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입문


호세아 예언서는 히브리 말 성서와 대중라틴말성서뿐만 아니라, 그리스 말 고대 번역본인 칠십인역에서도 열두 소예언서 첫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구약성서에는 ‘예레미야서’라든가 ‘미가서’처럼 예언자의 이름이 직접 책 이름으로 쓰인 경우가 많다. 물론 이처럼 책 제목으로 나오는 이들만 예언자로 활동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예언자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 예언자들을 통상 ‘저술 예언자’라고 부른다. 호세아는 바로 처음 등장하는 저술 예언자 가운데 하나이다. 아모스 예언자만이 이 호세아보다 조금 앞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호세아는 기원전 8세기 후반기에, “야곱”이라고도 하지만(12,3), 주로 “에브라임”이라고 불리는 북왕국(4,17 등), 곧 이스라엘에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1. 역사적 상황


호세아서 1,1에는 이스라엘 왕국의 임금이 한 사람만 소개된다. 바로 여로보암이다. 예후 왕조에 속하는 이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이스라엘은 상당 기간 번영을 누린다(기원전 787-747년). 그러나 이 예후 왕조는 여로보암 다음 임금이 등극한 뒤에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끝을 고한다. 호세아는 이미 1,4에서 바로 이 왕조의 멸망을 예고한다(호세아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을 다스린 임금들과 그들의 통치에 관한 이야기는 2열왕 14,23─17,23에 전해진다).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즈가리야는 임금이 된 지 여섯 달 만에 시해되고 만다. 왕위를 찬탈한 살룸도 사마리아에서 한 달밖에 버티지 못하고 므나헴에게 살해된다. 므나헴이 아홉 해 가량 통치한 뒤에,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위를 계승하지만 등극한 지 두 해 만에 살해된다. 새 왕위 찬탈자 베가 역시 몇 년 뒤에 호세아라는 자에게 시살된다. 호세아 예언자와 이름이 같은 이 사람이 북부 이스라엘 왕국 최후의 임금이 된다. 세 해 동안 지속된 아시리아군의 포위 공격 끝에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됨으로써, 북부 이스라엘 왕국은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이다(기원전 721년 또는 기원전 722년).


호세아서 1,1은 또 남쪽 유다 왕국의 여러 임금도 언급한다. 이들은 이스라엘 왕국이 혼란을 겪던 같은 시기에 유다를 통치한 임금들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히즈키야의 치세는 사마리아가 멸망한 뒤에도 지속된다. 이 밖에도 특히 7장에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에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와 그 시기를 특징짓는 궁중 혁명을 시사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책 첫머리에 배치된 연대 표기는 북왕국이 비참하게 종말을 맞이한 다음에 쓰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호세아가 사마리아의 몰락을 직접 알았다는 확실한 표시는 없다. 사마리아의 파멸을 가리키는 표지들은, 호세아의 말씀을 책으로 만들려고 자료를 수집할 당시의 유다 왕국 출신 편집자가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로보암 2세 이후에 이스라엘을 통치한 임금들을 이 예언서가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호세아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한 내용, 곧 “그들이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다.”(8,4)는 판결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왕위 찬탈자로서 적법한 임금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후대에 전해질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북왕국의 불안한 국내 정치 상황은 국제 정세의 여러 불안정한 조건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 시기는 아시리아가 근동의 패자로 부상하던 때이다. 디글랏-빌레셀 3세와 그의 후계자들인 샬마네셀 5세와 사르곤 2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부 지역 원정을 단행한다. 그리하여 시리아의 여러 아람 왕국, 페니키아의 도시 국가들, 이스라엘 왕국, 그리고 불레셋 도시 국가들이 이 강력한 팽창주의의 파고 속에 휘말리고 만다. 유다 왕국도 화를 완전히 면하지는 못하면서도(호세아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한 이사야의 가장 오래 된 신탁들에서 이 극적인 사건의 반향을 볼 수 있다.), 형제 나라이면서 동시에 적국인 북왕국보다 한 세기 이상 더 지탱한다. 이 시기에 근동의 또 다른 강대국 이집트는 쇠약한 가운데에서도, 아시리아가 정복한 여러 지역의 봉기를 선동한다.


호세아 예언서는, “에브라임”이라고도 불리는 이스라엘 왕국이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 준다(7,11). 그러나 그 균형은 깨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호세아는 그러한 노력의 비극적 결말을 날카롭게 직시한다. 지금 평온한 것은 아시리아라는 거대한 물결이 들이닥치기 직전의 평온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정복한 나라를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하여 정복자들이 흔히 취하는 정책인 탄압과 지도층의 유배가 이스라엘 왕국에도 가해진다(8,8). 그리하여 난을 피할 수 있는 자들은 이집트로 달아나게 된다(9,6).


2. 종교적-윤리적 배경


국내외 정세만이 호세아 예언자가 개인적으로 내리는 비판의 대상, 그리고 그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심판의 유일한 대상은 아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깊은 도덕적 타락(4,1-2; 6,7-10; 7,1), 곧 온갖 사회 정의의 부재와 그것에 따른 지도층의 책임을 고발한다. 그는 바로 종교적 불충이 온갖 부패의 뿌리이고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호세아가 맨 먼저 이스라엘인들의 종교적 타협에 비판을 가하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신 분으로서 당신을 섬기는 이들의 마음이 갈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주 하느님의 요구의 순수성과 절대성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컨대 엘리야 시대와 비교해 볼 때에(1열왕 18) 호세아가 직면한 상황은, 이스라엘인들이 쉽게 분별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명확하지도 않고, 선택된 백성에게 뻗치는 유혹의 손길은 또 더욱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더 많은 위험을 안고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여러 유혹 가운데에서 가장 역겨운 것은 가나안 신들의 유혹이다. 사람들은 이 신들을 자기들의 하느님이신 주님의 자리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그분 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마음이 끌린다. 가나안의 신들은 자연의 힘 곧 비와 뇌우, 그리고 땅의 풍요다산을 관장함으로써, 농경 생활의 여러 가지 필요를 채워 주는 전문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상들의 하느님을 버리지 않는 모든 예방책을 강구한다면, 이 가나안 지방 신들의 호의도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종교적 타협은, 예전에 조상들이 세겜에서 계약을 맺을 때에 그만두었지만(여호 24) 그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던 옛 관습으로 돌아가는 것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타협이 쉽게 이루어진다. 가나안 신들을 모시는 산당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유혹에(4,12-13), 호세아는 대담하게도 당신 백성에게 하실 ‘주님의 유혹’을 대립시킨다(2,16-25). 그러면서 예언자는 결국 가나안 종교의 추종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논거를 들어 반박하기에 이른다. 당신 백성에게 땅의 풍요다산을 보장해 주시는 분은 가나안의 신들이 아니라, 바로 주님 자신이 아니시냐는 것이다(2,7-11.23-25; 14,6-9).


3. 예언자의 혼인


호세아 예언자의 대담함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는 주님과 그분의 불충한 백성 사이의 관계를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예언자는 이를테면 하느님의 입장에서, 그분께서 느끼시는 감정을 자기 것으로 삼아 표출한다. 이 예언서에서는 주님께서 상당히 자주 일인칭으로 말씀하신다는 주목할 만한 사실이, 바로 그러한 사정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호세아가 “창녀”와 혼인 생활을 한다는 1-3장의 이야기는, 성서 해석에서 지속적으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켜 온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나중에 다시 거론되겠지만, 호세아 혼인 이야기의 일화적인 측면이 이 예언자가 전하는 메시지와 비교할 때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호세아가 실제로 자기의 혼인 생활에서 극적인 체험을 하였고, 그러면서도 그 자신은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는 표상으로서만 행동하였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는 점은, 결코 간과해 버릴 수 없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서, 호세아의 혼인 생활은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실이다. 해당 부분의 각주에서도 보게 되겠지만, 호세아의 아이들은 상징적인 이름을 가지는 데 반해서, 아이들의 어머니 고멜은 그렇지 않다. 만일 혼인 이야기가 단순한 허구에 불과하다면, 이 은유의 중심 무게가 바로 호세아의 아내 고멜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의 이름 역시 평범한 “고멜”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지녀야 할 것이다.


