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입문 


1. 문학 유형과 언어


미가서의 자료들은 예언서 본문에서 이미 완전히 고전이 된 구성 방식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곧 단죄의 말씀과(유동적 단락인 2,12-13을 뺀 1-3장과 6,1-7,7) 구원의 약속이(4-5장; 7,8-20) 규칙적으로 번갈아 등장한다. 이러한 배열은 신탁들이 집성된 뒤에 편집자들이 작업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이로써 그 안에 들어 있는 요소들의 친저성 문제가 제기된다. 1-3장과 6,1-7,6은 거의 모든 학자가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모레셋 사람 미가가 선포한 말씀으로 판단한다. 다만 2,12-13의 시기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36년 이후, 유배에서 돌아온 때로 잡는다. 7,8-20의 전례도 마찬가지이다. 4장과 5장의 저술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활발하다. 일부 학자들은 이 두 장을 유배 이후의 신탁들이 한데 모아진 것으로 본다. 다른 이들은 미가의 말씀을 기초로 후대의 사람들이 연이어서 자기들의 시대 상황에 따라 재작업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 문제는 아직도 결정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미가 예언서는 예언 전통에서 물려받은 고전적 문학 유형들을 담고 있다. 곧 경고, 질타, 심판의 신탁, 논고 또는 계약 위반에 관한 소송, 구원의 약속, 전례 의식의 단편 등이다. 이러한 유형들이 미가서에서 단순히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다. 미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부분들을 가려 내다 보면, 미가 자신이 그것들에 자기의 개인적 표지를 남겨 두었음이 분명해진다. 예컨대 여러 번에 걸쳐 단죄가 탄식으로 바뀐다(1,2-16과 7,1-7). 이는 예언자가 사명을 수행하면서 필요할 때에는 억제해야 하는데도, 미가는 그렇지 못한 그의 풍부한 감정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또 책임 있는 관리들과의 대립이 미가에게 소송의 문학 유형과(1,2-7; 6,1-8) 논쟁의 문학 유형을(2,6-11) 즐겨 사용하도록 하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때때로 대화 형식의 문장도 발견된다. 이 밖에도 가끔 생략형으로 여겨질 정도로 간결한 그의 문체는, 그 신랄함과 노골성으로 아모스의 문체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2,6; 3,5). 다른 한편, 거의 체계적인 언어 유희 방식의 사용은 때때로 본문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한 이유로 언어 유희들이 가끔 변화된 상태로 전승되기도 하였다. 또한 적지 않은 구절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불분명한 때도 있다. 


2. 예언자와 그의 고향


“미가”라는 이름은 ‘누가 주님과 같으랴?’라는(7,18 참조) 질문의 단축형이다. 그리고 전례 중에 백성이 지르는 탄성을 상기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시편 35,10; 89,7-9; 113,5; 이사 44,6 이하). 이 이름은 성서에서 자주 나타나지만, 저술 예언자인 이 미가와 1열왕 22장(= 2역대 18장)에 나오는 다른 예언자 미가와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머리글(1,1)에 나오는 미가의 고향 모레셋이라는 작은 마을은,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직선 거리로 남서쪽 약 40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곳으로 생각한다. 이 곳은 팔레스티나 중심부의 남북으로 뻗은 산악 지방에서 지중해 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평원 지대이다. 유다 땅 모레셋의 이러한 위치는 이 책이 시사하는 시대와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할 때에 나름대로 중요성을 지닌다. 


3. 메시지


미가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유다의 윤리적, 종교적 상황을 그 대상으로 한다. 예루살렘 주민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자기들의 도성에 불가침성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안전 의식이라고 미가는 고발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에 계속해서 성실하시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는 권력가들이 놀랄 정도로 쉽게 매수되고, 예언자들과 재판관들은 자기들의 책임 아래 맡겨진 진실과 공정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더 생각한다. 가진 자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의 틈은 더욱 커지고, 사회 상황은 통탄할 지경이 되었다. 경신례는 호화롭게 거행되지만, 마음의 회개는 전혀 가져오지 못한다. 이러한 악이 너무나 명백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죄의 화신으로 불리게 된다(1,5). 그리하여 하느님의 심판에 이어지는 징벌이 그들의 반역의 정도에 따라 내려진다. 이러한 사실을 선포함으로써 미가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불행만을 선포한 예언자로 기억된다(예레 26,18). 그러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미가가 예고하는 재앙은, 하느님의 어떤 맹목적이고 냉혹한 분노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불의를 참지 못하시는 하느님의 심판이다. 미가 예언자는 계약의 이상을 말한다. 그것은 6,8에 훌륭히 요약되어 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받은 선택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미가서가 이러한 어두운 전망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징벌은 회심을 촉구하는 호소로도 바뀔 수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에브라다의 보잘것없는 씨족에게서 일어날 새로운 부흥을 준비하신다(5,1-5). 바로 거기에서 다윗의 후손 메시아 임금이 태어나리라는 것이다. 흩어진 지파들의 재결합은, 땅 끝까지 퍼져 나갈 위대한 평화의 시작을 알린다. 예루살렘은 온 세상의 중심지가 되어, 민족들이 주님을 만나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루살렘으로 달려올 것이다(미가 4,1-5).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에서 소수의 남은 자들은 주님께 회개한 이 민족들이 받는 복의 원천이 된다. 그리고 반항하는 민족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형벌의 도구가 된다. 인간의 잘못된 안전 의식, 허위에 찬 경신례, 우상 숭배는 모조리 없어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고, 하느님의 주도 아래 주어지는 구원만 기다릴 것이다. 


