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특별 희년] (1) ' 자비의 특별 희년' 총론


‘자비의 문’ 활짝, 희년살이 기쁘고 활기차게


%EC%9E%90%EB%B9%84%EC%9D%98_%ED%9D%AC%EB%85%84_%EC%84%B1%EB%AC%B8.png성 베드로 대성당 관리인들이 2000년 대희년 폐막식 후 희년 성문을 폐쇄하고 그 앞에 쌓아두었던 벽돌을 치우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일 이 성문을 여는 예식을 거행하면서 자비의 특별 희년이 시작됐음을 온누리에 알린다. 지역 교회의 모든 교구도 대림 제3주일(13일)에 자비의 문을 열고 ‘은총의 때’가 왔음을 선포한다. [바티칸=CNS]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특별 희년이 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시작된다.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문을 열어 ‘은총의 때’가 왔음을 알린다. 8일은 교회가 역사 안에서 새로운 길을 걷도록 이끈 제2차 바티칸 공회의가 막을 내린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라 더욱 뜻깊다.

한국 교회를 비롯한 전 세계 교회도 대림 3주일인 13일 로마 주교좌성당인 성 요한 라테라노대성당 성문이 열리는 것에 맞춰 교구 주교좌성당과 순례지 성당에서 자비의 문을 열고 희년살이에 들어간다.


왜 자비의 희년을 선포했나

교황이 ‘특별히’ 자비의 희년을 선포한 취지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체험하고, 이를 통해 기쁘고 활기차게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려는데 있다. 지난 9월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의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 그 취지가 더 분명하게 담겨 있다.

“이 희년에 신자들이 온유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거의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계심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어 그들의 신앙이 깊어져 더욱 효과적으로 신앙을 증언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교황은 왜 취임 초부터 줄곧 하느님 자비의 중요성과 실천을 역설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사랑의 하느님이나 정의의 하느님은 친숙하지만, 자비의 하느님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교황은 하느님의 여러 속성 가운데 ‘자비하심’을 자신의 직무의 정중앙으로 끌고 왔다.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통찰을 빌려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은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고, 자비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난다”고 밝혔다. “당신 백성에게 자비하고, 너그럽고, 분노에 더딘 분이 하느님(탈출 34,6)이고,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즉 심판하고 벌하기에 앞서 연민과 자비로 우리를 끝까지 용서해주시고, 특별히 힘없는 사람들에게 기쁘게 자비를 선포하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어깨에 둘러메고 돌아오는 목자와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오는 방탕한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하느님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교황은 이어 “교회 생활의 토대는 바로 그러한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느님 자비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거의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기에 그리스도인이 먼저 그것을 체험하고, 체험한 것을 서로 증언하고, 세상에 나가 실천하자는 게 교황의 사목활동 중심 노선이다. 교황은 실제로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찾아다니며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하느님 자비의 재발견’이라고 할만하다.


희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교황이 칙서 「자비의 얼굴」을 통해 제안했듯이 개인적, 교회 내적, 교회 외적, 이렇게 3가지 차원에서 희년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개인적 차원의 준비는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이다. 교황은 지난 3월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는 미사에서 “(교회가 자비의 증인이 되려면) 영적 회개에서 시작되는 여정으로 나서야 한다”며 먼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깨달을 것을 권장했다. 사순 제4주간 금ㆍ토요일로 정한 ‘주님을 위한 24시간’도 영적 회개를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또 순례와 전대사가 있다. 교황은 로마나 각 지역 교회에 있는 자비의 문(희년 성문)을 통과하면서 하느님 자비와 은총을 체험하라고 말한다. 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베푸시는 자비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희년의 궁극적 목적이기에, 선교와 자선활동 등 실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회 내적으로는 쇄신을 통한 자비의 실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희년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선 활동을 늘리자는 게 아니다. 교회가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 되라는 것인데, 그러려면 먼저 교회 구조와 활동의 현주소를 성찰하고 내적 쇄신을 도모해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될 수 있다.

교회 외적으로는 교회와 신자들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 자비의 표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 양극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관료 사회의 부패 구조, 환경 파괴, 남북한 긴장 등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느님 자비를 증거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EC%9E%90%EB%B9%84%EC%9D%98_%ED%9D%AC%EB%85%84_%EB%A1%9C%EA%B3%A0.jpg이를 위해서는 시대의 징표를 정확히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시선은 늘 사회 약자를 향해 있어야 한다. 교황은 지난해 한국 방문 중에 교회는 사회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희망의 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통적 자선 활동을 넘어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인해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자비를 실천하라고 당부했다.

