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 연재를 시작하며


사회교리, 그리스도인 생활의 나침반


평화신문은 이번 호부터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를 연재합니다. 사회교리를 쉽게 이해하고 나아가 이를 생활로 실천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기획 연재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2004년 10월 29일 금요일 오후 4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이 날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 중의 하나였다.


신자들이 함께한다는 믿음으로


사회적으로는 유로 공동체 EU의 통합 헌법을 조인하기 위해 유럽의 각국 정상들이 로마의 캄피돌리오에 모여 통합 헌법에 대한 조인식을 하고 있었다. 인권에 대하여, 사회적 연대와 통합에 대하여 각국 정상들이 아침부터 TV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고 있었을 때, 나 역시 같은 주제어들을 갖고 박사학위 공개심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유학생활의 마지막 순간, 박사학위 공개심사가 잡혀 있었던 그날, 나는 아침부터 불안함과 더불어 약간의 흥분감 속에서 공개심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개심사에 지인들을 초대하면서 썼던 초대 글이 지금도 떠오른다.


"부족하고 형편없는 제가 하느님의 도우심과 교수님들의 자비로우심으로 박사학위 공개심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제 학문 지평에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기도로 격려해 주시고 힘이 되어주시길 감히 부탁드립니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란 넓은 바다속에 가녀린 낚싯대를 드리우고 허탕질을 한 지 7년, 결국 마지막 순간에 아주 작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평화신문에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대해 연재해 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으면서 유학 시기의 마지막 순간이 떠오른 것은 과연 내가 삶 속에서 배우고 익힌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신자분들에게 올바르게, 그리고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보는 것은 학위 심사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 글을 읽게 될 많은 신자분이 나와 함께 계실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비록 나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신자분들의 기도와 격려가 있을 것이란 믿음에 감히 용기를 내어보고자 한다.


사회교리,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


2004년 「간추린 사회교리」(Compendium of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가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에서 출간되기 전까지 대다수 사람은 교회의 가르침 안에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교도권의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일반 신자들에게 사회교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교리는 노동 문제에 대한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가 1891년에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 왔다.


교회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직간접으로 가르침을 주어왔으며, 이러한 가르침들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소유하도록 도움을 주어왔다. 사회교리가 우리 신앙인들의 실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생활의 나침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사회교리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리'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한 어감으로 인해 사회교리는 어렵고 따분한 것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사회교리가 이처럼 어렵고 따분하고 추상적일까?


사회교리는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이기에 결코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일 수 없는 가르침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정교분리의 원칙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윤리적인 가르침을 주는 것을 통념적으로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국가는 국가의 일을, 교회는 교회의 일을 하도록 요구되면서 교회가 세상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이 되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 문제에 윤리적인 가르침을 주는 것이 잘못된 것이란 견해 역시 배척해야 할 잘못된 견해일 뿐이다.


교회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따라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이야기하며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내어 놓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 본래 의도가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교회의 예언자적인 사명까지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교회가 이 세상에 존립할 근거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교회가 세상 안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면 그것은 결국 빈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 글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목적은 가톨릭 신앙을 삶의 기준으로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교회의 사회적인 가르침인 사회교리를 쉽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이러한 사회적 가르침의 이해를 바탕으로 신앙인들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사회교리를 행동 안에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실천적인 좌표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번 여정을 통해 우리 신앙인들 모두가 교회의 실천적인 가르침인 사회교리를 익히고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의 눈을 갖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 황창희 신부는 인천교구 소속으로 1997년 사제품을 받고 교황청 라테라노대학 성 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석사, 교황청 우르바노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통진본당 주임을 거쳐 2005년부터 인천가톨릭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화신문, 2014년 1월 5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 세상 안의 교회


성찰, 판단, 행동은 사회교리의 기본 방향


사회에 드러나는 여러 문제에 대해 교회가 윤리적인 가르침을 주는 일은 과연 정당한 일인가? 21세기 한국의 복잡한 정치 현실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할지 혼동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 경우, 이러한 긴장감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럴 때면 흔히 듣는 질문이 "신부님도 정의구현사제단이세요? 신부님들이 사회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질문을 던진 신자분들에게 되묻곤 한다. "형제님, 형제님은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무엇을 알고 계신가요? 그분들의 주장을 정확히 알고 계신가요?" 하고 말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만을 기반으로 판단할지 모른다. 자기 생각이나 뜻에 맞지 않을 경우 쉽게 비판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인가


한국 가톨릭교회는 1974년 지학순 주교님의 체포와 구속 사건을 계기로 정의구현사제단을 발족해 직접적인 사회참여 활동을 해왔다. 성장과 발전이란 기치 아래서 억압된 인간의 기본 권리와 존엄성에 대해 교회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고, 그 중심에 가톨릭교회와 정의구현사제단이 서 있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수행했다. 공포정치와 독재의 그늘에서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그리고 정의에 대해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교회는 자신의 예언자적 역할에 충실했고, 이러한 교회의 실천적인 결단과 행동 속에서 사람들은 도덕성을 찾아냈다. 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이 교회로 찾아들었고, 그들은 교회가 진리를 추구하는 정의로운 모습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민주화되었지만 교회의 사회정의에 대한 몸부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은 까닭이다. 한국 사회가 경제 성장과 더불어 많은 발전이 이뤘지만, 아직도 교회는 진정한 인간 발전이 인간성의 기초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교회는 이러한 선택을 위해 세 가지 기본 방향을 제시한다. 바로 성찰 원리, 판단 기준, 행동 지침이다.


그 첫 단계는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으로 성찰의 단계이다. 우선 발생한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주어진 정보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발생한 사회 문제에 대해 객관적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찬성 쪽이나 반대쪽 한 부분만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만일 누군가 한쪽 정보에만 집중한다면 그는 다음 단계인 윤리적 판단 단계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윤리적 판단은 자신에게 주어진 윤리 지식과 교육 환경 등의 영향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습득된 정보를 통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 사실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비판을 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 사회생활의 나침반, 사회교리


판단의 단계에서는 판단을 내릴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국인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이기에 판단 기준을 두 군데에서 동시에 찾아야 한다. 우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법에 충실하면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부분까지도 충분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교회가 사회에 주는 공식적인 가르침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을 기록한 성경과 교도권의 가르침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윤리적 판단을 내릴 준거틀이 된다. 성경 말씀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인 「가톨릭교회 교리서」, 「공의회 문헌」, 교황님들의 가르침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발견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행동하는 실천의 단계다. 문제점을 정확히 살펴보고, 준거틀에 의한 판단이 내려졌으면 이내 행동으로 옮기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교회가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신앙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노력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하느님 나라가 천상 세계에만 속해 있는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구체적인 것이 되어야 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삼천년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류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순례하는 백성으로서의 교회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며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왔다. 교회는 사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교회는 단지 사회와 구별되어 존재할 뿐이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교회가 교회 일에만 힘쓸 수 없는 까닭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진정한 인도주의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사회교리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통합적이고 연대적인 인도주의를 촉진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성찰 원리와 판단 기준과 행동 지침을 교회의 사회교리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간추린 사회교리」 7항).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기 위해 사회교리를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월 12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 역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사랑, 구원 메시지, 인간 역사에 드러나


인류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성스런 것과 속된 것 사이에서 올바른 윤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적으로는 성스러움을 찾는다고 말하면서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물적ㆍ육적 유혹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 존재다. 이처럼 인류가 죄 속에서 살면서도 영원한 멸망의 고통에 빠져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역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 인간과 함께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시련 이겨내


어린 시절 유아세례를 받은 나는 부모님의 신앙생활을 보며 성장했다. 가족 중 맨 처음으로 세례를 받으셨던 어머니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고, 어머니 덕분으로 가족 모두는 가톨릭 신앙에 입문할 수 있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아버지와 사랑스러운 어머니 덕분에 나는 행복한 유아기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살림이 어려워지게 된 후 가정의 위기가 찾아왔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본당 공동체가 있었기에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본당 신부님과 교우들의 정성 어린 기도와 물적 지원은 다시금 아버지를 일어설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 안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신앙을 더욱 굳게 할 수 있었다.


신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대화 속에서 아버지는 아직 어린 나에게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당신의 파란만장한 개인사 안에서 하느님의 존재는 그야말로 당신의 두 발을 이 땅에 딛게 할 수 있게 했던 원천이자 힘이었다. 전쟁으로 정든 고향 땅을 떠나 새로운 고장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았던 아버지에게는 어떤 배경이나 물질적 지원도 없었고 모든 어려움을 홀로 이겨내야만 했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 아버지를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게 했던 것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었다. 항상 즐겨 부르시던 "세상의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 있네"라는 가톨릭 성가의 가사처럼 아버지는 어떤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살아가셨다.


아직 가훈이 없었던 우리 집에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가훈을 적어 액자에 표구해 들어오셨다. 그 액자에는 향주삼덕을 나타내는 신, 망, 애라는 세 글자가 한자로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액자를 거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거셨다. 그리고 가족에게 "오늘부터 우리 집 가훈은 신망애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삶 속에서 깨우친 것을 가훈으로 적어 가족에게 전달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믿음, 희망, 사랑임을 확신하셨다. 자신의 개인적 삶 안에서 신망애 삼덕의 중요성을 깨달으셨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이 세 가지 덕목을 추구하며 세상을 살아가도록 당신의 깨달음을 남겨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믿음과 희망, 사랑


하느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무신론적 세계관이 팽배한 오늘날 세상 안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있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을 직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 체험이 자신의 신앙 안에 제대로 녹아 있지 않다면 일상 속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수많은 하느님의 은총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가 없다.


인류의 모든 문화 전통 안에서 느끼는 진정한 종교적 체험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 존재를 직관하도록 이끌어준다. 동시에 인간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며 우리 인간 역사 안에 함께 현존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는 존재다. 인간 역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모습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 모습은 우리 인류와 항상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시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역사적으로도 놀랍고 예리한 방식으로 구현되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일 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탈출기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울부짖음을 무시할 수 없는 분이시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탈출 3,7-8).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신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은 약속된 땅을 선사하심으로써 온전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하느님 모습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고 계심을 알려준다(「간추린 사회교리」 21항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고유한 방법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여하시는 분이시다. 더군다나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심으로써 가난하고 억눌리고 굶주린 이들에게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다.


하느님의 구원 메시지는 이제 모든 인류 공동체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안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존재는 그만큼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의 일에 무관심할 수 없게 만든다. 세상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가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일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월 19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 십계명과 사회교리


법 없이도 살 사람 줄어드는 사회


인간이 세상을 사는데 여러 가지 기준이 존재한다.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통용되는 윤리규범을 만들며, 이를 실천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선을 추구한다. 우리는 항상 올바른 규정과 규범을 지키는 사람들을 일컬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법 없이 살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모든 분쟁을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져간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넘어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인류의 보편적 윤리규범


얼마 전, 한 본당에서 특별 강의를 부탁받았다. 내가 사는 학교는 강화도에 있어 저녁 특강을 하려면 퇴근 시간을 피해 시간 여유를 두고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날은 출발이 늦어 교통 체증에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뒤차와 작은 접촉사고가 났다. 차에서 내려 뒷범퍼를 살펴보는데 뒤차의 운전자가 와서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실수했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순간 머릿속에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신자분들에게 사랑과 용서를 주제로 강의하러 가는데 내가 화를 내고 싸우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느님은 우리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가르치셨는데, 내가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겠다."


운전자에게 앞으로 조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그냥 보내드렸다. 본당에 도착해 몇몇 신자분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병원에 입원하면 돈 좀 벌 수 있는데, 몇백만 원은 손해보셨다"면서 웃으셨다. 그분들의 웃음이 불쌍하고 한심해서가 아닌, 그래도 사제로서 잘했다는 웃음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따금 자동차 뒷범퍼 사고 자국을 보면 "그때 사제로서, 신앙인으로 올바른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에 웃는다.


어린 시절 나는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어린이였다. 도로를 무단횡단하거나 쓰레기를 길에 버리는 것은 어린 나에게 절대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습관에 길들어 지금도 교통신호를 철저히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살다 보니 주변에는 윤리규범을 무시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공중도덕을 지키거나 양심적인 일을 하는 것에 무관심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자라고 교육받은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윤리관과 가치관을 갖고 산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윤리규범이 필요하다. 만일 가톨릭교회에서 제정된 윤리규범이 인류의 보편적 윤리관과 정반대의 것이라면 더 이상 교회의 윤리관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 교회의 윤리규범 역시 인류의 공통 윤리규범에 어긋나면 안 된다.


하느님의 법을 마음에 새겨야


윤리규범의 보편성은 이미 성경을 통해 제시됐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선택된 민족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이집트 탈출 후 모세를 통해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 시나이 산의 십계명 사건이다. 인간으로서 하느님과 지켜야 할 기본적 계명을 계약으로 맺은 것이다. 그런데 십계명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어느 조항 하나도 인류의 윤리규범과 충돌되거나 배치되지 않는다. 이는 십계명이 윤리규범으로서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인 「간추린 사회교리」는 십계명의 윤리적 보편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십계명은 삶의 훌륭한 지침이며 죄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는 것으로서 자연법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십계명은 보편적인 인간 윤리를 설명한다"(22항). 또한 이 십계명은 인간 사회의 상호 관계성에 주목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권리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한 분이신 참 하느님께 충실하고 또 계약의 백성들이 서로 사회관계에 충실해야 할 의무는 십계명에서 나온다. 이러한 관계는 특히 이른바 가난한 이들의 권리로써 규정된다"(23항).


십계명과 더불어 7년마다 거행되는 안식년 규정과 50년마다 거행되는 희년 규정은 하느님의 무상 은총과 정의로운 나눔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이처럼 안식년, 희년 규정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사건이 정의와 사회적 연대의 원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올바른 윤리규범이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비록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법이 충분히 스며들지 못했어도 우리는 인간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 안에서 발견되는 사랑의 계명을 생활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이들은 세상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4년 2월 9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5) 구원 역사 안에 계시된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 찾고 그 사랑 체험하며 살아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그러한 하느님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될 것이라 고백하며 사제가 된 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10년간의 신학생 시절과 짧지 않은 7년간의 유학 생활, 그리고 신학교에서 미래의 사목자를 양성하는 소임을 맡은지도 9년째 접어든다. 돌이켜보니 사목 경험이라곤 본당에서 2년의 짧은 기간이 전부다. 어린 시절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살아가는 본당 사제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현재 내 모습이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들


얼마 전 고3이 되는 예비 신학생 조카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신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조카는 아직도 자신이 왜 신부가 되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면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나는 조카에게 처음 사제가 되려고 결정했던 때가 언제인지 물어보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신부님이 되고 싶었어요. 매주 어린이 미사 때 성당 맨 앞자리에 앉아 미사 시간 내내 졸곤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미사를 드리는 신부님이 보이는 거예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그대로 꽂혀 버리고 말았지요. 그때부터 사제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이런 이유로 신학교에 가려고 하니 왠지 올바른 이유가 아닌 것 같아요!"


조카는 다른 사람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투신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갖거나,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고 계신다는 강한 체험을 했다면 고민 없이 신학교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조카를 보면서 "우리 신앙인 대부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적이고 경험주의적인 세계관이 팽배한 오늘날의 상황 안에서 하느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이 어리석고 황당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세상에는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 익명의 천사들이 있으며,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수없이 존재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버리고 더 나은 가치를 위해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 찾는 노력 계속해야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은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시는 강생구속 사건에서 절정을 이룬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직접 하느님을 만나 뵐 수도, 경험할 수도 없었다. 어찌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은 우리와 동떨어져 멀리 천상세계에 계시는 분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한 대속의 삶을 직접 사셨다. 이 구원사건을 통해 우리 인간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과 무관한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직접 관여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며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직접적이고 경험적으로 알 수 있게 됐다. 그분은 왕이요, 구원자로 오셨지만 가장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더군다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인간의 역사 안에 함께 하시는 당신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셨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원 역사 안에서 점진적으로 계시되는 하느님의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완전하게 드러난다.…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행동으로, 그리고 완전하고 결정적으로는 당신 죽음과 부활로써 인류에게 하느님께서 아버지시고, 우리 모두 성령의 힘으로 은총을 통해 그분의 자녀가 되도록, 따라서 우리 서로 형제자매가 되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을 계시하신다"(「간추린 사회교리」 31항).


더 나아가 하느님은 인간 상호 간에도 당신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요구하신다.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이 계명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기준을 마련해 준다. 또한, 인간은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인간 상호 간의 관계성을 정화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오를 수 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 사건을 통해 인류 전체에 대한 보편적이고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3, 38항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대신 죽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 사건으로 완성됐다. 인간의 역사 안에 구체적으로 하느님 사랑의 모습이 실현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인간의 한계성 때문에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2월 16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6) 교회, 하느님고 인간이 함께 머무는 곳


사회교리 가르침, 더불어 사는 삶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성당 순례를 빼놓고는 거의 볼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유럽은 하느님 창조물의 결과인 자연경관의 빼어남보다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과 인간의 인공적 구조물이 어우러진 곳이다.


사물에 깃든 그리스도교 신앙


유학 시절, 로마로 성지순례나 여행을 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로마 안내를 하다 보면 주로 찾아가는 곳이 성당이었다.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기에 별 불만이 없었지만 가끔 신자가 아닌 분들도 있었다. 그중 신자가 아닌 지인이 불평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신부님, 로마에는 성당 아니면 갈 곳이 없나요? 저는 신자도 아닌걸요." 나는 "로마에는 성당 빼고는 더는 가 볼 만한 곳이 없다"고 대답했다. 주요 관광 명소도 대부분 성당이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더라도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었다. 중세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미술 작품들을 창작했다.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 수많은 중세 미술가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관과 신앙적 체험 안에서 자신의 작품에 정신을 투영했고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


유학 시절, 어머니께서 아들 신부를 보러 오셔 성 베드로 대성당 순례를 하신 적이 있다. 머물던 수도원에서 식사하던 중 이탈리아인 노사제께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어머니께 물으셨다. 어머니는 뜻밖에도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성당 중앙의 비둘기 모습이 가장 마음에 와 닿네요"라고 답하셨다.


어머니는 성당의 규모나 미술 작품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셨고, 스테인드글라스의 비둘기 모습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신 것 같았다. 인간의 인공적인 미술품 속에 녹아든 작가의 노고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모습을 찾아내신 것이다. 평생을 평범하게 신앙으로 살아오신 어머니께서는 어떤 위대한 미술 평론가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소감을 말씀하셨다. 사제인 나 역시 처음 유학을 와서 대성당 안에 자리하고 있는 예술 작품들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마음을 뺏겼었는데, 어머니는 사제인 나보다 더 나은 신앙인이셨다. 성당 안에 자리한 미술 작품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신 것이다.


교회, 하느님께서 인간과 머무는 곳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부터 교회는 신자를 교육할 목적으로 성당 내에 수많은 벽화를 그려 장식했다. 예술적인 차원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교육할 목적이었다. 작품 대부분은 성경의 여러 이야기나 성인들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일종의 시청각 교육이었다.


문자를 아는 이들은 소수 지배계층이었고 대중은 그러지 못했다. 따라서 교회는 대중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심어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미술 작품과 음악을 사용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까지 미술, 음악, 건축 등 대부분의 중세 예술 작품은 이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화려하게 성전을 꾸미는 것이 단순히 외적인 부분만 아니라 개개인의 영적인 차원까지도 배려한 꼼꼼한 조치였다.


오늘날처럼 교회 밖에서도 즐길 거리가 많은 사회 안에서는 교회라는 공간적 장소가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곳이다. 한 교회 안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형제 자매들이 모여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며, 공동체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성적 차원의 필요성은 오늘날에도 교회가 세상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과 깊이 연관되어 나타난다.


인간은 모든 것을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으로 분리시킨 채 살아갈 수 없으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니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인간은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통해 영적인 것과 세상의 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얻는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과 함께 머무시는 구체적인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추상적이거나 영적인 차원을 넘어서 인간 세상과 역사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따라서 인간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협력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60항 참조).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하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은 세상 안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사회적인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회교리가 우리 인간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충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62항 참조).


[평화신문, 2014년 2월 23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7) 복음화와 사회교리


하느님 뜻 맞는 세상 만드는 복음화


우리 가정이 가톨릭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나는 믿는다. 아버지는 60년대 말, 가정의 더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베트남에 기술자로 가셨다. 이른바 '월남 바람'이 불자, 수많은 한국의 아버지들은 포탄이 날리는 전쟁터에서 목숨값을 대가로 일하셨다. 파병 군인으로, 기술자로 베트남 전쟁터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말 그대로 한국 경제 재건에 큰 도움이 됐다.


어머니는 한국에 세 아이와 함께 홀로 남겨졌다. 춘천에서 할아버지가 계신 인천으로 이사했지만, 주변 환경이 모두 다 낯설고 힘들었다. 어머니는 집 근처에 있던 성당을 발견하셨다. 결혼 전 친구 따라 우연히 갔던 명동성당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어머니는 성당에 나가기로 결심하셨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허락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만일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성당엘 다니지 않겠다"고 편지를 쓰셨다. 어머니의 편지에 아무런 신앙이 없던 아버지는 곰곰 생각하셨다. 주변 동료 중 멀리 떨어져 있던 가정이 파탄이 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던지라 아버지는 성당에 다니면 최소한 가정이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어머니의 세례를 허락했다.


어머니는 스스로 성당에 찾아가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하셨다. 1년여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어머니는 우리 세 남매를 데리고 집 근처 성당의 교리반에 개근을 하셨고, 끝내 가톨릭 신자가 되셨다. 그 덕분인지 아버지는 집 걱정 없이 타국 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고, 무사히 가정으로 돌아오셨다. 아버지 역시 몇 년 후에 교리를 받고 신자가 되셨다. 하느님을 알지 못했던 한 가정이 주변 환경과 상황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얻었다.