호세아의 혼인은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이면서, 그러나 동시에 하나의 상징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이 일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밝혀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별소용이 없는 일이다. 이 혼인은 예언자들이 흔히 하는 것과 같은 예언적 행동으로서(이사 20,1-6; 사도 21,10-14 참조), 행동 그 자체에서 의미가 흘러 나온다. 호세아서의 경우에는 책 전체가 1-3장에 서술된 이 예언적 행동에 대한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3장이 호세아의 새로운 혼인, 고멜이 아닌 다른 여자와의 새로운 생활을 이야기하는지에 대해서 그 동안에 많은 토론이 있어 왔다(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3,1은 번역상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 곳의 각주 참조). 결론적으로 말하면, 호세 3장이 계속 고멜과 관련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서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사랑, 곧 당신 백성에 대한 주님 사랑의 심화를 볼 수 있다. 호세아는 자기 아내가 그냥 부정(不貞)하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절망적일 정도로 부정하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1,2에서 “창녀”를 가리키는 일반 명칭이 아니라 흔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 상징적이다(그 곳의 각주 참조). 그러나 고멜은 일반 창녀가 아니라, 가나안인들에게서 유래하는 ‘풍요다산의 제의(祭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여자로서, 그것의 감각적이고 성적인 의식에 참여한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다(이 사실을 암시하는 2,4.15; 4,13-14 등 참조).


이러한 부류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당신 백성에 대한 주님의 사랑 역시 그렇게 어리석은 사랑인 것이다. 그런데도 호세아가 고멜에게 애착을 가지고 그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응답이 없는 일방적인 사랑이라 하더라도, 그 사랑의 놀라운 심화를 뜻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오로지 남편과만 지내는 완전한 고립이라는 시련만이 고멜을 반성과 회개로 이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역시 자기의 모든 복, 곧 종교적 복, 그리고 하느님과의 특수 관계로 이해되는 모든 복을 완전히 박탈당함으로써만 자신을 돌아보고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세 3장은 동시에, 고멜이 부정을 저지르는 그 시간에도 호세아가 그 여자에게 품고 있는 애정을 드러내 보인다. 고멜이 바로 그렇게 부정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자기의 죄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음에도, 바로 그러한 죄악에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 백성에게 품으시는 애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신 백성에게 갖는 주님의 이 사랑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일대 모험과 같은 부부 생활을 하는 호세아에게서, 하느님의 ‘마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인간이 이해하게 해 주는 체험을 보게 된다. ‘시간이 찼을 때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로마 5,6-8).


호세아는 고멜을 있는 그대로 사랑함으로써, 당신 백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호세아 예언서에서 사랑이 분개와 분노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랑이 그저 순진하거나 무지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고통으로 다듬어진 사려 깊은 사랑이며, 어떠한 시련에도 주저앉지 않는 사랑이다.


4.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바알


사람들은 가나안의 신들이 여러 특권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러한 특권들이 사실은 주님, 그것도 그분 혼자만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가나안의 종교 의식뿐만 아니라, 그 어휘 그리고 상징과 관련해서도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는 우상 숭배자들과 자기가 쓰는 특정 낱말들의 유사점을 찾아 내어 빗대기도 한다(특히 14,9 각주 참조). 그러나 그러한 일은 암시적이고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반면에 널리 퍼져 있는 관습은 사정없이 배척한다. 곧 ‘바알’이라는 용어의 사용이다. ‘주인’을 뜻하는 이 낱말은 본디 가나안의 어떤 신의 이름이다. 또 이 낱말은 아내가 남편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주 하느님을 지칭하는 데에도 이 ‘바알’을 쓰는 관례가 자리잡게 되었다. 호세아는 이 ‘바알’이라는 말을 소리내는 것조차 싫어한다(2,19). 이렇게 다른 신들뿐만 아니라 바로 주님을 가리키는 데에도 이 이름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2,18).


신상을 세우는 것을 절대적으로 배척한 데에도 이와 유사한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신상이 신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상징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북왕국의 성소들에 있는 황소들도(호세아는 조롱조로 “송아지”라고 부른다.) 신의 재현이 아니라 그의 상징으로 내세우려고 하였다. 가나안에서는 신들을 어떤 짐승 위에 선 인간의 모습으로 재현하곤 하였다. 그래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은 그대로 두고 그분께서 베푸시는 도움만을 재현시켜, 주님의 초월성에 맞갖은 존경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친숙한 상징들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종교적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 점에 대해서 매우 강경한 자세를 보인다. 바로 그러한 관습이 종교적 타협의 표지가 되기 때문이다(호세아의 이러한 태도는 1고린 8 - 10장에서 바오로 사도가 희생제물로 바친 짐승 고기와 관련해서 보인 태도에 비길 수 있다).


예언자의 이러한 자세는 호세아가 다른 데에서 주님과 관련하여 취하는 자세와 생생한 대조를 이룬다. 그 곳에서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주님을 진정한 하느님으로 소개하면서, 바로 그분에게서 땅의 풍요다산을 기대해야 한다고 과감히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 주장을 암시적으로 조심스럽게 전개한다(14,9). 또한 그는 주님께서 단순히 자연의 힘을 지니신 분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유의한다. 더 나아가서 예언자는 2,23-34를 주의 깊게 읽을 때 드러나는 것처럼, 자연의 정상적인 진행 과정을 존중한다. 대조가 모순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격정적인 언어에서 대조는 여러 가지 뉘앙스를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호세아는 주님을 인간의 종교적 사고 방식과 언어 너머에 두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종교가 어떠한 타협도 없이 순수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예언자는 외적 종교와 제사와 제의(祭儀)에 관하여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여기에서 호세아가 문제 삼는 것은 미심쩍은 관행들만이 아니라(4,12-14), 매우 전통적이며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 것들이다. 그가 단죄하는 것은 제의나 제사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종교 생활을 이끄는 정신, 곧 의식을 정확히 거행하면 하느님의 호의를 자동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6,1-8과 14,2-4를 비교하라). 주님께서는, 그 순간에는 진지하다 하더라도 삶의 진리가 들어 있지 않은 신심 행위로 불러올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께서는 진정한 회개의 표현과, 일상의 행동들을 통해서 자신을 내놓는 사랑의 증거를 바라신다. 바로 여기에서 호세아는 부정적 논쟁을 넘어선다: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14,5). 죄인인 인간이 마침내 이러한 사랑의 진리를 생활화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시다. 2,20-22가 이러한 사실을 선포한다. 주님께서는 옛 계약에서 요구되는 정의와 공정에 애정과 자비를 보태실 것이다. 또 당신과 당신 백성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정립하실 것이다. 이는 진리, 그리고 애정 어린 친교의 표상들로 표현되는 관계, 온전히 내적 성실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호세아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예레미야는 이것이 바로 새 계약이며, 이러한 계약을 세우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바꾸시리라고 말하게 된다(예레 31,31-34).


호세아 예언서는 매우 어두운 시대를 드러내 보여 준다. 윤리적, 사회적 상황은 총체적 부패이고, 종교적 상황은 완전한 불충이며, 정치적 상황도 지각 있는 이의 눈에는 절망적이다. 호세아의 메시지는 질타와 위협으로 그득하다. 그러나 거기에 주의를 촉구하는 또 하나의 대조가 있다. 바닥 깊은 데에서는 호세아의 메시지가 자애와 희망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정황과 사람들의 태도는 어두운 모습만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질타는(그리고 이것은 실망한 사랑의 질타이기 때문에 그만큼 격렬할 수밖에 없다.) 홀연히 그 무엇도 좌절시킬 수 없는 사랑의 토로로 바뀌게 된다. 시작이 사랑이었던 만큼(9,10; 11,1) 끝도 사랑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분노를 이길 뿐만 아니라(11,6-9) 죄까지 없애 버릴 것이다(14,5).


5. 호세아서의 형성


호세아 예언서가 경이로운 약속의 말씀으로 끝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예언서에서는 편집의 자취를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확실한 형성 과정을 밝혀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 호세아서는 특정한 여러 상황에서 선포된 신탁들과 말씀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그 상황들에 대해서 우리는 일부만 밝힐 수 있을 뿐이다.


앞부분의 몇몇 장은 예후 왕조가 머지않은 장래에 멸망하리라고 내다본다(1,4 참조). 이 장들은 호세아의 활동 초기에 속하는 것들로서, 아마도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때에 선포되었을 것이다. 5장의 둘째 부분은 통상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이라고 불리는 싸움을 시사하는데, 이 전쟁 중에 남부 유다 왕국이 북부 이스라엘 왕국 쪽으로 영토를 확장한다(5,10 참조). 예언서의 끝 부분은 사마리아의 파멸이 이미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임박한 것으로 소개한다(13,9-14,1).


