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배성사도 무상 아닌가요?

[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평소에는 별로 관심 없이 지내 왔는데, 이번 속풀이 질문을 받고 꼼꼼히 따져 보았습니다. 세례부터 시작해서 제가 받은 성사를 위해 특정한 비용을 냈던 기억은 없더군요. 세례성사를 받을 때? 제가 낸 돈은 없습니다. 부모님이 내셨으면 모를까. 성체성사? 무료입니다. 혹시 미사 헌금을 의심하는 분들은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평일 미사 때 헌금 없는 거 보면 성체성사는 유료로 거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견진성사? 돈 낸 기억 없지요. 고백성사? 당연히 무료죠. 성품성사? 수도회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 줬죠. 혼배성사? 제가 신경 쓸 사항은 아닙니다. 병자성사요? 병자성사에 가서 요금 받으란 걸 배워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 경험에 의하면 모든 성사는 무상으로 집행되는 것입니다. 교회법에도 성사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속풀이를 물어 오신 분은 실제적으로 특정한 성사를 위해서는 부담스런 비용이 요구된다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추측하시겠지만, 그 성사는 다름 아닌 혼배성사이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이에 대해 언급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출처는 바로 평화방송의 보도였습니다. 물론 바티칸 티브이의 보도를 평화방송이 인용한 것이지요. 검색한 "PBC TV"(평화방송 티브이) 블로그에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는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식, 그리고 심지어 세례식에까지 돈을 요구하고 있는 세태에 대해 경고하시는 교황의 강한 어조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2014년 11월 21일 주례하시던 미사에서 교황께서 직접 언급하신 말씀이 뉴스로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뉴스 기사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거나 세례를 줄 때 절대 돈을 받아서는 안 되며 돈에 애착을 느끼는 사제는 용서할 수 없다”고 교황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접하면서, 저는 속으로 움찔했습니다. 왜냐하면 혼배미사를 주례하고 나면 혼주님들이 주시는, 소위 ‘미사예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속된 수도회의 행동양식을 통해 배운 원칙은, 사도직은 기본적으로 무상으로 임한다. 즉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도직 현장에서 혹시나 답례로 주는 보수가 생기면 받아서 공동체에 귀속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미사 뒤에 사람들이 예물 봉투를 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라도 연락이 와서 답례를 하시더군요.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해 별 고민 없이 지내 오다가 교황님 말씀 앞에서 성찰을 하게 된 것이지요.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혼배 장소이용료를 받지 않는 걸 말하나? 아니면 혼배미사 예물을 받지 않는 걸 말하는 걸까? 아니면.... 둘 다? 혼배 장소이용료는 그렇다고 치고, 미사예물은 혼주들이 통상 봉헌해 주시는 것 아닌가? 고민하는 걸 어려워하는 제게는, 그냥 혼배를 하는 이들이 주고 싶으면 주고, 아니면 말고. 이런 식으로 결정을 그들에게 넘겨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혼배자금이 빠듯한 사람들은 내기 힘들 테니까요.


본당을 담당하고 계신 사제들은 이 사안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게도 담당 본당이 있다면, 고민은 훨씬 현실적일 겁니다. 그러나 교황님 말씀을 실천해 보는 것도 아주 어렵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 본당에 소속된 신자가 결혼할 때는 모두 무상으로 혼배성사를 도와주고, 타 본당 신자라면 행사를 치르고 나서 본당을 정리하는 데 드는 비용(화환, 쓰레기 처리비 등)만 받고, 나머지는 무상으로 베풀어 주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결혼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결혼식은 포기하고 살아가는 부부들이 적잖다고 들었습니다. 지역 본당이 그들을 축복해 주고, 신앙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선물로 대가 없이 혼배성사를 베풀어 줄 수 있다면 더 훈훈한 공동체가 될 것 같네요. 게다가 하느님이 주시는 무상의 사랑이 드러나야 하는 성사의 의미가 실제적으로 더 온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요.


앞으로는 제게 혼배미사를 부탁하는 친구들에게, 제게 주려는 미사예물은 포기하라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해야겠습니다. 인생의 또 한 장을 새롭게 여는 이들에게 더 값진 선물을 주는 일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