복잡해진 사회의 복음화


교회는 우리 인간에게 복음을 선포한다.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다. 이 기쁜 소식은 우리 인간에게 다양하게 나타난다. 결혼한 새 가정 안에 아이가 태어날 때,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할 때,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 취업했을 때 등을 기쁜 소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신앙인에게 기쁜 소식이란 무엇인가? 신앙인에게 기쁜 소식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심으로써 우리 인간을 구원해 주신 강생 구속의 사건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 사건을 통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됐고, 이 세상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새로운 존재로 변화됐다. 이를 일컬어 우리는 '복음화'(evangelization)라고 말한다.


교회 안에서 이 기쁜 소식은 어떻게 선포되는가? 사람들을 복음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방법과 형태를 통해 이뤄진다.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직접적인 복음화 과정이 있는가 하면,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복음화 과정이 있다. 또 인간 관계에서 생기는 여러 사회 문제들 속에서 사람들을 복음화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복잡한 관계구조를 지니고 있는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학문적이고 제도적인 방법들이 다양하게 시도됐다. 정치, 경제, 노동, 법률, 문화의 여러 분야 안에서 사회의 구조적인 악에 대한 해결책들이 제시됐지만, 아직도 세상은 이런 문제점을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사회교리를 통한 복음 선포


교회 역시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통해 참다운 해결점을 찾고자 노력한다. 사회교리를 통해 이 세상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교리로 복음을 선포하고 사회관계의 복잡한 구조 안에서 복음을 현존시키고자 한다. 이는 사회 안에서 복음 선포의 대상인 인간에게 다가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복음으로 사회 자체를 풍요롭고 충만하게 하는 문제다"(「간추린 사회교리」 62항).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하느님께서 교회에 믿고 맡기신 것을 이 세상 안에 선포하는 과정을 수행해 나간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신 자유와 구원의 메시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인간의 역사 안에 현존하게 만드는 곳이다.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교회는 진정으로 인간이 그리스도와 일치될 수 있도록 이끌며, 세상을 하느님 뜻에 맞는 세상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을 일컬어 사회교리를 통한 복음화 과정이라고 말한다.


교회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울려퍼지는 복음인 사회교리는 인간에게 참된 자유를 가져다주는 말씀이다. 결국 사회 분야를 복음화해 인간의 마음속에 자유의 힘을 불어넣어 주고,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가장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사회교리를 통한 복음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63항 참조).


한 가정이 복음화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실질적인 어려움을 신앙을 통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인 경우가 많다. 한 사회가 하느님 말씀으로 복음화되기 위해서도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 안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에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그러한 시련과 고통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주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인간 발전을 추구한다면 교회의 사회 문제에 대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복음화가 진정한 의미의 인간 발전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간추린 사회교리」 66항 참조).


[평화신문, 2014년 3월 2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8) 역사 안에서 본 사회교리


초대 공동체부터 시작된 사회적 가르침


사회교리의 출발은 과연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가르침을 준 것은 초기 교회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이미 '보편적 형제애'라는 그리스도교 가치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교부들은 사회 여러 영역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그리스도교적 인본주의의 기초를 닦았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세상 여러 문화를 복음화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회교리의 등장


중세에 들어 그리스도교 정신은 법률의 집행, 재판, 법제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유스티누스 법전(529년), 그라시아누스 칙령(1140년경), 그레고리오 9세 법령집(1338년)과 같은 법전에도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불어넣었다. 수공업, 상업과 같은 직업에서도 계약, 임금, 부채, 이자, 가격 등의 문제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미술, 건축, 문학, 연극에서는 종교적 주제가 주류를 이뤘고, 전쟁, 평화 등 국제 관계 내지는 국제 문제들이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고찰됐다.


중세 후기에는 재화의 생산과 함께 상업과 국제 교류에서 중대한 발전이 이뤄졌는데, 이러한 발전은 은행의 설립과 함께 자본의 이전, 강력한 도시화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도시화 현상은 대규모 인구 이동을 수반했다. 이처럼 변화된 사회 안에서 새로운 사회ㆍ경제적인 문제들이 발생했다.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준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노동 문제에 대한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했고, 직접 노동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런 회칙의 발표를 사회교리의 시작으로 보지 않는다. 회칙 발간 이전부터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늘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78항 참조).


물론 '사회교리'란 용어는 그 이전 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교황 비오 11세가 1931년에 발표한 회칙 「사십 주년」에서다. 그는 「새로운 사태」 발표 사십 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문헌에서 처음으로 '사회교리'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 이후 역대 교황들은 자신들의 문헌에 '교회의 사회교리', '그리스도교 사회교리', '가톨릭 사회교리' 등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사회교리'가 교회 안에서 공식적인 용어가 됐다.


오늘날 교회의 사회 문제에 대한 가르침은 교황 자신과 교황과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의 교도권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2004년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는 이러한 사회교리를 집대성해 「간추린 사회교리」를 발간했고, 이 책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랑 실천과 관련해 명확한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가르침이 됐다.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응답


역사적으로 19세기 유럽의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바로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생산체제의 변화다. 세상을 변화시킨 이 산업혁명은 새로운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새로운 시대에서 자본과 노동이 충돌한 것이다. 곧 분배정의 문제가 사회 구조 전체를 뒤흔들었다.


사회적 문제에 교회는 침묵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중대한 사회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했다. 그는 「새로운 사태」에서 사회악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오류를 열거하고,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를 치유책으로 삼기를 거부했다. 또한, 노동, 사유재산권, 사회 개혁의 기본 방법으로 계급투쟁이 아닌 협력의 원칙, 약한 이들의 권리 보호,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성, 부유한 이들의 의무, 사랑을 통한 정의의 완성 같은 의제들을 가톨릭적 가르침을 통해 명확히 설명했다.


회칙은 사회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의 활동에 영감을 불어넣는 문서였고, 그리스도인 활동의 기준이 됐다. 그리고 이 회칙은 모든 사회교리 문헌의 가장 기본적인 문헌이 됐다. 그러나 동시에 이 회칙은 당대의 자본주의 지지자들과 사회주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모두 배척을 받았다.


자본주의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 급진적인 사고를 지녔고, 사회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기득권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듯한 성격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회칙을 통해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관계에서 통합과 소통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일러주고 있다.


교회는 왜 사회 문제에 대한 가르침으로 사회교리를 가르치는가? 그 목적은 사회교리의 역사적인 발전 과정에 그대로 나타난다. 교회는 이론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사목적 관점에서 사회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04항 참조). 교회는 이론적인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보편적 형제애'를 실현하고, 진정한 의미의 인간 발전을 이루기 위한 사목적 필요성에서 사회교리를 발전시켰다. 사회교리는 시대적 요청으로 형성된 시의적절한 교리 체계다.


우리는 교회의 과거를 살펴보면서 시대가 요청하는 교회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우리가 사회교리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9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9) 순교자, 두 개의 천국을 살다간 사람들


이 세상에서 이미 천국을 맛본 순교자들


아프리카 선교사 모임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케냐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신부님에게 나이로비 쇼핑몰 테러사건에 대해 들었다. 테러범들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었는데 쇼핑몰 안에 있던 인질 중에 이슬람교도와 아닌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신앙을 물었다고 한다.


인질들에게 코란을 읽게 하고, 마호메트에 대해 질문해 제대로 답하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고 한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희생자 중 몇몇은 테러범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을 떳떳이 밝히고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I'm Christian!"(나는 그리스도교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순간이 오면 과연 가톨릭 신앙을 떳떳이 고백하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신분 초월한 신앙 선조의 형제애


이처럼 가톨릭 신앙을 고백한 이들이 우리 신앙 선조들이다. 그들은 200년 전 수차례의 모진 박해를 통해 아무런 죄 없이 천주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목숨을 내어놓아야 했다. 세상 불의와 싸우며 신앙을 고백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지난 2월 8일, 평화방송 라디오를 통해 교황청이 한국 가톨릭교회의 초기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을 결정했다는 바티칸 통신의 소식을 들었다. 124위 시복 결정은 사제인 나에게도 큰 기쁨인 동시에 한국 가톨릭교회의 큰 기쁨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신앙의 자유가 오늘날 당연시되고 있지만, 순교자들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신앙 자유를 위해 싸웠다.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면서까지 신앙을 지켰을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용기는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초기 순교자들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부터 그들의 삶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하느님을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된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재산도, 가족도, 권력도 하느님을 만나서 얻게 된 진정한 기쁨을 대체하지 못했다.


124위 중 황일광(시몬)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1757년 충청도 홍주에서 천민으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몹시 어렵게 보냈다. 그러나 1792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그의 모든 삶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황일광은 입교 후 상상도 못한 대접을 신자들에게 받았다. 신자들은 그가 백정임을 알았지만 똑같이 대했다. 심지어 양반 집 방안까지 초대받아 들어갔다. 신분제도가 철저했던 조선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황일광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똑같은 형제로 대해주는 교우들에게 감동해 살아생전 두 개의 천당에 대해서 말하곤 했다.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서울 정약종(아우구스티누스)의 집 근처에서 살다 체포됐다. 관헌들이 무자비한 형벌을 가하며 배교할 것을 강요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진 고문에 다리가 부러져 들것에 실려 고향인 홍주로 보내졌지만 명랑함을 잃지 않았다. 결국, 1802년 1월 30일 고향인 홍주에서 참수를 당했다. 평상시 농담처럼 말했던 것처럼 두 번째 천국으로 갔다. 신분제도를 뛰어넘는 가톨릭교회의 보편적 형제애는 황일광이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살게 했고, 죽어서도 천국을 살게 했다.


그리스도인, 욕심과 거짓을 버려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사도 10,34; 로마 2,11; 갈라 2,6; 에페 6,9 참조)는 성경 가르침은 시대를 넘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피조물이기에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이 지닌 존엄성은 인간이 다른 사람 앞에서 갖게 되는 존엄성의 기초가 된다. 또한 인간 존엄성은 인종, 국가, 성별, 출신, 문화,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평등과 우애의 궁극적인 바탕이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144항 참조).


순교자 황일광은 출신이나 계급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형제애를 통해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살았다. 이 세상 안에서 이미 천국을 맛보았던 것이다.


초기 신앙 선조들의 사상은 돈, 신분, 학벌, 직업 때문에 차별화돼 가는 오늘 세상에 다시 한 번 일침을 놓는다. 만일 우리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여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의지하여 살며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욕심과 거짓을 던져 버려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이 세상이 하느님 뜻에 맞는 세상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들과 다르게 살아간다고 말했지만, 실제는 세상 여러 가지 욕심에 마음이 팔려 점점 더 세속화돼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끄럽게 다가왔다. 나도 순교자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을 찾는 기쁨의 삶을 지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총칼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상황에서 과연 진리와 정의 편이 돼 내 전 존재를 걸 수 있을까?


[평화신문, 2014년 3월 23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0)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아니 어떻게 그런 사람이 신자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해 온 나는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성당에서 많이 만났다. 함께 자랐고, 함께 기도했으며, 함께 뛰놀았던 친구들이 다 성당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었고 서로의 형편은 달랐지만, 그래도 성당 친구들이 있어서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중심이며, 성장 과정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성당이었다.


이처럼 좋은 사람이 많은 곳이 본당이지만, 한편으론 그 안에서 큰 실망을 하거나 상처받는 경우도 흔하다. 가장 믿었던 교우로부터 상처받고 신앙을 잃을 정도로 상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자 간의 다툼은 금전적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호형호제 하거나 대부대자 하며 친하게 지내다가도 결국엔 금전 문제 때문에 다툼이 시작되곤 한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기에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지만, 마지막은 상처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6ㆍ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어렵게 타지 생활을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가톨릭 신앙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아무것에도 의지할 데 없던 시절, 아버지는 신앙생활 안에서 모든 것을 극복할 힘을 얻곤 하셨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 모습은 성당에 필요한 소소한 일들을 하시거나 미사 중에 전례 봉사를 하시는 모습이었고, 집에서는 전기ㆍ물ㆍ기름 절약하시는 검소한 분이셨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고 물자가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우리 가족 역시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크게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다. 금전 문제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사업이 잘 됐을 때 약국을 운영하는 대자에게 거금을 빌려 주었는데 그분 사업이 악화됐고 결국엔 단 한 푼도 되돌려 받지 못했다. 이후 아버지 사업이 점점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대자에게 돈을 빌려 준 사실로 잔소리를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은 '평상시 절약하고 아껴 모은 돈으로 아내나 자식에게는 그렇게 인색하더니 남 좋은 일을 했다'는 것, '그 돈이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의외로 덤덤하게 대답하셨다.


"여보, 오죽하면 그 친구가 그렇게 하겠소. 그 친구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오! 형편이 나아지면 반드시 갚을 것이요. 나는 그 친구를 믿소."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한순간에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부 사이에, 형제 사이에, 친구들 사이에 그리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교우들 사이에서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 더 많았기에 그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면 그 상처는 더 크게 남는다.


어찌 보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도 이러한 믿음과 배신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구약성경 안에 나타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일방적 짝사랑의 모습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고, 모든 것을 인간에게 믿고 맡기셨지만, 교만하고 죄 많은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꾸 하느님으로부터 떠나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회는 모든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생생한 모습을 본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간추린 사회교리」 105항 참조). 아무리 우리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들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그 피조물인 인간 안에는 하느님 모습이 살아 있다. 단지 인간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자신이 하느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세상 안에 살면서 인간들에게 잊혀 가는 하느님의 모습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 교회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친 사람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분명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됐기에 그 자체로 사랑받을 존재며, 존중받을 만한 존재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의 대자는 아버지 빈소에도 찾아오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 가족의 눈에 띄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워 말없이 왔다 갔을지 모르겠다. 끝까지 대자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그처럼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며 무조건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6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1) 그리스도인의 자유


하느님 자녀 됨으로써 얻는 신앙인의 자유


'자유!' 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정부 심장 한복판에 권총을 발사했던 안중근(토마스). 안 의사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영웅이었지만, 그 진정한 가치가 점점 잊혀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를 모르는 젊은이는 없다. 하지만 104년 전 같은 날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얼마 뒤인 3월 26일 안 의사가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란 유언을 남기고 차디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는 사실도 잊혀 가는 것 같다.


무슨 이유로 안중근 의사는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거사를 실행했을까? 아마도 진정한 자유가 주는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힘에 눌려 나라를 빼앗긴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났지만, 청년 안중근은 목숨을 바쳐서까지 나라의 독립과 국권 회복을 꿈꿨다.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믿었던 천주교 신앙 안에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 전쟁에 의한 정당방위 행위였음을 주장한 안중근은 시대의 선각자요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범이다.


지난해 하얼빈교구에서 본당 사목을 하는 제자 신부를 방문하러 간 적이 있었다. 하얼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였고, 그 역사적 현장에 꼭 가보고 싶었다. 하얼빈에 도착하자마자 제자 신부에게 역사적 저격 장소에 데려가 달라고 청했지만, 안 의사가 이토에게 총탄을 발사했던 하얼빈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기차 여행객만 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관광객은 입장할 수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안 의사 의거를 기념해 건립된 기념관을 방문했다. 작은 2층 건물로 된 기념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안 의사의 청동상과 전시실 한편에 보관된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고 쓰인 안 의사의 글귀였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란 말 속에서 안중근이란 독립군 대장의 의연한 기개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안 의사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국선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로운 삶과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생각하며,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나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참된 의미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나 역시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을까. 만일 나에게도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나라를 위해, 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기념관을 떠나면서 참된 자유의 의미와 그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순국선열과 신앙선조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는 '자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흔히 '자유'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어떠한 강박을 받고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하거나,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 신앙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의 의미는 조금 다르게 해석된다. 가톨릭 신앙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 안에서만 선을 지향할 수 있으며, 이 자유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탁월한 표징의 하나로서 인간에게 선사된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705항 참조).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해방과 구원을 선사하는 자유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함으로써 죄와 율법,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얻게 된 이 자유로 말미암아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을 지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를 뜻한다. 하느님을 섬기는 가운데,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가운데 누리게 되는 이 자유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유이며, 더 완성된 의미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선물하셨으며, 인간이 스스로 창조주를 찾아 따르며 자유로이 완전하고 행복한 완성에 이르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35항 참조).


안중근 토마스! 그분은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갈망했던 분으로 하느님 안에서 진정 자유로운 분이셨다. 그분이 얻고자 했던 독립과 자유의 정신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정신이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13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2) 인권과 사회교리


인권, 하느님이 주신 빼앗을 수 없는 권리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권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 등 인간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 권리를 뜻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 권리라고 말할 수 있는 이 권리는 모든 인간에게 꼭 보장돼야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이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인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 21세기 선진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한국사회 안에서도 인권이 유린당하고 무시당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존재한다.


얼마 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역시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이 무시된 대표적 사례다. 장애인, 노숙자, 신용불량자 등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계층의 사람들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지역으로 떠밀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한 이 사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도 부족한 인권 의식을 지적해준다.


사제인 나 역시 인권이 유린되는 경험을 했다. 현역으로 군에 복무했던 나는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군 생활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내가 군에 입대한 1980년대 말에는 군대 내에 여전히 구타와 욕설이 존재했다. 훈련소 신병 교육기간 중, 나는 같은 내무반을 사용했던 훈련병들 가운데 대표 훈련병과 같은 역할을 했다.


남들보다 큰 키에 어느 정도 체격이 있고 안경도 쓰지 않았기에 생활 교육을 담당했던 기간병은 훈련병 군기를 잡을 목적으로 나를 본보기로 삼았다. 훈련 기간에 발생했던 작은 지적 사항이나 교정 사항에 대해 그 기간병은 잘못한 훈련병을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 대표 훈련병인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점호시간만 되면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 모든 내무반원이 보는 앞에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다. 거의 매일 같이 두들겨 맞으면서 왜 맞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6주간의 적지 않은 훈련 기간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게 됐을 때, 모든 구타와 욕설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기대했지만, 막상 도착한 자대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남들보다 우월한 신체조건으로 의장대 요원으로 선발된 나는 8주간 의장 훈련을 받았다. 훈련 첫날, 태어나서 그 이전까지 맞았던 것보다 더 많이 맞았다. 뛰고, 구르고, 두들겨 맞았던 의장 훈련의 첫날은 지금도 잊고 싶은 기억 중 하나다. 의장 훈련이 끝나고 소대 배치를 받고나서도 구타와 욕설은 계속 이어졌다. 매일 밤 점호시간에 선임병들의 구타와 욕설은 계속됐다.


이러한 군 생활에서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기보다는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적 존재가 돼야 했다. 어찌 보면 당시 군대에는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지속해서 선임병으로부터 폭행을 당할 수밖에 없던 군 생활에서 스스로에게 결심했던 것은 내가 고참병이 됐을 때, 이 지긋지긋한 폭력의 사슬을 끊겠다는 각오였다. 후일 고참병이 돼 점호시간에 이유 없이 반복됐던 욕설과 구타를 금지했고, 편안한 점호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생각해 보면 군 생활 초기는 한 사람의 인격자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흔히 주권 국가에서 말하는 '인권'은 정부의 일방적 권력 남용과 억압에 대항해 인간이 요구할 수 있고 보호,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 권리를 지칭한다. 이는 사람이 사람답게 존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 개인의 자유와 평등, 독립성의 보장, 또 인류의 이익에 정부의 권한 행사가 부합할 책무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보편적 권리들은 생명권, 적절한 삶의 수준을 보장받을 권리, 고문을 비롯한 부당한 처우에 대한 보호권, 사상과 언론 및 표현의 자유권, 이동의 자유권, 자기 결정권, 교육권, 정치, 문화에 참여하고 향유할 권리, 그리고 종교 자유의 권리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소중한 인권은 그 근거를 어디에서 찾는가?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인권의 궁극적 원천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 위해서 보장되는 이러한 기본권은 인간의 의지나 국가, 혹은 공권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 그 자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권리들은 인간과 인간 존엄에 내재돼 있기에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소중한 권리다(「간추린 사회교리」 153항 참조).


가톨릭교회는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왜냐하면 교회가 인권을 수호하고 증진하는 것이 종교적 사명에 포함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59항 참조).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림받는 약자들을 대변해 인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구해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20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3) 사회교리의 기초원리로서 인간 존엄성


인간 존엄성, 어디에서 왔나?


교회는 다양한 교회 문헌들 안에서 인간 공동생활의 발전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강조해 왔다. 이러한 인간 존엄성의 원리는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로 인격 형성과 더 나은 사회 실현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가톨릭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는 네 가지로 '인간 존엄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이다. 이 가운데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는 '인간 존엄성의 원리'이며, 나머지 세 가지 원리는 이러한 '인간 존엄성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 말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늘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것을 사회교리의 기본 신조로 삼아왔다. 또한 이 원리들을 사회 문제를 판단하고 실천하는 근거로 삼았다. 따라서 교회가 새로 발생한 사회 문제에 대해 어떠한 가르침을 주었을 때, 이러한 사회적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회 문헌 안에 녹아 있는 사회교리의 기본원리들을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이 원리들을 올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가톨릭교회가 전하는 의도를 벗어나 그릇된 해석과 잘못된 평가를 가져올 것은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사회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기본 원리들을 충분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들은 서로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통일성, 연계성, 명료성의 틀 안에서 평가해야 한다. 만일 하나의 원리를 다른 원리와 연관이 없이 따로 인용하거나, 각각의 원리들을 개별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이 원리들의 일부만 사용하는 것처럼 잘못 사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162항 참조).


가톨릭교회는 이 원리 중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인 인간의 존엄성을 논증하기 위해 두 가지 접근 방법을 사용해 왔다. 첫째 방법은 인간의 본성과 본질적 구성 요소에 토대를 두고 존엄성을 주장하는 자연법적 접근 방법이며, 둘째 방법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앙 체계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끌어내는 신학적 접근 방법이다.


