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 환희의 신비


구세주 탄생의 ‘환희’ 가장 먼저 체험한 마리아


%EC%84%B1_%EC%95%88%EB%82%98_%EC%84%B1%EB%8B%B9.jpg예루살렘 성 안나 성당에 소재한 어린 시절의 마리아와 안나 성녀상.



올 한해 동안 필자는 ‘이스라엘 이야기’를 진행하며, 마음 한켠에 쌓인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그 가운데, 성탄 전야 베들레헴 야외에서 보낸 하룻밤은 지금도 날카로운 추위의 고통으로 짜릿하게 남아 있다. 이스라엘의 여름은 건조하고 뜨거우나, 우기로 접어드는 겨울에는 한기가 뼛 속까지 스민다. 여름이라 해도 광야가 많은 이스라엘은, 밤이 되면 온도가 서늘하게 떨어진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막연하게 더운 나라라고만 생각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예전의 고정 관념들을 많이 깨뜨려주었다. 차디 찬 베들레헴의 밤, 방을 못 구해 마구간으로 옮겨야 했던 산모의 안타까운 모습은(루카 2,7) 따스함이 지독히도 그리웠던 당시의 추억을 생각나게 한다.

 

성경에서 성모님에 대해 읽다 보면,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고도 환희에 젖어 하느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용기가, 그 참된 기쁨이(루카 1,46-55) 가장 감동스럽다. 2000년 전이 어떤 시대였는가? 여자는 재산으로 여겨지던 가부장적 사회였으며, 처녀가 임신한 경우에는 돌팔매로 사형당해 마땅한 시절이었다(신명 22,21.24 참조). 

게다가 예수님에 대해 의심을 품는 무리들이 누군가의 범죄로 생겨난 아이가 아니냐며 공격했을 때, 그마저 고스란히 견뎌냈을 어린 처녀의 강인함은 하느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해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강인함이다. 게다가 마리아는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나자렛에서 100킬로 이상 떨어진 유다 산골로 올라가 엘리사벳과 함께 기쁨을 나누려 했다(루카 1,39-40). 이 기쁨이, 평생 불임이었던 엘리사벳이 요한을 품게 된 기쁨에 맞먹고(루카 1,25),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오랜 기다림 끝에 사무엘을 임신한 한나의 기쁨에(1사무 2,1-11) 맞먹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로 시작하는 한나의 찬송은 성모님의 ‘마니피캇’과 매우 비슷하다. 곧 구세주를 품게 된 성모님은 고통이 기쁨으로 바뀐 한나의 찬양을 당신 환희의 찬송으로 바꾸신 것이다.

신약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쓰였기에, 성모님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기 어렵다. 출생 장소만 해도 ‘예루살렘’, ‘나자렛’, ‘찌포리’ 등 여러 군데를 추정하며, 여생을 보내신 곳도 ‘에페소’나 ‘예루살렘’이라는 전승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약 외경 가운데 ‘야고보 원복음’이 성모님과 그 부모님 시대까지의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EC%98%88%EC%88%98%EB%8B%98_%ED%83%84%EC%83%9D.jpg베들레헴 예수탄생기념성지의 ‘예수님 탄생’ 제대 이콘.

 

 

우리가 성모님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부분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요아킴’이고 어머니는 ‘안나’였다는 전승도 바로 야고보 원복음에서 나온 것이다. 야고보 원복음에 따르면, 요아킴과 안나는 매우 신심이 깊은 부부였으나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다고 한다. 자손 없음에 마음 아파하던 요아킴은 광야에 천막을 치고,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고 기도했다. 마치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십 일간 단식 묵상하셨던 것처럼(마태 4,1-11). 마침내 주님의 천사가 요아킴과 안나에게 잉태 소식을 알리며 온 세상이 그 자손, 곧 ‘마리아’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라 전해주었다. 요아킴이 기도한 광야는 예루살렘에 인접한 ‘유다 광야’로 추정되며, 그곳에는 현재 ‘코지바의 성모님’이라는 정교회 수도원이 봉헌되어 있다. 이 수도원은 ‘테오토코스’, 곧 ‘하느님의 어머니’를 점지 받게 된 수태고지를 기념한다. 

야고보 원복음에 따르면 요아킴과 안나가 살았던 거주지는 예루살렘 부근으로 여겨지는데, 잉태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요아킴이 성전으로 올라가 예물을 바쳤기 때문이다. 현 예루살렘 구 도시의 동쪽에는 요아킴과 안나가 살았다는, 곧 성모님의 출생지로 추정되는 유적이 남아 있다. 이곳은 성전에 매우 가까웠으므로, 야고보 원복음의 전승과 조화를 이룬다.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으면서도 그 신세에 절망하지 않았던 어린 산모. 구세주 탄생의 기쁨을 기념하는 이 시즌에 그 환희를 가장 먼저 맛보았던 성모님의 탄생 스토리도 같이 묵상해 본다. 야고보 원복음의 이야기들은 전승일 따름이겠지만, ‘그 부모에 그 딸’이라는 핵심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음을 온몸으로 확신하며 느낀 이 환희는, 어린 산모가 성자의 어머니로서 장차 견뎌야 했을 인고의 세월을 극복하도록 힘을 주었을 것이다.

