예수님의 사명


나는 고향 나자렛을 떠나 해방절과 무교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다. 그곳으로 가는 지름길은 남쪽으로 곧 바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려면 그 중간에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야 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객들을 싫어하고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남쪽 유다의 예루살렘 성소에 필적하는 성소들을 사마리아 지역에 가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르단 강을 건너서 데카폴리스나 페레아로 둘러 가는 길이 좋을 듯하다. 사막과도 같은 삭막하고도 건조한 불모지의 그 먼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멀리 풍부한 수원과 열대 식물들로 가득한 오아시스인 예리코를 내다보면서 요르단 강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갈릴래아에서 온 순례객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들이 강을 건너 계속 가질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들에게 가까이 갔을 때 놀랍고 기괴한 차림을 한 사람의 외침을 서서 듣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낙타 털옷에 가죽띠를 매고 있었다. 분명 이는 엘리야 예언자가 입었던 의복을 즉시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불같은 말씀들을 토해내면서 가르치고 있다.


이 거침없는 열변은 아모스 예언자를 또한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가르침을 마무리하면서 요르단 강으로 향하는 차비를 차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갔다. 일부 사람들은 이미 요르단 강기슭에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이나 기타 지역에서 와서 그의 모습을 보고 그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요한 세례자 (마르1,1-13)


나는 그의 이름이 요한이라고 들었다. 이스라엘은 오래 전부터 예언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제 여기 한 예언자가 나타난 것이다! 구름처럼 사람들은 요르단 강으로 몰려들었다. 요한은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쳤다. 사람들의 마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자신들의 죄스러움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강하게 권고하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를 깨끗이 없애버리기 위해 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그 모습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의 쇄신, 다시 말해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무관심과 불충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염원해 왔었다. 그런데 그것이 눈앞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 강으로 내려갔다. 요한을 홀로 마주 대하게 되고, 잠시 사람들이 조금 떨어져 둘러 선 그 때, 나는 그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 순간 나는 하늘이 갈라지며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너를 어여삐 여겼노라.” 그것은 아빠(Abba)의 음성이었다! 내 가슴은 기쁨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분이 나의 아빠이시며, 나는 그분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 관계는 너무나도 명백하고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그 즉시 이 목소리는 바로 그분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가! 바로 지금 다가 온 것이다. 결국 나는 전적으로 아빠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접어두어야 했다. 나는 당분간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페레아 광야로 가서 지내면서 나의 아빠와의 대화가 필요했다. 광야라는 곳, 나는 대낮의 따가운 햇볕과 별밤의 적막함 속에 홀로 있었다. 사막의 새들과 작은 동물만이 주변에 있을 뿐이었다. 나의 사명감이 주는 중압감에 비해 보면 이런 짐승들의 존재가 불안이나 위협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정겹다고 할 수 있어 나를 미소짓게 했다.


옛 예언자들도 그 사명수행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내 마음 속에 예언자 예레미야가 계속 맴돌았다. 나의 길은 그에 못지 않게 가시밭길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생각은 나를 전율시켰다.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을 들었다. 나는 아빠께로 돌아가 평정을 얻었다. 그분은 나와 함께 계셨으며, 앞으로도 언제나 그러실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 (1,14-15)


나는 세례를 받았지만 요한의 제자들처럼 그의 제자가 되어 함께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요한에게 나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나는 유다 지방으로 갔으며, 요한은 대담하게도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갔다. 나는 그의 두려움없는 용기와 소신있는 처신을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갈릴래아 지역으로 가자마자 즉시 체포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는 분명 일찍이 헤로데 왕의 잘못된 결혼에 직언을 서슴지 않고 바로 꼬집어 지적했기 때문에 헤로디아의 앙심을 사고 있던 터여서 아마 그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요한의 목숨이 어떻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처지가 나 자신과 별로 다를 바 없을 것 같은 조짐에 전율을 느꼈다. 요한의 사명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분명 그 때부터 나의 사명은 시작되었다. 나는 갈릴래아로 갔다.


나는 요한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 큰 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는 나를 당혹스럽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입은 의복은 엘리야 예언자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의복보다도 그는 엘리야가 보여준 엄격함을 지녔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그는 엘리야가 가르멜 산정에서 바알 신의 예언자들을 처단한 사건과 야훼 신앙과는 동떨어진 아합왕과 이사벨 왕비를 저주한 말씀들을 연상시켜주는 것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아모스 예언자의 준엄한 메시지와 비슷하였다. 그랬다.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며, 하느님께 변함없이 충실했다. 하지만 그는 나만큼 아빠(Abba)에 대해 제대로 다 알지는 못하였다. 나의 메시지는 요한의 메시지처럼 심판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나는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 요한의 유형에 한정될 수 없으며, 앞으로 그럴 리도 없을 것이었다.


나의 메시지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하느님의 은혜로운 복음의 선포인 것이다. 하느님의 은혜로운 시간과 순간들이 다가왔다. 아득한 옛날부터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당신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 : “너를 사제들과 거룩한 민족의 왕국이 되게 할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옛날부터 그 조짐과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느님은 그 나라를 백성들 안에서, 곧 다양한 단체들을 통하여 구상하시고 준비하셨다. 백성들에게 율법(Torah)과 예루살렘 성전은 종교생활을 바쳐주는 두 기둥과도 같았다. 바리사이들은 민초들 가운데 살면서 또 성전 예식을 중시하면서 율법을 너무 세심하다 할 정도로 엄격히 준수하려 했다.


쿰란 지역에 사는 수도승들인 에세느 사람들은 공적 사제직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동떨어져 살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들이야말로 민족들 가운데 사제로 선별된 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극단적인 성격의 단체로써 자유를 쟁취하려는 열혈당원(熱血黨員)들은 율법과 전통을 준수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입어 무력으로 저항하여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열혈당원의 경우, 이 단체가 나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실 과거에는 아빠가 전사(戰士)의 모습으로 비춰지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했던 경향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하느님 당신은 인간적인 적의의 얼굴을 드러내실 때도 있었으나 한번도 전쟁과 폭력의 신이셨던 적이 없으셨다.


그렇다. 당신은 권능의 하느님이셨지만 결코 무력적인 분은 아니셨다. 당신은 파괴와 폭력과 죽음을 결코 바라지 아니할 것이다. 열혈당원들은 인내심이 없었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자신들의 의견을 설득시키려 하지 않았으며 오직 과격한 냉철함으로 관철하려는 태도만을 지녔다. 바리사이들은 그렇게 야단스럽게 눈에 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배타적인 성향을 지녔다. 특히 죄인들에게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쿰란의 수도승들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는 빛의 자녀들을 사랑하고 어둠의 자녀들을 미워하라.” 여기에는 항상 죄인들을 무시하고 소외시키는 울타리가 있었다. 그러나 아빠에게는 누구든 무시와 소외란 있을 수 없다. 당신은 모든 이의 아빠이시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당신의 사랑스런 자녀들이다.


‘하느님의 나라’의 참된 의미가 밝혀졌다. 그것은 실로 단순하다. 곧 하느님 자신이 구원이시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를 나의 인격, 삶의 방식과 말씀들을 통해서 드러내셨다. 하느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말씀하셨다. 이 하느님을 선포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한다는 것과 같았다. 나의 선포는 참으로 모든 이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 되었다.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복음’, 이것이 나의 메시지였다.


[월간 빛, 2003년 11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2)


제자들 (마르1,16-20)


요한은 제자들을 가졌다. 나도 제자들을 갖게 된 것이다. 그 때까지 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나는 어부 시몬과 안드레아를 불렀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나를 따랐다. 이어서 나는 어부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불렀다. 그들도 배와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 제베대오를 떠나 나를 따랐다. 나의 사명이 조금씩 진척되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신뢰했고, 아빠는 분명 나와 함께 하셨다.


가파르나움 (마르1,21-35)


안식일이 가까이 다가왔으므로 우리 일행은 가파르나움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 회당에서 나는 성서 말씀을 봉독하도록 초대되었다. 나는 성서를 봉독한 후 두루마리를 말아 둔 뒤에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미 요한에게서 본 것이기도 하거니와, 내겐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단지 성서 구절만을 반복하거나 성서 구절을 부풀려 말해 사람들을 지루하게 하거나 피곤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나의 말을 듣고서 종종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여기서 사람들로부터 나온 한가지 반응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가르침에서 그들이 느낀 ‘권위’였다. 물론 그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비밀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빠의 심중에서 들은 말씀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회당에서 난동을 부린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내 능력의 근원을 간파해냈다. 그는 나를 두고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외쳤다. 사실 이 호칭에 걸맞게 나는 그를 치유해 주었다. 일부 사람들은 나를 크게 오해했다. 이 오해는 나의 사명 수행에 큰 지장이 되었다. 나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아들’이라는 각별한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들’이었다. 이 호칭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한편, 일부 사람들은 벅차게 고조되었다. 그들은 분명 치유 기적으로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들을 경외감에 휩싸이게 한 것은 나의 말이 갖는 힘 때문이었다. 나는 “이게 웬일이냐?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라는 말을 귓전으로 들었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갈릴래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하나의 시작이었다.


시몬은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우리는 그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곧장 그녀에게 가서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는 그 순간 열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부산을 떨며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지켜봤다. 그녀는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생생한 비유와도 같았다. 나는 사람들을 열병, 곧 죄로부터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일단 자유롭게 되면 섬기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이가 사랑하는 일에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조직이나 제도에 얽매여 봉사하지 않는 법이다. 나에 대한 소문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남녀 노소 가릴 것 없이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부산을 떨며 안식일이 끝나는 일몰을 기다렸다. 그 이유는 안식일 중에는 치료 등의 일도 노동으로 생각해서 하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런 와중에 있었다.


나는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면서 행복했다. 많은 이들이 갖가지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나를 두고 메시아 같은 지도자라는 의미가 담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람들의 칭송이 거북하고 염려되었다. 그것은 내가 마치 개선식장의 높은 단과 같은 곳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매우 싫었다. 나는 나의 일을 계속할 것이다.