자비의 희년은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다.


자비의 희년 모토와 로고

모토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Misericordes sicut Pater)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복음 말씀을 줄인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이르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자비의 본보기를 따르라는 초대이다.

로고는 착한 목자가 당신의 크신 자비를 드러내며 인류(아담)를 어깨에 짊어진 형상이다. 목자의 눈과 아담의 눈이 겹쳐져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눈으로 세상을 보듯이, 아담도 자비 가득한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초대교회 성상에서 많이 나타나는 형상이다. 밖으로 향할수록 색이 밝아지는 세 개의 타원형은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주시는 그리스도의 역동성을 드러낸다.


교황청 주요 행사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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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2015년 12월 6일, 김원철 기자]


[자비의 특별 희년] (2) 고해성사와 자비의 문

마음의 먼지 털어내고 주님 자비의 품에 안기자


%EA%B3%A0%ED%95%B4%EC%84%B1%EC%82%AC.png사순시기인 지난 3월 성 베드로 대성전 고해소에서 한 남성의 죄 고백을 주의깊게 듣는 프란치스고 교황. [CNS 자료사진]


작은아들이 가산을 탕진하고 거지꼴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달려나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반겨줬다. 밤잠을 설치며 아들을 기다렸지만, 막상 나타나자 한마디 나무라지도 않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아버지 마음, 그것이 하느님 자비이다. 

하지만 하느님 자비가 무상의 선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가기에 앞서 죄를 뉘우쳤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루카 15,11-32 참조).


희년의 출발은 영적 회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영적 회개’에서부터 자비의 희년을 시작하자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참회와 아울러 하느님과의 깊은 화해를 희년 준비의 우선순위로 꼽았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 자비를 증언하려면 먼저 그것을 체험해야 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라는 것이다. 

교황은 올해 3월 자비의 희년을 발표할 때부터 “죄를 고백할 줄 아는 것은 하느님의 은사, 선물, 하느님의 작품”이라며 두려워하지 말고 고해소에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비록 우리가 비참한 처지에 있어도 (고해) 사제가 우리를 하느님 이름으로 환대하고 이해할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변호인이 없어도 사제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신 변호인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그분께서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고해소를 나올 때 우리는 새 생명을 주시고, 신앙의 열정을 회복시켜 주시는 그분의 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하고 나면 우리는 다시 태어납니다”(3월 13일 자비의 희년 발표 강론).

이 확신은 신학 서적이나 교리서에 기초한 게 아니다. 교황은 17살 때 우연히 동네 성당에 갔다가 고해성사를 보고 싶은 충동을 느껴 고해소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인생의 방향을 180도 바꿔놓았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해성사를 보는 중 나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는 경계심을 늦추고 그것이 나를 덮치게 두었다고 말하고 싶다”(「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56쪽).

하지만 고해성사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신자가 적지 않다. 죄의 용서를 청하면 용서는 물론 위로와 희망까지 얻는 것을 알면서도 고해소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개중에는 본당 신부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까 봐 다른 성당으로 가거나, 판공성사 때 수도회 신부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사목자들은 이런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나와 신부’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하느님’ 관계로 보라고 조언한다. 고해성사는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성사이다. 이 때문에 고해 사제는 먼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죄를 고백하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또한 다른 성사와 마찬가지로 고해성사는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부르는 ‘초대장’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한다. 죄를 통회하고 보속하기에 앞서 그리스도께서 나와 화해하고 싶어 부르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은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하시며 부르신다.


하느님 자비에 이르는 문

자비의 희년은 교황이 8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자비의 문’이라고 이름 붙인 성문(聖門)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또 내년 11월 20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이 문을 닫으면서 희년 폐막을 알린다. 자비의 문은 희년의 중요한 표징물이다. 

영적 회개에서 자비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교황은 “이러한 거룩한 장소(자비의 문)에서 순례자들은 마음으로 은총을 체험하고 회개의 길을 찾게 될 것”이라며 희년 내내 성문을 열어두라고 지역 교회에 권고한다. 

성문을 여닫고, 또 통과하는 것은 그리스도론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들어가는 유일한 문(요한 10,9 참조)이다. 또한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요한 14,6 참조)이다. 이 성문은 바로 하느님 자비와 구원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교황과 주교들은 자비의 문을 열 때 장엄한 예식을 통해 이 상징적 의미를 상기시킨다. 예식 집전자는 문을 열고 나서 “이 문은 주님의 문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 자비를 얻고 용서를 받읍시다”라고 외친다. 희년 전대사도 이 문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다. 