김명숙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1일, 
김명숙(소피아)]


[이스라엘 이야기] 별을 따라간 동방 박사


진리의 별 따랐던 페르시아의 현인들


베들레헴에는 천오백여 년의 세월을 거쳐온 ‘예수님 탄생 성당’이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처음 봉헌했으며, 서기 6세기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했다. 유난히 전쟁이 많았던 이스라엘에 이토록 오래된 성당이 보존된 계기는 ‘동방 박사와 아기 예수님’ 성화 덕분이었다. 서기 7세기 페르시아군이 침공했을 때, 그들은 탄생 성당 성화에서 동방 박사들이 페르시아 복장을 한 것을 발견했다. 이에 감동한 페르시아인들은, 자기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 줄 알고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성지가 이런 생각지 못한 이유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어찌 보면, 멀리서도 메시아를 알아본 동방 박사들은 그 후에도 메시아의 탄생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해 준 셈이다.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제단의 별’.


성경에서 ‘동방’은 이스라엘 기준의 동쪽이므로 메소포타미아 곧 현재의 이라크, 이란 방향이다. 고대 페르시아는 이란 땅이 중심이었다. 동방 박사들은 페르시아 사제 계층으로 추정되며 왕실에서 임금을 섬겼다고 한다. 그러니 그 옛날 탄생 성당의 성화는 동방 박사들을 옳게 표현했던 셈이다. 이들은 페르시아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를 신봉했다고도 여겨지는데 조로아스터는 니체의 책으로도 유명한 ‘짜라투스투라’다. ‘동방 박사’는 페르시아어 ‘마구쉬’가 어원이며, 그리스어 ‘마고스’를 거쳐 라틴어 ‘마구스’가 되었다. 나중에는 ‘매직’, 곧 ‘마법’이라는 영단어로도 발전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움직임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는 점성술가들이었다고 한다. 이 현인들은 점성술과 주변 지역의 정치, 특히 주변국 임금들의 즉위와 몰락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그러니 헤로데는 심상치 않은 별의 움직임도 문제거니와 동방 박사들의 방문에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다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로마의 힘을 업고 왕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점성술사들이 과히 긍정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하느님은 당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 임금들도 도구로 사용하시고(예레 43,10) 때로는 이방의 점술도 사실을 말하게 하신다(에제 21,26-28). 그래서 이 현인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보고 경배한 이방 세계의 대표자들이며, 예수님을 성자로 받아들일 이방인들의 예표가 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으며(마태 2,1), 미카 5,1에 근거한 조언을 듣고 베들레헴까지 찾아갔다(마태 2,6). 이들은 헤로데도 알현했으나, 다시 와달라는 그의 부탁에도 돌아가지 않았다(마태 2,12).

 

우리는 동방 박사들을 셋으로 생각하지만, 마태오 복음은 몇 명인지 기록하지 않았다. 셋으로 여겨온 까닭은, 예수님께 바친 선물이 세 가지였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이들이 바친 ‘몰약’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제사에 사용되는 ‘유향’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금’에서는 ‘왕권’을 떠올렸다.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 여왕도 연상시킨다(1열왕 10장).

이탈리아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구유 제단’.

 

 

스바 여왕 또한 선물로 금과 향료 등을 가져왔다. 곧 마태오 복음은 다윗 후손 예수님과 다윗 아들 솔로몬의 공통점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 같다. 솔로몬, 곧 ‘쉴로모’의 어근은 평화를 뜻하는 ‘샬롬’이다. 솔로몬은 이름값을 하여 그 시대에 전쟁이 없었다. 아기 예수님도 ‘평화의 군왕’으로서, 솔로몬을 능가하는 ‘끝없는 평화’를 가져오셨다(이사 9,5). 동방 박사들은 아기를 찾아내자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는데, 이것은 임금에게 행해지는 예의였다(1사무 24,9 1열왕 1,16). 페르시아 왕실을 섬긴 현인들이 한낱 아기에게 무릎을 꿇었음은 그들에게 배인 겸손과 진리를 알아보는 혜안을 드러내 준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 탄생 성당의 구유 제단이 바로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은 장소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실제 구유는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옮겨졌으므로, 베들레헴의 구유 제단은 기념 제단이다. 

지성과 미덕 대신 감각적 욕망이 지배하는 요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우쳐주는 동방 박사들의 행보는 큰 교훈이다. 세속적인 처세술로는 권력을 쥔 헤로데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더 이익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겸손과 혜안으로 진리를 분별했기에 유다인들에 앞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던 것이다.

김명숙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4일, 
김명숙(소피아)]


[이스라엘 이야기] 계약 궤의 행방


전설로만 내려오는 주님 현존의 상징

 

%ED%99%A9%EA%B8%88%EC%82%AC%EC%9B%90.jpg예루살렘 이슬람 황금사원(사원 내에 머릿돌이 보관돼 있다).