우선 자연법적인 접근 방법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사목헌장」에 가장 잘 드러난다. 「사목헌장」에 의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 창조됐고, 다른 피조물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인 지성, 자유, 그리고 양심을 소유하고 있기에 존엄하다. 이러한 특별한 능력으로 인간은 물질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고, 자연의 일부로만 남는 한계성을 극복한다.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이 능력들을 통해 고유한 인격체가 되며, 그 자체로 존엄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사목헌장」 12-17항 참조).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됐으며,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본성에 따라 그 존엄성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자연법적 논증 방법이다.


한편, 신학적 논증 방법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더욱 발전된 논증 방법이다. 요한 23세 교황과 이전 교황들은 자연법적 논증 방법을 따랐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논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방법이 바로 신학적 논증 방법이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신의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신학적 논증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인간이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하느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가르친다(「인간의 구원자」 7-12항 참조).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창조된 존재이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더욱 소중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논증 방법은 인간이 그 존엄성에 대해 말할 때 어떠한 근거로 증명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방법들이다. 사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면서 어떤 외부 요소들을 강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가톨릭교회는 신분이나 계급, 성별, 인종과 같은 인간의 외적 요소들이 인간 존엄성을 증명하는 데 어떠한 조건도 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종합해 보면,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안에서 인간은 이미 자연법적 근거 안에서 존엄하며, 하느님과의 관계성이라는 신학적 근거 안에서 그 존엄성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70억의 인구가 함께 사는 오늘날 아직도 인간 존엄성이 무시되거나 기본적 인권이 유린되는 곳이 있다. 복잡하고 다변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의 존엄성이 어디에서부터 유래하는 것인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신앙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렵고, 소외된 우리 이웃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다시 한 번 노력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27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4) 사회교리와 공동선


이웃을 위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인간은 과연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의 사회성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칭하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인간은 공동생활을 통해 더 나은 자기완성을 추구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가 속해 있는 집단 안에서 지켜야 할 공동의 규범을 만들어 내며, 그러한 규범들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이나 고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 공동체가 도덕적으로 건강한 공동체로 성장하려면 이런 공동의 목표가 올바른 것일 때만 가능할 것이다.


가톨릭교회 역시 하느님 백성으로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다. 그 중심에는 항상 하느님이 함께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자리하신다. 따라서 신앙 공동체인 가톨릭교회에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필요한 공동선이란 가치가 존재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만, 교회는 자신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다.


유학생활이 끝나고 10년째 신학교에서 사는 나는 본당을 하는 여느 신부들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 본당 주임 신부의 경우 자신의 권한으로 본당 운영에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경우가 종종 있지만, 신학교에서는 신학생 양성을 담당한 신부들과 함께 많은 부분을 공유해야만 한다. 그것이 생각이든, 물질이든, 양성에 관한 정책이든, 혼자서 결정할 수 있을 때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신학교란 고유한 특성도 있겠지만, 나 혼자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함께 사는 신부들, 신학생들, 그리고 직원들을 포함한 공동체 전체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고려해야 한다.


성인 사제 양성이라는 공동의 목표는 신학교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따라서 신학교 공동체는 사제 양성이란 목표 아래 개별 신학생들이 사제직을 향해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이러한 공동의 목표와 그에 대한 실천은 '공동선의 원리'가 신학교 생활의 기본적 구성 조건 중의 하나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가톨릭교회는 공동선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공동선의 의미를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자기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사목헌장」 26항)라 가르치고 있다. 공동선은 사회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추구해야 할 선을 단순히 종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공동선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해야만 달성되는 공동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이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를 통해 개인의 선이 완성되는 것처럼 사회 역시 자신의 행위를 통해 공동선을 이룰 때 완전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도덕적 선의 사회적, 공동체적인 차원이 바로 공동선인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64항 참조).


사회교리는 인간 사회로 하여금 언제나 모든 차원에서 인간에게 봉사하기를 바라고 또 이를 지향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사회의 중심에는 당연히 모든 인간과 전인적인 인간의 선을 으뜸 목표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그 중심에 공동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함께 존재하며, 다른 인간을 위해 존재하기에 자기 자신만으로는 완성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실천을 통해 기존 사회생활에서 발견되는 의미와 진리, 그리고 선을 끊임없이 추구해야만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165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시절, 2000년 대희년을 맞아 하신 말씀은 공동선의 정신을 잘 대변한다. "우리는 희망으로 사회적 결속을 다져야 합니다. 그것은 차가운 윤리적 태도나 이성적 태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도 아닙니다. 냉혹하고 공격적인 실증주의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긴급한 요청입니다. 그것은 정의를 바탕으로 재화와 이익을 나누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각자가 지향하는 이익을 일부 포기함으로써 공동체의 선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한 목자의 성찰 프란치스코 자비」, 생활성서, 196쪽).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남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삶이다. 지나친 개인주의가 인간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선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잊고 있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을 상기시키는 일이다. 나를 먼저 포기하는 삶, 그것이 바로 공동선의 원리를 세상 안에서 실현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싶다.


[평화신문, 2014년 5월 4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5) 사회교리와 보조성의 원리


부족한 것 채워주되 간섭하지 말아야


‘보조성의 원리’는 ‘공동선의 원리’와 함께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가 된다. 그렇다면 ‘보조성의 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조성’은 영어로 ‘Subsidiarity’로 표현되는데, 본래 의미는 ‘예비’ 또는 ‘보조’를 뜻하는 라틴어 ‘subsidium’에서 유래한다. 이 단어는 로마 시대의 군사 용어로서 전방에서 싸우는 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후방 예비 부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고대 국가 시절의 전쟁 개념에서 이러한 예비 부대는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전투력을 지닌 군대라 하더라도, 군수물자의 보급이나 예비 병력의 보충은 전투에 승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러한 ‘보조성’의 개념을 사회문제에 적용한 것이 바로 ‘보조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를 사회생활에 적용하면, 더 큰 사회단체가 개인 혹은 더 작은 사회단체를 위해 취하는 보충적이고 응급적 조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사회교리 측면에서 볼 때, 어떤 것에 대한 보조적인 개념보다는 보완적인 개념이 더욱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보조성의 원리’보다는 ‘보완성의 원리’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보조성’이란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협조와 조력의 피동적 의미보다는 보완과 완성이란 능동적 의미가 ‘보조성의 원리’에 더 포함돼 있어서다.


사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개인, 소집단, 대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예를 들어 ‘나’란 존재는 한 개인으로서 인격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고유한 존재인 동시에 인천이란 지역 사회 안에서 인천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동시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간다. ‘나’ 개인은 장소와 시간과 상관없이 같은 존재이지만, 시대와 환경과 상황 안에서 다른 상위 집단과 유기적 인과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나’ 개인은 소집단, 대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가치 혼란과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 이러한 가치혼란과 충돌을 피하고 더 완성된 ‘나’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원칙이 바로 이 ‘보조성의 원리’이다.


가톨릭교회는 여러 사회 회칙들을 통해 ‘보조성의 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보조성의 원리’에 따르면 모든 상위 질서의 사회는 하위 질서의 사회들에 대해 도움의 자세, 즉 ‘보조성의 원리’에 입각해 움직여야 한다.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움직일 때, 사회 중간 단체들은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다른 상위 단체들로부터 부당하게 양도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제 임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86항 참조).


그렇다면 가톨릭교회는 왜 ‘보조성의 원리’를 주장하는가? 그 이유는 첫째로, 더 큰 상위 집단의 지나친 개입을 반대하고 개인의 권리와 능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개인이나 작은 소집단 사회를 우선시하는 이유는 공동선의 촉진을 위해서이다. 만일 큰 집단이 개인이나 보다 작은 소집단 사회를 우선시하지 않는다면 국가주의(nationalism)나 전체주의(totalism) 같은 이념적 사고 안에서 개인이나 소집단의 권리가 침탈될 수 있으며, 공공의 이익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게 될 위험성이 크다. 둘째로, 더 큰 집단이 개인 및 작은 집단을 보조하고 도와줄 의무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큰 집단의 보조는 개인 또는 작은 집단의 역량이나 의지가 약하면 약할수록 그 보조의 폭과 정도가 커지기도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러한 보조가 제한적이고 일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 큰 상위의 집단이 취하는 보조, 보완의 역할에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레오 13세 교황의 첫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빈부 격차와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개입을 말하면서 처음으로 이 ‘보조성의 원리’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새로운 사태」 26항 참조). 그리고 비오 11세 교황은 「사십주년」에서 ‘보조성의 원리’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사십주년」 35항 참조). 그는 당시 시대 상황 안에서 공산주의의 팽창과 우익독재의 등장으로 인해 국가 권력이 지나치기 확대됐기에 정치적 독재에 반대해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보조성의 원리’를 강조했다. 이러한 ‘보조성의 원리’는 이후 후임 교황들을 통해 지속해서 재확인됐다(「어머니요 스승」 53, 117항; 「백주년」 14, 48항 참조).


정리하면, ‘보조성의 원리’는 사회의 고위 권력의 남용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개인과 중간 단체들이 자신의 의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고위 권력들이 도와주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보조성의 원리’는 특정 형태의 중앙집권화와 관료화와 복지지원을 반대하고 있다. 또한, 공적 기능에 대한 국가의 부당하고 과도한 개입을 반대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87항 참조).


‘보조성의 원리’의 실현! 어쩌면 오늘날과 같이 복잡 다양한 민주주의 국가 안에서 가장 절실하게 실현돼야 할 원리가 바로 이 원리일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5월 11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6)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 나타난 연대성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인간 존재가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속해 있는 사회 안에서 공동선 이용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사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공동의 참여가 개인 차원이나 작은 집단 사이에서만 아니라 ,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돼 상호 의존성이란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연대성’(Solidarity)이라고 부른다.


연대성 개념은 ‘전체’ 혹은 ‘전액’을 의미하는 라틴어 ‘solidium’에서 유래한다. 다시 말하면 연대성의 의미는 전체 혹은 공동의 이익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연대성은 인간들이 깊이 연계해 서로 원조를 주고받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연대성 개념은 흔히 형제애, 원조, 상호 이해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이 연대성의 개념을 통해 모든 인간이 고유한 인격체이며 동시에 사회적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이러한 사회성으로 인해 인간은 서로 도울 때 비로소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이런 도움을 통해 자기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연대성의 감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삶에서 이해 되지 않는 부분들이 꽤 많이 나타난다. 예수의 공생활은 그야말로 파격적 삶의 연속이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은 결코 주인이나 군왕으로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통과 시련의 연속, 그것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철저히 파괴되고 오해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분의 제자들과 친구들은 창녀, 세리, 어부, 혁명 당원, 절름발이, 맹인, 고아, 과부, 이방인들이었다.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인간적 성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뤘다.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삶은 그야말로 죄인들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인간 공동체 안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고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대의 삶을 사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가난, 절망, 고통으로 인해 좌절하고 포기하는 삶 속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삶을, 고통을 넘어서는 기쁨의 삶을 보여주셨다.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류와 하나가 되신 새 인간으로서 나자렛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항상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의 나약함을 취하시고, 그들과 함께 걸어가시며,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하나 되도록 해 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그 생활이 아무리 모호하고 모순투성이로 보인다더라도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 덕분에 그 사회를 생명과 희망의 장소로 재발견할 수 있게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196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러한 연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그 결속은 더 가진 사람들과 덜 가진 사람들 간에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균열을 봉합하고 가깝게 해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사회에서 꿈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결속은 천대받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또한 그것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린 모든 사람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결속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이민자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이민자들은 계속해서 우리 사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일생을 바친 노인들과 결속해야 합니다. 그분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 주는 현자이자 스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들과의 결속을 통해 그분들에게 합당한 지위를 찾아주어야 합니다”(「한 목자의 성찰 프란치스코 자비」, 생활성서, 195-196쪽).


예수님께서는 연대성과 사랑의 관계를 모든 사람에게 밝게 비추어 주심으로써 이 관계의 온전한 의미를 밝혀주셨다. 신앙에 비추어 볼 때, 연대성은 그 자체를 초월해, 전적인 무상성, 용서, 그리고 화해와 같은 그리스도교적인 차원을 띠고 있다. 이렇게 될 때, 이웃은 단지 자신의 권리를 지닌 평등한 존재인 인간으로만 비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고 성령의 항구적인 활동을 입고 있는 아버지 하느님의 살아 있는 모상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이웃이 비록 원수라 하더라도, 주님께서 그를 사랑하신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간은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96항 참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연대의 삶을 몸소 보여주셨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세상 안에 살며 이웃들과 함께 연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삶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5월 18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7) 사회교리의 출발점인 가정 공동체


어린 시절 나의 공동체 생활은 가정에서 시작됐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 4남매는 함께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배우며 성장했다. 요즘처럼 핵가족화된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 개인이 더 중요하게 생각될지 몰라도 당시 우리 가정의 중심에는 항상 나보다는 아버지 먼저, 형 먼저와 같은 보이지 않는 ‘우리’라는 공동체가 우선이었다.


▨ 공동체 정신을 배운 가정


우리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절약정신으로 서로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전기ㆍ물ㆍ물자 등 모든 것을 아끼고 나눈다는 것을 배운 곳이 가정이다. 집안의 큰일을 결정할 때도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물으시곤 하셨다. 명절 때는 사촌 형제들과 함께 정을 나눴고 함께 차례를 드리고 음식을 나눴다. 이런 생활로 개인보다는 가족이란 공동체를 더 우선하는 삶을 배울 수 있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내 삶의 중심은 항상 가정이었고, 그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관과 신앙심이 형성됐다.


신학생이 된 이후의 삶 역시,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갈등들을 해결해 나갔고, 동료 신학생의 슬픔과 고통에 함께 아파하며 기도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처음으로 동료 하나가 성소를 포기하고 신학원을 떠났을 때 우리는 가슴으로 아파하며 그의 결정을 안타까워했다. 함께 사는 신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 제목이 ‘Familia’(파밀리아)란 라틴어 제목이었는데, 이 단어가 뜻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었다. 신학원 공동체는 그 형태와 구성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Familia’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의 연장선이었다. 항상 신학원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생각했고, 남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 어떠한 것인지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사제 수품 후 떠난 유학 생활에서도 이러한 공동체성은 중요한 것으로 다가왔다. 나는 초기 유학 시절을 제외한 기간 대부분을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수사들과 살았다. 처음 손님으로 들어갈 때, 원장 신부는 나를 수도원 공동체에 받아들이는데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수도원에서 공동으로 하는 모든 기도 시간과 미사 시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사실 유학하는 사제들은 학업 때문에 기도 시간에 종종 빠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원장 신부님은 그러한 생활이 수도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둘째 조건은 공동 식사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원장 신부님의 조건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기숙사비로 얼마를 내야 할지 물어보았는데, 돌아온 답변은 그야말로 단순했다. “네가 결정해서 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된다.” 짧은 답변 속에서 원장 신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금전적인 것보다는 공동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수도원 안에서 모든 공동체 생활을 함께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공동체 기도와 미사에 참여했고 매주 토요일마다 이어지는 거룩한 독서 시간, 그리고 복음 묵상 나누기가 이탈리아 말로 진행됐다. 초기에는 잘 알아듣지 못해 힘들었지만, 언어적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됐다. 그리고 방학 중에는 이탈리아 수사들의 개인 가정을 방문해 인간적 관계를 쌓았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얼마 가지 않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완전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들의 가족이 된 것이다.


▨ 최초의 사회 가정공동체


가톨릭교회는 가정을 최초의 자연 사회로서 명확하게 표현한다. 이처럼 가정이 개인과 사회에 지니는 중요성과 중심성은 성경에 거듭 강조돼 나타나고 있다.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가정은 개인과 사회를 위한 인간화의 첫 자리이며, 생명과 사랑의 요람임을 가톨릭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주님의 사랑과 충실성, 그리고 이러한 사랑에 응답할 필요성을 배우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교회는 성경 메시지에 비추어서 가정을 고유한 근본 권리를 지닌 최초의 자연 사회로 여기며, 가정을 사회생활의 중심에 두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19-211항 참조).


사회교리의 출발점 역시 이 가정 공동체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가정 공동체가 파괴된다면 결국 사회 공동체 전반의 붕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처럼 점점 무너져 가는 가정을 다시 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사회 복음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무너져 가는 가정 공동체를 먼저 살려야만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5월 25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8) 가정의 기본 토대인 혼인


얼마 전 혼인 미사를 주례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부부의 앞길을 축복했다. 비록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한 남자와 여자로 만나 평생을 함께하기로 하는 두 젊은이의 모습에서 행복함과 설렘의 기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성인이 되고, 새로운 인생의 배우자를 만나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하느님 뜻에 맞도록 올바르게 키우는 일은 하느님의 축복이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혼인


신자가 아닌 외숙모에게는 사제가 돼 독신으로 사는 내 삶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것 같다. 사제가 되기로 하고 신학교에 들어간 것이 벌써 28년, 사제품을 받은 것도 18년째 접어들고 있는데 말이다. 하긴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사제 성소를 받아 독신으로 살아가는 사제들이나 수도 성소를 받아 결혼하지 않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자의 삶이 그리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가족모임에서도 외숙모는 만날 때마다 하시던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아깝다. 참 아까워!” 이제 배도 나오고 머리도 희끗희끗한 중년의 아저씨가 된 내 모습이 외숙모 눈에는 아직도 안타깝게 보였나 보다. 마치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장난기가 슬슬 발동하여 외숙모에게 농담했다. “그렇게 아까우면 돈 많고 예쁜 아가씨 하나 있으면 소개해 주시던지요.” 결국, 외숙모는 정색하며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니”라고 말씀하셨고 가족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하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착하고, 예쁘고, 돈 많고, 싹싹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도 한 가정을 꾸리며 살다 보면, 세상의 풍파를 만나 점점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고통 속에서 인내하며 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런 삶 속에서 다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혼생활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홀로 가톨릭 신자가 된 외숙부의 신앙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늦은 나이에 스스로 시골 성당에 찾아가 신자가 된 외숙부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당신이 세례를 받으니 누나인 어머니가 세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외숙부는 평상시 가톨릭 신자가 되겠다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기에 우리 가족 모두는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선물로 커다란 성모상을 준비하고 세례식에 참석하셨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외숙부는 본당 공동체와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하느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어진 조촐한 축하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는 외숙부에게 세례받은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돌아온 답변은 “글쎄? 오늘 기분이 정말 좋아! 결혼식 할 때 느낌과 똑같다고나 할까?”


외숙부는 세례성사의 기쁨을 혼인 때의 기대와 설렘과 같은 것으로 표현하셨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인 결혼의 순간을 세례성사의 기쁨에 비유했다는 것에서 외숙부의 순박하지만 든든한 신앙심을 엿볼 수 있었다.


혼인성사의 중요성


가톨릭교회는 혼인의 가치를 어떻게 이해할까? 교회는 혼인이 가정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기본임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는 남녀 간 결합인 혼인이 하느님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강조한다. “부부와 자녀와 사회의 행복을 지향하는 이 신성한 유대는 인간의 마음에 좌우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바로 여러 가지 선과 목적을 지닌 혼인의 제정자이시다. 그러므로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하신, 생명과 사랑의 내밀한 부부 공동체인 혼인 제도는 인습이나 법 규범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15항).


혼인은 두 배우자가 서로 주고받는 인격적 행위 안에서 태어나는 제도이며, 자신을 다른 한 사람인 배우자에게 온전히 내어 주겠다는 공개적 동의를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어떠한 권력이나 세력도 혼인에 대한 이러한 천부적 권리를 폐지하거나 혼인의 특성이나 목적 자체를 바꿀 수 없다.


두 배우자가 서로에게 충실하며, 서로 돕고, 자녀를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이 혼인의 유대는 하느님 앞에서 이뤄지며, 이 혼인 유대는 절대로 인간의 힘으로는 깨트릴 수 없는 불가해소성을 지닌 고유한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인격적 만남인 혼인을 강조하면서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를 반대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존엄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16-217항 참조).


올바른 인간 인격이 형성되려면 가정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가정의 출발은 건강한 혼인생활을 통해 시작된다.


점점 혼인성사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성당이 아니라 결혼식장을 찾는 신자들을 보면서 그만큼 우리 사회가 혼인성사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평화신문, 2014년 6월 1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9) 생명의 지성소인 가정


가정에 사랑이 넘쳐야 사회가 행복하다


중년 아저씨들의 변화된 모습 중 하나는 드라마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에 집착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 역시 이제 어엿한 중년 아저씨가 다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속 가정은 우리 모습인가


사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허다하다.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제공됐다고 말하지만, 실상 볼만한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방송의 공영성보다는 오락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질적인 것보다는 양적인 것에 치우쳐 있음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에서는 다양한 방송채널이 증설됐지만, 새로이 출발한 대부분의 종합편성 채널들은 선정성, 엽기성, 폭력성을 무기로 시청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 내용은 자극적이고 극적인 긴장감을 주기 위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흔히 보통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꿈꿔 볼 수도 없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화려한 저택과 고급 승용차, 그리고 최상류층의 직업을 가진 주인공들은 대부분 ‘회장’이나 ‘본부장’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시청자들은 이러한 드라마 속 상류층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다수 드라마의 주요 내용은 금전적인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과 상대방을 속이고 속는 암투가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항상 마음도 착하고 능력도 뛰어나지만 못된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주인공은 끝내 성공을 이루며, 마지막에 돈과 명예와 사랑을 모두 차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곤 한다.


한편 막장 드라마 속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내용이 있으니 드라마 속 주인공은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성공에 집착하는 악역 여주인공은 원치 않는 혼외 임신 사실을 숨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성공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기도 하며, 낙태를 감행하기도 한다.