교황은 평소 “교회는 항상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집”이라고 강조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문도 자비의 문과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시려고 언제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두신다”며 우리 마음의 문도 가난한 이들과 상처받은 이들에게 열려 있기를 기원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들고나던 예루살렘 성벽 문에서도 성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들에게 순례는 몇 날 며칠을 걸어 예루살렘에 도착해 그 문을 거쳐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순례자들은 출발하기 전에 이미 하느님 집으로 향하는 기쁨과 설렘을 노래했다.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이미 우리 발이 서 있구나”(시편 122,1-2).


■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해 사제들에게...

고해 사제는 하느님 아버지 자비의 참된 표지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느닷없이 좋은 고해 사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좋은 고해 사제가 되려면 먼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고해자가 돼야 합니다. 고해 사제가 된다는 것은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표지가 된다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 사제들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성령의 은사를 받았으며, 이 일에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사의 주인이 아니라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입니다. 모든 고해 사제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와 같이 신자들을 맞이해야 합니다. 또 밖에 서 있는 다른 아들에게도 다가가 하느님 아버지의 끝없는 자비 앞에서 그의 완고한 생각은 바르지 못하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고해 사제들은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말고 그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돌아온 아들이 미리 준비한 말도 막아 버려야 합니다. 고해 사제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자비의 으뜸가는 표지가 돼야 합니다(「자비의 얼굴」 17항).

[평화신문, 2015년 12월 13일, 김원철 기자]


[자비의 특별 희년] (3) 순례와 전대사

순례길 걸음마다 자비와 은총이


“성년에 하는 순례는 특별한 표징입니다. 삶 자체가 순례이고, 인간은 나그네, 곧 간절히 바라는 목적지를 향한 길을 가는 순례자입니다. 모든 이는 로마나 세상의 다른 곳에 있는 성문을 향하여 자신의 능력에 맞게 순례를 하여야 합니다. … 순례는 회개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문을 지나가면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감싸 주시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시듯이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힘써 노력할 것입니다” (「자비의 얼굴」 14항).


순례는 성년의 ‘특별한 표징’

자비의 희년을 살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순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성년의 ‘특별한 표징’이라며 자신의 능력에 맞게 순례의 길에 나서라고 권한다.

어떤 사람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자비의 문을 지나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순례하기 위해 로마로 순례를 떠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다지 멀지 않은 주교좌성당이나 교구장이 지정한 순례지 성당에 찾아가 전대사의 은혜를 청할 것이다. 로마든 자신이 속한 주교좌성당이든 중요한 것은 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순례는 세속을 떠나 거룩한 장소를 찾아가 회심하고, 마침내 변화된 모습으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번 희년뿐 아니라 2000년 교회 전통 안에서 자리 잡은 모든 형태의 순례가 모두 그렇다. 

순례는 세속적 삶의 안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원의가 있어야 한다. 또 농부가 봄 농사를 위해 겨우내 얼었던 땅을 갈아엎듯이, 돌같이 굳은 마음을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에제 36,25-27)으로 바꾸고자 하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 말씀과 신앙의 진리가 살아 숨 쉬는 거룩한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이 참다운 순례다. 

교황은 자비의 희년 순례가 특별히 회개의 시간이 되길 바라고 있다. 하느님 자비를 체험하고, 나아가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회개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순례 사목에 종사했던 이탈리아의 카를로 마차 신부는 저서 「순례 영성」에서 “순례를 떠나는 이는 깊은 영적 변화와 내적인 악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며 순례를 회개 여정을 가르쳐주는 길이라고 정의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이병호 주교는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 돌아가는 탕자의 마음으로 희년 순례길에 오를 것을 권한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향해 되돌아가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걸으며 인생이라는 나그넷길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성지에 이르면 헐벗은 거지꼴로 돌아온 탕자를 향해 달려가서 목을 끌어안고 반가워하시는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대사(大赦), 곧 그동안 지은 죄에 따른 벌을 완전히 벗겨주는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10월 16일 자비의 희년 맞이 대강연).

순교 성지가 많은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 대전교구 등은 이런 취지로 성지 여러 곳에 희년 순례지 성당을 지정했다. 순교 성지에는 되도록 천천히 걸어서 가는 게 좋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걷는 순례자들처럼 말이다. 그래야 신앙 선조들의 죽음과 아울러 이 땅에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도성(히브 13,14)이 없다는 진리를 묵상할 수 있다. 이 진리 앞에서 자신의 길든 습관, 소유에 대한 집착, 미래에 대한 불안을 벗어 내려놓으려면 느리게 걸어야 한다.