이상 말한 사항들이 호세아서 연대의 틀을 이루는데, 이 연대는 기원전 8세기의 3/4분기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집트와 아시리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이스라엘의 노력에 대한 수많은 암시,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위 계승을 끊임없이 뒤집어 놓는 왕궁 내의 음모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를 전하는 7장의 세부 사항들은 분명하지 않지만 그 전체적인 뜻은 명백하다.) 등이 또한 이 책 전체를 같은 시대에 연결시키는 표지들이다. 아무튼 많은 신탁이 당시의 윤리적, 종교적 상황과 관련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이 예언서의 절정으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책이 전반적으로 풍기는 인상은 일정한 직선 구도를 따른다기보다는, 같은 주제를 꾸준히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 예언서에서 호세아가 한 말 가운데 그 자신이 직접 기록한 부분을 구분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1-3장은 다른 부분보다 어조가 훨씬 더 개인적인 것으로 보아, 호세아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탁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것들에서 이 예언자의 삶의 일부, 더 나아가서 그의 심층적 심리를 재구성하려는 의도로 전기적인 요소들을 밝혀 내려고 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뿐더러 예언자가 전하는 메시지 자체를 지나쳐 버릴 위험이 있다.


호세아의 혼인 생활이 정확히 어떠하였든 간에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해서, 3장이 그의 두 번째 혼인을 말하든, 아니면 아내와 헤어졌다가 재결합하는 것을 말하든 간에), 그것이 그 자체로서, 또는 단순히 호세아와 그의 부정한 아내 사이의 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민족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상징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녀들의 상징적인 이름, 그리고 끊임없이 2인칭에서 3인칭으로, 단수에서 복수로 오가는 변화, 똑같은 질책을 하면서 그 대상을 어미에서 자식들로, 또 자식들에서 어미로 바꾸어 가는 의도적인 혼동 등, 이 모든 것은 호세아의 혼인과 관련된 이 비통한 이야기가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청중 또는 독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임을(1고린 10,11) 뜻한다(호세 14,10 참조).


이미 여러 학자가 말한 대로, 호세아서의 첫 절은 사마리아의 멸망 뒤에 유다 땅에서 쓰여졌음이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호세아서 전체에 걸쳐 이 책이 유다에서 편집되었다는 표시들을 볼 수 있다(1,7과 각주 참조).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본디 북왕국의 특수한 상황과 관련하여 선포된 말씀들이 어떻게 유다 왕국에 적용되었는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유다의 이름을 담은 모든 구절이 유다의 편집자에게서 유래한다는 뜻은 아니다. 끝으로, 글자로 기록된 이 예언자의 메시지 전체에 대한 반향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절 역시 편집자가 쓴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문학 비평적인 고찰은 순전히 전문가적인 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서의 저자들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도록 여건을 만들어 낸 명백한 역사적 상황 너머로, 그 말씀이 항상 지니는 생생한 현실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호세아가 말씀들을 직접 기록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일부분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충실히 전해졌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매우 개인적인 성격의 언어와 문체가 이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해 준다. 그의 문체는 열정적이고 격렬하며, 그의 언어는 강력하고 힘이 넘친다. 그러나 특히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간결함 때문에, 그 언어는 종종 난해하고 그 문체는 때로 모호하기도 하다. 문장들은 빈번히 짧고 율동적이다. 표현의 간결성, 축약성, 부조화 등은 매혹적인 시의 모습을 부여하면서도, 또한 이것들은 호세아서를 히브리 말 구약성서에서 가장 난해한 책 가운데 하나로 만든다. 따라서 호세아서는 본문 비판과 관련해서 추측에 따른 수정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책이기도 하다.


6. 호세아 예언서의 영향


호세아 예언서의 영향은 성서 전체에 걸쳐서 넓게 나타난다. 구약성서에서는 예레미야가 그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예레미야는 ‘광야로의 귀환’이라는 주제를 이어받고(예레 2,2-3과 호세 2,17 참조), 또 ‘새 계약’이라는 주제도 더욱 명확히 한다.


호세아 예언서의 표상 가운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를 혼인 관계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또 부정, 간음, 매음 등과 같은 명제가 뒤따른다. 이 표상은 예레미야서(2,23-24; 3,1; 30,14; 31,22), 에제키엘서(16장과 23장), 이사야서의 후반부(50,1; 54,4-7; 62,4-5)에서 다시 볼 수 있고, 아가서에서는 해석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구약성서에서 혼인의 표상이 주님과 그분 백성의 일치를 상징하듯, 신약성서에서도 이 표상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게 된다(마르 2,19-20; 에페 5,25 등).


신약성서에서는 호세아서가 17번 인용된다. 그러나 그 영향은 단순히 동일한 표상의 반복이나 인용 횟수에 따라 평가할 수 없다. 호세아의 신학은 하느님 사랑의 신학이다. 이 사랑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표상 안에서 정성과 자애로 표현된다. 호세아는 남녀간 사랑의 표상 속에 인간적 열정의 언어를 사용한다. 호세아가 이러한 표현을 대담하게 채택함으로써, 이 예언자 이후부터 주님께서는 열정적인 하느님이라고 불리게 된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바람, 실망, 분개와 분노를,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날이 커져 가는 당신의 자애를 말씀하신다. 결국은 분노나 징벌이 아니라, 피할 수 없이 되어 버린 시련 너머로, 이제는 정결한 일치 속에 이루어지는 행복이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애는 약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뿐더러 죄에 대한 기억마저 소멸시켜 버릴 수 있는 하느님의 힘이다. 이렇게 호세아서는 신학과 신앙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호세아는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면서 바로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요한 복음서에서처럼 그렇게 분명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의 계시 자체는 호세아서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호세아서가 그 메시지의 깊이와 열정을 통하여 신앙의 본질적인 것에까지 다다르기 때문에, 이 예언서는 과거처럼 오늘도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당신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 된다. 호세아서의 마지막 절은 읽는 이에게 하느님 말씀의 현실성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14,10). 예수님께서도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신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마르 4,9). 이렇게 성서의 계시는, 역사의 특정 상황에 깊숙이 끼워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듣는 모든 이에게, 그리고 성서를 펴는 모든 이에게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호세아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의 교회에 말씀하신다. 그것은 질책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자비의 말씀이고, 준엄한 말씀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엇을 요구하는 사랑이다. 그것은 ‘너희에게서 모든 불의를 내쫓고, 우상의 속임수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이 요구는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요구이다. 그러나 이 요구는 또한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요구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유일하신 분이 되려고 하시는 것은, 그분께서 진실로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상은 무(無)일 뿐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는, 인간에게서 구원을 바라는 것이 헛일일 따름이다. 오로지 주님에게서만 행복과 생명이 나온다.


이것이 호세아서를 마무리짓는 말씀이다. 그것은 신앙과 희망의 기초가 되는 말씀이다. 물론 호세아 예언서가 성서의 모든 계시를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예언서가 그토록 멀리 또 깊이 나아가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하느님의 백성은 이 예언서를 읽으면서 희망의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또 자기 신앙의 순수성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출처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새번역성서]


[성서의 세계] 예언자 호세아 - 하느님 사랑의 예언자 ‘호세아’


호세아 예언서는 기원전 8세기 후반기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예언자 호세아의 선포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모두 1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예언서는 열두 개의 소예언서들을 모아놓은 두루마리의 첫 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호세아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당시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예언자이다. 그의 아내 고멜은 남편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고 다른 남자들을 쫓아간다. 예언서에서 ‘창녀짓’이라 질타하고 있는 고멜의 부정과 배반은 풍요다산을 내세우던 가나안 토속종교인 바알신앙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호세아는 그러한 백성들에게 그 옛날 광야시절,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사랑했던 신혼시절을 상기시키며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회개를 촉구한다. 그리고 호세아는 하느님의 명에 따라 자신을 배반했던 아내를 용서하고 다시 맞아들인다.


예언자의 이 행위는 죄에 빠져있던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호세아가 궁극적으로 선포하였던 메시지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다. 인간을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성서 전체의 근본 내용인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호세아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 사랑의 예언자’로 불려지는 호세아의 선포 메시지는 오늘날의 하느님 백성인 우리 자신들에게도 한결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금 체험할 수 있도록 하며,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의와 예지로써 그 사랑에 실천적으로 응답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1. 호세아 예언자와 시대적 배경


예언서 서두(1,1)에 브에리의 아들로 소개되는 호세아는 ‘에브라임’이라 불리는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이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친숙한 예언자이지만 실상 그의 고향이나 출신배경, 소명 등과 같은 개인신상에 대해서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반면, 그가 예언자로서 활동했던 시기는 잘 알려져 있다. 호세아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아모스 예언자보다 몇 년 후인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7-747년) 말엽이었다. 당시 북왕국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외국과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풍요와 번영은 사회적으로 빈부의 격차와 불균형을 초래하였으며,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여 부정과 불의가 공공연히 자행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불충이었다. 본래 이스라엘은 많은 민족들 가운데 보잘 것 없는 한 무리였으나, 에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체험하였으며, 마침내 시나이 산에 이르러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그분의 백성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그 후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민족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을 구원해주시고 돌보아주신 하느님만을 믿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오게 된다.