모든 드라마가 이처럼 극단적 내용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시청자들은 그 내용이 더 자극적일수록, 그리고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사를 다루면 다룰수록 드라마에 더 빠져들곤 한다. 가정의 파괴가 가족 드라마라는 핑계로 방송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일반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에 보이는 무너져 가는 가정 공동체를 바라보며 자신들의 가정과 동일시하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만능주의 앞에 사라져 가는 것들


사실 오늘날 한국사회는 가정 공동체의 모습에서 큰 변화를 겪어 왔다. 6·25전쟁 전에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대가족 중심의 가정이었지만, 1970~80년대 산업화 이후 점차 핵가족 형태로 가정의 모습이 변화됐다. 심지어 21세기 한국 사회 안에서는 졸업과 취업, 그리고 안정된 직장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결혼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으며,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고 있다. 홀로 살아가는 1인 가정 형태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늦은 나이의 결혼은 결국 출산 문제로도 이어져 고령의 출산에 따른 산모와 아이의 건강 문제가 발생했고, 더군다나 신생아 출생률이 세계 최하위를 자랑(?)하는 불명예를 얻었다. 자녀를 낳지 않는 풍조가 결국 사회 전체의 구조를 흔드는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가정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다. 부부는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사랑을 통해 본성상 자녀를 낳아 기르며 그러한 자녀들의 모습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점차 혼인과 출산이라는 전통적이고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바로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부부는 인격적인 사랑을 통해 한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자녀를 출산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지켜내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부부 사랑은 본성상 생명을 받아들이도록 열려 있으며,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함과 충만함을 선포하도록 부름 받은 인간은 출산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그 존엄성을 탁월하게 드러낸다. 또한, 이러한 출산은 가정의 사회적 주체성을 표현하며, 사회의 토대가 되는 세대 간 사랑과 연대의 역동성을 활성화한다. 그리고 출산을 통해 비롯된 아기의 생명은 생명을 부여해 준 사람들인 부모를 위한 선물이 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30항 참조)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돈이나 명예, 성공보다는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막장 드라마 속에서 반복되는 생명의 가치를 헐뜯는 내용보다는 생명을 존중하고 가정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러한 나의 소박한 바람이 시청률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방송 관계자들에게 너무 무모한 요구일까?


[평화신문, 2014년 6월 8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0) 어린이의 존엄과 권리


가정에 사랑이 넘쳐야 사회가 행복하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못된 의붓어머니와 의붓자매들의 손에서 온갖 핍박을 받고 자란다. 새엄마는 친딸들만 편애했고, 신데렐라는 집안 허드렛일을 하면서 하녀와 같은 모진 삶을 살아간다. 동화의 결말은 신데렐라가 고생 끝에 왕자님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금 다른 결말을 나타내는 것 같다.


사랑의 빈 자리를 채운 폭력


2013년 말, 사회 면을 떠들썩하게 했던 칠곡과 울산의 아동 학대 살인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칠곡의 새엄마는 아이가 너무 시끄럽게 TV를 틀어 놓았다고 해서 홧김에 8살 난 여자아이를 20여 차례 발로 짓밟는 폭행을 가했고 아이는 이틀 뒤에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또한, 울산의 새엄마는 소풍 가고 싶다고 조르는 8살 아이를 55분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들은 아이가 너무 말을 잘 듣지 않아 훈육차원에서 때렸는데 그만 죽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법원은 이들에게 상해치상죄를 적용해 각각 징역 10년과 15년을 선고했다.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라야 할 어린이들이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당하는 사회가 오늘날 우리 가정의 일그러진 단면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깝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매를 맞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내 실수와 잘못에 대한 어머니의 훈육 방법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매를 들고서도 울고 계셨고 그런 모습을 보며 어린 나이였지만 같은 잘못은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버지의 훈육 방법은 조금 다른 말로써 훈계하는 방식이었다. 한 번은 형에게 대들고 치받고 싸운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퇴근하던 순간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미리 자수했다. 아버지는 나를 2시간 동안 무릎을 꿇게하고 왜 형제는 우애 있게 지내야 하는지, 동생은 형을 어떻게 존경하고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훈계하셨다. 기나긴 아버지의 훈육을 들으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는 가정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도 어느 정도의 규칙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모님의 훈육을 통해 배울 수 있었고, 이런 과정에서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부모님께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동 문제, 사회 전체의 책임


요즘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 중 가정 폭력의 심각성은 우리가 가정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모든 가정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점차 핵가족화하는 가정 속에서 부모들은 맞벌이하며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시간조차 부족하다. 이혼 가정이 늘며 조손 가정이 늘고 있고, 많은 아이가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고 성장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의 사회교리는 가정 내에서 자녀의 존엄을 존중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된 가정 공동체 안에서는 특별한 관심이 자녀에게 집중되고 있다. 또한 부모들은 자녀들의 존엄성을 깊이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에 큰 존중과 관심을 보여야 한다. 이러한 아동 존중과 권리 보호는 모든 자녀에게 해당되지만, 자녀가 어릴수록 그 요청은 더욱 절실하며, 병들어 고통을 받거나 장애를 지니고 있을수록 모든 면에 더욱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44항 참조)


가정 내 아동 폭력의 위험성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계 곳곳에서는 수많은 어린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린이 권리 보호를 위해 국제 공동체의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이를 충족시킬 만한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보건과 음식 부족, 학교 교육에서 제외되는 상황, 부적합한 거주지 등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인류 공동체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어린이 인신매매, 어린이 노동, 거리로 내몰리는 아이들 문제, 어린이 조혼, 분쟁 지역의 소년 병사문제, 성 착취나 소아 성애, 아동 성추행, 아동 포르노 문제 등 어린이의 존엄과 인권이 침해되는 예는 아직도 수없이 존재한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가정 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아직도 만연하고 있는 어린이 문제에 대해 단호한 조치로 효과적으로 이를 퇴치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45항 참조)


어린이는 우리 삶의 미래다.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우리 한국 사회가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해맑게 웃는 아이들로 가득한 교실 안 풍경을 기대하고, 부모와 함께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집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한국 사회를 꿈꾸는 것이 과연 비현실적인 망상일까?


[평화신문, 2014년 6월 22일]


[황창의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1) 인간 노동과 성경의 가르침


노동, 삶을 더욱 소중히 살게 돕는 도구


노동 하면 쉽게 떠오르는 말은 무엇일까? ‘힘들다’, ‘어렵다’, ‘하기 싫다’ 등일 것이다. 사실 전통적인 사고 안에서 육체적인 노동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족을 위해 육체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본다.


가족 부양을 위한 노동


교육방송에서 즐겨 보는 것 중 하나가 극한의 직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질문이 “어떻게 이리도 어려운 일을 계속할 수 있느냐”는 것이고, 출연자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아버지의 모습은 평생 가족을 위해서 어떤 힘든 일도 마다지 않는 모습으로 비친다. 육체적으로 힘든 극한의 일이지만 그 육체 노동을 이겨내는 힘은 아버지를 응원하는 사랑하는 가족이다.


어린 시절 내 아버지 역시 베트남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하셨다. 모두 힘들었던 60년대 말,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고향에 남겨두고 4년여 동안 전쟁이 한창이던 이국 땅에서 가족을 위해 일하셨다. 그리고 귀국 후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란 지병을 얻으셨다. 자신의 건강까지 해치면서 벌어온 외화는 아버지와 가족은 물론 우리나라 살림에도 큰 보탬이 됐다. 우리 아버지들은 70~80년대에 가족을 위해 독일의 광부로, 베트남의 기술자로, 중동의 건설 노동자로 나가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노동, 사랑 실천의 도구


성경에서는 노동에 대해 어떻게 가르칠까? 누군가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셨냐고 묻는다면, 예수님께서 양부였던 목수 요셉의 아들로 사셨기에 지상 생활의 대부분을 목수의 작업대에서 노동하면서 사셨던 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마태 13,55; 마르 6,3 참조) 예수님께서도 인간과 똑같이 육체적인 노동을 하셨으며, 이를 통해 노동의 중요성을 몸소 알려주셨다.(「간추린 사회교리」 259항 참조)


또한 공생활 이후 예수님의 설교에 나타난 다양한 비유는 노동하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시대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가장 보편적인 일상의 삶을 예로 드셨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탈렌트의 비유’ 등 수 많은 성경 속 비유는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 동안 경험하셨던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비유로 사용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활 동안 끊임없이 일하셨으며, 인간을 병과 고통, 죽음에서 해방하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노동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일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신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60항 참조)


예수님의 이러한 노동 이해는 구약성경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땅을 지배하고 온갖 생물을 다스리라는 임무를 맡기셨다.(창세 1,28 참조)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 말씀을 거역함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으로부터 멀어졌다.


과거의 일부 신학자들은 죄에 대한 형벌과 저주의 결과로 인간이 노동하게 됐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가톨릭 사회교리는 인간 노동에 대한 이러한 해석이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사회교리에 따르면, 인간 노동은 인간의 본래 상태에 속하는 것이고, 인간이 타락하기 전부터 있었으므로 형벌이나 저주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인간 노동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며 명예로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노동은 부의 원천이고 적어도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한 조건이기 때문에 명예로운 것이며 원칙적으로 빈곤을 막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56~257항 참조)


사회교리는 이러한 노동의 긍정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동시에 인간이 노동 자체를 숭배하려는 유혹에 빠져 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에게 노동은 필수적이지만, 생명의 기원과 인간의 최종 목적이 하느님께 달려 있기에 인간은 노동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노동이 안식일 계명과 깊이 연관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비록 노동의 숙명에 묶여 있지만, 안식일 규정은 더 충만한 자유와 영원한 안식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일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고, 모든 종류의 착취로부터 인간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안식일은 모든 사람을 하느님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난한 이들을 돌보기 위한 것으로 모든 사람을 인간 노동의 반사회적 타락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계명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58항 참조) 오늘날 사회에서 인간 노동이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노동의 소중함을 깨닫고 노동으로 얻은 소중한 재화로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평화신문, 2014년 6월 29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2)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노동은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한국 경제가 이전보다 더 발전했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매일 꼭두새벽부터 지옥철과 광역버스에 지친 몸을 싣는다. 사실 한 가정의 가장이 혼자서 벌어 온 가족을 부양한다는 말은 이미 먼 과거의 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맞벌이하지 않으면 가정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으며, 뼈 빠지게 둘이 벌어도 자신들의 힘으로는 집 한 채를 마련하기에도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노동은 삶을 위한 투쟁인가?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살아가는 나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는 멀리 동떨어져 살아가는 사람 중의 하나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된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의 한 부류로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육체적으로 너무나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 들곤 한다. 이따금 만나는 신자들은 이런 내 모습에 막연한 동경을 지니고 이렇게 농담하곤 한다. “신부님은 참 좋겠어요. 아이들 학자금 걱정이나, 공과금 걱정도 없고. 내 집 마련을 위해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니까요!” 어찌 보면 이런 사제들의 외형적 모습이 신자들에게도 더 편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만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 더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나 역시 사제직을 준비하면서 이른바 노동체험(?)이란 것을 한 적이 있었다. 신학생들은 사제품을 받기 전에 다양한 사목 체험을 하게 되는데 그런 교육의 목적으로 나는 노동체험을 할 수 있었다. 군 제대 후 10개월 동안 복학을 기다리면서 모라토리움(현장실습 기간)을 보냈는데, 당시 성소국장 신부님께서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로 간호보조원 일을 하도록 추천하셨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하는 일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나의 이런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한 주요 업무는 대학병원에서 이른바 ‘오더리’라고 하는 간호보조원 일이었다.


간호보조원의 주요 업무는 간호사들의 일을 도와 병원 내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수술실에 배정되었는데, 수술실을 청소하거나 피 묻은 의사들의 슬리퍼를 씻는 일, 의사들의 음료수를 냉장고에 채워 넣는 일, 수술 후 환자들을 병실로 옮기는 일, 정형외과 환자들의 수술 준비를 돕는 일 등 허드렛일이 대부분이었다. 나와 같은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간호보조원은 비정규직 노동자였는데, 열악한 임금과 근무 조건으로 인해 오랜 기간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비록 자신의 처지가 어렵고 힘들지만,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고된 노동의 삶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약 7개월 동안 수술 방에서 일했던 이 시절에 나는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우선 신학생 신분은 감추기로 했다. 간호과장 수녀님과 수술실 담당 수녀님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나를 단지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학생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생각했다. 이러한 신분 때문인지 사람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도 경험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내기 위해 어떻게 애쓰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당한 일에 정당한 대가를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노동을 하도록 허락하신다. 이러한 노동은 인간의 고유한 임무로서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명령하신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74항 참조) 따라서 노동의 가치는 하는 업무에 따라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서는 노동을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일이 비록 사회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서 어렵고 힘들게 일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수행하는 모든 노동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인간은 일하라는 부름을 하느님에게서 받았으며, 이 노동은 인간 그 자체를 최종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노동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74항 참조)


일의 종류나 신분에 따라 차별하고 천대하는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라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노동은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은 것으로서 동등한 존엄성을 갖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신이 한 일에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노동의 천부성에서 비롯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6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3) 인간 노동의 존엄성


일하는 게 고통스러우신가요?


얼마 전 어린 조카에게 장래 희망을 물은 적이 있다. 조카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중학생인 조카는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대기업 회사원이 평범하게 보였나 보다. 그런 조카에게 나는 이 세상에 평범한 회사원은 없다고 말해버렸다. 아이들은 대기업 회사원이 되기 전 어린 시절부터 무한 경쟁의 구도 속에 내몰린다. 6년간의 기초 교육과 6년간의 중·고등 교육, 그리고 4년간의 대학 과정을 거치면서 남들과 비교당한다. 남들을 이기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터득하며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게 현실이다. 어렵사리 취업문을 통과해도 또 다른 경쟁 구도 속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하며 불행을 느끼는 사회


명문 대학을 나와 국가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한번은 나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학창 시절부터 머리가 명석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모두가 원하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친구의 이런 모습은 모든 사람에게 부러움을 받을 만했지만, 그 친구는 삶이 너무 고달프다고 내게 푸념 아닌 푸념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나는 신앙생활을 권유했다. 더 기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는 일에 의미를 찾아야 하며, 그런 모든 일 중심에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분명 그 일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을 택해 살지만, 막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이름난 대기업의 부장으로 근무하는 어린 시절 친구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한다. 성공을 위해 달려온 그 친구는 아직 어린 자녀를 보면서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떤다. 이러한 불안감은 직장인으로 근무하는 한국 사회 사람들 대부분의 공통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일한다. 따라서 노동으로 초대된 우리 인간은 모두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으며, 그러한 노동을 통해 존중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 하는 일이 짐이나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그런 일은 자신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노동의 존엄성, 인간에게 비롯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인간 노동을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의 존엄성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가톨릭 사회교리는 이러한 인간 노동의 존엄성이 노동에 대한 의미에서부터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교리에서는 우선 인간 노동이 객관적인 의미와 주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객관적 의미의 노동은 창세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땅을 다스리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데 사용하는 모든 활동과 자원, 도구와 기술의 총체를 뜻한다. 한편, 주관적 의미의 노동은 노동 과정 일부로서 자신의 개인적 소명에 부합하는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역동적 존재인 개인의 활동을 뜻한다. 사실 객관적 의미의 노동은 인간 활동의 부수적인 측면을 이루고 있으며, 기술과 문화, 사회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그 표현을 달리하며 나타난다. 이에 반해 주관적 의미에서의 노동은 안정된 차원을 보여주는데, 노동은 사람들이 생산해 내는 것, 또는 그들이 하는 일의 유형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인간적 존엄에 좌우되기 때문에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70항 참조).


가톨릭교회는 노동의 이런 주관적 의미에 주목한다. 주관적 의미의 노동은 노동 그 자체에 특별한 존엄을 부여하며, 인간의 노동을 단순한 상품이나 비인격적인 생산 도구로 간주할 수 없게 만든다. 노동을 그 객관적 가치의 크고 적음과는 별도로 개인의 본질적이고 인격적인 행위로 이해한다.


가톨릭교회는 노동자를 단순한 생산 도구, 물질적 가치만을 지닌 단순한 노동력으로 격하시키려 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 노동을 인간에서 비롯하며, 인간을 지향하며, 인간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71~272항 참조).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과 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노동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러한 노동의 존엄성에 근거하는 것이다. 자신의 직업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우리 한국 사회였으면 좋겠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13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4) 노동계의 새로운 변화와 사회교리


이윤창출 제일주의 앞에 고개 숙인 노동권


오늘날 한국 사회는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1950년 6·25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던 우리나라는 반세기 만에 GDP 기준 세계 경제력 15위라는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 더는 동방의 잊힌 보잘것없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누는 신흥 발전 국가가 된 것이다. 조선, 철강, 자동차 산업의 육성은 1970~80년대 한국 사회의 비약적인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서 IT 산업의 육성과 발전, 문화예술 콘텐츠의 발전으로 현대 사회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새롭게 도약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한국 사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구호 아래 현대 사회는 생산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넘어가는 길목에서 농업 중심에서 대량 생산 체제의 공업 중심으로 세상이 변화됐고,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서비스업ㆍ기술 중심의 세상이 됐다. 이전 시대에 존재하지 않던 다양한 직업의 형성은 사회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전문 기술의 발전과 혁신은 땀 흘리는 육체 노동보다는 정신적 노동을 요구하고 있으며, 공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높은 건물과 공장의 굴뚝은 화이트칼라의 새로운 노동자가 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으로 점차 변화돼 가고 있다. 이처럼 새롭게 변화된 사회 안에서 가톨릭교회는 노동에 관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화와 노동 구조의 변화


오늘날을 지배하는 세계화 현상은 노동 구조에 변화를 일으킨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다. 이 현상은 생산 형태의 변화를 가져와 주로 상품이 소비되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후진 개발 국가들 안에 생산 공장이 세워지게 됐다. 더는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이나 시간적 제약이 무의미한 시대가 된 것이다. 세계화한 사회 안에서 새로운 노동 구조가 형성됐으며, 이러한 생산 구조 안에서 효율성과 수익 증대를 추구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10-311항 참조).


시장의 자유화, 경쟁의 심화,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는 전문 기업들의 증가를 가져온 경제의 세계화 안에서는 더욱 탄력적인 노동 시장과 생산 과정의 조직과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더 발전한 선진국들의 경제 체제에서, 노동은 제품 생산 중심의 산업형 경제 체제에서 서비스와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서비스형 경제 체제로 넘어가게 됐다. 쉽게 표현하면 전통적인 1, 2차 산업보다 서비스업으로 지칭되는 3차 산업이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 시장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12항 참조).


기술 혁신 덕분에 노동계에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지만 사라져 가는 직업도 발생했다. 대규모 공장이나 동종 노동 계층과 연계된 경제사회의 모델이 점차 사라져 가는 한편 3차 산업의 고용, 특히 개인 서비스 분야의 비전통적인 시간제 임시직의 업무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즉, 이전 사회보다 지극히 다양하고, 유동적이며, 가능성이 풍부한 여러 직업의 세계로 옮겨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쟁과 기술 혁신에 대한 요구와 복잡한 금융의 흐름은 노동자들과 그들의 권리 옹호와 조화를 이루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14항 참조).


노동, 하느님께 부여받은 인간 소명


노동계의 새로운 변화에 따라 교회의 사회교리는 다시 한 번 노동 안에서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이 개인과 가정, 사회와 전체 인류 가족의 성장을 위해서 현재의 변화를 창의적이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존재임을 믿는다.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인간의 노동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 즉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땅을 지배함으로써 창조 사업을 계속하라는 요청을 받은 존재이며, 그러한 창조 사업을 직접 하는 주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17항 참조). 인간이 행하는 노동의 모든 형태는 비록 시대적인 흐름에 변화할 수 있지만, 노동자들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노동권은 노동의 기본적인 조건으로서 영구히 변화할 수 없는 권리임을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사회교리는 사회가 변화하고 시장 형태가 변화한다 해도 노동자들을 결속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연대는 지속해서 이루어져야만 함을 강조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19항 참조). 다시 말하면, 다양한 외부 조건에 의해 노동 형태가 변화한다 하더라도, 참된 인간 발전을 위해 지속 가능한 연대와 참여를 통해 올바른 가치 세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다. 노동자들의 인간 존엄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21항 참조).


오늘날 한국 사회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노동 문제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이는 까닭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공정과 공평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20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5) 가난과 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가 최고?


행복 판단 기준으로 경제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신분제 철폐로 얻은 인간 평등권이 무색할 만큼 새로운 신분제도가 생겨났다. 바로 경제적 부로 구별되는 신분계급 등장이다. 안타깝게도 돈이 중심인 사회에서는 재산의 유무로 사람 가치를 평가한다. 그래서인지 성공과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세상이 됐다. 이익 추구를 위해 타인의 권리나 안전은 뒷전이고, 진리를 탐구해야 할 상아탑 대학은 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하느님의 자리, 돈의 자리


아버지는 6ㆍ25전쟁 중 남하한 평양 출신 실향민이셨다. 고향을 떠나 정착한 곳에서 아버지는 주류 기득권층이 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지연ㆍ혈연ㆍ학연이 소중하게 여겨지던 사회에서 실향민이 내세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어서일까? 아버지는 항상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근검절약하는 습관에 길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사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 지녀도 사제로 살아가는 데 충분하기에 비싼 물건을 사거나 좋은 음식을 먹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런 내 모습을 아는 신자 몇 분은 “참 소박하게 사는 것 같아요”라고 칭찬을 한다. 사제의 소박함이 덕으로 칭해지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 안에서 사제라는 신분 역시 부유층의 한 부류로 비친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래 전 TV 녹화를 위해 평화방송에 간 적이 있었다.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가용이 없었다. 그래서 본당 교우 분에게 서울 방송국까지 운전 봉사를 부탁했다. 방송국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녹화를 마치고 왔더니 주차장 관리하시는 분이 주차비를 요구하였다. 그래서 방송 녹화를 위해 방송국에 왔다는 사실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신부는 주차비 면제지만 신자분이 운전했기에 주차비를 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 같이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직원분은 몹시 당황해 하셨다. “자가용이 없는 신부님도 계시냐?”는 말과 함께 말이다.