시몬은 그 날밤 잠자리를 제공했다. 나는 잠보다도 더 깊은 휴식이 필요했다. 두세 시간이 지났을까, 깊은 별빛만이 초롱초롱한 깊은 밤중에 혼자 일어나 기도할 곳을 찾았다. 아빠는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신다. 이 친밀하기 그지없는 친교의 순간이 주는 행복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인지를 알았다. 머잖아 감당하기 벅찬 시간과 사명이 나에게 주어질 것이다. 나의 아빠는 그것을 잘 알고 계신다. 잠에 떨어진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마치 일들을 미리 내다보듯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것 같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무언가 아쉬움과 허전함도 있었다. 이 상반된 심정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절로 쓴 미소가 배어 나왔다. 아, 나의 벗들은 아직 너무 모른다. 알고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그들에게 쉼 없이 이곳 저곳을 계속 옮겨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다. 할 일은 너무 절박했다.


소외된 이들 (마르1,40-45)


나는 어디를 가든 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만났다. 어느 날 나병환자 한 사람이 와서 꿇어 엎드려 “깨끗하게 해달라.”고 애걸했다. 그 순간 측은함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이 불쌍한 사람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이로 낙인찍혔다. 자신의 탓이 아닌 그의 병으로 인해 그는 공동체와 종교 생활로부터 단절되었다. 그는 하느님의 면전으로 다가갈 수도 없게 되었다. 누가 만일 그의 신체나 걸친 옷에라도 접촉하면 ‘불결’하게 되어 성전 예식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단절하거나 왜곡시킬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나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손을 얹었다.


그 순간 그는 나병이 나았다. 병이 나은 이는 사제에게 가서 그것을 확인을 받아야한다고 율법은 명시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그에게 엄히 명령했다. 사제들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처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되면 나의 이번 치유 사건이 사제들에게는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 그러면 마찰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나는 아빠와 그분의 길에만 전심전력을 다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이 치유를 비밀에 붙이라고 당부했다. 물론 어림없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그는 즉시 그 소문을 퍼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를 나무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을이 있는 곳에는 당분간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숨어 지낼 곳은 없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나를 찾아 낼 것이다.


마찰 (마르2,1-22)


나는 멀리 떠나 있을 수 없었다. 곧 가파르나움으로 돌아왔다. 변화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좋은 때는 지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나를 따랐다. 아마 이것이 바리사이들의 심중을 언짢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그 상태는 보기보다 더 심각했다. 나는 바리사이들을 존경했다. 나는 사두가이들이나 사제들에 비해 바리사이들과는 여러모로 가까이 상종했다. 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하느님에 대해서는 바리사이들과 아주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리사이들과 같지 않았다. 그들의 열정은 말 그대로 끝간 데 없었다. 사람들은 베드로의 집 앞까지 줄을 서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내가 가르치고 있을 때 머리 위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평평한 천장이 처음에는 작게 뚫리더니 점점 크게 구멍이 뚫렸다. 네 사람의 건장한 어른들이 그 구멍으로 침상 위에 중풍병자 동료를 눕혀 끈을 달아 나에게로 내려보냈다. 나는 항상 치유하기 전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가슴을 열도록 언제나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조했다. 여기에 참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육체적 치유 이상으로 중요하게 요구되는 믿음이었다.


나는 그 병자에게 힘주어 말했다. “그대의 죄는 용서받았소.” 놀란 시선으로 보는 율사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나의 말이 그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분명 하느님만이 죄를 사해주실 수 있다. 사실 그들의 생각이 맞지 않은가! 그들은 내 안에서,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용서가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은 나를 통해 죄의 짐을 벗겨 주신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드러낸 것이다.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소.”라고 말하기는 쉬운 것이다. 치유 행위가 내 말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는 집밖으로 자기 침상을 걷어들고 나갔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러나 “일어나 그대의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시오.”라고 이 병자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보기에 율사들이 이번 일로 앙심을 품었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 호숫가 근처에서 세관에 앉았더니 분주한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제자들처럼 그 역시 나의 부름에 즉각 응답했다. 나는 이 처신으로 좀더 어려움에 처할 것 같다. 다들 싫어하고 경멸하는 세금 징수원들 중의 한 사람을 나의 제자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웠지만 고맙게도 레위는 그의 많은 친구들과 함께 우리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나는 기뻤다. 까다롭게 굴지 않는 많은 죄인들과 더불어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새롭고 신선했던가! 물론 율사들은 이를 문제삼았다. 내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무얼 어쨌단 말인가? 거기 함께 앉아 식사한 정확한 이유는 그들이 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병자였고, 나는 의사였던 것이다. 내가 식탁에서 죄인들과 함께 한 처신은 감동적인 가르침으로 계속 남게 될 것이었다. 이는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의 가르침을 들었다. 이제부터 나는 “죄인들의 친구”로 통하게 될 것이다. 그 별칭은 모멸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기꺼이 그것을 감수할 것이다. 나는 아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요한은 성격상 금욕주의적이었다. 그의 제자들도 그의 노선을 따랐다. 그들은 금식했다. 바리사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단식했다. 식탁에 죄인들과 함께 했던 나의 태도는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다른 한편 그것은 점수를 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단식을 하는 이들은 더 열심한 이들이었다. 나는 그 점에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시대, 곧 신혼 때와 같은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노선을 취했다. 이제 나는 신랑이었다. 그래서 단식할 때는 분명 아니었다. 단식할 때는 뒤에 올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계속 몰아갈 것이다. 낡은 것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무언가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 왔다. 나는 옛 옷을 새 옷으로 깁는 것은 현명치 못하고,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으면 얼룩이 지거나 터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비유에 수긍하듯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좋다. 무표정한 얼굴은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예의 미소를 모르는 이들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까?


[월간 빛, 2003년 12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성서의 서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3)


안식일(마르2,23-3,6)


안식일은 이미 사람을 괴롭히는 두통거리가 되었다. 나는 언제나 안식일을 잘 준수했다. 안식일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 “너희들은 에집트에서 노예살이 했을 때를 기억해라.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이 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손으로 너를 거기서 빼내어주셨다. 그래서 하느님은 너희들에게 안식을 지키라고 명하셨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자유의 상징인 해방의 축제인 것이다.


그런데 율법은 결의론으로 인해 하나의 짐스런 것으로 변질되었다. 나의 관심사는 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에게 있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나의 제자들이 안식일의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불평을 털어놓았다. 나의 제자들은 들판을 지나면서 밀을 손으로 까불어서 입 속에 넣어 씹었다는 것을 트집잡았지만, 나는 사울에게 쫓겨다니던 다윗의 선례를 들어 설명했다.


다윗과 그의 동료들이 욥의 성소에 갔을 때 사제 아히멜렉은 배고파하는 그들에게 사제들만 먹을 수 있었던 거룩한 빵을 내어주었다고 말했다. 인간적 필요가 경배 규정을 주도했던 것이다. 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는 않았습니다.”는 말씀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려 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느님이 주신 권위를 은근히 내비치면서 안식일의 참 의미를 규명하려고 했다. 종교의 참 의미는,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들을 위한 것이다.


내가 안식일에 대해 그렇게 언급한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그 뒤 곧바로 회당으로 갔을 때 거기엔 나를 걸어 넘기려는 흉계가 놓여져 있었다. 사람들은 손이 오그라진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대응했을 것 같았는가? 나는 분노했다. 사람들이 교활하게 그를 하나의 미끼로 던져 놓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안식일을 장난 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올가미를 씌우려 했다.


나는 그들에게 도전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해야 하는가, 나쁜 일을 해야 하는가? 사람을 고쳐야 하는가, 해쳐야 하는가? 그들은 숨죽인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분노로 이글거렸다. 나는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뒤틀어져 있는가를 보았다. 그러나 나의 분노는 그들의 무지함을 넘어 슬픔과 연민으로 변하면서 그 병자를 치유했다. 뒤에 나는 바리사이들이 요한을 감옥에 가둔 바 있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지지자들을 만나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묘한 연대가 공동의 목표물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법을 위반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을 경시하고 종교를 남용하는 것에 정면으로 도전할 작정이었다. 이는 모두 아빠를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반대는 점점 커져 위협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나와 함께 있었다.


예수님의 사람들(3,7-12)


나의 일행은 점차 커져갔다. 많은 여자들도 여기에 가담했다. 사람들은 우리 일행들이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 모습이 아주 당연했다. 곧 아빠는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든 이의 아빠였던 것이다. 여자들도 나의 제자가 되었다. 나는 호숫가나 그 위쪽 나지막하고 평평한 언덕에서 나를 열성으로 따르는 이들을 가르쳤다. 나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열둘’이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웅변적인 징표로 통했다. 이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즉시 연상시켰다. 나는 상징성을 띄는 ‘열둘’을 가질 것이다. 이는 곧 새 백성이 아닌 ‘하느님의 새로워진 백성’을 가질 것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들이 이스라엘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하느님 백성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았다. 아빠는 모든 이의 아버지가 되는 분이셨다.


열두 제자들(마르3,13-19)


나는 열두 명을 나의 제자로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남자를 선택한 것은 상징성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열두’ 지파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바탕이었다. ‘열둘’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각별한 상징으로 통했다. 나의 여제자들은 이 점을 충분히 이해했다. 여제자들은 이 상징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뿐더러, 자신들이 제자들의 한 일원으로서 동등하게 함께 따랐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제자들 사이에서 ‘권위’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모두 항상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권위가 봉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열두 제자들은 시몬(별칭으로 베드로-바위-)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와 제베대오의 (천둥의 아들이라 불리던)야고보와 요한 형제들이었다. 이 네 제자들이 첫 부름을 받은 이들이었다. 이어서 후에 부름을 받은 이들이 마태오, 바르톨로메오, 필립보, 토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와 (혁명당원)시몬과 유다스 이스가리옷이다. 나는 이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내적으로 잘 묶었다. 뒤에 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하도록 그들을 파견할 것이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제 나의 사명은 첫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시작이었다.