그러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 이스라엘은 그곳의 토속신앙들을 만나게 되고, 풍요다산을 약속하는 우상숭배의 유혹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기원전 933년 솔로몬 임금이 죽은 후 통일왕국이 남과 북으로 분리될 때 북왕국의 초대 임금이었던 여로보암 1세(933-911년)는 남왕국의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할 성소로 베델과 단을 정하고 그곳에 하느님의 형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운다.(1열왕 12,26-33) 이러한 북왕국의 종교정책은 가나안 이방종교의 유입을 초래하여 순수한 야훼신앙을 훼손하고 만다.


왜냐하면 바알숭배의 상징인 송아지를 하느님의 형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합 임금 치세 때(기원전 875-853년) 활동한 북왕국의 엘리야 예언자는 당시 야훼와 바알신에 양다리를 걸쳤던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을 질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북왕국의 혼합종교주의적인 종교행태는 호세아가 예언자로 나선 740년대에도 여전히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안에서 호세아는 특히 백성들의 바알 신앙을 하느님을 배반하는 창녀짓으로 규정하고 준엄하게 꾸짖었던 것이다.


2. 전체 구조


호세아 예언서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1-3장 호세아의 결혼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자서전적인 서술체로 묘사된다.

4-14장 신탁부분 : 이스라엘의 죄가 구체적으로 제시되며, 회개에의 촉구와 하느님의 심오한 사랑을 핵심 메시지로 전한다.


3. 호세아의 선포 메시지


호세아가 선포했던 핵심내용은 1-3장이 전하는 그의 결혼생활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는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심오한 사랑이 어떻게 선포되고 있는지 세부 주제별로 나누어 관련되는 신탁의 내용들과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1) 이스라엘의 배반에 대한 고발


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등을 돌리고 창녀짓을 하는 이스라엘의 삶을 드러 내기 위해 호세아로 하여금 고멜을 아내로 맞아들이도록 명하신다.(1,2)


먼저 그들 사이에서 난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전달된다.(1,4-9) 첫 아들의 이름인 ‘이즈르엘’은 예후(841-814년)가 정변을 일으켰을 때 반대파들을 학살했던 장소로, 호세아가 등장한 여로보암 2세 말엽부터 기원전 722년 북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전개될 음모와 살인으로 얼룩진 상황을 예시한다. ‘로-루하마’란 딸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더 이상 가엾이 여기지 않을 것임을 나타낸다. 둘째 아들의 이름인 ‘로-암미’는 창녀짓에 빠진 이스라엘을 더 이상 당신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하느님의 선언적 뜻을 드러낸다.


② 그렇다면 당시 이스라엘의 잘못된 삶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4,1에서 발견된다. : “정녕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신의도 없으며 하느님을 아는 예지도 없다.”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대한 신의를 저버렸으며, 계약에 충실하지 않았고, 하느님의 요구에 부합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③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불충이란 무엇보다 그들이 물질적 풍요에 현혹되어 바알 숭배에 빠지고, 그러면서 주님이신 하느님을 잊어버린 것임을 호세아는 거듭 지적하고 있다.(2,4.7.10.15 ; 참조 9,10;10,1;11,1-3;13,5-6) 더욱이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어야 할 사제들조차 낮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하느님의 가르침은 잊어버렸으며, 속죄제사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에만 마음을 두고 있다.(4,4-11)


④ 이러한 종교적인 타락은 사회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저주, 속임수, 살인, 도둑질, 간음 등이 바로 그것이다.(4,2-3)


⑤ 또한 이스라엘은 국가적 위기를 맞을 때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의지하는 대신 강대국인 아시리아나 에집트의 힘을 빌리고자 사절을 보낸다. 호세아는 이러한 외교적 노력들이 결국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5,13 ; 7,11; 8,9-10)


2) 하느님의 진노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거스르는 ‘창녀짓’은 결과적으로 그분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 “나는 바알들의 축제일 때문에 그 여자를 벌하리라.”(2,15ㄱ. 참조 9,1-9)


3)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안타까운 사랑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배반하고 멀어져간 이스라엘을 안타까워하시며, 당신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신다. :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의 신의는 아침 구름같고 이내 사라지고마는 이슬같다.”(6,4)


그리고 당신의 저버릴 수 없는 사랑을 드러내신다. :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11,8ㄱ) 호세아가 제시하는 하느님은 엄격하기만 한 심판자가 아니시다. 그분은 아내에게 배신을 당하였으면서도 사랑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남편과 같은 분이요, 불효하는 자녀들을 바라보면서 애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다.


4) 회개의 촉구


이제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참된 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며 실천적인 회개를 촉구한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6,6 ; 10,12; 12,7 ; 14,2-4) : 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근본 내용으로 하느님과 맺었던 시나이 계약에 신의를 지키고, ② 하느님께 대한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구체적인 삶을 통해 행동으로 고백하며, ③ 하느님께 늘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삶이다. 이러한 생활의 이상적인 모델로서 호세아는 광야시절을 제시한다.(2,16-17 ; 9,10)


에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걸어갔던 40년의 힘든 광야여정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절실히 체험했던 과정이었다. 또한 이스라엘 역시 오로지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따랐던 그때를 예언자는 하느님과 첫사랑을 나누었던 신혼시절이라 표현하고 있다.


5) 하느님의 용서


마침내 호세아는 다른 남자들과 간음을 저지르는 아내 고멜을 찾아가 값을 치르고 다시 데려온다. 그리고 아내에게 보속과 갱신의 기간을 주어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한 후 맞아들인다.(3장) 이러한 호세아의 행동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적극적이고도 심오한 사랑을 구현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정화의 기간을 거쳐 진정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랑이며, 그들을 항구히 당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이다. :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2,21)


지금까지 우리가 만났던 호세아 예언자는 오늘날 모든 신앙인들에게도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전해주고 있다. 그 사랑은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 버리고 마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쇄신하고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이끄시는 적극적인 사랑이며, 우리 인생여정에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한결같은 사랑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진실된 신의와 구체적인 삶을 통한 신앙의 실천적 고백이야말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응답임을 호세아 예언자는 가르치고 있다.


[월간 빛, 2002년 5월호, 송재준 마르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성서학 교수)]


[성서의 세계 - 구약] 하느님의 충실한 사절 호세아와 이사야


하느님의 명령을 통한 실패


추방된 아모스가 기록을 통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북왕국에 부친 반면에, 다른 예언자 하나가 같은 왕국에서 그 사명을 시작했다. 바로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다. 이 예언자의 소명은 몹시 이상한 과정을 지니고 있고, 그 이야기를 읽는 현대의 많은 독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성서를 덮어 버리고 싶어한다.


호세아와 주님의 최초의 만남(호세 1,2)은 그의 소명에 대한 환시를, 즉 호세아가 하느님께 당신의 백성을 위한 예언자가 되라는 임무를 받은 신현을 암시하는 듯하다. “야훼께서 호세아를 시켜 하신 말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너는 바람기 있는 여자와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아라. 이 나라가 야훼를 저버리고 음란을 피우고 있구나.’ 호세아는 야훼께 이 말씀을 받고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아내로 맞았다”(호세 1,2-3).


자연스럽게 나오는 독자의 첫 번째 반응은, 예언자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면, 그에게 주어진 명령에 대한 일종의 반감이다. 즉 하느님이 그와 같은 일을 명하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다. 그처럼 “거의 절망적인” 질문에 대해 아주 다양한 설명들이 서로 충돌하며, 모든 설명들이 하느님에 의해 의도된 동기, 즉 인내와 동정에 간신히 이른다. 이처럼 어려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한데 이 설명으로 호세아의 예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몹시 냉혹한 표현으로 (그리고 라틴어 번역은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그에 대한 확실한 원인이 되었는데) 그에게 맡겨진 임무를 읽을 때 그 명령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모욕적으로 들린다. 즉 하느님은 예언자에게 남편을 버린 여자와 결혼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그 경우 호세아는 부정한 여인에게서 사생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임무는 모든 히브리적인 가르침과 모순이 되고, 나아가 그러한 일을 행할 경우 예언지는 죽음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레위 20,10; 신명 22,22).