지금 사는 신학교는 강화도에 위치한 까닭에 자가용을 마련했지만, 아직도 그때 그 주차장에서 일하셨던 직원분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그분의 판단 기준에는 웬만한 신부들은 다 승용차가 있고 그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신학생 시절이나, 유학생 시절에 비하면 지금 나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소유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소유한 것이 많을수록 내 안에서 하느님의 자리는 점점 더 적어지는 것 같다. 육체적으로 편해지기 시작하니 가난을 멀리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재화는 나눔 실천을 위한 수단


교회에서는 부와 가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구약성경에서는 재화와 부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여준다. 성경은 우선 재화와 부를 하느님의 축복으로 본다. 사치나 부유함이 아닌 풍요로움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복으로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적 재화와 경제적인 부는 그 자체로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재화와 부에 대한 부정적 면 역시 나타나는데 문제의 핵심은 그 부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구약의 여러 예언서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기와 고리대금업, 착취를 커다란 불의로 단죄한다(이사 58,3-11; 예레 7,4-7; 호세 4,1-2; 아모 2,6-7; 미카 2,1-2 참조). 성경은 부의 소유 자체가 아니라 그 부를 쌓기 위해 쓴 수단과 방법, 부를 올바른 곳에 사용하지 않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누군가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올바르지 않은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다면,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재화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소유한 사람 역시 마땅히 비난받을 만하다(「간추린 사회교리」323항 참조).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따르는 조건으로 자신이 소유한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라고 말씀하셨다(마태 19,21 참조).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그가 부자여서가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것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눌 줄 모르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은 하느님보다 자신이 소유한 것에 더 큰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기 쉬우며, 자기 손으로 한 일로부터 힘을 얻고 자신의 힘에만 신뢰를 두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신앙인은 재물에 모든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하느님을 신뢰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가난함의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가 소유보다는 나눔이라는 도덕적 가치에 더욱 힘을 쓰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27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6)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부


하느님께 받은 재화, 선행에 사용해야


공직자 청문회가 한창이다.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직무 수행 능력 검증과 도덕성 검증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후보자 중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과거 관례로 행해진 위장 전입, 탈세, 부동산 투기 등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했다는 점이다.


공직에 있으며 시가 십 억대 아파트 소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직장인 월급으로는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값을 마련하기 힘든 사회에서 편법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해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축적한 부는 합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죽으라고 일해도 가난의 구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서민은 부자들의 자산 가치를 보며 절망감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은 공직 후보자 첫째 덕목으로 도덕성을 꼽는지 모르겠다.


소수의 욕심으로 시름 하는 다수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가 된다’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 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라기보다 자본주의의 탈을 쓴 새로운 기득권층의 욕심에서 비롯한 불의와 부정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이 분명한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오늘날 팽배해 있는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강조한다.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교황은 이해하고 있다.


교황은 나이 든 노숙자가 얼어 죽으면 기사화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이러한 사회가 타인에 대한 배척과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라는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교황은 세상이 자본주의 체계에서 경쟁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놓이게 됐고 힘없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힘센 자에게 먹히고 있으며,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사회로부터 배척되고 소외되고 있음을 고발한다(「복음의 기쁨」 53항 참조).


시장 경제의 활성화와 자유화로 모든 이들이 필요한 부를 얻을 수 있다면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제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사람은 자유 시장 경제가 사회 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어떤 패턴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제도의 허점을 잘 아는 소수만이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를 독점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소수 집단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타인이나 사회 전체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 기업의 목적이 최대 이윤의 창출이라면 기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 창출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윤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일부 사람에게만 국한된다면 이윤 창출을 위해 일하는 모든 노동자는 그 이윤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부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른바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구조적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재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그렇다면 부의 편중은 오늘날에만 있는 문제일까? 사실 인류 역사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분리가 항상 있었다. 더군다나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의 것을 교묘한 방법으로 빼앗아 왔고, 자신들의 축재가 부정한 방법이 아닌 합당한 것인 양 제도와 법률을 교묘히 이용해 왔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인간의 모든 경제 활동과 물질적인 진보가 인간과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경제적 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에 응답하고 이러한 응답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함을 말씀하신다. 인간은 정해진 한도 내에서 땅을 이용하고 지키며 완전한 것이 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인간은 경제활동을 통해 창조주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증언하면서 자신의 충만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인 물질적 재화를 잘 관리하는 것은 그것을 부여받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타인을 향한 정의의 활동이 돼야 한다. 경제 역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간 삶의 전반적인 성장을 위한 도구로서 그 기능을 저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그 목적에 유용한 것이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326항 참조).


사회교리는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화라도 언제나 보편적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모든 형태의 부정 축재는, 창조주께서 모든 재화에 부여하신 보편적 목적에 공공연히 위배되므로 부도덕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완전한 인간 해방을 뜻한다. 이러한 구원은 물질적인 결핍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소유에서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328항 참조). 다시 말하면 재화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유익하게 쓰일 때 인간에게 봉사하는 기능을 올바르게 이행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329항 참조).


우리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모든 공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일꾼들이 됐으면 좋겠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3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7)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경제 제도


경제 활동, 보편적 인간 삶에 이바지해야


1998년 사제인사 발령 후 유학 준비를 하면서 입학 동기가 신부로 있는 본당에서 지낼 수 있었다. 친한 관계였지만 다른 누군가의 집에 얹혀산다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았고, 함께 식사할 때에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러던 중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나는 문명인이 아닌 원시인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그 신부님은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변화에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 신부님은 당시 현대인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로 운전면허증, 인터넷, 신용카드를 꼽았다. 그 필수 품목 가운데 내가 지니고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사제생활에는 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지만, 막상 원시인과 같은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부랴부랴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메일 계정 등을 만들었다. 운전면허증은 시간이 부족해 취득 못 하고 유학을 떠났다.


16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자동차도 있고, 내 방 연구실에는 컴퓨터가 가장 중심에 놓여 있으며, 은행카드도 여러 장 있다. 현대인으로서 꼭 지녀야 할 것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아직도 원시인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내가 변화하는 속도보다 세상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 한국 사회는 세상 어느 곳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속도를 맞춰 살려니 고달플 지경이다.


풍요 속의 빈곤


세상을 변화시키는 문명기기의 발달은 인간의 발전을 충족시키고자 발명된 것들이다. 인간 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하도록 발명된 수많은 제품과 사회 제도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생성, 발전, 변화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문명이 발전하고 세상이 빨라질수록 인간의 삶도 더 쉽고 편안해져야 할 텐데, 실제 삶을 보면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 생활의 편의성과 함께 발생하는 과다한 정보와 업무의 홍수 때문이다.


TV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사달라는 제품 광고가 나오고, 물품을 온라인으로 종일 판매하는 홈쇼핑, 인터넷 쇼핑에서는 소비자의 구매욕을 과도하게 자극한다. 자유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세상은 소비를 점점 더 강조하고 있고, 그러한 소비의 패턴에 몸을 맡긴 일반 사람들은 생필품 마련 보다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충동구매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각 개인은 자신의 소득보다 더 큰 지출을 하게 됐고 개인 부채 비율 역시 이전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


이처럼 소비를 권장하는 한국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고 내다 버리는 현상에서 우리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적 현실을 직면한다.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 땅의 자원은 한정적이고 그 자원을 이용하는 인간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원을 이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부족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물건들이 넘쳐 나고 있다면 그 사회는 분명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선을 위한 자원 활용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경제의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자원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짜임새 있게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 경제 체제 안에서 꼭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교리에서는 이러한 효율성을 자본이나 시장에 그대로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국가, 중재역할을 하는 사회 기구들과 같은 다양한 관련 단체들의 주체적인 책임과 능력에 두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46항 참조).


교회의 사회교리는 우선 시장을 경제 제도의 내부 작용을 통제하는 중요한 도구로 인정하는 한편,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적절한 한계선을 정하고 이를 보장하는 윤리적 목표에 굳게 뿌리박혀 있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349항 참조). 또한, 국가 역시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자유로운 경제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하지만, 동시에 ‘연대성의 원리’에 충실하여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그 자율성에 제한을 둘 것을 제안한다(351항 참조). 다시 말해 시장과 국가가 서로를 보완하여 조화롭게 활동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사회교리는 공공 활동과 비영리 민간 활동을 포함한 중간단체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민사회는 시장과 국가에 대한 협력과 함께 효과적인 보완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공동선 달성에 이바지하고 경제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게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56항 참조).


인간의 모든 경제적 활동이 보편적인 인간 삶과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개선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시장 경제에 대해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10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8) 경제 세계화 안에서 공동선 추구와 연대의 가치


지구촌 구성원 모두 부자 되는 비결은?


나에게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들이 있는데 한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성당을 다닌 친구들이다. 40년 지기가 된 친구들은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따금 만나 보면 사제인 나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더 풍요롭게 살 수 있겠나?’하는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주식투자 같은 금융거래며, 그 분야에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그저 따분하고 재미없는 대화 주제일 뿐이다. 괜히 친구들의 모습이 낯설게 여겨지고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 학생 시절에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사랑에 대해,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제는 대화 중심이 경제적인 것으로 변했다. 친구들은 더 쉽고 더 빠른 방법으로 재산을 불리고 싶어 하며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박을 꿈꾸며 살아간다. 자신의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면서 스마트 폰이나 개인용 태블릿 컴퓨터를 이용하여 실시간 주식 시장의 변동을 살펴보고 투자를 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좁아지는 세계, 심화하는 불평등


오늘날의 세계 경제와 금융 분야는 더욱더 복잡한 세계화 현상을 보여준다. 자유 시장 경제가 대세인 세계화 현상은 자본의 교환과 유통의 자유화를 이룩했고 자국 기업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주식에 대한 투자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통신 기술 발달로 주식 중계인들은 세계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대량 자본을 실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됐고, 이런 현실은 상업 무역과 금융 거래가 전 세계로 확대하는 과정을 더욱더 가속화한다.


이러한 경제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세계화 현상은 까다로운 사회 문제들을 드러낸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세계화 시대에서 경제 분야의 새로운 기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상업과 금융 관계의 새로운 차원과 관련된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과거에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불평등이 문제였지만, 오늘날에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경제적 부의 증대에 대한 상대적 빈곤이 증대되고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평등의 심화가 경제 세계화의 긍정적인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점이다. 따라서 가톨릭 사회교리는 오늘날처럼 새롭게 변화된 경제 분야에 있어서 공동선의 추구를 재차 강조한다. “공동선의 추구란, 사회적 경제적 진보에서 지금까지 소외됐거나 가장자리에 밀려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던 이들을 위하여 지구의 여러 지역 사이에 부를 재분배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연대를 통한 세계화, 소외 없는 세계화를 보장하는 것이 과제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63항).


지구촌, 공동선 추구와 연대


세계화가 지닌 가치가 통신 기술의 발전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재화와 자원의 이동을 통한 부의 창출이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창출된 부가 올바르게 분배되지 못한다면 그런 세계화는 분명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교리는 국제 경제 관계의 바탕을 이루어야 할 윤리 기준들, 곧 공동선 추구와 재화의 보편적 목적, 무역 관계의 균형, 무역과 국제 협력 정책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와 요구에 대한 관심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만일 이러한 가치들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빈곤한 민족은 날로 더욱 빈곤해지고 부유한 민족은 날로 더욱 부유해지게 되는 불평등의 세계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364항 참조).


따라서 사회교리는 이러한 경제적 세계화가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된 세상에서는 민족들의 전체적 조화 안에서 삶을 해석하는 열쇠가 되는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며, 특히 종교적 신앙과 관습을 포함하여 가난한 이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교적 확신은 인간 자유의 가장 분명한 표현이기 때문이다(366항 참조).


따라서 국제적인 경제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바로 연대를 통한 인류의 전체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자원의 고른 분배를 보장하고 세계의 모든 민족을 결합하고 그들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373항 참조).


오늘날의 사람들을 지구 마을에 사는 한가족이라고 말한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경제적으로 모두가 부자 되는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 이러한 세상이 가능하려면 지구 마을의 모든 구성원이 ‘공동선’와 ‘연대를 통한 인류 전체의 발전’이라는 가치 추구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31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9) 성경의 관점에서 본 정치 공동체


통치는 하느님 구원 계획 드러내는 행위


사제는 과연 정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회적 사건과 그 사건들 속에 함께 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은 성직자나 수도자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는 교회의 일에만 충실하고 사회 문제에는 더는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이 공통된 주장이다. 과연 교회는 교회의 일에만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교회와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생각한다면 그런 주장이 타당하고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정치, 사회에서 인간의 모든 활동


정치를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라는 용어에서 비롯됐다. 당시 폴리스는 도시국가 공동체를 의미했고, 폴리스에서 비롯한 폴리틱스(politics)는 폴리스 안에서 행해졌던 어떤 특정한 활동을 지칭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정치학의 발전과 더불어 형성된 정치 개념은 근대 정치 사상가들에 의해 국가의 법률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지만, 개인이 지니고 있는 정치 개념은 결코 일정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 개념은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기 위해 벌이는 여러 가지 활동을 뜻하거나 통치자나 위정자가 국민을 위해 시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적 정의에도 인간의 정치적인 삶에 대한 이해는 더 광범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스턴(David Easton)에 따르면, 한 사회 안에서 권위적인 정책의 수립이나 그 집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을 정치적인 삶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오늘날 정치 개념은 그 공동체에 속해 있는 모든 구성원이 사회 문제에 참여해 정책을 형성하고 집행하는 모든 활동을 정치활동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도 가르침에서 나타난 진정한 통치자


정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역시 성경에서부터 출발한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한 정치관을 볼 수 있다. 우선 역사의 시초에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들과 달리 주님이신 하느님의 통치만을 인정해서 왕을 직접 세우지 않았다. 판관기에 따르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판관들을 세움으로써 하느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강조했다. 그러나 마지막 판관이며 예언자인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첫 번째 왕을 세워줄 것을 요청한다(1사무 8,5. 10,18-19 참조).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제적인 왕권의 행사가 가져올 결과를 경고하고 있지만(1사무 8,11-18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왕을 세워줄 것을 고집한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원의를 들어 주신다.


한편 이러한 왕의 권위는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러 오시는 하느님의 선물로 체험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이스라엘이 이웃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왕권을 이해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선택하시고(신명 17,15; 1사무 9,16 참조), 주님께서 축성하시는(1사무 16,12-13 참조) 왕은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며(시편 2,7 참조), 그의 통치는 하느님의 통치와 구원계획을 드러내는 것이 돼야 하는 것이다(시편 72 참조). 따라서 왕은 약한 이들의 수호자이며 백성을 위한 정의의 보증인이 되어야 한다. 이후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 나타난 수많은 예언자의 비난은 바로 이러한 왕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왕들에게 집중되어 나타난다(1열왕 21장; 이사 10,1-4; 아모 2,6-8; 미카 3,1-4 참조).


역사적으로 왕의 통치가 실패할 때에도 주님께 충실하며 지혜롭게 다스리고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는 왕의 이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희망은 메시아적 신탁에 자주 반복돼 나타나며, 종말론적인 시기에 주님의 영을 받아 지혜가 충만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정의를 베풀 줄 아는 왕이 도래할 것을 기다리게 한다(이사 11,2-5; 예레 23,5-6 참조). 이스라엘 백성의 참된 목자인 이 왕은 만민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며(에제 9,9-10 참조), 정의로운 판단을 내리고 부정을 싫어하는 사람이며(잠언 16,12 참조), 가난한 이들을 공평하게 재판하는 사람이며(잠언 29,14 참조), 마음이 깨끗한 이들의 벗이 되는 사람이다(잠언 22,11 참조).


왕의 모습에 관한 구약성경의 이러한 예언은 나자렛 예수 안에서 성취됐으며 왕의 모습에 관한 예언의 결정적인 구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포됐다. 예수께서는 백성의 통치자들이 휘두르는 압제와 전제의 권력을 거부하신다. 물론 은인으로 행세하려는 그들을 직접 거부하고 계시지만(루카 22,25-26 참조) 그 시대의 권위들에 직접 반대하시지는 않으셨다. 카이사르에게 바칠 세금을 부당하게 보지 않으시면서도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쳐야 함을 단언하고 있다.


이러한 예수의 행동은 세속의 권력을 하느님의 권력과 같은 것으로 보려는 모든 시도의 암묵적인 단죄로 이해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49항 참조). 예수께서는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유혹에 맞서 싸우면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낮은 사람이 돼야 하며,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돼야 함을 가르치시고 계신다.


예수의 가르침은 진정한 통치자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진정한 통치자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오늘날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대해 교회가 예언자적인 소명을 다 해야 하는 근거 역시 이러한 예수의 모습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4년 9월 7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0) 정치 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인 인간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정치가 바로 선다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공동체에는 일정한 규칙과 규범이 존재하며 인간은 이러한 규범들을 지키며 살아간다. 인간이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 조율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행위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서 정치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치하는 인간


사실 함께 무슨 일을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둘이 모여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한데, 여러 명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추진해 나갈 때에는 더 더욱 어렵다. 더군다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인 경우에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의사 결정에 있어서 주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소외되는 사람은 없는지 충분히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그 사안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결정이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 개개인을 중심에 두고 결정해야 하기에 모든 결정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제인 나 역시 신학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독신생활을 하는 사제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신학교 공동체 안에서도 공동의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을 조율하며 신학교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공동체성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인 동시에 정치적인 존재로서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고자 여러 가지 다양한 계획을 추구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인 동시에 정치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우연히 설정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사회성은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며 그 공동체 안에서 인간은 정치적인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 공동체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양심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에 새겨 놓으신 질서를 인간에게 일깨우고 이를 따르도록 요구한다.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질서는 개인과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든 삶과 관련된 문제들, 그리고 개별 국가와 국가 상호 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가장 큰 효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질서를 차츰 발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인류의 고유한 실재인 정치 공동체는 다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목적, 곧 진리와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이끌려 공동선 달성을 위하여 확고히 협력하도록 요청받는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을 이루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84항 참조).


정치 공동체의 중심은 인간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 공동체의 가장 기초가 되는 토대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이다. 다시 말해 정치 생활의 토대와 목적은 인간이며 인간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모든 정치활동, 모든 정치제도, 모든 정책 결정이 그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인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 자체를 정치 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인간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뜻이 된다. 이는 곧 정치 공동체가 공동선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대 생활 안에서 공동선의 실현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함으로써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88항).


그렇다면 정치 공동체는 어떻게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을까? 정치 공동체는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참되게 실천하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들을 온전하게 이행할 수 있게 하는 인간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고자 노력함으로써 공동선을 추구한다. 따라서 정치 공동체는 공동선을 온전히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는 이중의 보완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 특히 정치 공동체는 특정한 개인이나 사회단체의 권리 보호에만 관심을 두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따라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정부는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개별 인간의 권리를 빼앗거나 그러한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하는 데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89항 참조).


복음에 나타난 사랑의 계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 생활의 가장 심오한 의미를 일깨워 준다. 참으로 인간다운 정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사랑 그리고 공동선을 위한 봉사 정신을 길러 주고 정치 공동체의 진정한 성격과 공권력의 목적, 그 바른 행사와 한계 등에 관한 기본 신념을 북돋워 주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믿는 이들이 내세워야 할 목표는 바로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관계를 맺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점은, 사회 생활을 구성하기 위한 전형이자 일상 생활의 한 양식인 공동체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 되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92항 참조).


오늘날 한국 사회 안에서 정치인들이 추진하는 모든 정치 활동, 정책 결정이 국민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 주는 사회교리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평화신문, 2014년 9월 21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1) 사회교리와 정치적 권위


섬기고 봉사하면 권위는 저절로 따른다


권위주의가 팽배하던 시절, 나는 중ㆍ고등학교에 다녔다. 군인 출신의 독재자가 대통령이 되었던 1980년대 국가 공권력은 무소불위의 힘을 보여줬다. 학교에도 군사주의 문화가 팽배했다. 외형적으로는 교복ㆍ두발 자율화 선포로 학원 자율화가 형성되는 듯 보였지만 실상 그렇지 않았다. 거리에는 늘 ‘독재타도’를 외치던 대학생들이 있었고 쾌쾌한 최루탄 가스 냄새로 눈물, 콧물 마를 날이 없었다. 나는 이런 시절에 학생선도부로 임명돼 학생들의 등하교 지도와 생활지도를 했다. 학생지도 선생님들의 묵인 아래 완장을 찬 채 학교폭력의 중심에 선 것이다. 복장ㆍ두발 불량자를 적발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지만 죄의식은 못 느꼈다. 그러한 나의 행동이 선생님들의 권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장난이 심했던 친구 하나가 내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그 친구는 학급 청소를 하지 않고 뺀질거리며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학급의 반장이자 선도부원의 권한으로 벌을 내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엎드려 뻗치기를 시켰는데 그는 장난을 치며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결국 그 친구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친구의 행동이 결국 폭력으로 끝맺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친구가 등교하지 않았다. 혹시 내 행동 때문에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 몹시 걱정스러웠고 불안했다. 친구의 빈자리를 보면서 내가 가한 폭력을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할지 종일 고민했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이튿날 등교했다. 걷어차였던 부분의 통증으로 병원을 갔고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너무나도 미안했다. 더군다나 친구는 나와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어떤 권력을 쥐고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매우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사건 이후, 진정한 권위는 남을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섬김을 통해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권위의 주인은 하느님


사회교리는 권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사실 가톨릭교회는 권위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생각해 왔으며 인간의 사회적인 본성을 바탕으로 하는 권위의 전형을 제시하고 보호하고자 노력해왔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권위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본성상 사회적 존재로 만드셨고, 또한 모든 사회는 타인을 통치하는 자가 공동선을 향해 그들을 효과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으므로, 문명화된 모든 공동체에는 통치 권위가 불가피하다. 이런 권위는 사회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그 권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지상의 평화」 46항).