전대사의 은총을 얻으려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희년의 은총 중 하나다. 대사는 고해성사로 죄를 용서받아도 지은 죄에 따르는 벌은 남아 있는데, 그 잠시적 벌(잠벌, 暫罰)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이번 희년에 대사를 받으려면 교황 권고대로 회개하고자 하는 깊은 열망의 표시로 주교좌성당이나 교구장 주교가 지정한 성당들, 또는 로마의 4대 대성전에 있는 성문으로 순례해야 한다. 

자비의 문이 열려 있는 순례지와 전통적으로 대사를 얻도록 지정된 희년 성당에서도 대사를 얻을 수 있다. 이때 고해성사를 보고 성찬례에 참여하며 자비를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사 거행과 더불어 반드시 신앙 고백을 해야 한다. 

교황은 병자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 성문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도 대사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하느님은 누구나 위로하시고 용서하시기에 감옥에 갇혀 있는 수인조차도 하느님 자비에서 제외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질병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 안에서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체험을 한다면 그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체를 모시거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라도 미사 성제와 공동 기도에 참여하면서 믿음과 희망으로 이 시련의 때를 살아가는 것도 그들이 희년 대사를 얻는 방법이 됩니다. 수인은 감방 문지방을 넘어갈 때마다 하느님 아버지를 생각하고 기도를 드린다면, 그 또한 성문을 지나가는 상징이 될 것입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 대사에 관한 교황 서한). [평화신문, 2015년 12월 20일, 김원철 기자]


교구별 희년살이와 희년 순례성당 및 성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8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성문(聖門)을 열어 자비의 특별 희년 개막을 선포했다. 한국 교회 대다수 교구도 13일 주교좌 성당의 성문을 열고 본격적인 희년 살이에 들어갔다. 

전국 교구는 희년 기간 신자들이 하느님 자비를 체험하고 전할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먼저 신자들이 전대사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상설 고해소를 개설하는 한편 자비의 특별 희년 순례 성당 및 성지를 지정했다.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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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교황청이 준비한 주요 행사 일정에 맞춰 다채로운 희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교구별로 눈에 띄는 희년 일정을 모아봤다. 

참고로 주교회의 누리집(www.cbck.or.kr) 초기 화면에 있는 ‘자비의 희년’ 소개 방에 들어가면 교구별 순례 성당 위치와 상설 고해소 현황을 비롯해 자비의 특별 희년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대교구는 18일 명동대성당 마당에 특별 고해소 30개를 설치하고 젊은이를 대상으로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또 별도로 제작한 ‘자비의 희년 기도문’과 함께 본당에서 강론이나 공지사항 시간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요약본을 배포했다. 병인박해 포고령의 날인 2월 23일에는 병인박해 관련 성지인 서소문ㆍ새남터ㆍ절두산 순교성지에서 성문 개방 예식을 거행한다. 

대구대교구는 ‘생명사랑 장려금’(가칭)을 신설하고 다자녀 가정을 지원한다. 또 본당의 교구 납부금도 탕감해주기로 했다. 본당 사제들에게는 신자들의 밀린 교무금을 탕감해 줄 것을 권고했다. 

광주대교구는 희년 전반에 걸쳐 ‘자비의 희년 공소 순회 피정’을 실시한다. 교구 사회복지회는 희년 기간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기 프로젝트’를 통해 매월 한 명씩 도움이 필요한 이의 사례를 소개한 뒤 신자들의 자선과 봉사를 독려할 계획이다.

인천교구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해 ‘전대사를 얻기 위한 9일 기도’ 책자를 발간하는 한편 신자들에게는 판공성사와 참회예절을 위한 자비의 특별 희년 자료를 제공한다. 또 지구별로 고해성사의 날을 실시하기로 했다. 

대전교구는 교구 자비의 특별 희년을 시작하면서 8일 교구 시노드에 돌입했다. 교구 설정 70주년을 맞는 2018년까지 3년간 교구 공동체의 쇄신과 변화를 위해 교구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는 ‘함께하는 여정’(시노드)에 들어간 것이다. 

청주교구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된 자비의 특별 희년 특강팀을 꾸려 1일 피정이나 특강 방식으로 자비의 특별 희년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하느님 자비의 체험을 들려줄 계획이다. 

춘천교구는 교구 성당과 사적지 순례를 돕는 ‘본당 순례 수첩’을 펴냈다. 수첩은 춘천교구 60개 성당과 5개 사적지 소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안한 자비의 실천 방안과 기도문, 춘천교구 순교자 시복시성 기원 기도문, 선교를 위한 기도문 등을 담았다. 순례 소감을 적고 확인 도장을 적는 난도 마련했다.