따라서 이 이야기는 보다 관대한 설명을 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진술 자체를 조사하는 일이 될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 호세아가 결혼해야 하는 여자는 간음한 여자라고 불리지 않고 바람기 있는, 즉 음란한 여자라고 불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그녀는 행실이 방탕하기는 하였어도 결혼한 여자는 아니었다. 이 여자의 변덕스러움은, 비록 지극히 위험하기는 해도, 결혼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이는 슬픈 장래의 전조이다.


이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했다. 사실 음란한 욕망 속에서 고멜은 다른 사람들에게 갔고 그들에게서 구애를 받았다. 그러한 낙담 뒤에 호세아는 하느님께 자기의 아내를 새로운 사랑으로 다시 차지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야훼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너는 정부와 놀아난 네 아내를 찾아가 다시 사랑해 주어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에게 마음이 팔려 건포도 과자 따위 - 즉 바알의 우상 식탁 - 나 좋아하는 데도 이 야훼가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 주어라’”(호세 3,1).


이러한 비교에서 예언자와 예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발견된다. 호세아는 그의 파멸적인 결혼으로 하느님의 행위에 대한 표지요 상징이 된다. 예언자가 방종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듯, 하느님께서는 고멜처럼 변덕스럽고 불충실한 이스라엘과 일치를 이루신다. 그러한 슬픈 결혼은 백성을 위해 생생한 설교가 된다.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지속되면서, 모든 히브리인으로 하여금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불안하게 여기고 반성하게 해야 할 설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이 모든 설교는 시대가 지나면서 더 이상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미 여러 해 전에 호세아와 고멜에서 출발한 설교는 새로운 긴장을 받아들여야 했고 절정에 이르러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탄생과 아이들에게 붙여진 낯설지만 의미 있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아들은 하느님의 명을 통해 “이즈르엘”이라 불리었다. “…… 오래지 않아 예후가 이즈르엘에서 죄없는 사람들을 죽인 죄값을 예후 왕조에 갚아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킬 것”(호세 1,4)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아이는 “천더기”라고 불리었다. 왜냐하면 “다시는 이스라엘 가문을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지 않을 것”(1,6)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버린 자식”이라 불리었다. 왜냐하면 “너희는 이미 나의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아니다.”(1,9)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세 이름이 그만큼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과 질책이 된 것은 분명하다.


호세아의 메시지의 절정은 도망간 여인으로 인한 고통, 그녀를 다시 얻기 위해 참아 내야 할 벌 그리고 마지막 화해에 있었다. 이러한 국면에서 그의 사랑은 변절자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반영이다. 호세아의 치욕과 실패는 하느님의 분명하고 강한 질책을 담고 있으나 또한 위안을 주는 약속도 담고 있다. 그의 삶은 이스라엘이 전부는 아니라도 언제나 선택된 백성, 하느님의 신부(新婦)였다는 것을 이스라엘에게 드러내고 환기시키고 있음이 틀림없다.


정력적이고 왕다운 웅변가


이사야라는 이름은 가장 중요한 성서 가운데 하나, 일련의 예언서들 가운데 첫째요 가장 중요한 책을 당연히 생각나게 하나, 동시에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예언적 인물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이사야는 성서에서 유일하게 하느님의 예언자요 사절로 묘사된다. 우리는 그의 성소와 그의 예언적 활동을 분명히 읽을 수 있으나, 그의 탄생과 혈통 그리고 그의 숨겨진 삶과 그의 죽음에 대해선 아무것도 읽지 못한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왕가의 자손이고 나아가 다윗 가문의 왕자라고 한다. 훨씬 후대의 어떤 유다 전승은 그를 예루살렘에서 기원전 796년부터 768년까지 다스렸던 아마지야 왕의 동생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빛나는 기원에 대한 입증은 예언 자체에서, 즉 언어의 형태와 고상함 그리고 표현의 장중함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사야가 예루살렘의 귀족 계급에 속한다는 사실은 그의 예언을 읽는 사람에게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도시의 삶에서 얻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집과 거리, 성벽과 탑에 대하여 말한다. 그의 관심사는 거의 대도시의 삶에 집약된다. 게다가 그는 상류 계급의 관습을 알고 있고, 예루살렘 귀족들의 집, 의복, 장식들을 묘사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나라 전체를 마치 예루살렘을 보고 묘사하듯 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예루살렘의 운명, 영광, 악습은 전국가 생활의 종합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왕가 혈통이 의심스럽다면, 적어도 그가 예루살렘 궁전과 성전의 그늘에서 살았다고 결론내릴 필요는 있다.


어쨌든 그는 성전의 홀에서 예언적 소명의 환시를 받는다. “우찌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야훼께서 드높은 보좌에 앉아 계서는 것을 보았다. 그의 옷자락은 성소를 덮고 있었다. 날개가 여섯씩 달린 스랍들이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우고 둘로는 발을 가리우고 나머지 둘로 훨훨 날아다녔다. 그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 그 외침으로 문설주들이 흔들렸고 성전은 연기가 자욱하였다”(이사 6,1-4). 예루살렘의 귀족 계급은 수도의 성소에서 하느님과 만났다.


이사야는 단지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성전에서 부름을 받은 유일한 예언자일 뿐 아니라 또한 자발적으로 자신을 바친 유일한 예언자이기도 하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부르셨을 때 구실을 대고 빠져 나가려고 애썼다(예레 1,6). 모세는 그의 형 아론이 자기 대신 갈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출애 4,10). 오로지 이사야만이 임무를 열망 속에 받아들였다. “그때 주의 음성이 들려 왔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내가 여쭈었다”(이사 6,8). 그는 자기가 불리는 순간에 망설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태연하게 임무를 받아들였고, 태연하게 백성과 왕자들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그들의 경고와 위협에 얼굴을 내밀었으며, 나아가 모든 백성들에게 선포한 재난이 일어난다 하여도 결코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기원전 735년에 아람과 북왕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고 아하즈 왕을 위협했을 때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은 바람에 휩쓸린 수풀처럼 흔들렸다”(7,2).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이사야는 “표백물 건조장에 이르는 길가” 윗저수지 수로 끝에서 검열을 하고 있던 왕 앞에 용기 있게 나타났다. 이 물은 중대한 관심사였다. 거기에는 군대와 시민의 생명이 달려 있었다. 오로지 이사야만이 이 일을 하찮고 무관심한 것으로 간주하는 듯했고, 아하즈에게 차분하게 있으라면서 “연기 나는 두 횃불 끄트머리에 불과한 것”에 놀라지 말고 정신을 잃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포위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이사 7,4).


훨씬 뒤의 세대, 정확하게는 히즈키야 치세 때 예루살렘은 아시리아인들에게 포위 공격을 받았다. 다시 한 번 이사야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왔고, 다시 한 번 그의 태연 자약함이 드러났다.


히즈키야가 상당히 허약해져서 죽어 갈 때 이사야의 입에서 다시 한 번 태연하게 그의 말이 올려 나왔다. “너의 왕실에 마지막 유시를 내려 기강을 바로잡아라. 너는 곧 죽게 될 것이며 다시 회복되지 못하리라”(이사38,1). 그리고 하느님께서 히즈키야의 기도를 수락하셨을 때, 예언자는 하느님의 사절로서 선포하게 된다. “네 기도를 내가 들었고, 네 눈물을 내가 보았다. 내가 너의 수명을 십오 년 더 연장시켜 주리라”(이사 38,5).


백성들 앞에서의 그려한 태연함과 그러한 초월적 힘이 단지 그의 혈통 때문일 수 있겠는가? 그에게 그러한 귀족적 우월감을 준 것은 무엇보다도 신적인 접촉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차분한 확실함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덕분이 아니겠는가? 이사야는 단지 왕가의 연설가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하느님의 지각있는 예언자였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l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1년 8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너는 창녀와 창녀의 자식들을 맞아들여라(호세 1,2-9)


열두 소예언서 가운데 호세아서는 맨 앞에 나온다. 그러나 연대순으로 보면 호세아가 아모스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의 활동 시기는 아모스보다 10여 년 늦다.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정치적 혼란과 종교적 위기에 처했을 때 등장한 예언자이다. 그가 예언직을 수행하기 시작한 연대는 750년경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서진 정책을 폈던 아시리아 제국에 주권 침해의 위협을 받았고, 732년에 아시리아의 종속국이 되었다. 그뒤 722년 이집트의 사주를 받아 아시리아에 반기를 들었다가 비참하게 패망하고 말았다. 이때 호세아의 예언직도 끝난 것 같다.