머리글에 따르면, 미가는 유다 임금 요담과 아하즈와 히즈키야 시대, 곧 기원전 750년에서 대략 기원전 697년 사이에 임무를 수행한다. 미가는 이사야와 동시대 인물이다. 그러나 어떠한 본문도 그가 실제로 요담의 치세 때에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 다음의 임금 아하즈 통치 말기를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머리글이 이 예언자의 전체 활동 시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특별히 신랄한 내용을 담은 몇몇 구절은, 하느님께 불충한 므나쎄 임금과 그의 시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가설을 따를 경우, 미가의 활동 시기는 기원전 725년에서 기원전 680년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는 중요한 두 가지 사건으로 눈에 띤다. 우선 왕조의 위기가 줄곧 이어지다가 결국 기원전 722년에 발생한 사마리아의 멸망이다. 미가는 이 재난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1,6-7에서 이 사실을 선포한다. 또 다른 커다란 역사적 사건은 기원전 701년에 일어난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평원 지대 침공이다. 이 침략으로 미가 예언자의 고향은 아시리아 군대의 행동 반경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가는 불행이 예루살렘으로도 다가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멸망은 피할 수 없다고 여긴다(1,8-16과 3,12). 


이렇게 미가는 조국에 닥친 격랑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러나 이사야와 달리 미가는 사실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예컨대 책임자들이 전개시킨 외교적 행동에 어떠한 심판의 말도 가하지 않는다. 반면, 다가오는 사건을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의 불가피한 결과로 본다. 그 죄악은 특별히 사회적 불의, 그리고 이방 종교 의식과 타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악들과 싸워 나가는 미가는 외톨이처럼 보인다. 그는 백성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도 그들 앞에서 혼자이다. 사제들, 판관들, 제후들과 같은 권력자들 앞에서도 혼자이며(3장 참조), 행복하고 편안한 미래를 예고하는 분별 없는 예언자들 앞에서도 혼자이다(2,6-11). 그러나 미가는 자기에게 임무를 완수할 힘을 주시는 주님의 영이 인도해 주신다는 의식 아래, 그들과 용감히 맞선다(미가 3,8).


[출처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새번역성서]


[성서의 세계] 예언자 미가 - ‘공정과 평화’의 예언자 미가 


미가 예언서는 열두 소(小)예언서 두루마리의 여섯 번째에 위치하고 있는 모두 7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예언서이다. 미가는 기원전 700년대 후반, 종교적, 사회적으로 총체적인 혼란에 빠져 있던 남왕국 유다에서 이스라엘의 잘못된 생활을 질타하면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참된 삶의 길을 제시하였던 예언자이다. 또한 예언서는 세상의 뭇민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평화의 메시아를 전함으로써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미가 예언서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들의 삶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하느님의 참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을 배우며, 나아가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경륜을 만나게 된다. 


1. 미가 예언자


예언자의 이름 미가는 ‘누가 야훼와 같으랴?’란 의미를 가진 미케아의 준말이다. 미가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작은 마을 모레셋 출신으로, 그가 시골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은 그의 선포 내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당시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는 다윗 계약(하느님께서 다윗 왕조의 정통성과 영속성을 보증해주심 : 2사무 7,1-17) 사상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반면 시골에서는 이스라엘 신앙의 뿌리, 즉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한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신 십계명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였던 시나이계약 사상이 삶의 기준이 되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영에 의해 공정과 능력으로 가득했던(3,8) 미가 예언자는 십계명의 근본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입각해 이스라엘의 죄를 밝히고 고발하게 된다. 