 

 

이스라엘의 옛 성막과 성전에서 우리는 계약 궤와 커룹 장식을 기억한다. 십계명을 보관하던 계약 궤는 주님 현존의 상징이었다. 성막이나 성전을 지은 목적도 본디 계약 궤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탈출 38,21 참조). 그러다 예루살렘 몰락(기원전 587/6년) 즈음하여 계약 궤가 자취를 감춘 뒤, 숱한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여럿 만들어냈다.

 

계약 궤(민수 10,33 등)는 ‘하느님의 궤’(2사무 6,12 등), ‘증언 궤’(탈출 25,22 등)라고도 불린다. 하느님의 궤는 그 이름에서부터 주님 현존의 상징임을 짐작게 한다. 증언 궤라는 호칭은 ‘증언판’(탈출 31,18 등)인 십계명 돌 판을 궤 안에 두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십계명 돌 판이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증명’해주는 까닭이다(1열왕 8,21 참조). 커룹을 계약 궤 위에 장식한 건 그 안에 담긴 십계명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커룹들은 얼굴을 속죄판(계약 궤 덮개)으로 향하고, 날개는 펴서 속죄판을 덮었다. 커룹이 맡은 이런 보호자 역할은 원조들이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커룹이 동산 입구를 지킨 창세기 3장 24절에도 드러난다. 인간이 에덴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지켰듯, 여기서도 속인들이 계약 궤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리고 커룹은 주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역할도 했다. 하느님은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이기 때문이다(탈출 25,22; 1사무 4,4 등). 커룹들이 얼굴을 속죄판 곧 아래쪽으로 향한 것도, 십계명을 보호하는 의미 외에 자기들 위에 앉으신 하느님을 직접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주님의 어전에서 사랍들이 날개로 얼굴을 가린 이사 6,2 참조). 커룹 장식이 이렇듯 주님 왕좌를 상징하는 것이니, 그 아래 놓인 계약 궤도 왕좌의 일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구체적으로는 발판에 해당한다(1역대 28,2). 주님 발판 앞에 엎드린다는 시편 찬송(99,5; 132,7)도 지성소 안에 모신 계약 궤 방향으로 엎드린다는 뜻이다.

 

십계명을 궤에 담아 성막/성전 안에 보관한 건, 나라 간 체결한 계약이나 법적으로 중요한 문서들을 신전에 보관하던 고대 근동 관습에서 기원했다(1사무 10,25 참조).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은 이런 문서들을 신상의 발아래 두었는데, 그 내용이 잘 지켜지도록 신들이 감독해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기원전 13세기 파라오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임금 하투실리스 3세도 쌍방이 맺은 계약을 이집트 신 라와 히타이트 신 테슙 밑에 놓았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신상을 만들지 않았기에, 주님과 맺은 계약의 증서인 십계명을 주님 발판에 해당하는 계약 궤 안에 두었다. 그러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가 임박하자, 계약 궤의 종적이 묘연해진 것이다.

 

%EB%8A%90%EB%B3%B4%EC%82%B0%20%EC%A0%95%EC%83%81.jpg느보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

 

 

탈무드는 요시야 임금이 계약 궤를 감추었다는 전승을 전하고(요마 53b-54a), 2마카 2,5는 예레미야가 느보산의 한 동굴에 숨겼다고 전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자기들이 계약 궤를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두 확인할 방법은 없는 전승들이지만, 그렇다고 계약 궤의 실종이 이스라엘 신앙에 가공할 만한 위기를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대가 오면, 계약 궤가 필요하지 않게 되리라고 예고했다(예레 3,16-17). 그때는 하느님의 도성이 주님 옥좌라 불리고,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배가 끝난 다음 제2성전에서는 ‘머릿돌’(foundation stone)이 계약 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요마 54b). 머릿돌은 주님의 천지창조를 기념하는 바위인데, 지금은 그 위로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다.

 

자취를 감춘 뒤 감질나는 이야기들만 무성하게 키워온 계약 궤는 묵시 11,19에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지상 성막이나 성전이 하늘 성전을 본 떠 지은 것이듯(탈출 25,9; 1역대 28,19 참조), 계약 궤도 본디 천상의 궤를 본 떠 만든 것이다. 묵시록에 나타난 건 바로 천상의 원형이다. 2마카 2,4-8은 하느님이 백성을 도로 모으시어 자비를 보이실 때까지 계약 궤가 숨겨진 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묵시록에 나타난 계약 궤는 하느님이 새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실 것임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반면, 지상의 계약 궤는 예수님이 육화되어 인간 세상에 오신 이후 주님 현존을 상징하던 옛 의미를 잃었으므로, 그 행방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만 남게 되었다.

 

* 이번 호로 이스라엘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필자 김명숙 박사와 애독해 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 구약성경에 대한 새 기획이 시작됩니다. 주원준 박사(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가 집필을 맡습니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6월 26일, 김명숙(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