또한 사회교리는 정치 권위가 개인과 집단의 자유로운 활동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자유를 통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며, 공동선을 달성하고자 개인과 사회 주체들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보호함으로써 질서 있고 올바른 공동체 생활을 보장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 권위를 행사하는 주체는 주권을 지닌 국민 전체이며, 국민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신의 대표를 선출하여 그 대표들에게 주권을 행사하도록 위임한다.


따라서 만일 통치 임무를 맡은 통치자들이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에는 국민들이 그 통치자들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오늘날의 모든 국가와 모든 형태의 정치 체제에서 그 효력을 발휘한다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94~395항 참조).


권위, 도덕적 질서를 바탕으로


그렇다면 그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권위가 지니는 모든 존엄성은 도덕 질서 안에서 행사됨으로써 비롯된다. 그리고 그 질서의 첫 번째 원리와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권위는 사회적 역사적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권력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권위는 도덕적 질서를 필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국민들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권위의 힘은 도덕적 질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독단적인 의지나 권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96항 참조).


따라서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들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 또한 부당한 법은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며, 도덕적으로 사악한 행위에 협력하도록 요청받을 때에도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이러한 거부는 도덕적인 의무인 동시에 인간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비록 국법이 인정한다더라도 하느님 법에 어긋나는 관습들에는 비공식적이더라도 협력하지 않아야 할 중대한 양심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협력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서, 또는 국법으로 상정되고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에 호소한다더라도 결코 정당해질 수 없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399항 참조).


진정한 권위의 시작은 섬김과 봉사에서 시작된다. 만일 이러한 권위가 섬김과 봉사라는 도덕적 질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권위는 불의한 권력으로 변화될 수 있다. 인간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정치권력은 결국 폭력과 독재를 낳을 뿐이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5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2)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행복한 나라 건설은 국민 모두의 의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헌법 제1조의 내용이다. 일제 강점기 쓰디쓴 고통의 36년이 지나고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정치제도에서 ‘민주주의(Democracy)’와 ‘공화정(Republic)’ 제도를 근간으로 시작했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그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 제도며,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Polis)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어의 데모스(Demos, 인민)와 크라씨아(Kratia, 권력 또는 지배)의 합성어인 데모크라씨아(democratia, 인민에 의한 지배)가 그 어원이다.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


사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각 폴리스에 한정된 자유 시민에게만 참정권을 인정했는데, 예를 들면 여성이나 노예는 자유 시민으로 인정되지 못했고 또 그리스인이라 하여도 다른 폴리스에서 온 이주민에게는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아테네를 비롯한 민주제 국가는 군주제, 과두제 국가에 패하여 붕괴했다. 시대를 거듭하여 발전된 이 민주주의 제도의 대표적인 체제는 순수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불리는 직접 민주주의를 뜻한다. 이는 다양한 법률에 대한 승인과 거부, 즉 정부 정책을 국민의 투표로 결정하는 정치체제로서 중간 매개자나 대표자 없이, 의사 결정을 하는 권력을 국민들이 직접 행사하기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한편 ‘공화정’이란 주권이 여러 사람의 합의로 행사되는 정치 체제다. ‘공화(共和)’란 중국 주(周)나라 시대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주나라 려()왕의 폭정이 심해지자 각 제후가 연합해 반란을 일으켰고, 려왕을 축출했다. 이들은 황제를 다시 세우지 않고 여러 제후가 힘을 합쳐 나라를 다스렸는데 여기에서 ‘공화’란 단어가 사용됐다.


실질적인 공화정의 기원은 서구에서 시작됐는데 대표적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귀족정치에 기원한다. 로마 공화정은 300명으로 구성된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고 실행됐다. 원로원 출신 중 두 명의 집정관을 대표로 선출했으며, 임기는 1년으로 원로원의 지지를 받아 선출됐다. 원로원은 오늘날의 국회와 비슷하지만 국회의원처럼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원로원의 지지를 받아 선출됐다. 또한 초기에는 귀족 출신만이 원로원이 될 수 있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평민 출신도 원로원이 되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란 말은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 체제에 관한 것이다. 국가 운영에 권한을 지닌 한두 사람의 결정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주권을 지닌 모든 국민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나라가 바로 민주주의 국가다. 이처럼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개개인은 대한민국의 주인이며, 그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국가를 통치하게 된다. 따라서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지역 자치단체장이든 간에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공직자들은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봉사하며, 국민 전체의 공동선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의 주인


가톨릭 교회는 여러 정치 체제 중 민주주의 제도를 가장 높은 정치 체제로 평가한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진정한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려면 법치주의 정신 아래서 실현되고 올바른 인간관의 기초 위에 성립되어야 함을 강조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06항 참조). 사실 참된 민주주의는 일련의 규범들을 형식적으로 준수한 결과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 존중, 정치 생활의 목적이며 통치 기준인 공동선에 대한 투신과 같이 민주주의 발전에 영감을 주는 가치들을 확신 있게 수용한 열매다. 따라서 이러한 윤리적 가치들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없다면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상실되고 그 안정성도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사회교리는 경고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07항 참조).


또한 교회 교도권은 국가의 권력 분립 원칙을 인정하고 그 정치 권위가 국민에 대한 책임에서부터 비롯됨을 강조한다. 선출된 공직자들은 각자의 특정 영역인 입법, 행정, 사법의 영역에서 국민 생활이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영위되도록 이바지해야 한다. 통치자들은 피통치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통치자들의 정치적 권위는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목적의 하나인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중재와 통합의 역할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08-409항 참조).


여기에서 정치 책임자들의 도덕적 차원이 강조되며 그들은 책임 있는 권위를 지니고 직분을 수행할 것을 요청받는다. 인내, 겸손, 온건, 애덕, 함께하려는 노력 등으로 행사되는 정치인들의 덕목은 공동선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정치적 권위와 직접 연결된다.


따라서 민주주의 제도를 가장 위협하는 결함 중 하나인 정치적 부패는 민주주의 국가의 올바른 통치를 위협하며,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공공기관의 역할에 대한 불신을 증대시키고,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을 야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공직자들이 정치적 부패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10-412항 참조).


대한민국 헌법 1조는 민주주의 제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조항이다.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일부 정치인들이나 일부 공직자들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인 우리 국민 모두에게 이러한 사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정치적 무관심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12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3) 지구 가족으로 함께 산다는 것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할 하느님 자녀


얼마 전 강의를 위해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을 찾았다. 아침 일찍 승용차를 몰고 나서는 길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늘 대중교통을 이용해 명동성당을 방문했었기에 모처럼 승용차를 이용해 명동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은 일이 되고 말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 강화 신학교에서 출발했지만 2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강의 전에 시간이 남아 새롭게 단장된 명동성당을 살펴보기로 했다. 잘 꾸며진 지하 주차장에서 나와 오랜 만에 성당 마당 입구까지 올라갔는데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전만 하더라도 성당 경내에서 관광객을 만나는 일이 자주 있지 않았었는데 이제 한국을 찾아온 수많은 중국 관광객 덕분에(?) 명동성당 역시 기도의 장소가 아니라 중요한 관광명소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인데도 명동성당 근처의 도로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들로 심각한 교통 체증을 보였다. 10분이면 빠져나올 거리를 거의 한 시간가량이나 걸려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이제 한국 사회도 변방의 작은 국가가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이 모여 사는 세계화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세계화 그늘에 숨은 인종차별


어린 시절 나에게 외국인에 대한 기억은 성당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 시절엔 성당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을 직접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다 외국 사람을 직접 보려고 하면 거의 성당에서만 가능했다. 그것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1년에 한 번 사목방문과 견진성사를 집전하러 오시는 나 굴리엘모 주교님을 뵙는 것이 거의 유일하였다.


나는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이셨던 미국인 신부님에게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견진성사 역시 전임 교구장이셨던 나 굴리엘모 주교님께 받았는데 그분 역시 메리놀회 출신의 미국인 주교님이셨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한 후에 사제품 역시 나 주교님에게 받았다. 첫 본당 보좌 신부 시절에도 미국인 선교사 신부님인 방 신부님을 본당 신부님으로 모시고 살았다. 오랜 기간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신 방 신부님은 나의 초창기 사제 생활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보좌 신부 기간을 보내면서 나는 그분을 통해 서양의 합리적 사고방식과 사목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이는 후에 로마로 유학을 떠나 외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오늘날과 같이 국제적으로 변한 한국 사회 안에서 우리는 쉽게 외국인들과 만날 수 있다.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사는 수많은 사람이 내 이웃으로 존재하고 있고,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로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변에 많이 있으며, 대학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들을 역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단일 민족, 단일 국가를 이야기하기에는 한국 사회가 너무나도 세계화(globalization)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세계화된 한국 사회 안에서 아직도 외국인에 대한 고정 관념과 편협한 사고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를 부끄럽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인종 차별적인 사고 때문에 발생하는 노동 현장의 외국인 근로자의 문제들을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인종적, 종교적 편협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모두 동등한 인간


세계 인구가 70억을 넘어선 오늘날의 세계는 그야말로 다양한 인종과 사상, 그리고 종교를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더는 인종이나 사상이나 종교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짓밟거나 가치를 폄훼하는 일을 국제 사회 안에서 할 수 없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특히 유색인종일수록,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일수록 더 심각한 것이 현실이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에서는 인간을 똑같은 인간으로 바라보면서 인류의 단일성에 대하여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평등함과 존엄성을 존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단일성은 어느 시대에도 존재했는데, 인간은 타고난 존엄성에서 모두 평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적 공동선, 곧 전 인류의 공동선이 충분히 실현되는 객관적 요청이 항상 존재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32항)


만일 누군가가 더 행복한 가족 구성원이 되고 싶다면 나뿐만 아니라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대해 ‘지구촌 가족’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지구촌 가족’의 한 구성원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원한다면 그 구성원인 나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 지닌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인류 전체의 행복인 공동선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인류 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19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4) 국제 공동체의 필요성과 가치


서로의 정체성 존중하며 분열 극복이 목표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5년, 세계는 평화와 안전의 유지, 국제우호 관계의 증진, 경제적·사회적·문화적·인도적 문제에 관한 국제협력을 목적으로 유엔(UN: United Nations)을 창설하였다. 이 유엔은 1920년에 설립됐다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붕괴한 국제연맹을 계승한 것으로 유엔(UN) 혹은 국제연합이라고도 지칭한다. 그렇다면 세계는 이러한 국제적인 연합 공동체의 창설이 왜 필요했을까?


다양한 인종과 사상, 종교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독립국가의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안에 몇 개국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은 기준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 있다. 독립국만을 계산하는가 아니면 비독립국가도 모두 포함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2014년 현재 약 240여 개국이 있다고 말한다.


독립 국가의 형성은 주로 인종이나 사상, 종교 때문에 형성되며, 얼마 전 세계적 관심이 쏠렸던 영국에서의 스코틀랜드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는 오늘날까지도 인종이나 종교 문제와 같은 여러 이유로 독립하고자 하는 나라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의 역사 안에 수많은 나라가 탄생하고 사라졌지만, 아직도 모든 인류를 아우르는 하나의 통일된 세계 공동체의 형성이 불가능한 것은 인간의 독립에 관한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국가 간의 충돌과 마찰은 인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세계 전쟁을 일으켰으며, 인종 때문에, 종교 때문에, 그리고 사상 때문에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희생자 수만을 보더라도 3500만 명에서 6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다인도 57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간 존엄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동선 증진


가톨릭교회는 각국의 이해와 갈등을 조절할 국제 공동체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러한 국제 공동체의 필요성은 인류 가족의 일치라는 대전제하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인류 공동체의 단일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그 근거를 성경의 창조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있다.


창세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의 주인인 동시에 우주의 주인이시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활동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온 세계와 인류 가족 전체에 두루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창세기는 인간이 독립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자유와 온갖 다양한 먹을거리와 노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보장해 주는 삶의 터전 안에서 필수적인 한 부분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구약 성경 전체를 걸쳐, 하느님께서는 인간 생활을 충만하게 해주는 조건들을 축복하시며,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것, 자신을 표현할 자유, 일의 성공, 인간관계의 풍요로움을 보장해 주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새 인류의 원형이며 토대이신 예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종적, 문화적 차이를 허물어 버렸고, 지상의 개인들과 민족들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인류 가족의 일치를 실현하도록 해주셨다(「간추린 사회교리」 428~432항 참조).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인류가 진정한 국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요소로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존중과 모든 이들에 대한 공동선을 보장해야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33항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유물론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이념에서 비롯되는 여러 장애 때문에 인류 가족의 일치는 오늘날까지도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족적 편견이나 인종 차별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은 인류 가족의 보편적 일치와 국가 간의 공존을 방해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민족 간의 관계나 정치 공동체 사이의 관계가 폭력이나 전쟁, 차별, 위협, 기만의 형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이성, 공평, 법, 협상의 원칙에 따라 정의롭게 조정되어야 함을 요구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33항 참조).


여기에 국제법의 필요성이 대두하는데 국제법은 국제 질서, 곧 정치 공동체 간의 공존을 보장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국제 공동체들은 개별적으로는 자국민의 공동선을 증진하면서도 집단적으로는 모든 민족의 공동선을 보장하려 노력하며, 이는 한 나라의 공동선이 인류 가족 전체의 공동선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국제 공동체는 각 국가의 독립성을 부인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권에 토대를 두고 있는 사법적인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각 민족의 다양하고 독특한 특성들을 상대화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민족의 개별 특성들을 잘 표현하도록 장려하며 서로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갖가지 형태의 분열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34항 참조).


예수께서는 세상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우리 인간을 구원하셨다. 인간에 대한 그분의 무한한 사랑이야말로 모든 분열과 갈등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국제 공동체는 이러한 분열과 갈등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함으로써 세상의 평화와 일치를 실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26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6) 사회교리와 빈곤 퇴치


나라님은 왜 가난을 구제하지 못했을까?


로마 유학 시절 만났던 세계 각국의 신부들,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로마로 유학을 온 많은 신부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었다. 한국 신부들은 대부분 소속 교구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아 학비, 기숙사비, 책값 등을 해결했는데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신부들은 이러한 물질적 지원을 자신의 교구로부터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방학이 되면 용돈(?)을 벌기 위해 유럽 전역으로 본당 사목을 떠나곤 했다. 학비나 기숙사비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그 밖의 여러 경비는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형편 때문인지 많은 아프리카 출신 신부들은 공부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엄청난 짐을 싸가곤 했다. 일상 생활용품부터 전자 제품까지 유학 기간에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커다란 화물용 가방에 모두 포장해서 돌아가는 그 신부들의 모습이 왠지 씁쓸하게 다가왔다. 그들에게 물질적 풍요는 유학 기간에 한정된 것이었고 자신들이 살아야 할 고향과는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도 유학 신부들은 그들의 나라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대다수 일반 사람들은 가난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도 힘든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되풀이되는 비극


우리가 TV를 통해 보면서 감탄하던 아프리카의 넓은 평원과 자연, 그리고 풍부한 자원과 탐스러운 과일들은 모두 주인이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나무 위에 올라가 바나나를 따 먹고 야자수로 목을 축일 수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과 다이아몬드를 보유하고 있어도, 아무리 많은 원유를 가지고 있어도 일반 사람들에게 그러한 부는 골고루 분배되지 못하고 있었다. 부의 편중은 결국 정치 권력과 연결되었고 가난한 대다수 백성은 전쟁과 가난을 피해 아프리카 땅을 떠나 목숨을 건 선상 난민 신세가 되곤 했다.


2013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착좌 뒤 첫 사목 방문지로 이탈리아 최남단의 람페두사 섬을 찾았다. 람페두사 섬은 전쟁과 가난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거치는 중간 기착지와 같은 곳이다. 교황은 람페두사를 방문해 ‘불법 이민자 수용소’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통해 이민자들에 대한 국제적 무관심을 비판하고 양심의 각성과 형제애를 촉구했다.


람페두사는 튀니지에서 불과 120㎞ 거리에 있어서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유엔 난민기구의 발표로는 2013년 상반기에만 8400여 명의 이민자가 이 섬으로 피신했고, 교황이 방문한 당일에도 166명의 불법 이민자가 배를 타고 이 섬으로 밀항했다. 그들은 구명조끼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비도 없이 식량과 물 부족에 시달리며 정원을 넘어서는 작은 배를 타고 밀항을 시도했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도 컸다. 2012년 9월에는 튀니지 이민자 136명이 타고 가던 배가 람페두사 섬 인근에서 전복돼 50여 명만이 구조되고 나머지는 희생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교황은 람페두사의 비극을 보며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제적인 연대를 호소했다.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


그들은 어째서 목숨을 걸면서까지 자신의 고향을 떠나 유럽을 향해 밀입국을 시도했을까? 그 중심에는 가난과 전쟁이라는 인류 공통의 시급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인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고통받는 대륙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나라가 독립을 이루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부 권력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독점이었고 다수의 일반 백성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일반 백성들에게 부의 재분배가 올바르게 이루어졌더라면, 람페두사의 비극과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교황은 세계화된 무관심을 지적하면서 교회와 사회가 이러한 빈곤 문제와 이민자 문제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사회교리는 인류의 전인적 발전을 위해 빈곤 퇴치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빈곤 퇴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가톨릭 교회가 사회교리 전체를 통해서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교리는 연대성의 원리를 끊임없이 언급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을 증진하기 위한 활동을 요구한다. 한편 사회교리는 빈곤 퇴치를 수행하는 연대성의 원리에는 언제나 보조성의 원리가 적절히 수반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가난한 나라들이 사회적 경제적 발전의 근본 바탕인 진취적 정신을 기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조성의 원리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49항 참조).


모든 사람이 공평하고 정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국제 공동체의 노력은 끊임없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간 발전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9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7) 환경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보시니 참 좋았던 자연, 지금도 그럴까?


내가 사는 이곳 신학교는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다. 2005년에 신학교 소임을 받고 들어왔으니, 이제 거의 10년째가 다 되어 간다. 처음 이곳 강화에 들어왔던 것은 1996년 부제 때였다. 20여 년의 세월은 강화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 변화의 정도는 일반 도시들과는 차이가 크다. 도시와 달리 이곳 강화는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곳 중 하나다. 물론 농촌이라는 지리적 조건에 사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자연환경은 그러한 어려움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처음 황무지 같은 진강산 밑 벌판에 신학교가 지어졌을 때는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 모습이 제법 꼴을 갖추었고 환경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십수 년 전에 학교 진입로에 심었던 어린아이 팔뚝 굵기의 느티나무가 자라나 이제는 몸통만하게 굵어졌고,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터널이 될 정도로 자라났다. 또한 철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며 행복함을 느끼곤 한다. 봄이면 진달래, 영산홍, 개나리, 철쭉의 향연을 볼 수 있고 요즘 같은 가을철엔 서서히 물들어가는 단풍으로 인해 눈 속에 가득히 들어오는 초록과 노랑, 빨강의 향연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치유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학교 진입로 옆으로 펼쳐진 논을 보면 계절의 변화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다. 겨울이 지나 봄철이 되면 황량한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시작하고 이내 황토색 벌판이 녹색으로 변해 간다. 그리고 들판이 초록빛으로 가득해질 무렵 신학생들은 여름 방학에 들어간다. 또 가을이 되어 황금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하면 신학생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오고 2학기가 시작된다. 벼가 여물어 추수하기 시작하면 다시 노란 들판이 황토색으로 변하게 되고, 이때가 되면 겨울 방학이다. 들녘의 모습이 바뀔 때마다 신학교의 시간이 흘러감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곡식이 자라듯, 신학생들 역시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곡식이 추수되듯이 신학생들도 사제가 되면 소중한 못자리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주변 식물들의 변화와 함께 학교에서 사는 많은 생물을 만나기도 한다. 이따금 저녁 끝기도 후에 홀로 학교 주변을 산책하고 있노라면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동네 주변에서 신학교에 놀러 온 고양이와 개들도 많지만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뒷산에서 내려온 고라니들이다. 철마다 이름 모를 철새들이 신학교 기숙사 옆에서 자신의 존재를 뽐내듯 지저귄다. 까마귀나 까치 같은 텃새들뿐만 아니라 ‘후투티’나, 새 울음소리가 마치 ‘홀딱 벗고’처럼 들린다고 하여 일명 ‘홀딱 벗고 새’라고 불리는 ‘검은등뻐꾸기’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곤 한다. 한마디로 동물농장이 따로 없는 곳이 바로 이곳 강화 신학교인 셈이다.


사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이처럼 시골에서 오랜 기간을 살아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이곳에서 사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어쩌다 일 때문에 나가는 도시의 환경은 오히려 나를 피곤하게 만들곤 한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발생하는 시끄러운 도시 소음과 공해 속에서 단 몇 분만을 보내도 쉽게 피곤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인간의 삶이 모두 다 하느님의 은총이고 섭리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사는 이곳 신학교의 환경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맡기신 자연


사회교리에서는 자연환경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사회교리는 자연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면서 그 근거를 성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세상을 적대적인 환경이나 해방되어야 할 악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이해했다. 또한 그들은 이 자연환경을 하느님께서 인간의 책임 있는 관리와 활동을 하도록 맡기신 장소이자 계획으로 인식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보시니 좋았다’(창세 1,4.10.12.18.21.25 참조)라고 말씀하셨고, 마지막으로 그 창조의 정점에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 참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고(창세 1,27 참조), 모든 피조물을 인간의 책임 아래 맡기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관계성 안에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책임 있는 존재로서 인간에게 자연을 돌볼 임무를 부여하셨다(「간추린 사회교리」 451항 참조).


