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죄가 뭐지요?

[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고백실 안에서 아주 일반적으로 듣게 되는 사연 중에 지배적인 것은 ‘분노’ 혹은 ‘미움’이라는 정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느끼고, 실제로 그것에 대한 반응을 부정적으로 했을 때 양심에 비춰 미안함이나 후회,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고백실에서 다뤄지는 것은 이런 느낌의 배경(어찌 어찌 하여), 과정(어떤 일을 벌였으며), 결과(지금은 기분이 이러저러하다)라고 하겠습니다.


가족, 친구, 이웃 사이에 늘 발생할 수 있는 이런 느낌은 우리가 서로 같지 않다는 존재론적인 배경을 설명해 줍니다. 정말이지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그만큼 자연스런 것이니 건강하게 표현하도록 의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에게 분노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을 향해 정확하게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면, 그것이 건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백실에서 주제가 될 것은 분노가 건강하게 표현되지 못한 경우와 관련 있다고 하겠습니다. 과도한 보복이나 뒷담화, 혹은 분노를 억제한 결과로 일어나는 마음의 병 등을 다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주제 중 특별한 것 하나가 있다면, 독성(瀆聖)에 관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즉, 하느님으로부터 성별된 사람인 성직자나 하느님께 삶을 봉헌한 수도자가 미워서 이들에게 불만과 부적절한 표현을 하게 된 사연들을 종종 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조금 아는 신자분들은 이럴 때, 보통 독성죄를 범했다고 판단합니다. 실제로, ‘이거 독성죄 아닌가요?' 하고 물어오신 분이 있어서 한 번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정의하는, “독성이란, 거룩한 것을 의식적으로 모독하는 행위로 경신덕(敬神德)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태도를 거스르는 것이고 따라서 이런 행위를 했을 때, 독성죄를 범한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거룩한 것이란 하느님에게 속하는 것으로 하느님과 하느님을 위해 바쳐진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다시 “독성은 사람에 대한 독성, 장소에 대한 독성, 물건에 대한 독성”으로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사람에 대한 독성이란 첫째, 성직자나 수도자를 폭행하는 행위, 둘째, 이들을 정당한 이유나 고위성직자에게서 허락을 받지 않고 세속 법정에 고소하는 행위, 셋째, 성직자나 정결서원을 한 수도자와 제6계를 범하는 행위를 할 때 성립”됩니다. 아시다시피 제6계명은 성관계와 관련됩니다.


그리고, “장소에 대한 독성이란 축성 혹은 강복된 성당과 교회묘지에서 살인, 상해, 음행, 상행위(商行爲), 파괴, 약탈, 방화, 동식물 방치 등의 행위를 할 때 성립”됩니다.


마지막으로, “물건에 대한 독성은 미사용 제구(성작, 성반, 성체보, 성작수건 등), 성경, 성해(聖骸), 제의(祭衣), 성상(聖像) 등 하느님께 봉헌된 물건을 세속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와, 그 외에 “대죄(大罪)를 지은 사람이 성체성사를 받거나, 성직을 매매할 때” 역시 독성이 됩니다. 참고로, 성체 자체를 모독하는 경우에는 파문을 당하게 됩니다(이에 대해서는 “매튜 폭스는 파문당했나”도 참고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때 대죄가 어떤 것이라고 교회법상 명시된 내용은 없지만, 예를 들자면, 대죄를 짓는 자들은 “온갖 불의와 사악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있고,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사기와 악덕으로 그득합니다. 그들은 험담꾼이고, 중상꾼이며, 하느님을 미워하는 자고, 불손하고 오만한 자며, 허풍쟁이고 모략꾼이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며, 우둔하고 신의가 없으며 비정하고 무자비한 자입니다.”(로마 1,29-31) 바오로 사도는 이런 짓들을 저지르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와같은 태도로 살면서 고해성사를 통해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없는 자가 성체를 모신다거나 하는 것이 독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해 본 내용을 통해 볼 때, 단순히 어떤 성직자나 수도자가 하는 짓이 미워서 그를 향해 욕을 한다거나 험담을 하는 것은 엄밀히 독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을지 몰라도 그 상태만으로는 독성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내게 밉게 행동한 누군가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방식(폭행)으로 드러난다면, 독성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반대로, 미워하기는 커녕 너무 사랑해서 여섯번째 계명에 해당하는 사항을 건드려도 마찬가지 결과가 되는 것이고요.


그러니 어느 사목자 때문에 분노를 느낀다면, 용기를 내서 그 사목자를 직접 대면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그의 무엇때문에 분노를 느끼는지를 설명해 보는 것입니다. 보통 말과 행동이 따로 가는 사목자, 사목현장의 능률과 이익만 이야기하는 경영인 타입의 사목자,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생각 않는 차가운 사목자 등이 우리를 화나게 합니다. 그들의 모습이 우리가 복음을 통해 본 예수님의 모습과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내 안에 올라오는 아쉬움을 이야기하고,(사목자의 잘못을 조목조목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본당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여기 저기 다른 성당으로 떠도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재미도 누릴만 합니다. 보이는 문제를 그냥 덮어 놓는 일이 공동체를 더 병약하게 만듭니다. 개인도 불만을 쌓아둘 때, 언젠가는 그것이 그에게 병을 안겨다 줍니다. 물론, 친한 교우들과 뒷담화하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엔 도움이 될 것입니다만, 그것은 건강하게 분노를 드러내는 방법이 아니니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정도의 기회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내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그때는 사목자와 면담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돌아보시고, 특별히 분노를 느낀다면 그것을 건강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청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