나의 어머니와 형제들(마르3,20-35)


곧 반발이 일어났다. 우리는 가파르나움으로 되돌아갔다. 식사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나에 대한 소문이 나자렛까지 퍼졌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의 가족들이 놀라, 내가 미쳤다고 보고 붙잡으려고 나섰다. 가족들은 가파르나움까지 서둘러 쫓아왔다. 사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더구나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율사들도 나를 두고 빈정거리며 반박하고 있었다. 예루살렘까지 나의 소문이 돌았던 것이었다! 나는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이 율사들은 나의 치유 사건을 두고 재판하듯 문제를 삼았다. 욥의 친구들처럼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안식일을 어겼으며 죄인들과 상종했다는 것이었다. 나의 처신이 거룩하신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의 치유를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능력이 하느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사탄의 이름으로 비롯된 병의 나쁜 결과를 내쫓고 있었다.


수수께끼만이 그들의 어리석음에 해답을 줄 수 있었다. : 분열된 왕국이 굳건히 존립할 수 있겠는가? 그런 왕조가 망하겠느냐? 흥하겠느냐? 사탄이 나의 치유로 방해받고 있다면 그 사탄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다는 말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내가 악령의 힘에 사로잡혀 있다는 그들의 결론은 나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율사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경고했다.


사실 아빠께서 용서하지 못하실 죄란 세상에 없다. 그리고 그 용서는 완전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려 해도 인간이 마음을 닫고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느님은 인간을 억지로 강제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아빠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자비의 때가 오면 그런 인간들을 적절히 이끄실 것이다. 당신은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셨다.


나의 가족은 여전히 내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사람들로 들끓는 집안에 앉아 있을 때, 어머니와 형제들이 나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나는 가족들이 나를 강제로 붙잡아 가려고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참으로 답답했다. 그러나 나는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잃어버린 가족 일원이었다. 그렇다고 나자렛의 고요한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순간 혼란이 왔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둘러 선 사람들을 보고서는 내 가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었던 것이다! 내 가족은 온 나라에 다 있었다. 아빠의 뜻을 듣고 실천하는 이들이라면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의 충실한 남녀들로서 나의 형제·자매요 어머니였던 것이다.


비유들(마르4,1-33)


나의 백성들은 비유를 좋아한다. 비유는 놀랍고 재기에 넘치는 격언, 수수께끼, 생생한 이야기 등 폭넓은 영역을 지니고 있다. 백성들은 그러한 매력을 좋아했으며, 나도 그러했다. 나의 격언과 이야기들은 백성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해를 못할 경우에도 백성들은 매우 흥미로워 했다. 예수는 백성들에게 결코 지겹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백성들에게 적절한 비유를 들려주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나는 제자들에게 따로 비유를 풀이해주었다. 비유들은 이러하다.


씨 뿌리는 농부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이 농부는 씨를 길, 돌, 가시덤불, 좋은 땅 등을 가리지 않고 내다 뿌린다. 이 비유를 들으며 그들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저런 칠칠치 못한 농부가 있나? 씨도 제대로 못 뿌리다니! 내가 이 비유를 말했을 때 백성들은 비유가 뜻하는 바가 따로 있다고 내심 짐작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깨닫기를 바랐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 비유의 뜻을 설명해 줬다. 씨는 말씀 곧 복음이다. 그리고 다양한 땅의 조건들은 말씀을 듣는 이들이다. 제자들은 내가 비유를 든 상황들은 이미 우리가 겪었음을 분명 알았을 것이다.


나는 다시 백성들에게 돌아가서 다른 비유를 들었다. 누구라도 등불을 침대 밑에 두거나 됫박으로 덮어두는 이는 없다. 나의 가르침은 빛이 모든 것을 밝히는 하나의 등불과 같다. 하지만 수용하는 처지에 따라 결과는 각각 달라진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의 통치인 왕국의 분명한 도래에 대해 말했다.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씨를 뿌리는 일이다. 이제 그저 인내하며 성장과 추수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마 일부는 내가 하는 말의 뜻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추수는 하느님의 일이다. 어떤 이가 심고 어떤 이가 물을 대었다면 그것을 자라게 하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나는 하느님의 통치가 이미 나와 나의 제자단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선포했다. 나의 단체가 극히 미소했기에 정말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겨자씨의 비유를 생각해 보라.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일지 모르나 크면 새들이 둥지를 틀만큼 자라지 않는가! 그렇다. 나는 제자들을 상대로 비유를 계속 가르쳤다.


풍랑(마르4,35-41)


나는 호수 동쪽으로 가기를 바랐다. 나는 열두 제자들을 데리고 배를 타고 그 곳으로 향했다. 피로감에 나는 즉시 잠이 들었다. 배가 몹시 흔들리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제자들 중의 하나가 놀라 황급히 나를 불렀다. “배가 가라앉는 판에 태연하다니요!” 바람이 순식간에 파도를 솟구쳐 올리자 배에 물이 가득해졌다. 나는 바람과 파도를 통제했다. 그 즉시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나는 나와 아빠에 대한 제자들의 불신을 두고 조용히 타일렀다. 나는 제자들이 충격을 받아 놀라서 부르짖는 소리에 충분히 동감했다. : “이분이 누군가? 바람과 파도도 그에게 순종하지 않는가?” 극한 상황에서 그렇게 처리하는 것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이미 병을 일으킨 악령을 그렇게 처리한 바 있었다. 나는 이 분야에는 권능을 쉽게 수행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권능을 지니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런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배하거나 힘을 사용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나는 언제나 아빠를 반영했다.


[월간 빛, 2004년 1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성서의 서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4)


이방인들에게로 가다 (마르5,1-20)


파도를 잠재운 뒤 즉시 우리는 게라사 지방에 다다랐다. 몰골이 무섭게 미친 남자가 우리를 만나려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았고 절망적으로 치유 받기를 바랐다. 병은 악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너무 무섭게 미쳐서 수많은 악마의 무리에 사로잡힌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그를 치유했다. 그는 나의 제자로 따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에게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에게 데카폴리스로 가서 하느님이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말하라고 했다. 나는 뒤에 그가 자신에게 그렇게 한 이는 예수라고 말한 것으로 들었다. 이때부터 내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사람들이 말할지도 모른다.


나와 미친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다. 그런데 뒤에 여기 첨부되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거기엔 내가 악마의 무리에 대해 무언가를 대처한 것으로 나온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악마는 어떤 한 장소에 집착하여 살기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있던 곳에서 제거되기를 무척 싫어한다고 되어 있다. 나의 권능을 두려워하면서 악마는 있던 자리에서 축출될까봐 머물게 해달라고 청했을 성싶다.


그런데 악마들은 이천 마리의 돼지 떼 안에서 머물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것은 악마에게 걸맞지 않는 짓거리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돼지 떼들이 호수에 빠져 몰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미소를 지었다. 하기야 그 얘길 듣는 유대인이라면 물론 누구라도 악마들의 은신처로는 참으로 걸맞은 돼지 떼들이 몽땅 죽었다는 이야기에 조금도 어색치 않고 안타깝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무섭다기보다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당신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하였습니다 (마르5,21-43)


갈릴래아로 다시 돌아가 호숫가와 사람들에게로 갔을 때 괴로운 표정의 회당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체면도 잊은 채 땅바닥에 엎드려 내 발 밑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심하게 앓고 있는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애걸하였다. 가서 내 손을 그녀의 머리에 얹기만 해도 그녀는 나아서 이전의 건강한 삶으로 회복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그를 따라갔다. 가는 도중에 어떤 이가 내 겉옷을 만져 내 치유의 힘이 뻗어 나가는 것을 감지했다. 어떤 이가 내 옷을 만졌다고 말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제자들은 군중에 떠밀려 그냥 밀쳐진 것인데, 누가 만졌다니 참으로 딱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고질적인 하혈병으로 고생하던, 그래서 종교적으로 불결한 여인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여인이 나를 만졌다면 나 역시 종교적으로 불결하게 되었다고 간주했을 것이다. 그녀는 나병환자들처럼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리가 없었지만 본인의 뜻과는 달리 아주 소외되어 살았다. 나는 엄격한 세정법 의무가 너무 싫었다. 나는 육체적이고 사회적인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비난받을 일을 저지른 이 여인을 질책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녀의 믿음을 참으로 칭찬했다. 그리고 부드럽고 갸륵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의미로 “딸이여!”라고 그녀를 불렀다.


회당장의 하인들이 급히 달려왔다. 소녀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믿음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의 집에서는 벌써 곡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숙연하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그 집으로 들어갔다. 긴장감이 흘렀다. 열두 살 난 소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명령하자 소녀는 살아났다. 병중에 먹지를 못하던 소녀가 식욕을 되찾자, 부모에게 먹을 것을 딸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넋 나간 모습으로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


치유된 그 여인의 믿음은 단지 육체적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구원으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나는 소녀를 살려내어 더 깊은 차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구원받고 준비하게 했다. 또는 내가 바라는 믿음은 소녀의 아버지의 믿음이나 지붕까지 뜯으며 들여보내는 이들의 굳건한 믿음과 같은 전형적인 믿음이었다. 죽음으로부터 살아나는 것이 비단 육체적 소생에 한정되겠는가! 믿음은 그 이상의 것으로 우리를 이끄는 힘이요, 생명이요, 구원이다.


고향 나자렛 출신의 예언자 (마르6,1-6a)


나는 나자렛을 공적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화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달리 기대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이 때문에 결국 나의 가족이 나를 붙들려고 가파르나움까지 가지 않았는가! 어린 시절부터 늘 들르던 회당에서 내가 처음으로 가르쳤을 때, 나의 이웃들은 이에 놀라고 분개했다. 그들은 시골 소년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나를 믿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의 기적도 행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 예언자라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격언을 머리에 떠올렸다. 마음속에 괴로운 물음들이 맴돌았다. 이스라엘도 나자렛과 같은 길을 갈 것인가?


제자들의 파견 (마르6,6b-13)


열두 제자들은 이제까지 내가 일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가르침에 익숙해졌다. 나는 제자들을 시켜 모험을 시도해 볼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제자들이 서로를 돌보면서 다니도록 둘씩 짝지어 파견했다. 순회 설교자처럼 그들은 수월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필요하면 즉시 서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도록 제자들이 세례자 요한처럼 처신할 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제자들이 아직은 복음을 충분히 이해하여 다른 이들을 설득하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내가 하느님의 통치를 선포한 것과 같은 정도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며칠 후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기쁨으로 크게 고조되어 있었다. 그들도 치유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곧 그 사명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지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 (마르6,17-29)


그동안 그들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이 기막힌 상황 속에서 살해되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의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거두어 경건히 장례를 치렀다는 소식을 듣고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나와 나의 제자들에게 조용히 모든 것을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되었다.