2. 활동시기와 시대적 상황


이사야 예언자(740-701년)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미가는 남왕국 유다 임금 아하즈(735-716년)의 통치 후반기인 기원전 725년 경부터 히즈키야 임금시대(716-687년)에 걸쳐 예언직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계보에서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모스, 호세아 그리고 남왕국 유다의 이사야와 더불어 문서예언자 첫 번째 세대에 속하며, 그 마지막 시기에 활동한 예언자임을 알 수 있다.


미가 예언자의 시대는 한마디로 격동의 시기였다. 예언자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인 기원전 722년, 이웃의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멸망하는 재난을 겪게 된다. 그 후 홀로 남게 된 남왕국 유다도 위태로운 날들을 보내다가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침략을 받고 커다란 혼란에 빠져 든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는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켜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진실과 정의 대신 온갖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되었으며, 종교적으로도 강대국 아시리아의 이방종교 유입과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는 우상숭배의 창궐, 맹목적이며 형식적인 종교생활로 말미암아 참된 야훼신앙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미가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엄중하게 고발하면서 하느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3. 전체내용의 구조


미가 예언서는 전체적으로 볼 때 “심판”과 “구원”의 주제가 반복되는 이중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4. 예언서의 주요 내용


1) 이스라엘의 잘못된 삶에 대한 고발


미가 예언자는 먼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삶의 규범으로 주셨던 계명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란 근본 정신에 입각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을 고발한다. 원초적으로 이스라엘은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그분의 백성으로 새롭게 탄생한 공동체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들이 체험했던 하느님의 사랑을 공동체의 이웃들 안에서 구현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이러한 삶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가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사회생활에 있어 “공정”(3,9)을 강조하고 있다. 공정(公正)이란 구약성서에 있어 정의(正義)와 같은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에 근거하여 공동체 안에서 질서와 공동선을 구현해 나가는 덕목을 말한다. 그러나 미가 예언자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공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부정과 불의로 가득 차 있었다.


① 사회의 지도자


하느님의 백성을 공정하게 이끌어야 할 임금과 사회 지도자들이 선을 미워하고 악을 사랑하여 오히려 “사람들의 살갗을 벗겨 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낸다.”(3,1-2) 또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밭과 집을 빼앗아 버린다.(2,2) 이처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자행하는 가난한 이, 약한 이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은 백성들의 삶을 철저하게 유린하는 가혹한 행위임을 예언자는 고발하고 있다.


② 예언자


예언자들은 “먹을 것이 있으면 평화를 외치지만, 저희 입에 아무 것도 넣어주지 않는 이들에게는 전쟁을 선포한다.”(3,5) 본래 예언자란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백성들을 참 삶의 길로 인도해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질 경제적인 이익에 따라 제멋대로 말을 바꾸는 당시의 탐욕적인 직업 예언자들을 미가는 신랄하게 질책한다.


③ 사제


구약성서에서 제시하는 사제의 직분은 하느님과 백성들 사이의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제사를 집전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그분의 축복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당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먼저 금전적인 대가를 먼저 요구하는 사제들의 세속화 된 모습을 예언자는 지적하고 있다.(3,11)


이처럼 미가 예언자 당시 이스라엘은 지도층의 행태들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듯이 사회의 참된 가치 기준인 공정이 상실되고 전도된, 총체적으로 타락한 공동체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2) 하느님의 심판


예언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잘못된 삶이 마침내 하느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닥쳐 올 재앙의 때(2,3)에 “시온은 갈아 엎어져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며, 하느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수풀 언덕이 되리라.”(4,12)는 것이다. 여기서 미가는 남왕국의 수도인 시온/예루살렘이 겪게 될 재난과 함께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이 되어 온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미가의 선포 말씀은 후에 하느님께는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성전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에 매달리던 백성들을 질타하며 성전 파괴를 선포했던 예레미야 예언자(예레 26,17-19)의 예형이 되고 있다.


3) 참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


미가 예언자는 하느님의 심판 선포와 함께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느님의 참된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그들의 회개를 촉구한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6,8) 예언자가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이며,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공정과 신의 그리고 겸손을 실천하는 삶이 바로 그것이다.


4) 하느님의 구원과 메시아 예고


미가 예언서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은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참된 백성으로서 정화되어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려는 것임을 암시하면서 하느님께서 장차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을 전하고 있다. 예언서가 제시하고 있는 구원메시지 가운데 주목할 점은 하느님 구원의 대상이 이스라엘을 넘어서 세상의 뭇민족들에게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집(성전)이 서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여 오게 될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어 그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며, 시온/예루살렘에서 나오는 하느님의 가르침이 그들에게도 내려질 것’(4,2 참조)임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고 사람마다 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지내게 될”(4,3) 평화를 이루게 되시리라고 전하고 있다.