무분별한 개발로 신음하는 자연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환경보호를 무시한 무분별한 개발 앞에서 우리는 인간에게 맡기신 세상과 자연을 올바르게 돌보아야 한다는, 하느님께 받은 소명을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16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8) 생태계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명예를 좇던 청년에서 가난한 이들의 성자로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이란 가사로 시작되는 ‘태양의 찬가’는 신학생 시절 즐겨 부르던 복음 성가 중의 하나였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알려진 이 노래 가사는 모든 자연 생태계를 의인화하여, 태양을 형님으로 달을 누님으로 의인화한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한 일대기를 읽고 나서 많은 감동을 받았던 나는 로마 유학 시절 자주 아시시를 방문하곤 했다. 공부로 심신이 지친 나에게 아시시는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이탈리아의 여러 중세 도시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지만, 내가 아시시를 특별히 좋아했던 이유가 있었다. 석양의 노을과 밀밭에 가득한 황금 물결, 그리고 기도와 노래….


동창 신부와 함께 방문한 아시시에서의 1박 2일의 피정은 지금도 나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아시시는 그야말로 성지 순례객들로 인해 낮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었는데, 오후 5시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성지를 떠나가고 한산한 도시로 변해 있었다. 한산해진 도시 안에서 동창 신부와 함께 도시 중심가를 산책하면서 로사리오 기도를 함께 바쳤다. 그리고 해 질 녘 도착했던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순간, 한 동양인 신부가 호텔 창문을 열고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태양의 찬가’를 함께 부르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피조물에 대해 감동의 기도를 올렸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다시 태어난 청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주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복하게 자랐고 당시 모든 젊은이가 꿈꾸던 기사가 되고 싶었다. 동네 친구와 몰려다니며 어린 시절을 방탕하게 보냈던 그는 이웃 도시 페루자와의 전쟁에 기사로 참전하게 되지만 그가 꿈꾸었던 기사의 생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전쟁 포로가 돼 차디찬 페루자의 지하 감옥에서 1년여간의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끔찍한 감옥 생활로 겪은 것은 자신이 기사로서 전쟁에서 승리하여 사람들의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참화와 고통, 인간의 잔인성과 폭력성이었다.


그는 전쟁을 통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밑바닥 생활을 모두 경험했다. 얼마 후 부유했던 그의 부모 덕분에 보석금으로 풀려났지만 프란치스코는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전쟁 후 집으로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병을 앓게 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새로운 삶으로 변화하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지금도 신학생 때 보았던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프란치스코가 전쟁 후 집으로 돌아와 병중에서 깨어나던 장면이다. 창문 틈을 통해 들려오던 새소리에 프란치스코는 잠에서 깬다. 그리고 그 새소리를 따라 잠옷 차림으로 지붕 옥상을 맨발로 걸어나간다. 무엇이 그를 창밖으로 인도하였을까?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받고,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젊은 청년은 이제 과거의 삶에서 완전히 죽고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전쟁의 고통 속에서 쓰러져 가는 인간의 허상을 보았고, 그 허상 위에 진정한 인간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가난한 사람들의 성자로 거듭나게 된다. 한동안 헛된 꿈을 좇아갔던 평범한 한 청년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것이다.


그는 모든걸 버리고 주님을 따라간다. 더 이상 아버지의 재산도, 인간적인 성공도 그의 삶에 중심이 되질 않는다. 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변화됐고, 가장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다시 태어나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전한 가치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현 교황님께서 첫 번째로 사용하신 이 거룩한 성인의 이름 속에서 우리는 교황님의 하느님 백성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지난 8월, 4박 5일의 여정 동안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교황님의 행보는 그야말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의 여정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이 사회 안에서 고통받고 소외되는 우리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직접 보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밀양과 강정의 주민들에게,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교황님은 허황된 희망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정한 희망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우리는 과연 지금 무엇을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헛된 꿈과 망상을 찾아 살아가는 수많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우리는 바로 세상의 그들에게 참된 희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삶이 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23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9) 인간과 세계, 그리고 과학 기술 발전


생명 존중 빠진 기술 발전은 위험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삶에서 과학적인 삶은 인간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이동 수단의 발달과 통신수단의 발달을 가져왔으며 온 인류를 일일생활권으로 묶어 지구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에 충분하게 했다. 지난해 연구 안식년을 맞아, 세상의 곳곳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가까이는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으로부터 가장 멀리는 남미의 브라질과 페루를 다녀왔다.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것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었다. 비록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대체로 비슷했다. 다시 말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인류의 문명을 꽃피우는 인간의 삶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본질적인 모습에서 거의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과거에는 꿈꿔 보지도 못했던 비행기 여행은 한국과 반대 끝에 자리하고 있는 브라질이란 나라도 24시간이면 도착 가능하게 만들었다. 통신 수단의 발전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 통신선만 제대로 설치되어있는 곳이라면 얼마든지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다시 말해 인간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삶의 방식이나 형태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이제 다시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가 됐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환경 속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 사회의 발전 중심에는 바로 과학과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남미 여행 중에 만났던 마추픽추 유적은 지금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 일부분에 고대 잉카인들은 고유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녹여내고 있었다. 페루의 마추픽추에서 본 고대 잉카족의 ‘잃어버린 도시’는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해발 2400m에 자리한 이 고대 문명의 유적은 오늘날과 같이 과학 기술이 발전한 세계에서도 불가사의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1450년쯤 스페인 침공을 피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이 도시는 잉카의 계획 도시로 가장 큰 돌이 8.53m에 그 무게가 361t이나 나간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이 발달하고 건축 기술이 향상된 세상에서도 이처럼 어마어마한 무게의 돌로 건물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수십 t에 이르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어 수십㎞ 떨어진 가파른 산 위로 옮겨 신전과 집을 지었다고 하니 고대 잉카인들의 놀라운 건축 기술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맑은 하늘과 뭉게구름 속에 자리한 마추픽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인류의 기술과 자연의 조화가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쩌면 오늘날보다 더 자연과 가깝게 사는 사람들이었으며 친환경적인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 발전도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인간과 피조물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간추린 사회교리」는 「사목헌장」을 인용하면서 인간이 이용하는 피조물의 세계가 인류의 과학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지적한다. “개인적 집단적 인간 활동, 곧 인간이 여러 세기를 거쳐 자신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려는 저 거대한 노력 그 자체가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믿는 이들에게는 분명한 일이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땅과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세상을 정의와 성덕으로 다스리며,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알고 자기 자신과 모든 사물을 하느님께 다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은 만물을 다스려 하느님의 이름이 온 땅에 빛나게 하여야 한다”(「사목헌장」 34항).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인류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결과로 바라보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자신의 재능과 힘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을 하느님의 권능에 배치된다거나 이성적 피조물을 창조주의 경쟁자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인류의 창작품들을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징표이자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계획의 결실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교리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가톨릭교회가 인류의 과학이나 기술 발전에 반대하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교리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은 우리 인류에게 놀라운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고, 우리 모두 감사히 그 혜택을 입고 있으므로 교회는 그것들을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놀라운 창조적 능력의 산물로 여기고 있다고 본다(「간추린 사회교리」 457항 참조).


그러나 모든 과학적 기술의 적용에는 핵심이 되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존중과 함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다. 만일 이러한 존중이 동반되지 않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있다면 그러한 발전은 오히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죽음으로 이끌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과 함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존중이 반드시 선행되는 발전이어야 한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30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0) 환경 위기에 대한 인류의 공동책임


환경 개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인천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던 곳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도심이라는 생각보다는 농촌에 가까운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집에서 나와 학교 입구에 다다르면 학교 담장을 주변으로 작은 개울물이 흘렀고 그곳에서 쉽게 개구리를 만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뒷산에 올라가 친구들과 뛰어놀기도 했다. 아파트가 아직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친구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보고 싶어 학교 근처에 새로 건축된 아파트에 놀러 가기도 했다. 경비 아저씨 몰래 아파트에 들어가 처음 타 보았던 엘리베이터는 어린 나에게는 참으로 놀랍고 신비스러운 경험 중의 하나였다.


거의 40여 년 만에 찾아본 모교의 모습은 과거와는 달리 완전히 변했다. 학교 옆을 흐르던 작은 개울은 아스팔트 도로로 포장돼 자동차 길로 변했고, 학교 뒷산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대단위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방과 후 어린 우리에게 축구장도 되어 주고 야구장도 되어주었던 공터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대신 건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너무나도 큰 세계였던 학교는 이제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는 아주 작은 공간으로 초라하게 변화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반 친구들과 온종일 함께 뛰어놀던 커다란 운동장도 너무나 작게 보였다. 그나마도 운동장 절반은 교직원들을 위한 주차 공간으로 바꿨다. 경제가 성장하고 나라가 발전됐다고 하지만 수십 년 만에 완전히 바뀌어 버린 옛 학교는 인간이 추구하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생각과 환경 개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무분별한 개발의 책임은 누가 지나?


제한된 공간에서 사는 인간은 더 나은 생활 공간을 마련한다는 이유 아래 새로운 용지를 마련한다. 구도심의 토지 비용이 너무 비싸기에 갯벌을 메우고 신도시를 건설하기도 한다. 새로운 부지에 공장을 세우고, 새 아파트를 건설하고, 도로를 포장하면서 개발자들은 소비자를 유혹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해 왔다. 재물에 대한 인간의 이러한 무한한 욕심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원을 무분별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그릇된 공리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은 자신에게 맡겨진 자연 환경을 보존하거나 자연과 더불어 창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무분별하게 개발하면서 환경 오염이라는 새로운 문제점을 초래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단장된 신도시를 바라보면서 미관상으로는 깨끗해졌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서 막상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전에 겪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질병으로 신음한다. 이런 질병들은 이러한 인공적인 개발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때 정부에서 강을 살리고 홍수를 막겠다며 인공적으로 토목 공사를 강행했지만, 강물을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지나친 화석 연료의 사용은 도심 스모그 현상과 지구 온난화 현상을 초래했으며,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홍보되던 원자력 에너지는 결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부분 국민이 알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의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환경보호, 인류 모두의 의무


가톨릭 교회에서는 환경 위기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메시지와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교도권의 가르침 안에서 환경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 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고찰을 무시하고 사물에 대한 조건 없는 지배를 주장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창조 자원에 대한 정밀한 조사 없는 무분별한 개발 행위는 이미 인간의 역사 안에서 역사적 문화적 과정의 부정적인 결과로 경험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61항 참조).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건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보존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 만일 인류가 새로운 과학 기술의 발전을 강력한 윤리적 차원과 결합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과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 소중한 환경을 인류의 공동 서식지이자 자원으로 증진시킬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65항 참조). 따라서 환경 보호는 온 인류의 과제로서 인류 공동의 보편적인 의무가 된다. 더군다나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윤리적인 차원을 무시한 무분별한 개발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2월 7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1) 평화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총성만 멈추면 평화로운 세상인가?


1996년 부제 시절 난생처음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비행기를 처음으로 타는 것도 설레었지만 첫 해외여행을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활동하신 이스라엘로 간다는 기쁨에 나나 동료 부제들은 많은 기대를 했다. 동료 부제들과 9일기도도 바치고, 성지에 대해 미리 공부하며 순례를 준비했었는데 막상 도착한 성지에서의 여정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빡빡한 일정 탓에 한곳에 머물러 오래 기도도 못 하고 관광객처럼 기념 사진을 찍고 이동하기 바빴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갈 때는 보안 검색과 여권 심사가 엄격했다. 여행 가방을 일일이 열어 검색할 때에는 성지 순례객이 아닌 짜증 난 관광객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완전히 무장한 이스라엘 국경수비대의 모습에 약간은 주눅이 들어 꼭 이래야만 하는지 애꿎은 가이드에게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들어선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그러나 그곳 역시 이스라엘 군인들이 관광객들과 일반 주민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지금은 이스라엘 군인이지만 그 이전 시대에는 아랍 병사였을 것이고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병사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들이 거룩한 도성으로 신성하게 생각하는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으로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했지만 아직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한 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했다.


진정한 평화의 의미


평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하루라도 멈춘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현실은 평화와 요원해 보인다. 인류는 참혹한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경험했고 수 없는 국지전을 통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 여러 나라의 내전은 인류의 삶에서 평화 정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인류의 공통 관심사 중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세상의 참된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볼 때,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를 의미하거나 전쟁이나 분쟁 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사전적 해석은 평화가 내포하는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한 것 같다. 국가 간의 전쟁이나 개인 간의 분쟁이 해소됐다고 완전히 평화스러운 상태가 됐다고 말할 수 없기에 평화가 내포하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전쟁이 멈춘 상태만을 평화로 볼 것이 아니라 이러한 평화가 지니고 있는 생명력과 충만함을 드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용서와 화해로 평화를 이뤄야


성경에서는 평화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성경의 계시에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훨씬 넘어서서, 생명의 충만함을 나타낸다(말라 2,5 참조). 평화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의 하나이며,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순종을 내포한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는 축복의 결과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89항).


구약 성경을 보면 역사서 안에서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 간에 일어난 여러 전쟁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경험된 구원의 역사 안에서 이웃 민족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경험했고 그 안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들은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과 탈출, 그리고 새롭게 정착한 가나안 땅에 그들만의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수차례에 걸친 외세의 침입과 지배 아래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민족이 전쟁과 고통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을 희망했다. 그리고 그들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의 중심에는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새로운 메시아가 있었다(이사 9,5 참조).


구약 성경의 평화에 대한 갈망과 약속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됐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평화를 선물하시는 분이시며, 평화 그 자체이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증오의 벽을 허무셨고, 그들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다(에페 2,14-16 참조). 예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는 평화는 그 전제 조건으로 하느님 아버지와 화해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 아버지와의 화해는 곧 자기 형제자매들과 화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간추린 사회교리」 492항 참조). 예수께서는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계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2월 14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2) 정의와 사랑의 열매로서 평화


우리는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가톨릭 교회는 세상의 평화 정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 곳곳에는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한국 역시 전쟁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아니다. 한국은 6.25 전쟁 발발과 휴전 협정으로 60년 넘게 분단된 세계 유일의 국가기 때문이다.


유학 시절 만난 외국인 신부 중에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북쪽인지 남쪽인지를 묻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아직도 한국이 전쟁 중이라 인식했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종전 아닌 휴전 상태인 분단 국가이며, 아직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위험한 나라이다. 이따금 남북 간 군사적 무력 충돌이 있었고, 국지전 형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총성 없는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이 땅에 사는 모두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지만 실제로는 서로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가 한반도에 정착되려면 적어도 이러한 적대적 관계가 모두 청산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의와 사랑의 열매 평화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에서는 평화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흔히 사람들은 평화를 적대적인 세력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쟁의 중지나 균형 유지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가 이해하는 평화는 이들이 이해하는 평화의 개념과는 다르다. 가톨릭 교회는 평화를 하느님 안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사회의 이성적 도덕적 질서 위에 세워지는 가치이자 보편적인 의무로서 이해한다. 하느님께서는 평화의 근원으로서 존재의 일차적 근원이시며, 근본 진리이시고, 최고의 선이신 분이시기에 평화는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과 부합돼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전쟁의 부재나 적대적인 세력 간의 균형 유지로 평화의 의미를 단순화할 수 없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하는 질서의 확립을 요청하는 가치이기에 사회교리는 평화를 정의와 사랑의 열매로서 이해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참조).


사회교리는 우선 평화를 정의의 열매로 이해한다. 넓은 의미로 보면 인간의 모든 차원의 균형에 대한 존중으로 평화를 이해한다. 평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받지 못할 때,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하고 시민 생활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을 때 위협받게 되므로, 인권 수호와 증진은 평화로운 사회 건설과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완전한 발전에 본질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평화는 사랑의 열매로서 이해된다.


정의의 역할은 모욕을 가하거나 손해를 입히는 것과 같은 평화의 장애물을 없애는 일이다. 그러나 평화는 이런 요인을 없애는 것으로만 충분히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평화는 정의의 열매인 동시에 사랑의 열매가 돼야만 가능하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참조).


이러한 평화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질서의 추구를 통해 날마다 조금씩 이룩된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꽃필 수 있다. 분쟁과 폭력을 막으려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는 절대적인 가치로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이렇게 될 때 평화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다양한 사회 집단들로 확산하고, 결국 공동체 전체의 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 상호 간의 화합과 정의에 대한 존중이 배어 있는 공동체는 참된 평화의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국제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행복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사람들이 신뢰로서 자신의 정신과 재능을 서로 나눌 수 있게 될 때,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5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평화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적인 가르침을 그대로 유지하고 계신다.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교황님은 공직자들과 만남에서 진정한 의미의 평화에 대해 말씀하셨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사 32,17 참조)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대통령과 공직자들과 외교단과 만남 연설’중) .


교황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앞으로 어떻게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지 가장 기본이 되는 가르침을 제시하셨다. 그 가르침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 관용과 협력이라는 사랑을 통해 정의로움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며, 이 정의로움이 진정한 평화를 이 땅에 정착시키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12월 21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3) 평화의 실패 : 전쟁


전쟁은 인도주의 실패의 결과이며, 인류에게 깊은 좌절만 안겨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은 모두 북녘땅 평양이다. 어린 나이에 6.25의 참화를 피해 남쪽으로 피난 오신 두 분은 어린 시절 많은 고생을 하셨다. 17살에 피난을 오신 아버지는 낮에는 일했기 때문에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전쟁 전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약학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약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다시는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군에 입대하셔서 아버지는 집안에 남은 유일한 남자였다. 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인천 연안부두에서 막 일을 하셨고 약사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12살에 피난길에 올라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셨던 외할머니 덕분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전쟁통이라 중학교는 천막학교에서 2년만 하신 후 청량리 근처에 있던 정화여고에 진학하셨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아 공부보다는 노래와 운동에 소질이 있으셨지만, 전쟁 후 너무 어려워진 집안 사정에 겨우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두 분은 전쟁 전 서로 알지 못했지만 새롭게 정착한 남한 땅에서 고향 분의 소개로 만나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정을 꾸리셨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에서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 부모님은 우리 형제자매들을 낳으셨다. 전쟁의 참화는 두 가정을 경제적 고통 속에 밀어 넣었지만 결국 이 전쟁 때문에 나와 우리 형제들이 태어났다. 비록 부유하고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아버지와 사랑 넘치는 어머니 덕분에 제2의 고향인 인천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얼마 전, 어머니께 왜 고향 땅을 버려두고 피난길에 오르셨는가를 물어봤다. 외가는 고향에 땅도 있었고 남은 가족도 있었다. 뜻밖에도 답변은 단순했다. 농부인 외할아버지는 정치적인 상황이나 사상적인 이유로 가족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무작정 피난길에 오르셨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당시 미군이 평양을 핵무기로 폭격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일본을 패망으로 이끈 핵폭탄의 위력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백성들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고향 땅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사흘 후면 다시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 보따리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고향 땅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휴전선을 경계로 잠시 휴전하기로 한 협정도 벌써 60년이 훌쩍 넘었다.


1980년대 초 이산 가족 찾기가 한창이던 시절, 산과 같이 크게 보였던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평상시에도 농담이나 우스운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한 번도 자녀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는데, 이산 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시청하시면서 자식들 몰래 눈물을 훔치셨다. 고향에 남겨둔 형제들과 모친에 대한 그리움에 아버지는 가족 몰래 소리 없이 울고 계셨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은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전쟁의 아픔은 용서와 화해로 치유해야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쟁을 어떻게 이해할까? 교도권은 전쟁의 야만성을 비난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쟁을 새롭게 여기도록 요구한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전쟁은 재앙 그 자체이며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 안에서 전쟁은 국가 간의 분쟁을 한 번도 근본적으로 해결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더 복잡한 분쟁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불필요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물질적으로도 많은 것을 잃는다. 더군다나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피해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다. 결국 전쟁은 진정한 인도주의의 실패로서, 인류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는 불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7항 참조).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는 남과 북의 모든 백성에게 깊은 아픔과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남북이 갈라져 서로 총칼을 겨누며, 서로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겨 주었다. 전쟁 기간 희생된 군인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무죄한 백성들이 직간접적인 무력사용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휴전 뒤에는 60년 넘은 기간 동안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러한 고통의 땅 한반도에 평화 정착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용서와 화해다. 용서와 화해만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진정한 평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5년 1월 1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4) 정당방위와 정의로운 전쟁


도덕적 정당성 없으면 침략 전쟁


인간 생명을 일부러 파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그러나 우리는 매일 매일 뉴스를 통해 무죄한 사람들의 죽음을 접한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테러는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으며 그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더욱이 국가 간 전쟁 피해 정도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가톨릭교회는 모든 전쟁이 초래하는 불행과 불의 때문에 선하신 하느님께서 오랜 전쟁의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주시도록 모든 이가 함께 기도할 것을 간곡히 촉구해 왔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과 위정자들은 불의한 전쟁을 피하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의무가 있다.


만일 우리나라에 갑자기 외부 세력으로 인해 전쟁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니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한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당했으며, 힘없이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힘없는 나라여서 백성들은 설움 속에서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침략 전쟁을 통해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이 희생됐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침략국의 속국이 되거나 식민지화되어 민족 정신의 말살과 같은 정신적인 상처를 받았다.


정의로운 전쟁에는 도덕성이 필요하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여러 분쟁 중 가장 비도덕적인 전쟁은 타국에 대한 침략 전쟁이다. 가톨릭 교회는 침략 전쟁을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이러한 침략 전쟁에 대한 정당한 대항으로서 정당방위의 개념을 인정한다. 사실 침략 전쟁이 발생하는 경우, 침략을 받은 국가의 지도자들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의 국가를 방어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흔히 이러한 자국 방어 수행으로 발생하는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Justice War)이라고 표현하는데, 정의로운 전쟁 개념은 정당방위 개념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방어적 개념의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기란 쉽지 않다. 몇 가지 엄격한 조건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무력을 사용하는 정당방위가 도덕적인 정당성의 엄중한 조건을 따라야 하기에 여러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 조건은 첫째, 공직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계속적이고 심각하며 확실해야 한다. 둘째, 이를 제지할 다른 모든 방법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셋째, 성공의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한다. 넷째,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무력 사용으로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상황 판단에서 현대 무기의 파괴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런 네 가지 조건들이 모두 충족될 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무력 사용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309항 참조).