빵의 기적 (마르6,30-44)


우리는 쉬려고 배를 타고 서쪽 호숫가로 갔다. 아주 조용한 곳을 찾아서! 사람들은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했다. 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생각했다. 이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은 처지가 아닌가! 내가 이들에게 목자가 되어야겠다. 나는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나의 말에 굶주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늦어지면서 제자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헤쳐 보내 마을로 가서 각자 음식을 사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하자고 건의했다. 사람들은 급히 서둘러 이곳에 왔기 때문에 그야말로 대책없이 온종일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우리가 지금 광야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광야의 의미를 알고 착한 목자라는 의미를 알아들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짐짓 제자들의 처신을 떠보았다. :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사정도 모른다는 투로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만, 어디 돈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대꾸했다. 나는 그들에게 배에 가서 먹을 것이라도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결국 제자들이 가져온 것은 빵 다섯 개와 마른 생선 두 마리가 전부였다.


나는 오천 명이 남짓한 사람들을 오십 명 내지 백 명씩 떼지어 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빵을 들고 하늘을 보며 아빠께 축복을 빈 후 떼어 제자들에게 준 후, 사람들에게 그 빵을 떼어 나누어주게 하고 물고기도 그렇게 하게 했다. 사람들이 다 먹은 후 남은 조각은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열둘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숫자이다. 나는 엘리야가 보리 빵 이십 개로 백 명을 먹인 사건을 떠올렸다. 그리고 물론 만나 사건도 기억했다. 여기 이 빵도 하늘로부터 내려 온 것이었다. 나는 그 엄청난 노천 식사의 주방장이었다.


물위를 걸으시다 (마르6,45-56)


나는 배로 제자들을 보내어 호수 건너편으로 가게 했다. 그동안 기도하러 그곳을 빠져나가 언덕배기로 갔다. 참으로 드물게 갖는 기회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새벽 세 시까지 기도하다가 제자들에게 갔다. 강한 바람 때문에 제자들이 탄 배는 멀리 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호수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 물위를 걸어오는 나를 보고 제자들은 혼비백산하듯 무서움에 떨었다. 제자들은 귀신이나 헛것을 보는 듯 질겁했다. 나는 말을 걸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배 안에 들어가 즉시 바람을 그치게 했다. 그들은 할 말을 잊은 듯 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내가 제자들을 지나치게 기대했는가? 그러나 나는 제자들과 항상 함께 있었고, 특별히 따로 시간과 공간을 내어 특별히 그들을 가르쳤다. 우리는 겐네사렛 호수 서쪽으로 돌아가 다시 사람들 가운데 들어갔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선언하시다 (마르7,1-23)


또다시 예루살렘의 율사들이 왔다. 그들은 그 지방에 사는 바리사이들과 함께 씻는 예식에 대한 문제를 두고 나를 걸고 나섰다. 그들은 일부 나를 따르는 이들이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예식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지나친 관심으로 율법의 세부 규정들을 만들어 준수함으로써 율법의 보호막을 형성했기 때문에 그런 손 씻는 예식 같은 것에 아주 민감했다. 나는 그들의 열성은 인정하지만 다만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나는 그들의 표적이라는 걸 알았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습니까?”라는 그들의 도전적인 물음이 그 점을 입증했다. 사실 그들은 그 즉시에 나를 고발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조상들의 전통이며 구전 전승이라고 할 수 있는 할라카(Halalkah)를 지키지 않았다. 이 전승은 여러 세대에 걸쳐 랍비들이 모세의 율법에 많은 규정과 실천 사항들을 첨부한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법에 인간적인 요소들을 첨가한 것으로 서로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이는 동정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결의론의 맛이 났다.


나는 결의론의 폐해에 대한 극명한 예를 들었다. 봉헌하겠다는 구체적인 서원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코르반(Korban)을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에게 그 당장에 봉양해야 할 필요가 있는 재산이나 부동산이라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뜻에서 ‘코르반’하고 서원하면 부모에게 봉양할 수 없었다. 일단 서원한 재화는 거룩한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그는 그 재화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그러한 서원은 실은 법적으로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효도의 책무를 법적으로 회피하는 간사한 방법으로 이를 악용했다. 그러나 율사의 시각으로 보면 그것은 법적인 구속력이 있었고 관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율법이 명하는 부모 효도라는 큰 의무를 회피했다. 나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예들을 많이 들어 설명했다.


나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나는 결의론에 마음을 몰두하여 합당한 균형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웠다. 하찮은 세부 규정이 점차 중요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런 법과 실천은 사람에게 강박관념을 주었다. 사람은 그 법을 지키든지 아니면 법을 떠나 죄를 짓든지 둘 중에 한쪽에 서야 했다. 그것은 탐욕보다 더 나쁜 하나의 병이었다. 결의론자들은 꼭 권위있는 직분을 통하여 상처받기 쉬운 이들의 삶을 더욱 어렵고 불쌍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를 참지 못하겠다.


사람들은 이 긴장된 상황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며 모여들었다. 나는 말없이 나에게 동조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사상을 크게 칭송하고 존경하였으나, 그들에게 오히려 푸대접을 받는 처지에 있었다. 사람들은 나의 색다른 처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수수께끼와 같은 다음 말로 사람들을 계속 이끌어 갔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그 의미를 곱씹도록 내버려뒀다.


내가 혼자 있을 때 제자들이 와서 그 수수께끼와 같은 나의 가르침이 무슨 뜻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제 힘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다소 실망감을 느꼈다. 나는 그 의미는 간단한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소화과정을 잘 생각해 보라. 나는 음식이 씻는 예식에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기에 음식을 예로 들었다. 음식은 더럽히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 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음식은 종교 행위의 중심이요 원천인 마음에 크게 관련되어 있지 않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인간을 더럽히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악과 죄이다.


한 번에 나는 기존의 씻는 예식의 개념을 파기했다. 거룩함이란 ‘불결’에 반대되는 ‘청결’이라는 차원으로 볼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의 영역이 아니라 ‘행위’의 영역에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며 인격적 책임에 관계되는 것이다. 아마 율사들은 내 가르침을 사람들에게서 이미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경우 그들은 내가 그들자신이나 그들의 조직체에 하나의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 한 말을 여전히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위축시키지 않고 살며 선포할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식탁에서 죄인들과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 폭압에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풀어낼 것이다.


[월간 빛, 2003년 2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5)


이방 여인 (마르 7,24-30)


내 활동의 중심 무대를 주로 갈릴래아 지역으로 삼았지만, 이스라엘 이외의 띠르라는 이방 지역으로 간 적도 있었다. 거기서 크게 기억나는 일은 자기 딸을 낫게 해달라고 애걸하였던 시로-페니키아 출신의 여인과의 만남이었다. 내가 이방인의 치유는 규정상 허용될 수 없다고 말하며 거절한 이유는 나의 사명이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 빵은 개와 같이 업신여김을 받던 이방인에게 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개라 할지라도 빵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흡족했다. 제대로 호적수를 만난 것이다.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사실 그녀의 딸은 말끔히 나았는데, 아마 여기서 최초로 역설적 처신을 보였던 것 같았다. 그 같은 신선한 믿음에 나는 응답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믿음이 그 곳과 이스라엘 안에서 발견되면 좋으련만!


우리는 오른쪽으로 둘러 데카폴리스 지역으로 왔다. 사람들은 귀먹은 반벙어리를 나에게 데리고 왔다. 그의 귀와 혀를 만졌더니, 그는 들을 뿐만 아니라 말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당부했지만 그럴수록 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다! 그는 “그분이 좋은 일을 다 하셨다.”고 외쳤다. 사람들이 내가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했다고 말할 때 이사야 예언서의 대목을 염두에 두면서 메시아의 구원이라는 입장에서 나의 처신을 보았던가?


나는 이방인 지역인 이곳 데카폴리스에서도 역시 사람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기적적 치유가 일어나자 갈릴래아 못지 않게 사람들이 몰려와 들끓었다. 사람들은 나흘이나 나와 함께 있었고 부족한 음식은 동이 났다. 그 점이 걱정이 되어 제자들에게 말했다. 정말 사람들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사람들을 굶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떤 이는 집을 떠나 멀리 왔기 때문에 돌아가는 도중에 허기로 쓰러질지도 몰랐다. 제자들의 생각은 짧았다. 그들은 사막에서 사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다 먹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불쑥 되받았다. 그들이 가진 빵이 모두 일곱 개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 빵을 들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빵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생선도 몇 마리가 있어 그렇게 했다. 남은 음식을 모으니 일곱 광주리가 가득 찼다. 광야에서의 빵의 기적은 이곳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며, 이는 첫 번째 기적을 비슷하게 이어 받은 것이었다. 첫 번째 기적 때는 유다인들의 지역에서 남은 음식을 모았을 때 열두 광주리나 되었었다. 유다인들을 위한 빵과 이방인들을 위한 빵이었다.


귀먹은 반벙어리 (마르 7,31-37)


갈릴래아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즉시 바리사이들의 도전을 받았다. 그들은 정면 도전을 불사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들은 하늘의 징표를 요구했다. 그들은 내가 예언자라고 주장했다고 전제하고, 내가 정말 예언자로서 적합한가를 빗대어 물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무너뜨릴 무언가를 찾아내기에 골몰했던 것이다. 그들을 상대로 시비를 벌일 마음이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표징을 주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다른 표징을 줄 것이다. 나는 그들과 호수를 떠났다. 나는 그들을 하느님의 현존에서 동떨어지고 눈먼 상태로 두었다.