(구약성서 새번역) 1. 2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창녀와 창녀의 자식들을 맞아들여라. 이 나라가 주님에게 등을 돌리고 마구 창녀짓을 하기 때문이다.” 3 호세아는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그에게 아들을 낳아주자 4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이즈르엘이라고 하여라. 머지않아 내가 이즈르엘의 피를 물어 예후 집안을 벌하고 이스라엘 집안의 왕조를 없애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날에 이스라엘의 활을 이즈르엘 골짜기에서 꺾어버리리라.” 6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딸을 낳자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졌다.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하여라. 내가 더 이상 이스라엘 집안을 가엾이 여기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7 그러나 유다 집안은 가엾이 여기고 주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을 구해주리라. 그렇다고 활이나 칼이나 전쟁, 군마나 기병들로 그들을 구해주지는 않으리라.” 8 고멜이 로-루하마에게 젖을 뗀 다음에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9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하여라. 너회는 내 백성이 아니며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호세아 예언직의 가장 큰 특징은 부부생활이라는 삶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도 모든 이 앞에 드러내면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였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녀들마저도 그의 예언직에 연루되었다. 말하자면 호세아 개인의 사생활은 전혀 헤아려지지 않고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위기에 처한 하느님 백성의 운명을 되돌리는 데에 공개적으로 내맡겨진 셈이다.


‘창녀를 아내로 맞이하여라.’는 말씀도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이 창녀는 단순히 돈 때문에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풍산신 신전의 종교적 창녀였다. 풍산신 숭배를 신랄하게 고발해야 할 예언자에게 이 말씀은 얼마나 풍자적인가! 이 신전 창녀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였고, 이들을 빼내려면 상당한 몸값을 지불해야 했다. 호세아는 몸값을 지불하고 이들 가운데 한 여자를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신전에서 습관적으로 행하던 풍요 다산의 성행위를 못 잊어 자주 호세아의 품을 떠난다. 그때마다 호세아는 아내를 찾아 다시 데려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한 여자의 지아비로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끊임없이 부정을 저지르는 아내를 돌로 쳐죽이거나 쫓아내지 않고 관용을 베푼다는 것은 당시 사회 분위기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호세아는 사회 전체의 질서와 안녕을 위하여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외친다. ‘나의 이 비참하고 비정상적인 혼인생활이 바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 관계와 똑같다.’라고. 그런데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 관계가 어떻게 호세아와 신전 창녀 사이의 혼인 관계에 연결될 수 있는가?


첫째, 다른 예언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호세아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늘 시나이 계약과 연결시켰는데, 이 계약의 핵심은 ‘너는 나의 백성이고, 나는 너의 하느님이다.’(호세 2,25)라는 선언이다. 그리고 이 선언은 바로 혼인 서약의 일반적인 정식, ‘이 여자는 나의 아내이고, 이 남자는 나의 남편이다.’라는 선언을 상기시킨다. 둘째, 이스라엘이 시나이 계약을 깨뜨리게 되는 결정적인 과오는 주 하느님을 저버리고 가나안의 풍산신을 섬기는 것이었다. 이 풍산신의 이름 바알은 히브리말로 ‘남편’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김으로써 본 남편을 낯선 남편으로 바꾼 셈이 되었다. 호세아는 ‘바알’이라는 이름을 하느님께 적용하거나 인명으로 사용하는 것(예컨대 ‘여룹바알’, ‘이스-바알’)을 엄격하게 금지한다(2,18 참조). 셋째,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늘 자애와 성실로 대하셨다. 인간사에서 사랑과 성실이 가장 깊이 표현되고 절실히 요구되는 관계가 바로 남편과 아내 사이의 혼인 관계가 아닌가!


호세아의 비정상적인 혼인 생활은 역사적 사실성을 배제한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호세아가 아내로 맞아들인 여자의 이름, ‘디블라임의 딸 고멜’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았으며 예언자 자신도 이 이름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자가 낳아준 두 아들과 딸의 이름은 상징성을 갖는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즈르엘이다. 이즈르엘은 예후가 오므리 왕조에게서 왕권을 찬탈하려고 아합의 아들 요람 임금과 이세벨, 그리고 아합 집안의 모든 사람을 죽인 곳이다. 아합 집안을 징벌한 예후를 우호적으로 평가한 열왕기 저자와는 달리, 호세아는 예후의 이즈르엘 학살을 여로보암 2세 통치 말엽에서 사마리아의 멸망까지 이어지게 될, 피로 얼룩진 정변의 전형으로 보고 단죄한다.


둘째 아이는 딸이었는데, 주님께서는 그 아이의 이름을 히브리말로 ‘가엾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여자’라는 뜻의 로-루하마라 부르게 하셨다. 그분이 더 이상 이스라엘 집안을 가엾이 여기거나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가 젖을 뗀 다음에 곧바로 셋째 아이가 들어섰다. 이번에는 다시 아들이었다. 주님께서 그 아들의 이름을 히브리말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의 로-암미로 지으라고 하셨다. 그 이유를 그분께서는 이렇게 밝히셨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며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주님의 자비를 얻지 못하고 그분의 백성이 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시나이 계약을 깨뜨리고 그 계약이 요구하는 사회 정의를 실천하지 않았기(4,1-3)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하느님”(탈출 20,2)을 저버리고 바알을 섬기며 가나안의 이 풍산신이 그들에게 곡식과 햇포도주와 햇기름을 마련해 줄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을 아껴주시고 이 백성에게 곡식과 햇포도주와 금과 은을 주시는 분은 그들의 주 하느님이시다(2,9-10).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은”(6,4) 불성실한 회개와 피상적인 신의로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 이런 회개와 신의는 더 이상 음식으로서 가치가 없는, “뒤집지 않고 구운 부꾸미”(7,8)와 같고, 열매를 잘 맺지만 그 열매가 결국 풍산신을 위한 제단과 기념 기둥들로 드러나는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10,1)와 같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참 사랑과 신의이다. 이 사랑과 신의 안에는 물론 사회 정의의 구체적 실천이 포함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배반과 불충 앞에서 고뇌하신다. “내가 그들을 저승의 손에서 구해야 하는가? 내가 그들을 죽음에서 구원해야 하는가? 죽음아, 네 흑사병은 어디 있느냐? 저승아, 네 괴질은 어디 있느냐? 내 눈은 연민 같은 것을 모른다”(13,14). 그러나 자식을 버리는 것은 부모로서 할 짓이 아니며, 백성을 저버리는 것은 그 백성을 태동시킨 신이 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예언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선언하신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브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11,8-9).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꾀어 광야로 데리고 나가서 달랜다. 그 옛날 이집트에서 빼내와 시나이 광야에서 계약을 맺었듯이 그분은 예리고 근처의 아골 골짜기에서 이스라엘과 새 계약을 맺고자 하신다. 그날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두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고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고 부를 것이며(2,18),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영원히 아내로 삼으실 것이다(2,21). 또한 호세아 자식들의 저주받은 이름들이 저주에서 풀릴 것이다. “땅은 곡식과 햇포도주와 햇기름에 응답하고 그것들은 이즈르엘에 응답하리라. 나는 그를 이 땅에 심고 로-루하마를 가엾이 여기리라. 또 내가 로-암미에게 ‘너는 내 백성이다.’ 하고 그는 ‘저의 하느님!’ 하고 말하리라”(2,24-25).


호세아서가 갖는 힘과 매력은 이 책이 인간 정서의 깊은 내면과 인간 관계의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와 인내, 자비와 성실한 사랑을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경향잡지, 1999년 10월호, 정태현 갈리스도(익산 성 글라라 수도원 거주 신부)]


[예언서 여행] 호세아 : 하느님 사랑의 예언자 (1)


1) ‘호세아’라는 이름의 의미


‘구원’, ‘구출’이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호세아’는 ‘구하다, 해방하다’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야사’의 히필(사역형) 완료형에서 유래했다.1)


모세의 후계자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민수 13,8.16)와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 임금인 호세아(2열왕 15,30), 그리고 예수님이라는 이름 역시 ‘호세아’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되었다.


