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배 성사 때 누가 먼저 들어오든 상관없다?

[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봄바람 불고 대기에서 찬 기운이 떠나간 뒤로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혼배 성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네 번의 혼배 미사에 참여했는데, 그중 저 혼자 단독으로 미사를 진행해 본 경우는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신랑이나 신부와 알고 지내 온, 혹은 그들 부모와 알고 지내 온 여러 명의 사제들이 우정 차원에서 함께 미사를 진행했었던 것이지요. 그만큼 혼인한 부부 혹은 그들 가족이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이었다는 반증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제가 함께 혼배미사를 집전하다 보니, 저 개인적으로 평소에 궁금하긴 했으나 그냥 어물쩍 넘기고 있던 질문을 한 사제께서 물어 왔는데, 그것은 혼배 미사 시작 입당 부분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을 정확히 하자면, 혼배미사 입당 때, 사제가 먼저 입장하는 것인지 신랑신부가 먼저 입장하는 것인지 지침이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흠.... 경험상 제가 아는 답은 사제가 먼저 입장하여 신랑과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랑 신부가 먼저 입장하고 나중에 사제가 입장했던 적도 있었지요. 그러니까 저는 원칙을 검토하기보다는 습관적으로 해설자의 안내에 맞춰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주례자로 오신 신부님이 교회법 전문가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정확한 근거와 답이 나왔습니다. 전례와 관련된 지침은 해당하는 전례 예식서를 따르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혼인 예식에 관한 것은 "혼인성사 예식서”가 지침을 보여 줍니다. 특히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 각 예식서에서 빨간색 글씨로 적혀 있는 지시문입니다. 그 주례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교회법전에서는 전례에 관한 법을 다루지 않기에 전례에 관한 법은 예식서를 따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그 빨간색 글씨의 지침을 우리는, 색 때문에 라틴어로 rubrica(어원적으로 빨간색을 뜻합니다)라고 합니다. rubrique(프랑스어), rubric(영어) 등을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전례법규, 전례집행규정, 지침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현재 사용하고 있는 혼인 예식서 45항에 빨간 글씨로, “정한 시간에, 사제는 ... 봉사자들과 함께 성당 문으로 나아간다. 사제는 문에서 정혼자들을 맞이하여 반갑게 인사를 함으로써 교회도 함께 기뻐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어서 봉사자들, 사제, 그리고 정혼자들이 차례로 제대를 향하여 행렬한다. 지역 관습에 따라 부모와 두 증인이 그들을 위하여 마련된 장소에 이르기까지 정혼자들과 함께 행렬할 수 있다. 그동안 입당송을 한다."(46항) “사제는 제대로 나아가 허리를 굽혀 절한 다음 주례석으로 간다.”(47항)


자, 그러니 누가 먼저 성당에 들어오는 건가요? 비록 편의상, 앞서 제시한 행렬까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입당할 때에 기본적인 분위기는 교회가 정혼자들을 환영한다는 태도가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제가 먼저 입당하여 정혼자들을 맞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이것과 반대의 경우, 곧 신랑신부가 먼저 들어오고 입당 성가가 나오면 사제가 등장하는 것은 혼인 예식이 지닌 풍부한 환대의 정신을 방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세례성사를 행할 때도, 사제가 성당 문 앞에 세례대상자들을 만나서 인사하고 성당 안으로 이끌어 들어오는 것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교회가 당신들을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한 공동체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회원들은 전례에 무지하고 무시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너무 간단히 일반화한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통이 보여 주는 예식의 풍성한 의미가 편의를 지향하는 풍조로 인해 퇴색하지 않도록 신경 쓰며 살아가는 예수회원들이 저만 아니라 제 주변에 제법 있으니까요. 속풀이 독자 분들도 예식에 참여할 때, 그 의미를 잘 되새겨 보신다면, 이 삶의 풍요로움에 한 번 더 감사드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