빵 한 덩어리 (마르 8,1-21)


나와 제자들과의 관계는 베싸이다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정점에 달했다. 우리가 서둘러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미리 빵을 준비하지 못했다. 제자들은 배 안에 빵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좋지 못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이라는 말을 하여 제자들에게 주의를 주는 기회로 삼았다. 하지만 제자들은 내가 빵이 부족한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답답한 심정으로 제자들에게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합니까? 당신들도 바리사이들처럼 그렇게 완고합니까? 눈멀고 귀가 먹었습니까? 당신들을 오천 명이나 사천 명을 빵 몇 개로 떼어 나누어 먹인 후 남은 조각을 얼마나 거두어 들인지를 벌써 잊었습니까?”하고 꼬집는 투로 말했다.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제자들이었다. 내가 말한 단 한 마디라도 명심했으면 좋았으련만! 제자들은 내가 하나의 빵이라는 말을 알아들어야 했다. 나는 호숫가 이리 저리로 다니면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상징적으로 함께 엮어내려 노력했었다.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함께 먹임으로써 그들 모두를 하나로 나에게 거두어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사명 수행은 이스라엘이라는 한정된 테두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베싸이다의 소경 치유 (마르 8,22-26)


베싸이다에서 소경을 치유한 사건은 제자들을 교육시키기에 딱 좋은 예가 되었다. 제자들은 그 소경처럼 눈이 멀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소경의 눈을 열어 준 것처럼 제자들의 눈도 열어줄 것이다. 단계적으로 치유했다. 내가 그의 눈에 손을 갖다 대면서 보라고 하자, 그는 사람들이 지나는 것을 아련히 보게 되었다. 다시 한번 더 눈에 손을 갖다 대자 그는 명백히 보게 되었다. 그에게 그 마을로 들어가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물론 소용없는 것이었지만. 나는 두 단계로 시력을 복구시킴으로써 신앙을 갖게 되는 두 단계를 비유로 가르치면서 제자들의 시력을 치유할 것이다. 내가 제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낌새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마르 8,27-33)


갈릴래아에서의 나의 사명은 끝났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든 나는 유다 지역의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이곳 갈릴래아에 온 율사들이 계속 면밀히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켕겼다. 우선 그들의 소굴로 들어가려 했다. 이런 와중에 나의 제자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하여 헤르몬 산자락에 있는 필립보 가이사리아의 조용한 곳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이라고 했다. 혹 어떤 이들은 내가 엘리야나 모세와 같은 예언자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메시아 시대의 징조로 엘리야나 예언자들 중의 한 예언자가 나타날 것으로 믿었다.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제자들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성급한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을 대신해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했다. 여기까지는 아직 좋았다. 문제는 그 메시아의 역할이 무엇이냐를 제대로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뭇 나라들을 다스리고 유다 제국의 정복자로서 대중적 기대를 한 몸에 안고 개선하는 메시아를 심중에 두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선택받고 도유된 하느님의 은혜로운 통치의 구체화된 인물을 의식하고 있었다. 나를 통해 아빠는 당신의 원의를 드러내셨다. 물론세상이 말하는 그런 류의 통치자가 아니었다. 누구는 다스리고, 누구는 봉사하는 그런 제국도 아닌 것이었다. 나의 길은 개선가도 없는 실패의 길이었다. 고통과 끔찍한 죽음이 내 눈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다 하더라도 아빠의 말씀은 끝까지 남아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머잖아 고통과 죽음을 받을 것이라는 나의 경고는 베드로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베드로는 발끈하며 “당신이 그리스도이신데 고통과 죽음을 당하실 것이라니 말이 됩니까? 그리스도가 죽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신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반발했다. 이는 일찍이 이곳저곳에서 별 반발이 없이 불리던 메시아적 지도자라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호칭보다 더 심각했다. 이런 위험한 단계에서 나의 일을 시작하려 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필요한 일은 일부 지지자들의 무리한 희망 사항을 애초부터 뿌리뽑는 것이었다.


나는 베드로를 될 수 있는 한 엄하게 꾸짖으며 말했다. “내 뒤로 물러서라. 사탄아! 하느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만 말하는구나.” 베드로는 물론 상처받았다. 그는 가장 헌신적으로 나를 따른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나의 목표에 어긋나는 처신을 한 그를 내가 반대자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그의 원의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이런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것이고, 결국 나를 전적으로 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열정적인 자신을 회복할 것이다. 역시 그는 내가 그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곧바로 깨달았으며, 자신의 헛된 꿈을 잊을 것이다.


[월간 빛, 2004년 3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6)


둘째 마당 : 십자가 (마르 8,31-15,37)


사람의 아들의 길 (마르8,31-9,1)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는 전환점이었다. 그곳은 일찍이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나 갈릴래아 지역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나 그 도중에 한숨 돌리고 쉬어 가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황량한 유다 시골 지역이 주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시골 출신인 나에게는 부산스런 도시도 결코 쉬운 곳이 아니었다. 물론 예루살렘 도시에 있는 성전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아빠께서 정말 그렇게 정교하고 복잡한 종교를 원하시겠는가? 당신은 형식적·특권적 사제 제도를 필요로 하시겠는가? 당신이 바라시는 예식과 봉사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며 한결 더 인간적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 도시는 내 운명을 판가름할 곳이었다. 이 도시는 내 민족의 종교 중심지로, 거기에는 내 하느님의 집이 있었다.


이제 나는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계속 가르칠 것이다. 나의 가르침은 고리타분한 것과는 달리 새로운 것으로 비쳐졌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에서 내가 가르쳤을 때, 베드로는 반발했다. 제자로서 불림을 받았을 때 갖추어야 할 처신에 대해 내가 일러주었다. 누구든 나의 뒤를 따르려면 내가 가는 길에 익숙해야 한다. 충실한 제자는 개인 이익을 따지지 않고, 나를 믿고 따를 것이다. 제자의 길은 쉬운 것이 아니며, 그 길에 수반되어 위축시키는 유혹들 또한 많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을 피하고 생명을 얻는 길은 잘못된 자아를 포기하는 고통이 수반된다. 특히 나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이는 진정한 자아를 얻게 될 것이다.


인간 생명이 참으로 세상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 값으로 따질 수 없다면 충직한 제자들이 얻게 되는 영원한 생명은 더할 나위 없는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의 도전이 있었고, 나는 그 점을 경고했다. 이로부터 나의 가르침을 듣기는 하지만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또 나의 길을 버리고 부끄럽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 역시 그런 이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가 끝날 영광 중에 다시 나타날 때 나는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때 나는 끝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미 이 세대가 가기 전에 하느님의 엄위로운 통치가 나타날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그렇게 그들에게 말했다.


변모 (마르9,2-13)


기도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빠의 목소리를 들어야했다. 그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불러내어 헤르몬 산을 올라 거기서 기도했다. 내가 기도할 때 엘리야와 모세의 모습을 보았다. 기도를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인 율법과 예언서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다가올 나의 미래가 눈에 들어오듯 분명하게 여겨졌다. 세 명의 제자들은 변화되어 빛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두 천상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도 보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베드로는 가능하다면 아주 산에서 머물자고 제안하면서,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고 싶다고 했다. 나는 위대한 인물들과 함께 하는 격에 맞게 그의 평가로 한층 더 고양되었고, 그에 걸맞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는 내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이제 베드로도 내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는 율법과 예언서를 능가하는 말씀을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은 한 순간에 떨어졌고, 그 천상인물의 모습들도 사라졌다. 그 산정에는 나와 제자들만 동그라니 남아 있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비밀에 붙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죽기 전에는 그 일의 의미를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라고 말했다. 이는 제자들에게 알아듣기 힘든 수수께끼와 같은 말이겠지만, 그들은 인내하며 비밀에 붙여야 했다. 결국에는 내가 바라는 대로 모두 다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와 엘리야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분명 이 모든 것은 메시아 시대의 여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엘리야는 메시아가 오기 전에 준비하러 와야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엘리야는 어디에 왔느냐? 나는 엘리야는 이미 왔으며, 멸시를 당하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확신했다. 만일 이것이 전통적인 엘리야 상으로 예견된 운명이 아니라면 참 메시아의 운명의 조짐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는 제자들이 나 자신과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한 내 말을 모두 이해했다고는 보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그들에게 무리였다. 그들은 점차 배우게 될 것이다.


기도만으로 가능한 것 (마르9,14-29)


우리 넷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제자들과 율사들이 있었다. 율사들은 내가 없는 틈을 타서 제자들과 시비를 벌이고 있었다. 나의 백성들은 전문적 율사가 아닐 뿐더러 율사들의 학문적 난해함 속에서 헤매기까지 하고 있었다. 내가 율사들에게 “여러분들은 무슨 이유로 시비를 벌이고 있습니까?”라며 도전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곧장 달려왔다. 그는 간질병에 걸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했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모든 면에서 믿음의 부족함이 역력했다. 불만스러웠다. 아버지의 믿음도 그저 그랬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아들을 고쳐 달라고 애걸했다.


소년이 발작을 일으킨 뒤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고 단정했다. 내가 소년의 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는 일어났다. 그 뒤 우리만 남았을 때 제자들은 왜 자신들은 소년을 고치지 못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나는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권능에 전적으로 신뢰하는 기도라고 설명했다. 내가 없으면 제자들이 율사들과의 논쟁에서 반박도 할 수 없고 치유도 할 수 없다고 일일이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는 제자들이 스스로 그런 점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들이 결국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그러면 그들은 기도 중에 나의 현존을 발견하면서 나의 능력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수난과 동상이몽의 제자들 (마르9,30-49)


우리는 갈릴래아를 지나갔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에서 “이제 곧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을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게 하실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제자들에게 상기시켰다. 이어서 죽음을 초월한 생명에 대해서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묻기조차 두려워했으며, 당혹스러움과 근심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이내 사라지고 그들은 다른 문제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가파르나움에 들어가서 숙식지를 정한 후 나는 무슨 문제로 그렇게 다투었느냐고 물었다. 여전히 당혹스러운 듯한 침묵이 흘렀다. 그 당시 그들은 서로 다투는 이야기를 내가 엿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부러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너무 법석을 떨며 다투었기 때문에 저절로 알게 되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 중에 누가 가장 높으냐는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이는 나의 어두운 수난예고를 거의 깨닫지 못했음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시련의 시간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은 가장 높은 이가 그들 중에 있을 것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나는 열두 제자를 불러 누구든지 가장 높이 되려고 한다면 가장 낮은 이가 되어야 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예언자와 같은 처신으로 분명히 말했다.