나아가 예언서는 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하면서 구원 선포의 정점에 이르고 있다. 오실 그분은 다윗의 고향인 에브라다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며, 하느님의 백성을 이끄시는 목자로서 세상에 평화를 결정적으로 구현하시게 될 것이다.(5,1-4ㄱ)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 보았던 미가 예언자는 오늘날 부정과 부패, 구조적인 악과 잘못된 관례가 만연해 있는 사회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무엇보다 공정의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사회생활 안에서 구현되어야 할 이러한 실천적 덕목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응답이며, 따라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겸손된 신의의 자세가 근본이 됨을 또한 일깨워 주고 있다.


나아가 예언서가 전하고 있는 평화이신 메시아에 대한 선포는 구약시대에서부터 세상의 구원을 안배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구속 신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주고 있다고 하겠다.


[월간 빛, 2002년 7월호, 송재준 마르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성서학 교수)]


[예언서 여행] 미카 예언서 


1) 미카 예언자는 누구인가?


‘미카’는 ‘미카야후’ 혹은 ‘미카예후’의 축소형으로 ‘누가 야훼와 같으냐’(7,18 참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그의 활동 1세기 후에 유다의 원로들은 “모레셋 출신 미카가 유다 임금 히즈키야 시대에 예언하였다”(예레 26,18)고 증언할 뿐이다. 


2) 미카 예언자의 활동 시대


미카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중요한 두 사건이 일어났다.


기원전 722/721년 북부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함락되는데, 이 재난을 직접 체험한 미카 예언자는 1,6-7에서 이 사실을 선포한다. 또 다른 커다란 역사적인 사건은 기원전 701년에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남부 유다 왕국의 일부가 아시리아에게 병합되고, 미카 예언자의 고향인 모레셋이 아시리아 군대의 행동 반경 속에 포함된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불행이 예루살렘으로 다가오는 것을 본 미카 예언자는 남부 유다 왕국의 멸망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1,8-16과 3,12). 


3) 미카서의 구조


심판과 구원의 말씀이 반복되는 형식으로 기록된 미카서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1,1 제목; 1,2-3,12 심판과 단죄의 말씀 :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다 왕국에 대한 경고; 4,1-5,14 구원에 관한 약속; 6,1-7,7 심판과 단죄의 말씀 :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경고; 7,8-20 재건 신탁 


4) 미카서의 주요 메시지


① 하느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참다운 예배


아모스와 호세아, 그리고 이사야 예언서의 영향을 받은 미카 예언서는 야훼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순수한 예배를 강조하며, 그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미래에 있을 그들을 향한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선포한다.


미카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정의와 사랑과 겸손을 원한다고 선포함으로써(6,8) 8세기에 활동했던 다른 세 예언자들, 즉 아모스의 ‘정의와 공정’과 호세아의 ‘사랑’(헤세드),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의 ‘거룩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겸손)’의 신학사상을 종합한다. 호세아 예언자가 선포한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호세 6,6)는 말씀처럼, 미카 예언자는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選民]인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예배는 외적이고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실천되는 ‘공정과 신의’를 통한 야훼 하느님께 대한 참된 예배가 되어야함을 선포한다.


② 메시아 사상


복음사가들은 미카 예언자가 선포한 메시아(5,1-5)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증명해 줄뿐만 아니라(마태 2,6 참조), 그가 선포한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믿었다. 미카 예언자의 선포 내용 중 네 구절이 신약성경, 특 별히 복음서 안에서 인용되었다. 마태 2,6과 요한 7,42에서는 메시아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셔야 한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 미카 5,1이 인용되었고, 마태 23,23에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그릇된 종교심을 비판하기 위해 미카 6,8이 인용되었다. 마태 10,21.35-36과 그 병행 구절들에서는 가족들의 분열을 비유로 예수님의 설교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미카 7,20이 인용되었다. 또 루카 1,55와 7,6에서는 변함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조명하기 위해 미카 7,20이 인용되었다.