2) 호세아 예언자가 활동하던 역사적 배경


기원전 721년 북부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기 이전 이곳에서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 출신인 호세아 예언자와 남부 유다 왕국의 트코아 출신인 아모스 예언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호세아 예언자의 활동 시대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예로보암 2세(기원전 787-747년)의 집권 말기였으며(1,1), 뒤이어 왕위 찬탈의 시대가 시작되었다(2열왕 15장 참조).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예로보암 2세에서 호세아까지 임금이 모두 일곱 번 바뀌었으며, 그 중 예로보암 2세와 므나햄을 제외한 다섯 임금이 살해되었다(2열왕 15,8-31 참조).2)


이러한 정치적인 혼란과 함께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임금들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앞장섰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신 야훼 하느님과 가나안 민족이 섬기던 바알을 혼동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그들이 얻은 땅의 소출과 다산을 야훼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 ‘바알’의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에서 활동한 호세아 예언자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중앙과 지방 성소에서 행해지던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바알 예배’의 혼합주의(1열왕 12,26-33; 호세 8,5; 10,5)를 비판하면서, 이처럼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한 치유자는 야훼 하느님이시며(5,13; 6,1), 그분의 도움과 인도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3) 호세아 예언서의 구조


예언 신탁으로 구성되어 있는 호세아 예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표제(1,1)에 이어 첫째 부분(1,2-3,5)은 호세아 예언자의 혼인 생활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에 대한 개인 설화와 이 설화에 비추어 이스라엘과 주님의 관계를 설명한다. 둘째 부분(4,1-14,9)은 주로 이스라엘의 범죄와 징벌에 관련된 하느님의 신탁들을 전한다.


1,1 표제(제목과 서언)

1,2-3,5 호세아의 혼인 생활

4,1-14,9 이스라엘의 범죄와 징벌에 관련된 신탁들

14,10 결어 : 참된 지혜


1) 속박과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노예 해방’이라는 법적인 의미를 지닌 호세아라는 이름은 종교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모든 악에서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신명 20,4; 여호 22,22; 판관 3,9; 6,36-37 참조).


2) 예로보암 2세의 죽음 이후 그의 아들인 즈카리야가 즉위했고(기원전 747년, 6개월 통치 후 피살됨), 뒤이어 살룸(기원전 747-746, 쿠데타 성공 후 집권했으나 한 달만에 피살됨), 므나햄(기원전 746-736, 쿠데타로 집권), 프카흐야(기원전 736-735년, 아버지의 왕위 계승), 페카(기원전 735-732년, 쿠데타로 집권), 그리고 호세아(기원전 732-724년, 쿠데타로 집권)가 집권했다. J. 맥스웰 밀러 & H. 헤이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박문재 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 405-413 참조.


[2009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예언서 여행] 호세아 : 하느님 사랑의 예언자 (2)


4) 호세아 예언서의 주요 메시지


①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기원전 8세기 북부 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한 호세아 예언자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통해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다(1-3장). 창녀 고메르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인 호세아는 그녀와의 사이에 세 명의 자녀를 두는데, 그들의 이름은 ‘무한히 크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비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야훼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들의 운명을 표현한다. ‘하느님께서 흩뜨리시다’는 의미를 지닌 ‘이즈르엘’(호세1,4)은 북부 예후 왕조의 몰락을 상징하고(2열왕 9-10장 참조), ‘가엾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여인’이라는 의미의 ‘로 루하마’(호세 1,6; 참조 : 탈출 34,6; 신명 13,18)와 ‘나의 백성이 아니다’는 의미의 ‘로 암미’(호세 1,9; 참조 : 탈출 6,7)는 하느님께서 무한히 크신 당신 자애 때문에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참아 오셨지만, 더 이상 그들을 가엾이 여기지 않으시고 그들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심으로써 그들이 더 이상 당신의 사랑스러운 백성이 아님을 표현한다.


그러나 호세아 예언자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여 하느님께 다시 되돌아온다면, ‘로 루하마’와 ‘로 암미’로 불리던 그들이 ‘루하마’와 ‘암미’로 불림으로써 야훼 하느님에 의해 ‘가엾이 여김을 받는 여인’이 됨과 동시에 그분의 ‘백성’으로서의 신원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2장).


② 이스라엘 백성에게 충실하신 하느님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그칠 줄 모르는 사랑과 자비를 ‘헤세드’(2,21; 4,1; 6,4.6; 10,12; 12,7)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바람난 아내 고메르를 찾아 그녀를 용서하고 처음의 혼인 유대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호세아의 사랑(1-3장)은 하느님의 ‘헤세드’를 묘사한다. 당신과 맺은 계약에 불충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한결같은 ‘헤세드’를 지니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과 새로운 일치,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기를 원하신다.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사랑이 시작되었던 광야로 불러내시어 그들을 정화시키시고, 새롭고도 더욱 깊은 계약을 맺으실 것이다(2,16-25 참조).


③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회개


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중재를 통해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탈출 19-23장 참조)과 그 관계를 혼인 관계에 비유하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로우면서도 더욱 근본적인 정신으로 재조명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신랑(新郞)이시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신부(新婦)라는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가 지금은 깨져버렸고,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에 의해 흩어지고(이즈르엘), 더 이상 하느님에 의해 ‘가엾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여인’(로 루하마)으로서 그분의 ‘백성’이라는 신원을 상실해 버렸지만(로암미), 만일 그들이 하느님께 다시 되돌아온다면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한 곳으로 모이고, ‘루하마와 암미’로서의 본래의 신원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고 그들이 자신의 주님이신 야훼 하느님께 되돌아오도록 역설한다. 이는 ‘돌아가다’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동사 ‘숩’이 호세아 예언서에 23번 사용되는데, 그 중 14번이 ‘하느님께로 돌아오다’(3,5; 5,4; 6,1; 7,10; 11,5; 12,7.15; 14,2.38 등)는 의미로 사용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여 ‘하느님께 되돌아가면’ 그들이 현실에서 겪는 모든 방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5,13-6,6).


[2010년 1월 24일 연중 제3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성경 속의 인물] 호세아 예언자


‘호세아’의 말뜻은 ‘야훼의 구원’이란 의미다. 이름 자체가 예언자의 소명을 담고 있다. 그는 북 이스라엘 출신으로 13번째 임금인 ‘예로보암 2세’ 때 활약했다. 당시는 북방의 ‘아시리아’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때였다. 그들은 팔레스티나 공략을 위해 이스라엘 북쪽에 있던 ‘아람(시리아)’를 넘보기 시작한다.


아람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력을 아시리아 쪽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보를 입수한 예로보암 2세는 즉시 아람을 공격했고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 영토 확장은 물론 많은 포로들을 잡아와 노동력을 보충했다. 이렇게 해서 솔로몬 시대 이후 최고의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내부는 부패하기 시작했다. 율법정신이 느슨해졌고 현실적 이익에 따라 우상숭배도 서슴지 않았다. 호세아 예언자는 이 무렵 출현한다. 예언의 내용은 단순했다. 주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물질의 늪’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사마리아는 함락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2열왕 17,6). 당시의 임금은 ‘호세아’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임금이다. 물론 예언자 ‘호세아’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먼저 ‘받아야’ 한다. 계시를 받지 못하면 예언자가 될 수 없다. 호세아는 평생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던 예언자다. 특별히 그는 ‘고메르’라는 여인과 혼인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런데 그 여인은 행실이 부정한 여인이었다. 고메르는 호세아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은 뒤 외간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해 버린다.


예언자의 부인이 정부와 어울린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호세아는 배신한 부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하여 창녀가 된 그녀를 돈을 주고 다시 데려온다. 모든 것은 주님의 섭리였다. 고메르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호세아는 그런 이스라엘을 다시 선택하시는 주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호세아는 창녀가 된 아내를 찾아 나섰다. 극적인 설정이다. 당시는 그런 아내를 외면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되지 않았다. 여인이 먼저 계약을 파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세아는 다시 선택했다. ‘선민’ 이스라엘이 비록 타락했을 지라도 주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교훈이었다. 호세아의 삶은 ‘그 자체’가 주님의 메시지였다.


[2009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성경풀이 FREE] 호세아와 창녀 아내


일반 신자들에게 호세아는 그리 알려진 예언자는 아니다. 일생을 바쳐 백성과 왕실을 선도한 그의 선구적 역할을 생각하면, 대중적 무관심이 안타깝기도 하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등에 비해 뒤로 밀리긴 했어도 연대적으로는 앞 시대를 살았고(기원전 8세기), 하느님과의 계약을 최초로 혼인 관계로 해석하여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신부로 비유했다(2,22 :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이 전통은 마태 9,19까지 이어져 예수님은 당신을 신랑에 비유하셨다.