한 어린이가 호기심어린 눈망울을 굴리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두 팔을 펼치며 부르자 그 어린이는 내 품안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조용히 그 아이를 곧추 세우고 열두 제자들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파견하신 아빠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장 미약한 이에게 베푸는 사랑의 봉사는 나와 아빠에 대해 봉사하는 것이다. 이를 제자들이 제대로 알아듣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직책이나 명망이나 권력에 대한 제자들의 욕망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요한은 제자단에 속하지 아니한 어떤 사람이 내 이름으로 병자를 치유한다고 화를 내면서 불평을 털어놓았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제자들이 마음 씀씀이를 좀더 폭넓게 하면 좋으련만! 실제로 그가 내 이름으로 치유했다면 적어도 우리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은 이상,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충고했다. 언제 어디서건 우리가 발견한 선은 공동선이며, 함께 기뻐해 주어야 할 것이다. 누구라도 나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면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아무리 작은 선행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이다.


그 어린이는 여전히 나의 무릎에 편안히 기대어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죄인의 부류로 통하며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다른 ‘미소한 이들’에 대해 말했다. 이 때 나는 강력한 어투로 힘주어 말했다. 나는 미약한 이를 죄짓게 하는 이들을 두고 경고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가장 나쁜 이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손이나 발, 눈이 타락하게 만들면 그것들을 잘라 버려라! 그것을 가지고 지옥에 가서 끝장을 보는 것보다 불구가 되더라도 생명을 얻는 것이 더 낫다. 나는 준엄한 어조로 마치 세례자 요한과 같은 소리로 경고했다. 야욕이나 투쟁을 버리고 평화와 조화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결혼과 어린이 (마르10,1-16)


이제 유다를 거쳐 요르단 강 동편인 페레아 지역으로 갔다. 그곳은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사명을 시작한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나에게로 몰려왔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열심히 그들을 가르쳤다. 물론 그곳에서도 바리사이들이 무서운 적개심을 품고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혼 문제를 들고 나와 나에게 도전했다. 남편이 아내를 법적으로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혼이 일반적이었기에 충분히 토론의 여지가 있는 물음이었다. 그들은 분명 율사들의 입장을 요구했다. 즉 이혼의 합법적인 사유들을 열거해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신명기의 이혼 인정에 관한 율법 대목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이 이스라엘의 완고함 때문에 그런 허락이나 관면이 주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혼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하느님이 남녀를 창조하신 것은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심으로써 갈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 결합은 둘이 하나가 된 것이기도 할 뿐더러 하느님이 둘을 짝지어 하나로 이루어주신 제정자이시기 때문에 갈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결합시킨 것을 인간이 해소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더 이상 바리사이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뒤에 우리만이 남았을 때 제자들은 궁금한 것을 좀더 물었다. 우선 내 생각을 다시 분명히 정리했다. “이혼하고 재혼하는 것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 결혼의 신성함과 영속성에 대해 나는 분명히 못 박았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남편과 아내를 서로 성숙시키는 사랑의 유대이다. 나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영감을 받을 것을 그 이상(理想)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완고한 율법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나의 길이 그런 법에 얽매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또다시 옥신각신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여인들의 큰 목소리도 들었다. 그것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나를 만지게끔 실랑이를 벌였던 것이다. 제자들은 어머니들을 막으며 “개구쟁이들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보호하며 그 말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어린 아이들을 무시하는 당시의 경향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나는 즉시 이 어린이들이 천국의 가장 이상적인 시민권자라고 말하면서, 그냥 내버려두라고 제자들에게 엄하게 명했다. 어린이들이야말로 어떤 이들보다도 천국에 가장 적합한 이들이다. 천국이야말로 이 어린이들처럼 단순하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하느님 나라의 다스림의 축복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하느님의 다스림은 내 안에, 나를 통해서 현존하고 있었다.


이 미약한 어린이들은 나에게 올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그들을 부르자 그들은 나에게 달려 왔다. 그리고 나는 어른들에게 불가능한 것이 어린이들에게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린이들을 팔로 안고 머리를 토닥이며 미소 짓고 키득거리는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 모습에 제자들은 멍하니 당혹스러워 하는 것 같았고, 어머니들은 크게 기뻐했다. 여인들은 눈치와 직감이 참 빠른 것 같았다. 게다가 여자 제자들이 남자 제자들보다 훨씬 더 항구하다고 입증하고 싶었다.


[월간 빛, 2004년 4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7)


그는 근심하며 떠나갔다. (마르10,17-31)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길을 떠나 요르단 강을 건너 예리코로 향하고 있을 무렵, 어떤 젊은이가 허겁지겁 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호감이 가는 그가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고 장담했을 때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는 이상적인 제자가 되고 싶어 했고, 나는 그가 소개한 이상으로 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부유한 가문의 출신으로 아버지 재산의 상속자였다. 그런데 내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시련이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자유롭게 되었을 때 가진 것 없는 우리와 함께 하라고 했다. 그것은 그에게 너무 과분했던 요구였던 것 같았다. 그는 얼굴을 숙이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돌아가 버렸다. 물론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좀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 교훈을 제자들에게 차분히 가르쳤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당대 생각으로 보면, 부자란 하느님 축복의 외적 표현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나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하고 반발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고 말했다.


베드로는 자신과 다른 제자들이 나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렸다고 상기시켰다. 물론 제자들이 그 부자처럼 포기해야 될 많은 재산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들로서는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따랐던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의 처신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따라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부모와 자녀와 땅을 버렸다. 나는 그들이 잃어버린 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현세에서 박해와 고통도 받겠지만 그에 대한 수십에서 수백 배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제 다들 지배 형태인 가부장적 구조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모든 이가 제자로서의 평등한 위치를 사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사실상 지속하기 어려운 하나의 이상으로 드러날 것이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었다.


섬기는 자유 (마르10,32-52)


아직까지는 예루살렘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 차질은 없었다. 나는 앞장 서 가면서 제자들이 느끼는 불안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제자들은 나의 처신에서 불길한 조짐을 느꼈을 것이다. 세 번째로 나는 참으로 절박한 시간이 나에게 닥쳐왔다고 말해주었다. 이제 제자들도 그 시간에 직면할 것이다. 그들은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와중에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솔직했다. 메시아 왕국이 서면 가장 높은 자리를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 영광을 나누어 받을 만한 대가를 치룰 자세가 되어 있는가를 물었다. 그들은 뭘 모르고 무모한 확신으로 대답했다. 어이없는 나는 미소만 지었다. 시간이 지나면 정말 알게 되겠지! 그 자리를 주고 안 주고는 나의 제의가 아니라 이미 아버지의 의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 두 형제들의 이런 요청에 다른 제자들은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 약삭빠른 두 형제가 몰래 슬쩍 해치우려고 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들통 나고 말았던 것이다. 첫째가 꼴찌가 된다는 내 말이나 제자 직무의 평등에 대한 경험은 지배와 권력과 야망의 갈증과 충동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것이었다. 그때 이런 것들이 내 사명을 지속적으로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행정 당국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권력을 말했다. 통치자들은 자신의 발아래 모든 것을 두게 하려는 지배욕이 있다. 그러나 이는 나를 따르기로 작심한 이들에게는 걸맞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권력을 그 역으로 설정했다.


통치자들은 공동체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권력과 왕실이라는 격에 따른 권력의 행사나 모양이나 의복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나 자신의 예까지 들려주었다. 제자들만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해서 온 나는 죄의 압제와 노예생활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풀어 구원하고자 내 목숨을 내어놓으려고 왔다. 분명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세상의 어떤 은인보다도 더 큰 영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봉사하는 영광 이외에는 어떤 영광도 구하지 않았다. 나는 제자들이 사랑의 자유 안에서 서로 종으로 봉사함으로써 충만한 인간 성숙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강조했다. 내 말의 뜻은 아주 명백했다. 권력과 영광에 관심이 많은 세상의 통치자들과는 다르게 나의 제자들은 허세나 과시가 없는 봉사를 하게 되어 있었다. 지배나 압제는 나와 나를 드러내는 모든 것과는 정반대가 될 것이다. 내 말은 예루살렘에서 권위를 파괴할 것이다. 나는 위험한 인물로 지목될 것이다. 나의 가르침은 정치적인 폭발물과 같을 것이다. 침묵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어찌 될 것인가!


제베대오의 아들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양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내가 당신들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랍니까?”하고 물었다. 이제 예리코에서 나는 간절히 호소하는 다른 이에게 똑같은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그가 “라뽀니,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소경 바르티메오는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내가 그 곁을 지날 때, 다른 이들이 말렸지만, ‘다윗의 아들’에게 애걸하듯, 그렇지만 큰 기대를 하면서 계속해서 크게 불렀다. 나는 그런 강한 믿음을 가상히 여겨 그의 시력을 즉시 회복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를 정말 깨끗이 고쳐주었으며, 더 깊은 실제를 볼 수 있도록 그의 눈을 열어주었다. 시력을 선물로 받은 그는 제자의 길을 걷고자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를 본 나의 제자들은 권위라는 것이 전적으로 치유와 성숙을 위한 봉사에 있다는 것을 배웠을까?


예루살렘에서 (마르11,1-26)


우리는 올리브 산으로 올라가서 예루살렘 도읍을 내려다보았다. 저기서 나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었다. 예언자다운 모습을 보였던 순간이었다. 나는 즈가리야 예언서가 말하는 겸허하게 당나귀를 타고 오시는 메시아와 같은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다. 처음으로 메시아에 걸맞는 처신을 보였다. 보는 안목을 지닌 사람들은 그렇게 보았을 것이다. 이제 엉뚱한 그의 오해의 소지는 점차 벗겨질 것이다. 우리의 소박한 행진은 성문 앞까지 이어졌다. 나는 혼자 성전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기서 벌어지는 일에 크게 실망하고 분개했다. 그 뒤 밤이 되자 나는 베타니아로 가서 쉬었다.