[2010년 2월 14일 설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9)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미카 5,1)


전쟁의 폐허속에서 평화의 메시아를 예언 


미카서는 성경에서도 어디 있나 한참 찾으실 것이고, 역사 안에서 미카 예언자의 위치를 찾는 것은 아마 더 어려우실 것입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미카는 언제나 이사야에 붙여서 함께 기억하시면 됩니다. 미카서 첫머리의 “유다 임금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1,1)라는 연대 표시부터 미카를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인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8세기의 문제는 언제나 아시리아라고 했습니다. 미카 역시 아시리아의 침략을 겪습니다. 이사야와 차이가 있다면, 이사야가 예루살렘 귀족 출신이었던 데에 비하여 미카는 “모레셋 사람”, 곧 필리스티아 쪽에 가까운 지방 출신으로서 전쟁의 피해를 겪었던 가난한 이들과 더 가까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가난한 백성을 억누르는 부유한 이들에 대해서 비판합니다. 


미카서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 좀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미카서의 본문 가운데 어느 부분이 미카 예언자 자신이 쓴 것이고 어느 부분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인지를 나누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미카가 썼다고 보이는 부분은 1-3장이고, 다른 부분들은 모두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미카가 유배 전 예언자이니,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고발하며 멸망을 선포하는 부분은 더 자연스럽게 미카 자신이 쓴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구원을 약속하는 부분은 후대에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으려 하는 미카서 5장 1-5절은 이사야서에서도 나타나는 군왕 메시아 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기원전 8세기의 미카 자신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군왕 메시아 사상 


군왕 메시아 사상의 기원은 훌륭한 임금에 대한 기다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메시아’는 본래 ‘기름부음을 받은 이’를 뜻하고, 기름부음을 받는 이는 일차적으로 임금이었습니다. 구약을 예수님에 대한 예언으로 읽는 데에 익숙해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뜻밖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사야서 9장 5절에서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라고 할 때나 이사야서 11장 1절에서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라고 할 때, 처음에 이사야가 생각한 것은 장차 태어날 임금이었습니다. 지난주에 인용한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본래’ 이러한 예언들은 다윗 왕조의 임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서 본문의 의미가 ‘처음에’, ‘본래’ 저자가 생각했던 의미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훌륭한 임금에 대한 기다림은 군왕 메시아 사상으로 이어지고, 다윗의 후손인 한 임금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구원을 주시리라는 희망은 나중에는, 특히 다윗 왕조가 무너진 후에는 장차 올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으로, 종말에 이루어질 메시아 왕국에 대한 믿음으로 발전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임마누엘 예언이 그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아하즈에게 아들 히즈키야의 탄생을 알렸던 이 예언은 특히 마태오 복음 1장 23절에 인용되면서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져도 하느님의 약속은 무너질 수 없다는 믿음이,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성취를 보았던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도 구절 인용 


미카 예언서에도 그러한 예가 있습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미카 5,1). 많이 들어보신 구절이지요. 신약의 사건들 안에서 구약 예언의 성취를 알아보는 전문가였던 마태오 복음 사가가 이 구절을 인용했을 뿐만 아니라 “오 베들레헴 작은 고을아 너 잠들었느냐”라는 성가 때문에도 누구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유다인의 임금이 태어나신 곳을 찾아 나섰을 때,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는 당연히 임금은 궁정에서 태어났으리라 생각했는지 헤로데를 찾아갑니다. 새로 태어나신 유다인의 임금을 찾아왔다는 말에 당황한 헤로데는 급히 율법학자들에게 아기가 태어난 곳을 묻고, 그들은 미카 예언서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는 작은 고을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기원전 8세기로 돌아갑시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아시리아는 엄청난 나라였습니다. 무엇보다 군사력으로 엄청난 나라였습니다. 여러 작은 나라들을 무력으로 짓밟은 나라였습니다. 이제는 남왕국 유다에도 아시리아의 힘이 미치고 있습니다. 산헤립의 침공 때에 예루살렘은 멸망을 면했다고 했지요. 그러나 ‘예루살렘만’ 멸망을 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히즈키야 임금 제십사년에,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으로 올라와서 그곳들을 점령하였다”(이사 36,1). 


온통 짓밟힌 유다 땅에서 미카는 장차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평화로운 날들을 예고합니다. 작은 고을,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하느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미카 5,1)가 태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목자처럼 백성을 이끌 평화의 임금이 될 것이고, 백성은 안전하게 살 것입니다.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미카 5,3). 


마태오 복음은 이 약속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마태 1,1 참조)에게서 성취되었다고 선포합니다. 동방 박사들이 미카 예언서의 인도에 따라 찾아가서 경배한 그분은 평화의 임금, 아시리아의 지배자들이나 이 세상의 통치자들과는 달리 우리의 평화가 되신 분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평화신문, 2015년 7월 5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