호세아는 히브리어로 (호세아)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이고, 예수님 이름인 예슈아와 어근이 동일하다. 주 활동 무대는 북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사투리로 기록된 호세아서는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이 방언이 나중에는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이어진 듯한데, 베드로가 갈릴래아 사람임을 쉽게 알아본 것도 말투 때문이었다(루카 22,59 : “… 이이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소”). 여느 나라처럼 고대 이스라엘도 사투리로 출신 지역을 추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험난한 팔자를 살았던 호세아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여 창녀와 혼인해야 했는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비정상적인 혼인은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을 온몸으로 상징하는 것으로, 남편이신 하느님을 뒤로하고 우상들과 불륜 잔치를 벌인 이스라엘이 창녀 신부였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호세아는 은 열다섯 세켈, 보리 한 호메르 등을 주고 매춘부 고메르를 사들였고, 세 아이를 두었다(1,2-9; 3,2). 그러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갈 때마다 찾아다녀야 했기 때문에(3,1), 자기 아이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고달픈 운명보다 민족의 미래를 크게 보았던 호세아, 그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통해 민족적인 메시지를 전하려 한 듯하다. 그럼에도 매춘부와 혼인하여 방탕한 아내의 배신을 지켜보는 수치와 아픔, 현재 생활에 만족하여 매트릭스에 빠져 있던 동포들에게 혹독한 훈계 신탁을 내려야 했던 부담감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십자가였다. 그러나 호세아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상기시키며, 줄기차게 회개를 촉구했다. 그러면 자신이 창녀 아내를 용서하는 것처럼, 하느님도 매춘부 같은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들이실 것임을 알렸다.


예언 생활 동안 그가 감내한 배신의 고통과 백성들의 거부, 그리고 고독을 묵상해본다. 이 힘겨운 소명을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었던 호세아는 진정 산처럼 큰 사람이었다. 그리고 비록 나의 도량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호세아와 같은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2013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인천주보 4면, 김명숙 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5)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호세 3,5)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은 ‘일편단심’


- 호세아 예언자를 그린 이콘 작품.


호세아는 쉽지 않은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어렵게 아내를 사랑해야 했던 그는 이 결혼 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호세아가 활동한 것도 기원전 8세기입니다. 아모스와 비슷한 시기이지만 조금은 더 늦은 시기였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이 더 임박한 때였습니다. 멸망을 직접 겪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가 주로 사회 불의를 비판했다면 호세아는 종교적 타락과 우상 숭배를 고발한 것이 특징입니다.


어느 날 하느님께서 호세아를 부르십니다. “너는 가서 창녀와 창녀의 자식들을 맞아들여라”(호세 1,2). 2장과 3장에서는 같은 이야기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어, 호세아가 아내와 결혼한 다음 그 아내가 호세아를 배신하고 다른 애인들을 쫓아갔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호세아의 아내는 호세아에게 신의를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며 입을 것을 주는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호세아에게, 끝까지 찾아가 그 아내를 다시 데려와 사랑해 주라고 하십니다. 호세아는 은과 보리를 주고 다시 그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데려옵니다.


이러한 행위의 의미는 호세아서 3장 1절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음을 저지르는 여자를 사랑해 주어라.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 주어라. 그들은 다른 신들에게 돌아서서 건포도 과자를 좋아하고 있다.” 여기서 그 여자의 배신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주님이신 하느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러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호세아와 그 아내의 사랑 역사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첫사랑 시기는 이집트를 탈출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때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가 맺어진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탈출 때에 주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주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사랑에 응답하는 젊은 여인과도 같았습니다(2,17).


그러나 그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양식과 물, 양털과 아마, 기름과 술을 주는 내 애인들을 쫓아가야지”(2,7) 하며 주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시기였습니다. 호세아의 아내가 그렇게 다른 남자들을 따라간 것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진 것을 나타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면서 이스라엘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주님이 아니라 가나안인들이 섬기던 풍산신 바알이 그들에게 먹고 마실 것, 입을 것을 마련해 준다고 믿으며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바알이 폭풍우와 비의 신이니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바알에게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11,2)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가 그런 아내에게 깨달음을 얻게 하도록 징계의 시간을 갖게 했듯이(2,11-15), 이스라엘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사랑의 유대를 끊어 버린 후에는 징벌의 단계가 뒤따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서 곡식과 포도주를 거두시어 그것이 바알이 준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하느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11,5).


“그러나”(2,16) 호세아는 아내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다시 맞아들이며(2,21-25), 하느님 역시 이스라엘을 벌하시면서도 그를 애절히 사랑하시기에 다시 데려오십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죄 때문에 멸망할지라도, 하느님은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11,8) 그 이스라엘을 내버리지 못하십니다. 심판을 선고하시던 하느님이 여기서 돌아서십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11,8). 하느님은 분노를 거두시고 다시 이스라엘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이스라엘 편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의 손을 뿌리치려 하지만, 하느님 편에서 그 꼭 붙든 손을 놓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내버릴 수 없으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돌아오게 될 날을 이야기하는 호세아서 14장 2-9절에서도 우리는 이스라엘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봅니다. 처음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바쳐야 할 회개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아시리아와 군마와 우상, 곧 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릴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그 말씀 다음에는 이스라엘의 고백이 뒤따르지 않습니다. 호세아의 아내가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호세아가 아내를 용서하고 데려왔듯이, 여기서도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14,5)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돌려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이루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은 하느님 사랑의 주도권에 의해서입니다. 배반한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이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14,6).


[평화신문, 2015년 6월 7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이스라엘 이야기] 호세아의 아내


음란한 아내… 우상 숭배 빠진 이스라엘에 빗대


- 북왕국의 바알 숭배를 표현한 부조 작품.


호세아는 일반 신자들에게 인지도가 그리 높은 예언자는 아니다. 성경에서도 그가 북왕국에서 활동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고향도 묻힌 곳도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갈릴래아 지방에 올라가 이즈르엘 평야를 보면, 늘 호세아가 떠오른다. 그의 첫아들 이름이 바로 이즈르엘(호세 1,4)이었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기원전 8세기 사람으로, 히브리어로는 ‘호셰아’라 한다.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어근만 보면, 예수님의 이름인 예슈아와 의미가 같다. 활동 무대가 북왕국인 만큼, 그의 신탁에는 북쪽 특유의 사투리가 많이 나타난다. 이스라엘을 부르는 애칭도 예루살렘이나 시온이 아니라, ‘에프라임’, ‘사마리아’다.(7,1; 11,8 등) 에프라임 사람 예로보암이 세운 북왕국의 수도가 사마리아였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특히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혼인 관계로 보아,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신부에 비유한 선구자였다.(2,22: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등 참조)


특이하게도 그는 창녀와 혼인해야 했는데(1,2), 정상적인 남자로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 혼인은 이스라엘의 배신을 꼬집기 위함이었다. 곧, 하느님을 뒤로하고 바알과 불륜 잔치를 벌이는 이스라엘이 창녀 아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회심하는 날, 하느님을 더 이상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는 예고(2,18)도, 당시 바알 숭배가 얼마나 활개치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바알은 가나안 신의 이름인 동시에, 주인·남편을 뜻하는 보통 명사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바알의 이름을 보통 명사로 전환하는 언어유희를 발휘해, 이스라엘의 회개를 예고하고 또 촉구했던 것이다. 호세아가 아내로 맞은 고메르는 직업 매춘부는 아니었으나, 품행이 음란한 여자였던 것 같다. 다른 남자를 따라 가출할 때마다(3,1) 호세아가 찾아와야 했으니, 아이도 자기 아이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메르를 끝까지 버리지 않음으로써,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충실하게 표현해 주었다. 곧,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신탁 전달의 도구로 삼아 백성을 일깨우려 했다.


호세아가 온 삶으로 그려낸 이 혼인 비유는 후대 예언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 에제키엘 신탁에는 다음과 같이 반영되었다(16,8: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등). 광야 유랑 시절을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신혼으로 묘사한 신탁은(호세 2,16-17), 예레미야에게 영감을 주었다(2,2: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 이즈르엘 평야 전경.


혼인 비유는 바빌론 유배 이후 시대에도 이어진다. 일례로, 이사 54,6을 보자.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우상 숭배라는 불륜을 저지른 이스라엘은 소박당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느님이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실 것임을 알리는 신탁이다. 이 전통은 신약에도 이어져, 예수님이 당신을 신랑에 비유하셨다(마태 9,15: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묵시 21,2은 천상 예루살렘을 하느님의 신부로 묘사했다(“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골적이고 색정적인 표현이 많아 정경(政經)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아가도 혼인 비유에 힘입어, 유다교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사랑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호세아서는 예언자의 사생활을 많이 언급하지 않으므로, 자세한 일생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음란한 여인과 혼인해 아내의 배신을 지켜보아야 했던 수치와 아픔, 백성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훈계를 전달해야 하는(9,7 참조) 소명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십자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세아는 줄기차게 회개를 촉구하며, 자신이 창녀 아내를 용서하듯 하느님도 이스라엘을 용서하실 것임을 알렸다. 비록 수치와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그 무게를 견디도록 도와준 힘은 자신이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아니었겠는가?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4월 10일, 김명숙(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