다음날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예로 삼고 싶었다. 나무 가까이 가서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아무 열매도 달려있지 않았다. 사실은 열매를 맺을 계절이 아직 아니었던 것이다. 끔찍한 몇 마디 말을 던졌다. “이제부터는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 열매를 따먹는 일이 없으리라.”


나는 그곳을 떠나버렸다. 제자들은 내가 무언으로 표시한 비유의 의미를 잘 알아들었다. 나는 무화과나무의 운명을 바로 성전의 운명으로 보았다. 우리는 곧장 성전으로 가서 예언자와 같은 몸짓으로 처신했다. 성전 밖 뜰에서 나는 희생용 동물들을 판매하는 상인들을 몰아내고 비둘기를 파는 이들의 상과 로마 화폐를 유다인들의 화폐로 바꾸어주는 환전상들의 상을 둘러엎었다. 그리고 마당에서 성전 제구들을 이리 저리 나르는 것을 금지했다. 나는 상징적으로 성전을 폐쇄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처신한 것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느님의 용서와 하느님과의 친교를 얻는 성전과 예배는 긴급도피처인 강도의 소굴이 되었으며,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 아닌 이스라엘만을 위한 독점적 영역이 되었다고.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대제관들과 율사들은 나의 메시지와 도전을 명백하게 들었다. 그들은 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제거할 때를 기다렸다.


논쟁 (마르11,27-12,44)


다음날 내가 성전으로 갔을 때 대제관, 율사, 원로들이 다가 와서 말을 걸었다.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어제 나의 처신이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내가 그렇게 처신한 권한이 어디 있는가를 문제 삼았다. 그들은 나를 불신하기로 아예 작정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요한이 베푸는 세례의 권한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물었다. 이 물음이 그들을 진퇴양난의 궁지로 몰았다. 만일 자신들이 요한의 권한이 하늘로부터 주어졌다고 말하면 요한의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불신했다는 잘못으로 떨어지게 되고, 나의 권한도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알고 따르고 있었으므로 감히 그의 권한을 부인할 수가 없었던 처지였다. 그들은 답을 회피하거나 침묵해야 될 처지가 되었다. 나는 효과적으로 그들의 도전을 꺾을 수 있었다.


나는 비유를 들어 차분히 타이르며 그들에게 반박하기 시작했다. 비유는 하느님이 소작으로 준 포도원 농부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곧 이스라엘의 역사의 요약이었다. 하느님은 도조를 받아 오라고 당신의 종인 예언자들을 보냈다. 농부들은 종들을 보자마자 모욕하고 학대하거나 죽이기까지 했다. 하느님은 마지막 수단으로 당신의 아들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 아들은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이었다. 하느님은 “내 아들이야 알아보겠지.”하며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농부들은 비웃듯이 그 아들을 죽여 묻어주지도 않고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말았다. 심판이 내려졌다. 포도원은 남에게로 넘어갈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이 비유의 내용이 누구를 두고 하는지를 알아들었다. 그들이 바로 소작을 받은 사악한 농부들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주위에 없었더라면, 그 즉시 화가 난 그들이 나를 붙잡았을 것이다.


음모가 깊어지고 있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당국으로부터 또 파견되었다. 내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로 인식되어 그들은 정치적으로 서로 결속 된 것이었다. 짓눌린 이들의 보호, 권위에 대한 나의 생각, 죄인들과의 상종은 정치적으로 그들의 종교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교묘한 질문을 던졌다. 바리사이들은 로마의 주민세를 인정하였지만 민족주의자들인 열혈 독립당원들은 전적으로 거부하던 터였다. 그들은 주민세를 바쳐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를 나에게 물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한 단체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다. 게다가 바치지 말라면 로마 지배권에 심각한 도전이 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난감했다. 그들이 나에게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동전을 하나 달라고 하여 동전의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인지를 물었다. 그들은 로마 황제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분명 그 로마 제국이 발행한 동전으로 알면서 사용하고 있었다! 좋다, 그러면 그들은 카이사르에게 그의 것인 동전을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것은 언제나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 그들에게는 유감스럽지만 나는 이런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는 사두가이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새롭게 유행하는 부활 사상을 부인하면서 그 부당성을 들고 나왔다. 한 여인이 일곱 형제의 부인으로 있었다. 다시 말해 결혼하는 족족 다 남편이 사망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부활이 있다면 저승에 가서 부활한 후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이 있으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잘못된 부활관을 지적하였다. 부활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전의 생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며, 이 세상을 초월하며 이 세상의 조건들과는 전혀 다른 시공에서 변화된 삶이다.


결국, 놀랍게도 좋은 뜻을 가진 율사 한 사람! 그는 나에게 율사다운 질문을 던졌다. 계명들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솔직한 물음에 바로 답을 주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들어주었다. 그 율사는 내 말에 동의하며 모든 번제나 제사보다 더 낫다고 덧붙였다. 그는 바른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는 분명 머잖아 제자가 될 것으로 보였다.


나는 끝으로 사람들에게 율사들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율사들은 나를 두고 사람들을 잘못 이끄는 주범으로 몰았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종교와 입지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흠집난 모상이라고 속이고 있었다. 그들의 하느님은 나의 아빠와 같은 분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학 전문가라 생각하고 종교 규율을 세심하게 지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들은 기다란 옷을 입고 다니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회당과 잔치에서 당연하다는 듯 가장 윗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남이 보는 데서 오래 기도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등쳐먹기를 좋아했다.


나는 가난한 과부가 성전에 들어와 가진 돈을 봉헌하는 모습을 지적했다. 그녀는 비록 작은 돈이지만, 자신이 가진 전부를 바쳤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마음 없는 율법주의의 한 희생자로 착취당했던가? 나는 배수진을 쳤다. 율사들과의 관계는 여기서 완전히 끝났다.


[월간 빛, 2004년 5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8)


종말 담화(마르13,1-37)


우리가 성전을 떠날 때 제자 한 명이 성전 건물의 웅장함에 감탄하고 있었다. 나는 곧 폐허의 흔적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올리브 산 위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아가 성전과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물었다. 나는 재난의 시기가 도시와 성전의 파괴 이전에 먼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내 제자들까지도 그런 재난을 맞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세상 종말이 예루살렘의 종말과 함께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 나는 세상의 종말이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올 것이지만 그때가 언제일런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느님만이 아신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의 아들이 선민들을 모은다는 것이었다. 가장 현명한 처신은 준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의 재림을 쳐다 보다 혼절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 사람들을 잘 알 것이다.


베다니아에서 생긴 일(마르14,1-11)


해방절 축제 이틀 전이었다. 나는 내가 이미 치유했던 나병환자인 베다니아의 시몬 집의 식탁에 앉아 있었다.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들고 들어와서 정중히 내 머리 위에 부었다. 그것은 나를 메시아로 알아 모신다는 그녀 나름의 표현이었다. 손님들은 그녀의 처신을 불필요한 낭비로 보았다. 그 향유 값이라면 많은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여인의 입장에 서 있다.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은혜롭고 사랑스런 행동을 했다. 그녀가 의식했건, 안했건 간에 안장되기 전에 내 몸에 기름을 미리 바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말과 그녀의 처신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나 들려지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녀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 만찬(마르14,12-31)


나는 해방절 식사를 할 것이다. 그래서 여제자 둘을 보내 준비를 시켰다. 그들은 준비가 된 적절한 이층 방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녁 때가 되어 열두 제자들과 함께 그리로 갔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했다. 내 마음은 나의 마지막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생각에 무거웠다. 모두들 고통스럽고 어두운 분위기를 느꼈다. 물론 나는 제자들 중의 한 명으로부터 배반당할 것이다. 참으로 쓰라린 아픔이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채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면 너무 실망스러웠지만 별 것 아니었다. 불행한 유다스가 안타까웠다.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자비로운 아빠께서 그를 가엾게 봐 주셨으면 했다.


식탁에서 음식을 함께 한 것은 내 생활의 중요한 하나의 형태에 속했다. 내 제자들은 함께 한 이 마지막 만찬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빵을 들고 축복한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눠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받으시오. 이는 내 몸입니다.” 나는 포도주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린 후 제자들에게 주며 마시라고 했다. “이는 내 계약의 피로써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것입니다.” 나는 모세의 행동을 상기하고 있었다. 새로운 계약이 만들어져 인준되었다. 그 계약의 축복은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마지막 만찬은 제자들이 내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게 도왔다. 지금까지도 나는 제자들에게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고 강조할 수 있다. 이 만찬은 우리가 지상에서 가진 마지막 식사였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 왕국의 풍요로움 속에서 다시 식탁을 중심으로 만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제자들이 잘못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나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갈릴래아에서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재탄생하게 될 것이고,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갈릴래아는 다시 선교의 장, 세계 선교의 장이 될 것이다. 그때 나의 씩씩한 베드로는 두 번 다시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크게 잘못할 것이라는 나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그는 어려운 길을 배우게 될 것이다.


내 영혼이 근심에 쌓이다(마르14,32-52)


나는 극도의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 배반자와 대면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과 제자들과 함께 있지만, 그들 모두도 결국 떠나버리고 말 현실을 직면해야만 했다. 우리는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만찬 방에서 키드론 골짜기의 묘지를 지나 올리브 동산의 겟세마니, 곧 기름 짜는 틀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오싹한 죽음의 분위기가 코앞에 물씬 풍기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남겨두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올리브 나무숲으로 갔다. 크게 번뇌하면서 괴로워 죽을 듯한 나의 심정을 그들에게 토로했다. 그러면서 함께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기도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 앞으로 닥칠 끔찍한 일이 절절했다. “아빠,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아빠께서 걷기를 바라시는 내 앞에 놓여진 나의 길을 나는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니 모두 잠들어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이들이 아닌가? 얼마나 태평스러운지! 나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고뇌 가운데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왜 제가 죽어야만 합니까?”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스스로 물음을 던지면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이미 그에 대한 대답을 했다. ‘내 아들이야 알아보겠지.’ 나는 그들의 구원을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험을 하고 싶었다. 나는 너희들의 죽음을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은 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견줄 바 없는 이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점차 그들도 이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사람들이 반대할 길을 외롭게 걸어가는 것이 아빠의 뜻이라는 것을 기도를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아빠는 나와 함께 계실 것이다. 나는 졸고 있는 제자들을 깨웠다. 이젠 더 이상 두려움도, 분심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결연한 태도로 제자들에게 차분히 일렀다. “일어나 갑시다. 보시오.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습니다.”