원주교구는 원동주교좌성당에서 매달 첫 목요일 저녁 미사 후 성체현시와 성체강복을 한다. 또 매주 금요일 오후 3∼5시 상설 고해소를 연다.

전주교구는 ‘자비의 특별 희년 맞이 성음악제’를 11월 20일과 29일 전주 중앙성당과 익산 솜리 예술회관에서 각각 열었다. 일반 신자들을 위한 「자비의 얼굴」 강독 자료를 냈으며, 교황청에서 발표한 자비의 희년 공식 성가를 한국어로 녹음한 MP3 음원을 배포하는 등 사목 일선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을 공급하고 있다. 

안동교구는 희년 과제로 ‘아버지 품을 떠난 작은아들 찾기 운동’에 나선다. 신자들이 먼저 하느님 자비를 배우고 익힘으로써 교회를 떠나 이산가족처럼 살고 있는 냉담교우들이 자비를 체험하고 돌아오게 하자는 취지다.

군종교구는 희년 기간 신자들이 미사 전후에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자비의 특별 희년 기도문 상본을 제작해 본당에 배포한다. [평화신문, 2015년 12월 20일, 남정률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자비의 특별 희년
개막 미사 강론


잠시 후에 저는 자비의 성문을 여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방금 들은 은총의 수위성을 강조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이 소박한 상징적 행위를 제가 이미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방기(Bangui)에서 했던 것처럼 거행합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는 놀라 두려워하는 젊은 처녀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한 말이 여러 차례 언급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그 처녀를 곧 감싸게 될 신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루카 1,28). 

동정 마리아께서는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당신 안에서 행하신 일에 대하여 기뻐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마리아를 감싸며 마리아께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어 마땅한 분이 되시도록 해주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의 집에 들어왔을 때, 마리아께는 이성의 능력을 초월하는 가장 심오한 신비조차 기쁨의 이유, 믿음의 이유, 당신에게 계시된 메시지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길 수 있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가득한 은총은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 있고, 그 마음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정도의 큰일을 이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은 하느님 사랑의 위대함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지니게 되는 원죄까지도 마리아를 통하여 막아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막아주고 선취하며 구원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죄의 역사가 구원으로 이끄는 사랑의 계획으로 극복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은 우리가 개인적인 삶에서 쌓는 일상적 경험을 반영합니다. 하느님의 뜻과 무관하게 우리의 삶을 계획하려는 욕망으로 나타나는 불순종의 유혹이 늘 존재합니다. 이는 인간들이 하느님의 계획을 거스르도록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증오입니다. 그러나 죄의 역사는 오직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에 비추어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죄는 이 빛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으로 모든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 안에 감싸여 있음에도, 모든 것을 죄에 맡겨버리고 만다면, 우리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절망적인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들은 하느님 말씀은 이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도록 해줍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이러한 약속과 그 완성의 탁월하신 증인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이 특별 희년 또한 은총의 선물입니다. [자비의]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든 이를 환대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깊이를 다시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찾으십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는 하느님 자비를 더욱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자비로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음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하느님의 심판으로 죄에 대한 벌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면 하느님과 그 자비에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까!(성 아우구스티노, 「성도들의 예정론」[De Praedestinatione Sanctorum], 12,24 참조) 정말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심판보다 자비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경우든지 늘 그 자비에 비추어 하느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비의]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러한 사랑의 신비, 온유함의 신비에 참여하게 됨을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버리도록 합시다. 이는 사랑받는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은총을 만나는 기쁨을 경험하도록 합시다. 

오늘 여기 로마에서 그리고 세계의 모든 교구에서 또한 우리는 [자비의]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50년 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께서 이 세상에 활짝 열어주신 또 다른 문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의 위대한 발전을 확인하도록 해주는 부요한 공의회 문헌들로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폐막을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그 공의회는 그 무엇보다도 만남이었습니다. 참으로 교회와 우리 시대 모든 이의 만남이었던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만남에 작용하시어 당신의 교회가 여러 해 동안 자기 안에 갇혀 있던 정체에서 벗어나 열정적으로 선교 여정에 다시 나설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삶의 자리, 곧 자신의 도시, 가정, 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들을 만나러 가서 복음의 기쁨과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다시 똑같은 힘과 열정으로 이 선교의 투지를 이어나갑니다. 이 희년은 우리에게 이러한 개방을 촉구하며 바오로 6세 복자께서 공의회 폐막 메시지에서 권유하신 것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나타났던 정신, 곧 [착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요청합니다. 오늘 우리가 [자비의]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자비를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2015년 12월 8일 화요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