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미사 강론] 자비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죄인임을 아십시오[2017년 9월 21일 목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글쓴이 :  Fran.님이 2017-10-07 09:33:15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96)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7.index.html

------------------------------------------------------------------------------

[교황님 강론 날짜] 2017년 9월 21일 목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에페소서 4,1-7.11-13

                                         화답송 : 시편 19(18),2-3.4-5ㄱㄴ(◎ 5ㄱ)

                                          복음 : 마태오 복음 9,9-13

                                             http://i.catholic.or.kr/missa/?missaid=8332&gomonth=2017-09-21&missatype=DA

--------------------------------------------------------------------------------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죄인임을 아십시오.

                                      http://www.news.va/en/news/pope-francis-if-you-want-mercy-know-that-you-are-s

 

2017-09-21 바티칸 라디오

 (바티칸 라디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목요일 –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미사에서 바티칸 까사 산타 마르타 예배당에서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직접 서술한 성 마태오의 회심과 제자로의 부르심이 담겨있는 그날의 말씀을 따라 강론하면서 교황 성하는 그 이야기의 세가지 단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즉, 부르심, 잔치, 그리고 비방.

예수님께서 막 중풍병자를 고쳐 주시고 나서 그때 세관에 앉아 있던 새리 마태오를 만났습니다. 그는 새리였기에 유대인 권위자들로부터 경멸을 받았고 그의 조국과 국민들에게는 배신자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

카라바조의 그 장면에 대한 유명한 회화 묘사를 떠올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태오가 한쪽 눈으로 우리의 구세주를 “곁눈질하는 표정”, 그리고 다른 한쪽 눈으로는 자신의 주머니를 보고 있는 모습에 대해 말했습니다. 노골적으로 공격적이지 않지만 쌀쌀맞기조차 한 표정. 그리고 그때 예수님의 너무나도 자비로운 눈빛이 있었습니다. 그 눈빛은 돈을 원했던 그 남자 마태오의 저항을 “실패”하게 할만큼 그토록 압도적인 사랑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자비와 죄 사이에서의 싸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 남자 마태오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에게서도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을, 심지어 경멸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자비를 향해 문을 열었던 것”은 바로 ”죄 많은 양심”이었습니다. 그렇게 “[마태오]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을 함께 새로운 여정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죄인과 예수님의 만남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위험에 처한 자기 자신을 느끼는 것. 그것이 치유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즉, 아프다고 느끼는 것. 죄가 많다고 느끼는 것이 자비의 눈길을 받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토록 아름다우시고 그토록 착하시고 그토록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표정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위에서 이러한 표정을 느낍니다. 그것은 사랑의 표정입니다. 그것은 자비의 눈길, 우리를 구원하시는 눈길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캐오처럼 마태오는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예수님을 집에 오셔서 음식을 드시라고 초대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바로 “잔치”입니다. 축제 같은 것입니다. 마태오는 친구들, “같은 업종의 사람들”, 죄인들과 세관들을 초대했습니다.

교황이 이것은 루카복음 15장의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 성부 아버지의 만남의 잔치, 자비의 연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수님께서는 자비, 모든 이를 위한 자비에 아낌이 없으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 번째 순간, 비방 험담의 순간이 옵니다.

교황이 설명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세관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과 식탁에 함께 하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이렇게 “언제나 비방은 이 문구로 시작됩니다. 즉, ‘하지만 어째서 (…}인가?’”. 교황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문장을 듣는 다면, 그건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방이 이어집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율법을 따르지 않는 불순함”으로 비방을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매우 잘 알았고 “하느님 나라의 길”에 어떻게 들어 서는지 알고 있었고, “모든 일들이 어떻게 되어져야 하는 것인지 다른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계명, 사랑의 계명을 잊었습니다.” 이렇게 “희생 제물의 우리에 갇혀 버렸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지만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드리자,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하자, “그리하여 우리는 구원 받았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구원은 자기 자신들에게서 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닙니다” 교황이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 ‘어째서 {…} 인가’, 가톨릭 신자들이 자비의 일을 보았을 때 우리는 참으로 자주 이 말을 가톨릭 신자들에게서 들어 왔습니다. 어째서? 예수님께서는 명료하십니다. 그분은 매우 분명하십니다. ‘가서 배워라’ 그분께서는 그들을 배우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렇지요?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기를 원한다면 당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자비를 받으려면 당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추상적인 의미의 “죄”에서 유죄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죄”에서 유죄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했습니다. 즉 너무나 많이 “우리 모두는 죄를 지어 왔습니다.” 교황이 말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자비로운 눈길로 보시는 예수님을 바라 봅시다.” 교황이 계속 말했습니다.

계속 비방과 험담에 대해 묵상하면서 너무나 많은 비방과 험담들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너무나 많고 많은-그리고 항상 비방과 험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합니다, ‘아니야, 너는 할 수 없어. 그건 완전히 분명한 거야, 그건 완전히 명백해, 안돼, 안돼 – 그들은 죄인들이야, 우리는 그들을 쫓아 버려야 해.’ 많은 성인들이 또한 박해를 받거나 의심을 받아 왔습니다. 사람들이 마녀라고 생각하고 비난했기에 화형대에 보내진 성 요안나(쟌다르크)를 우리는 생각합니다. 성녀! 이단이라고 의심 받은 성 데레사를 생각하십시오, Bl. 안토니오 로스미니[역자 주:세르바띠(1797~1855). 이탈리아 철학자, 애덕회(Instituto della Carità)의 창시자.]를 생각하십니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는 문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 (우리가) 죄인이라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 그리고 나서 그분께서 오시고 그리고 우리가 만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바티칸 라디오에서 퍼 온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