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대는 원래 다양한 건가요?

[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고, 이에 대해 근래 들어 매우 쉽게 접하게 되는 현실 중 하나가 있다면, 고용과 관련된 가슴 아픈 사정들입니다. 불법해고가 자행되고 있고, 좀 더 체계적인 고용안전망이나 복지 제도를 고민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을 확장하고 경쟁은 계속 부추기는 형국입니다.


이윤만 추구하고 함께 나누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는 세태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답답해서 피워 문 담뱃값마저 갑자기 몇 천 원이 껑충 뛰어 버렸습니다. 해고, 불안한 일자리, 도시 정비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밀어붙이는 폭력적 철거....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꾸릴 수 있는 환경에서 밀려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채 사회의 밑바닥으로 점점 가라앉아 갑니다. 양극화라고 하면 어쩐지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서로 편이 갈린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말이 양극화지 사실상 부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들 몇 명과 점점 불어나는 빈민층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전망이 되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이 현실을 그냥 관망만 할 수 없어서 적잖은(그렇다고 많다고 할 수도 없는) 성직자들이 거리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을 찾아다닙니다.


언제부터인가 성전이 아닌 거리에서 봉헌되는 미사가 많아진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비극이 그만큼 늘어났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부조리한 경쟁과 기업의 부도덕한 욕망의 희생자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미는 행동은 숭고하고 큰 힘이 됩니다만, 이렇게 만난 이들을 다음에는 이런 일로 만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울고 있는 이들과 함께 울어 주고 위안과 희망을 주려는 거리의 성직자들, 신자들과 시민들이 어울리다 보니 기적같이 힘을 얻게 되고, 함께 웃는 일도 생깁니다. 사소한 질문들도 오가는데, 그중에 한 가지인 영대(라틴어 Stola)를 오늘 속풀이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거리에서 올리는 미사에 동참하는 사제들의 전례 복장 중에 영대의 색깔과 무늬에 대해 질문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기 때문입니다.


영대는 주교와 사제들이 전례를 수행할 때 가슴 앞으로 내려 걸치는 목도리 비슷한 길다란 천입니다. 동방전례에서는 그냥 늘어뜨려 걸치지 않고 가슴 부근에서 교차시킨 후 허리띠로 묶어 착용합니다. 부제들은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 아래쪽으로 내려 맵니다. 옛날 유럽의 칼잡이들이 칼집의 어깨 끈을 오른쪽 어깨에 걸고 칼집은 왼쪽 허리춤으로 매달고 다녔는데, 부제들은 그와 반대로 영대를 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폭력에 반대하고, 평화로이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에 봉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대는 어깨를 감싸는 숄(shawl) 혹은 목도리와 같은 의상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7세기경에 로마 가톨릭 교회에 도입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 이미 다른 지역 교회(“가톨릭 전례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에서도 사용된 듯 합니다. 초기는 숄처럼 폭이 넓었던 것이 점점 오늘날처럼 길고 10센티미터 안팎의 폭이 됐습니다.(제의 안쪽에 착용하는 영대는 그 폭이 더 좁습니다)


영대는 주교, 사제, 부제가 전례 행사를 거행하면서 착용하는 권위의 표지입니다(전례사전 참조). 그러니까 누가 그 전례를 거행하는지를 제의와 영대가 알려 주고 있는 것이지요.


영대는 아시다시피 전례시기에 맞춰서, 그리고 전례의 성격에 맞춰 색깔을 바꿔서 착용합니다. 영대의 색깔은 제의의 색깔에 맞춰 따라갑니다. 거리 미사에 나오는 사제들은 대부분 그냥 흰색의 (약식) 제의를 입지만, 정식으로 겉에 입는 제의(펼치면 반원형의 천)는 보통 네 가지 색으로 구분됩니다. 그러니까 영대도 보통 네 가지 색입니다.


우선, 백색은 기쁨과 관련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시기와 부활시기, 수난과 관련되지 않은 예수님의 축일, 성모 축일, 천사들, 순교자가 아닌 성인/성녀 축일에 착용합니다. 서품 미사와 새사제의 첫미사 때도 흰색을 입습니다. 다음으로, 홍색이 있습니다. 홍색은 피와 열정을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성금요일 성령 강림 대축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순교자들의 축일,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의 축일에 사용합니다. 그리고 녹색은 생명, 희망, 영생을 상징하며 연중 시기를 위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색이 있습니다. 자색은 참회와 보속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순절과 대림절, 그리고 고백성사 때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장례미사를 위해 흑색을 입기도 했습니다만, 요즘은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부활이기에 흰색을 입습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장미색과 금색도 있는데, 이 색은 사순 제4주일, 대림 제3주일에 착용할 수 있습니다. 엄격한 보속 중에 부활과 성탄이 멀지 않은 시점에서 휴식과 기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금색은 미사의 성대함을 보여 주고 백색, 홍색, 녹색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색을 구비하지 못했을 때는 그냥 백색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천주교 용어사전, “제의색” 항 참조)


자주, 거리로 혹은 스카우트 대원들 따라 야영장으로 다니다보니 꾀가 생겼습니다. 모든 색이 다 들어 있는 영대를 들고 나가면 색 구분 하느라 신경 안 써도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식 제의 한 벌, 컬러풀한 영대 하나가 늘 가방 안에 있고 시간 나는 대로 거리로 나섭니다. 이런 저에게 현장에서 만난 벗들이 붙여 준 별명이 하나 생겼습니다. 무지개 신부라고요. 매우 고마운 이름이고, 늘 함께 있어 달라는 초대로 알아듣고 있습니다.


같은 색의 영대라도 각자 다양한 문양의 장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리의 미사 풍경에서는 공동집전하는 여러 명의 사제들을 통해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안에 다양함과 일치된 정신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이 사회가 지향해야 할 환경이라고 할 것입니다. 다양함과 일치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며 거리의 사제들은, 그리고 전례에 참여하는 모든 신앙인들은 그런 세계를 꿈꾸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모순되고 비정한 사회에 대해 분노를 토로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짓는 이들과 만나는 곳에서 놀랍게도 신앙인들은 성령께서 움직이시는 것을 확인한 셈입니다. 영대를 통해서 말이지요. 성령이 통치하는 세계로 함께 가자고 초대하오니 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