대제관들과 율사들과 원로들은 할 일을 신속하게 착수했다. 순식간에 겟세마니에 들이닥친 그들은 나를 체포할 무장 군인들을 보냈다. 유다는 우리가 있는 곳을 잘 알았기 때문에 어두움이 문제가 되지 않아 나를 즉시 알아보았다. 사전에 미리 짜 놓은 듯 유다가 “랍비!”하고 신호를 보내면서 나를 안았다.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체포되었다. 누군가 칼을 빼내 대제관의 종의 귀를 사정없이 내리쳐 잘라 버렸다. 내가 폭력을 휘두른다는 인상을 주는 이 행동을 자제시켰다. 그리고 평화의 사람으로서 나의 가르침을 포기하기 싫었다.


제자들의 비겁한 처신은 큰 아픔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용감한 말을 고백했던 그들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려고 따르던 어떤 한 젊은이가 거의 잡힐 뻔했다. 여제자들은 겟세마니에 함께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제자들이 끝까지 항구하게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있었다.


의회 재판(마르14,53-72)


나는 대제관 저택에서 열린 의회에 끌려갔다. 이미 사형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다만 죽음에 해당되는 증거를 위한 인습적인 의례라는 순서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거짓 증언은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성전 파괴를 예언했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이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라는 내 말은 내가 만든 공동체를 말한다. 성전을 물리적으로 무너뜨린다는 위협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 표현인가! 공격 노선이 향할 곳이 없음이 분명해졌다.


대제관은 고소에 대한 나의 반응을 요구했다. 나는 날조된 고발에 대하여 반응을 보일 마음이 없었다. 나의 의도적인 침묵은 그의 입을 열게 했다. 그는 고소를 정식으로 제기해야 했다.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신중하게 선언했다. “내가 그입니다.” 나는 그가 하느님이 전적으로 배려하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내가 유일하고도 분명하게 메시아임을 주장하는 말이었다. 내가 형을 선고받는다면 그것은 날조된 고소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바로 그(사람의 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제관은 나의 메시아 주장을 신성모독으로 보고 나를 사형감이라 단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안식일을 남용하며 죄인들의 친구였던 나는 ‘사람의 아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내 주장은 거룩한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었다. 가짜 메시아도 로마를 위협하는 자로 간주되었다. 가짜라도 한때 자신의 전성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대제관은 나에 대한 의회의 사형선고에 만장일치를 요구했고 또 그렇게 되었다. 재판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을 때, 베드로는 먼발치에서 두려움과 괴로움과 갈등 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에게 경고했었다. 그는 통절하나 유익한 교훈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점차 성장하고 있었다.


[월간 빛, 2004년 6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9 · 끝)


고난과 죽음을 거친 승리 (마르15,1-37)


다음날 아침, 가장 먼저 나는 본시오 빌라도 총독에게 끌려갔다. 내가 ‘유다인의 왕’이라고 주장했다며 공식적으로 고소당한 상태였다. 정치적인 냄새가 풍기는 고소였다. 유다인의 왕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최고의 국사범에 해당되었다. 정치권력은 로마 제국의 특권이었다. 빌라도는 공적으로 물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왕이요?” 나는 답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합니다.” 대제관들은 발악하며 고발했다. 빌라도는 내가 변호하기를 기대했다. 악의로 가득 차서 나를 반대한 그들의 고소에 대하여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나와 나의 활동에 대하여 정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내가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고 압제받는 이를 옹호한다는 것은 로마의 권력과 같은 지배권을 통해 다스리는 어떤 권력에도 정치적으로 위협을 주는 위험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나는 빗발치는 고소를 별로 겁내지 않았다. 또한 로마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지도 않았고, 권력을 찬탈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의 위협은 좀더 근본적이었다. 권력이 시민의 것이든 그 어떤 다른 것이든 그 뿌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는 빌라도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헤아릴 만큼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관들은 그들의 권력체제에 내가 위협이 된다는 것을 명백히 알았다. 그들은 빌라도가 따르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갈 것이다.


빌라도는 자기가 정말 혐오감을 느끼는 유다 지도자들에게 농간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크게 미심쩍어 했다. 그는 유다인들의 농간에 비위를 맞출 마음이 없었다. 그는 정치적 소요 중에 살인을 저지른 바랍바라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있었다. 바랍바를 해방절 축제에 따른 특사로 방면시키려는 무리들이 그곳에 와있었다. 빌라도는 이것이 좋은 기회라고 보았다. 그들이 바랍바 대신 이 ‘유다인의 왕’을 가지면 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는 제관들이 사람들을 손쉽게 설득하여 그의 제안을 거부하고 바랍바의 석방을 요구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몰랐다. 게다가 제관들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극성스런 사람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별 수 없이 빌라도는 그들의 편을 들었다. 그는 바랍바를 방면하고 나에게는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처형은 지체 없이 이루어졌다. 곧바로 처형 전에 통과 절차라고 할 수 있는 끔직한 태형이 자행되었다. 거기엔 십자가형을 받을 다른 두 사람도 있었기에 시간이 다소 걸렸다. 병사들은 이 ‘유다인의 왕’을 멸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군복을 벗어 왕의 옷인 양 나에게 입혔다. 내 왕관은 급히 엮은 가시관이었다. 모욕, 참으로 역설적인 모욕이었다. 나는 그들이 꿈에도 모를 진짜 왕이었다. 그랬다. 나의 왕권은 세상의 어떤 왕권들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나의 마지막 길이 시작되었다. 그 길은 무용지물의 채석장, 즉 버려진 폐물더미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는 ‘유다인들의 왕’에게 너무나 치욕적인 것이었다. 십자가의 처형이 그런 의도로 격하시킨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다. 처형 장소도 역시 의도적으로 모욕을 주기 위한 곳이었다. 야만적인 매질과 잔인한 모욕으로 쇠약해지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상실감으로 나는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십자가 나무가 내 어깨를 짓누르자 지나가던 행인 키레네 출신 시몬에게 강제로 지게 했다. 내가 골고타 언덕에 이르렀을 때 의례적으로 죄수에게 주는 약을 탄 술을 주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내 옷이 벗겨지고 땅위에 눕혀져 양 손목에 큰 못으로 십자가 횡목 틀에 박히었다. 그리고 즉시 십자가의 종목 틀에 십자로 맞추어진 뒤 못이 발목 관절을 뚫었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었다. 숨쉴 때마다 고통이 뜀박질 하듯 전달되었다. 숨이 가빠오고 정신마저 흐릿해 오는 듯했다.


아마 오전 9시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양쪽에 매달린 두 불행한 사람들 사이에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지나가는 이들도 나를 보며 조롱하면서 성전 파괴에 대해 언급했던 내 말을 두고 빈정거렸다. 제관들과 율사들도 고소하다는 듯이 비웃었다. “남들은 구했지만 자신은 구할 수 없는가보구나.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보고 믿을 텐데.” 심지어 옆에 달린 이들도 고통에 악을 쓰며 나를 욕했다.


나는 모든 이로부터 완전히 무섭도록 소외된 채 악의 어둠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 던져졌다. 나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불러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당신의 백성이 되도록 쇄신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사명은 삐걱거리며 중지되었다. 실패의 쓰디쓴 찌끼를 마시며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욥처럼 나는 하느님의 부재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아빠께 부르짖었다. 나는 절망의 체험까지도 하느님께 다 맡겨드렸다.


힘에 부쳐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서 머리를 떨구었다. 내 생명이 나로부터 멀어져 가는데 … 어둠이 그리고 빛이, 온통 빛이다. 그리고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기뻐하는 이로다!” 지금은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서로의 모습을 대면할 뿐이다. 그렇다. 나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셋째 마당 : 마치는 글


죽음과 계시 (마르15,38-41)


예수가 사망한 순간 성전의 장막이 두 폭으로 찢어지면서 성전의 중요성은 사라졌다. 이스라엘의 특권은 끝장이 났다. 따라서 하느님의 현존은 모든 이에게 개방되었다. 십자가 처형을 책임졌던 백인대장은 십자가 옆에서 아무런 도움 없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십자가 위에서 외로이 숨을 거둔 그분을 보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참으로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유일한 표지이다. 백인대장은 죽은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이 모순을 백인대장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그리스도 신앙의 참된 고백자라고 할 수 있다.


장사 (마르15,42-47)


제자들은 예수가 체포되자 뿔뿔이 도망쳤다. 장례를 치를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리마태아 출신으로 의회 회원이며 율법에 충실했던 요셉이었다. 이 경우 십자가에 박힌 이의 시신이 밤새도록 달린 채로 있게 해서는 안 되었다. 요셉은 정식으로 청하여 예수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것은 신성모독으로 처형된 이라서 불명예스럽기에 서둘러 거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의 시신은 기름도 바를 겨를이 없었다. 그저 아마포 수의로 싸서 골고타라고 불리던 사용하지 않은 채석장의 바위를 깎아서 구멍을 낸 무덤에 안장했다. 제자들이 도망쳤지만, 일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를 따라와 그의 십자가형을 멀리서 지켜보기까지 한 여제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안장까지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이들 여제자들이 물론 안장의 증인이 되었다.


무덤에서 (마르16,1-8)


아주 이른 주간 첫 날 새벽녘, 막달라 출신 마리아와 다른 두 여자들이 무덤을 찾았다. 그들은 예수의 시신에 기름을 바르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무덤을 막았던 바위가 뒤로 굴러나 있고, 그 무덤 안에 한 ‘젊은이’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여자들에게 말했다. “나자렛 예수는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시오. 당신들은 갈릴래아에서 그 분을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여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무덤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죽은 분을 기리기 위해 무덤에 왔다가 살아 계신 분의 경이로운 진실을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 ‘마르코복음의 예수 이야기’는 이번 호로 마치고, 다음 호부터는 ‘요한복음의 예수 이야기’를 연재해 드리겠습니다.


[월간 빛, 2004년 7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