물론 이 같은 도덕적 정당성의 조건들에 대한 평가는 공동선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신중한 판단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타국을 공격함으로써 자국의 위해를 방지하겠다는 명분의 전쟁은 실적으로는 침략 전쟁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군사 행동과 타국을 정복하기 위해 행하는 군사 행동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두 차례의 걸친 세계 대전의 비극은 인류로 하여금 더는 미래 세대들에게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 국제연합을 탄생하게 하였다. 국제연합헌장에서는 국가 간의 분쟁 해결에 대하여 원칙적으로는 무력에 의존하는 것을 금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무력 사용을 허락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당방위의 경우와 평화 유지에 대한 책임 범위 안에서 안전보장이사회가 내리는 조치들의 경우에만 그러하다(“국제연합헌장” 6장, 7장 참조). 여기서 우리는 정당방위권을 행사할 때에 필요와 균형이라는 전통적인 한계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타국의 공격이 가깝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 방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다시 말해 무력 사용은 엄격한 평가를 토대로 하고, 동기의 근거가 충분한 경우에만 담당 기구의 결정을 통해서 그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01항 참조).


정의로운 전쟁으로 포장되어 타국을 침공하는 침략 전쟁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우선 그 전쟁의 도덕적인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덕적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전쟁의 가면을 쓴 침략 전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평화신문, 2015년 1월 11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5)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 복무제


양심 따르려면 감옥에 갈 수밖에 없나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입대 문제가 세간을 시끄럽게 한다. 얼마 전 전방 부대 GOP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안타까운 젊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고, 방위 산업체 비리나 군 간부의 성추행 문제 등 도덕적 해이에서 오는 각종 비리와 사건들 때문에 군의 위상이 많이 실추됐다.


하긴 과거에도 이런 사건들이 없지 않았겠지만 이제 군도 많이 변화됐다. 일단 군 내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게 되면 온 국민들이 알게 되고, 군 전체가 들썩이는 것 같다. 지휘관들이 북한군의 동향이나 주변 국가들의 군사적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보다 오히려 휴가 나가 있는 부대원 동향에 더 촉각을 세운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회자할 정도로 군 비리나 폭력행위 등에 대한 통제가 더는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인천대신학교 신학생들은 학부 2학년을 마치고 현역으로 입대하는데, 얼마 전 군대에 간다고 인사하는 신학생들을 보니 마음이 짠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보면서 문득 25년 전 입대하던 때가 떠올랐다. 1989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나는 군에 봉헌(?)됐다. 당시만 해도 의무 복무 기간이 30개월이라 3년 가까이 신학교에서 떠나 있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학생으로서 군 생활은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혼재해 있다. 6주간의 기초 군사 교육과 자대 배치 후 8주간의 의장 훈련은 구타와 욕설,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 속에서 신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렸던 시간이었다. 하루하루를 맘 졸이며 살았지만 결국 26개월 10일의 시간은 지나갔고 건강하게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군 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의장대원으로서 멋진 행사복을 입고 의장 행사를 했다는 것보다 탈영하려는 후임 병사를 설득해 군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이끈 일이다. 그 후임병은 여자 친구 문제로 탈영을 고민하면서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나는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래서였을까, 후임병은 마음을 고쳐먹고 탈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휴가를 다녀와서는 고마움을 표시했다. 여자 친구와 모든 오해를 풀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총만 선택해야 하나?


입대하는 신학생들을 보면 우리 한국이 처해 있는 안보 상황을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학생들이 꼭 입대해야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랑과 용서를 가르칠 사제가 될 신학생들의 손에 타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총과 칼을 쥐여주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가 있고, 자기 나라를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을 유지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국방의 의무 수행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방법의 하나가 바로 대체 복무 제도다.


한국과는 안보 상황이 많이 다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국가의 재산과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하나다. 비록 군 복무가 의무인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 나라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병역 의무를 군 복무뿐만 아니라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나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한다더라도 수감되거나 형사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양심적 선택으로 다른 형태로 병역 의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유엔 인권위원회(UNHRC)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종교와 신념 등을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해 수감 중인 사람이 전 세계에 72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중 669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이 통계는 아직도 한국이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 통계는 지구 상 거의 유일하게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사회교리는 우선 모든 군인이 전 세계의 선과 진리, 정의를 수호하도록 소명을 받았고, 이러한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고자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군인으로 살아왔음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군대와 군인의 존재 이유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역시 배려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양심의 동기에서 무력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사목헌장」 79항, 「간추린 사회교리」 503항).


이제 군사력도 예전처럼 군인 수나 재래식 무기의 보유량으로 평가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우리 한국 사회도 서서히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대체 복무제 시행에 관해 다시 논의의 불을 지필 때가 지금이 아닐까?


[평화신문, 2015년 1월 18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6) 사회교리와 사회 복음화


사제는 강론서 세상 이야기하면 안 되나?


지난 대림 시기, 인권주일을 맞아 동창 신부의 본당에 특별 강의를 위해 찾아갔다. 내가 전공한 과목이 사회교리다 보니 대림 2주일에 맞이한 인권주일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일 년에 단 한 번인 인권주일과 사회교리 주간은 사회교리를 전공한 나에게 특별한 시간이기에 특강 주제를 사회교리적인 것으로 잡았다.


미사 강론 중에 신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의 전체적인 내용을 설명해 드렸는데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미사에 참석한 신자의 80% 정도가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러신 건 아니지만 연세가 많은 분의 경우, 신부가 강론 중에 사회 문제나 정치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강론 중에 잘 듣지 않거나 딴청을 피우는 신자들이 더 눈에 잘 띄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신자들 눈높이에 맞추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후 강의 시간에는 신앙적인 주제로 바꾸어 강의했다.


강의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사회교리를 전공한 나는 “아직 신자들에게 생소한 사회교리를 선포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귀국했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열심히 강의했고 그 준비도 철저히 했다. 하지만 강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강의를 듣는 신자들의 연령층이나, 교육 정도, 관심사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인류의 참된 선을 위한 사회규범


요즘처럼 사회교리가 이슈화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된 적이 과거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대다수 신자들이 교회 안에 사회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사회적인 가르침들을 통해 민주화나 인권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했고 사회 복음화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펼쳤다. 당시에 많은 신자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서 윤리적인 정당성을 발견했고, 가톨릭 교회의 도덕성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신자가 되게 하는 복음화에 이바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정치적인 사안이나 사회적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거부하는 신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1970~1980년대 한국 상황 안에서 가톨릭 교회의 역할은 세상을 복음화하고 변화시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만, 불과 25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가톨릭 교회의 사회참여 활동에 대한 시각을 이전과는 달리하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큰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교회와 사회의 상호 작용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상호 연관성은 교회와 사회가 서로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을 보여준다. 교회는 교회의 가르침을 통하여 복음의 사회적 중요성을 드러냄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건설에 이바지해 왔다. 특히 19세기 말, 교회의 교도권은 당시의 절박한 사회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며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 실례로 1891년 발표된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들 수 있다. 이 회칙은 19세기 말 당시 유럽 사회 안에서 사회 정치적 현실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한 첫 사회 회칙으로서, 당시 시대 안에서 볼 때 파격적인 문헌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521항 참조).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사회적 차원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이해하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대로 창조된 존재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드러낸다. 또한 교회는 인간의 노동, 경제, 정치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 그리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영역으로서 개인, 문화, 사회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독려한다. 결국 사회교리는 인간 사회 활동의 도덕적인 토대가 바로 개인의 인간적 발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류의 참된 선에 부합하는 사회 활동 규범을 사회교리로 규정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22항 참조).


교회가 제대로 사회를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진정으로 교회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의 요구와 복음적 가치가 어떻게 연결되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복음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교리를 단순히 이론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회교리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그러한 복음적 가치를 사회 안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평화신문, 2015년 1월 25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7) 사회교리와 평신도의 참여


모범적 삶 통해 복음 선포하는 평신도


어머니는 처음부터 신자가 아니셨다. 청량리 근처에 살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따라 우연히 명동성당을 간 게 아주 인상 깊으셨나 보다. 처음 찾은 명동성당의 거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셨다고 한다. 신앙이 없으셨지만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꼭 성당에 다니겠다고 결심하셨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다. 아버지 역시 신자가 아니셨다. 전쟁 후 피난 온 인천에 정착한 아버지의 누이들은 개신교에 다녔지만 아버지는 개신교의 모습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교회로 인도하려는 고모들의 설득도 마다하고 결혼 전까지 특별한 신앙 없이 사셨다. 먹고 사는 일이 바빴기에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다가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다.


가난한 신혼 부부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끼니를 잇는 일이었다고 한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60년대 말 이른바 월남 바람(?)으로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파견돼 미국 회사의 기술자로 일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부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남편 없이 우리 형제들을 키우던 어머니는 성당에 가고 싶다며 허락해 달라는 내용을 편지에 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허락해 주셨고, 어머니는 어린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인근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해 신자가 되셨다. 아버지가 귀국하신 후, 아버지 역시 어머니의 회유(?)와 설득으로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던 해 신자가 됐다.


친가는 물론 외가에도 신자 하나 없던 우리 집안은 어머니가 세례 받으신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많은 친척이 가톨릭 신앙을 지니고 살아간다. 어머니가 특별한 선교 활동을 한 것도 아니신데 어머니 모습에 감화된 친인척들이 스스로 가톨릭 신앙에 입문했다. 한 여인이 집안 전체를 신앙으로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누구도 성당으로 이끌지 않았지만 어머니 스스로 성당을 찾았고, 가톨릭 신앙을 진리로 받아들였고, 신앙인이 되셨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것 같다.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사회 전체를 바꾸는 모습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느끼게 된다.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제자


평신도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사회 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평신도는 세례 성사로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전체의 사명 가운데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교회헌장」 31항)이다. 다시 말하면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자신들의 고유한 신분에 따라 세상 안에서 살면서 그리스도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소명에 따라 현세 안에서 일하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세상을 관리하는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세상 안에 추구하는 직분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현세의 여러 실재들 안에서 자신의 모범적인 삶의 증언을 통해 이 세상에 복음을 선포한다. 평신도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세속적인 실재들, 곧 가정, 노동, 문화, 과학, 연구 등의 분야에 직업적으로 투신하고 사회 경제 정치적 책임을 행사하게 되며 그러한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고유 영역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투신과 참여는 충분히 복음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41~543항 참조).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이러한 평신도의 사회 활동 참여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실 세상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평신도의 복음적 삶은 세상 안에서 그들의 투신을 의미 있게 한다. 신앙과 삶의 결합을 통한 이웃 형제들에 대한 봉사는 주변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직간접적으로 초대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 것이다. 평신도 자신이 자신의 영성적 도덕적 생활을 튼튼히 하고, 사회적인 의무를 더욱 유능하게 이행하면 할수록 평신도들은 자신들에게 내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고 다양한 사회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평신도들에게 적합한 방법을 획득하게 해 주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46항 참조).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한 여인이 한 가족 전체를 복음화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평신도였던 어머니가 가정 전체 안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범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사회 안에 보여줌으로써 세상을 복음화 시킬 수 있다. 따라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는 복음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평화신문, 2015년 2월 1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8) 평신도의 사회 생활에 대한 봉사


인간 · 문화 · 경제 · 정치에 대한 평신도의 봉사


사회 생활에서 평신도의 존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표지인 동시에 사회 생활에 대한 봉사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평신도의 봉사는 가정과 문화, 일이나 특수한 측면의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서 드러난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될 때 온전하게 현실화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다. 사실, 사회교리의 신뢰성은 사회교리가 지니고 있는 내적인 일관성이나 논리성에서 비롯되기보다는 행위의 증거에서 직접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51항 참조).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평신도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봉사 활동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접근한다. 인간에 대한 봉사, 문화에 대한 봉사, 경제에 대한 봉사, 정치에 대한 봉사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평신도


평신도의 사회 참여 영역 중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첫 번째 영역은 인간에 대한 봉사다. 모든 인간의 존엄을 증진하는 일은 교회와 그 안에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인류 가족을 섬기도록 불림 받은 봉사의 근본 임무이며, 핵심적이고도 통합적인 임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봉사 임무가 수행되는 첫 번째 형태는 내적인 자기 쇄신을 통한 노력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관심, 곧 그들을 형제자매처럼 사랑하는 마음의 회개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인간 존엄의 증진은 인간이 수태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침해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권리를 확언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은 인간의 종교적 차원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최상의 선 가운데 하나로 개인과 사회의 선을 진정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중대한 의무라고 볼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52~553항 참조).


둘째 영역은 문화에 대한 봉사다. 문화는 교회와 개별 그리스도인의 현존과 참여를 위한 특별한 영역이 돼야 한다. 신앙 생활과 일상 생활은 따로 분리될 수 없으며,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삶 전체에 걸친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특히 복음에서 영감을 받은 사회, 정치, 문화를 육성하는 일은 평신도에게 중요한 영역이다. 인간의 전인적 완성과 사회 전체의 선은 문화의 근본 목표가 된다. 또한 문화의 윤리적 차원은 평신도의 사회 활동에서 가장 우선적인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인종, 성별, 국적, 종교나 사회적 신분의 차별 없이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시민 문화에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곧 문화에 대한 봉사라고 말할 수 있다. 평신도는 바르고 참된 문화를 증진하기 위해 대중 매체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며, 이러한 대중 매체는 인간 상호 간의 연대에 강력한 도구로 사용돼야 한다. 대중 매체를 운영하는 전문가들만이 윤리적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 매체를 이용하는 모든 이용자도 윤리적 의무를 지닌다(「간추린 사회교리」 554~562항 참조).


셋째 영역은 경제 분야에 대한 봉사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경제 상황에서 평신도들은 사회교리의 원칙에 따라 행동할 필요가 있다. 평신도들은 가톨릭 교회가 강조하는 사회교리 원칙들을 사회에 알리고 그것들이 경제 활동 분야에서 받아들여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들과 경제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 그리고 정책을 입안하는 정치 지도자들로 하여금 현대 세계의 경제 구조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경제 문제에 대한 다양한 방식을 통해 올바른 경제 질서를 세울 수 있는 전문가들을 육성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간추린 사회교리」 563~564항 참조).


마지막 넷째 영역은 바로 정치 분야에 대한 봉사다. 평신도의 정치 참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봉사로서 평신도의 의무 중의 하나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는 매우 가치 있으면서도 어려운 일로 평가된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정치 참여의 기준으로 공동선 추구, 빈곤과 고통 상황 안에서의 정의의 추구, 자율성의 존중, 보조성의 원칙 준수, 연대를 통한 대화와 평화 증진 등을 요구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65~574항 참조).


평신도의 사회 생활 영역에 대한 봉사는 평신도의 복음적인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 진정한 인간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봉사 정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개별 평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삶을 현실 세계 안에 구체화하는 표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단순히 제도 교회의 교계제도를 통해서나 일부 성직자 중심의 노력을 통해서 만이 아니라 이러한 노력을 포함한 개별 평신도의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다양한 방면에서 봉사함으로써 진정한 인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평신도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2월 8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9)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 찾기


주님 향한 믿음이 행복의 파랑새다


하루하루 뉴스를 보는 것이 겁이 나는 세상이다. 뉴스 대부분이 흉악 범죄나 공직자의 비리, 안전 불감증에 따른 대형 사고 등으로 무섭고, 화나고, 안타까운 소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거나 미소 짓게 하는 소식들이 점점 사라지고 오히려 반목과 갈등, 폭력과 경쟁이 판을 치는 소식이 가득한 세상이 돼버렸다. 이러한 세상에서 인간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더 많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경제 발전으로 삶의 질이 나아지고 평균 기대 수명도 과거보다 늘어났다고 말하지만 새롭게 대두되는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그중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문제는 물질적 풍요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족들에게서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방치돼 사회 후미진 공간에서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는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점점 더 비인간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본다.


또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삶 역시 녹록지 않다. 그들은 때로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열악한 작업ㆍ주거 환경 속에서 인내하며 고향의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권리는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보장돼 있지 못한 것 같다. 한편, 끝없는 무한 경쟁 구도 속에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의 문제 역시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서로 힘이 되어주는 친구이자 동료로서가 아니라 상대 평가라는 잣대 속에서 밟고 일어서야 할 적이요 경쟁자로 만들어 가는 현실은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물질을 추구하지만 결국 그 물질이 인간의 삶을 행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사실 인간은 세상 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감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 의미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아무리 많은 재화를 축적해도 사람들은 그 재화에 만족하지 못하며, 아무리 많은 권력과 명예를 소유한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 가지면 가질수록, 더 누리면 누릴수록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는 소유가 존재의 의미를 가르쳐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나 역시 세상의 구성원으로 여느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산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사제가 됐고, 사제품을 받던 순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겠노라고 결심했다. 사제로 살아온 지 벌써 20여 년이 돼간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보면 어린 시절 꿈꿨던 사제의 삶과는 다른 형태인 것 같다. 1년이란 짧은 보좌 신부 생활 후의 이탈리아 유학 생활, 그리고 행복했던 1년간의 본당 주임 신부 생활이 지내고 다시 돌아온 신학교에서의 교수 신부 생활, 그리고 지금은 신학생이 아닌 일반 학생들에게 윤리를 가르치고, 학교 행정 업무를 보게 되었다.


세상에 파견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복음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논리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행정가로서의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나는 과연 사제로서 행복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사제인 나 역시 이런 고민 하며 살고 있으니 종교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갈지 상상이 된다.


변하지 않는 자유를 보장하는 복음


가톨릭 교회는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질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응답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끝없이 변화하는 다양한 의견들로부터 인간의 존엄을 자유롭게 해주며, 어떠한 인간의 법도 보장해 줄 수 없는 모든 사람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에서는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의 사명이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 안에서 자기 존재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톨릭 교회는 오로지 하느님만이 인간의 이러한 질문에 궁극적인 답변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을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신 하느님만이 당신 아들 안에서 계시를 통해 완전한 해답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76항 참조).


따라서 교회는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인간 사회 안에 만연한 심각한 착취와 사회의 불의에 직면하여, 인간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개인과 사회의 철저한 쇄신을 통해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 이러한 교회의 노력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본받음으로써, 그분 안에서 삼위일체의 삶을 영위하며, 천상 예루살렘에서 역사가 완성되기까지 그분과 함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77항).


[평화신문, 2015년 2월 15일]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50 · 끝) 사랑의 문화를 위하여…


사회교리, 아버지의 집을 향한 나침반


사회교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전공자로서 사람들로부터 사회교리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이 세상에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는 기본 원리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이 점점 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절대적인 진리와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회가 되고 있지만, 우리 자신은 그것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판단하는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주의적 무관심에 익숙하게 만들어 버렸다. 현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판단될 때,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거나 죽어 나가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게 됐다. 이러한 무관심은 현대 사회를 좀먹게 하는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다. 수많은 사건사고들 속에서 이웃의 고통을 가슴 아파하긴 하지만 쉽게 남의 일로 치부해 버리거나 자기 일과 상관없다는 식으로 판단해 버리는 무관심이 더 비인간적인 세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무관심은 교회 공동체 안에도 침투된 위험 요소 중 하나다. ‘나’라는 개인이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판단하면 할수록 소외되고 버림받는 존재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사회의 그늘에 사랑의 빛을


이전과 비교하면 주변에서 쉽게 가톨릭 사제들이나 가톨릭 신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개별 본당 중심적 사고 방식은 교구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거나 보편 교회 전체를 생각하던 과거의 교회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공동체성과 소속감이 이전보다 많이 떨어졌으며, 타인이나 다른 공동체에 도움을 주는 일도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 같다.


만일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영적인 체험을 통한 개인 구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믿음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모든 이들의 구원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가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 안에 인간다운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원칙과 가치들을 제공이다. 이러한 원칙은 그리스도의 제자 됨을 식별하게 하는 구체적인 상징이 되며, 탁월한 사랑으로 인해 그 빛을 밝혀준다. 인간의 완성과 인간 세계의 개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새 계명을 통해서 가능하다. 개인의 행동은 사랑으로부터 기인할 때 온전히 인간적인 행동이 되며, 사랑을 드러내고 사랑의 지시를 따를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개인의 행동은 개인적인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확신을 갖고 사랑을 증언해야 하고, 자신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사랑이 어떻게 사회를 선으로 나아가게 하는지, 또한 인간 사회를 완전한 사회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힘인지를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80항 참조).


이러한 사랑은 모든 사회 관계 안에 현존하면서 그 관계 안에 스며들어야 한다. 세속적인 교만과 이기심을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 약은 바로 사랑이다. 이러한 사회적 사랑은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를 넘어서 보편적인 인류애를 완성할 수 있다. 더욱 인간답고 더욱 인간에게 알맞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 생활 안에서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따라서 사랑이야말로 모든 사회 생활과 활동에 있어서 최고의 규범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81-582항 참조).


사회 복음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가치가 바로 ‘사랑’이다. 진정한 인간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적인 발전과 성장만으로는 온전한 인간 발전을 이룰 수 없다. 경제적인 발전과 더불어 인간성의 발전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회는 오히려 물질만을 숭상하는 비인간화된 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사랑만이 인간을 온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랑은 가장 큰 사회적 계명을 나타내며, 타인과 타인의 권리를 존중한다. 사랑은 정의의 실천을 요구하고, 또 사랑만이 우리로 하여금 정의를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사랑은 또한 세속적 차원의 인간관계와 사회관계 안에서는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맺는 관계 안에서만 온전한 효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83항 참조).


연재를 마치며…


지난 1년간 사회교리에 대해 연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사회교리를 배우고, 일상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교리를 통한 사회 복음화에 대한 노력은 교회 공동체 전체를 들어 가장 필요한 일이며, 세상을 변화시켜 나아가는 기초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혼돈과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오늘날의 현대인에게 다시 한 번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회교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를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집필해 주신 신부님과 관심 있게 읽어주신 독자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