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1


사회교리의 연장선인 최초의 생태 회칙


“이번 총회에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 협약이 타결되면 미래세대에 평화를 보장하고 난민 숫자도 줄어들 것이다.”


앞에 인용한 말은 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개회사에서 주최국인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생태계 파괴가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좌우할 상황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총회는 지구의 온도 상승 폭을 2도시(C) 이내로 제한하고자 회원국들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협의의 자리였다. 선진국과 개도국이 의견 차이를 보이며 진행된 이번 회의는 생태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196개 당사국 대표와 국제기구를 비롯한 산업계와 시민사회 대표 등 4만여 명이 참석한 규모가 보여주듯, 생태 문제는 특정 독립 분야의 문제나 한 국가와 대륙의 문제가 아니며, 한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생태 문제는 많은 세대에 걸친 영향이 축적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관, 생활양식이 총망라되는 집약점이며, 인류 발전이라는 화살의 화살촉에 해당한다. 환경과 관련한 정책이나 사업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보면 사회, 정치, 경제 정책의 오늘과 내일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011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를 차지하며 매우 낮은 대체에너지 비율을 갖는 우리나라는 전 국민과 교회의 반성과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 연재를 시작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6월 18일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이라는 부제를 단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였다.


분명히 이번 회칙은 생태 문제를 중심으로 교회 밖의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모든 분야의 개선과 인식 전환을 통한 변화를 찾는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그리스 정교회 존 지지울라스 대주교 뿐 아니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세계 지도자들이 지지성명을 발표하였고, 유수한 환경 관련 기구들이 환영하였다.


선진국 내 보수적인 단체들과 관련 업계의 반발도 있었지만,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인간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자세의 반성과 전 세계의 연대를 통해 해결하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극히 일부에서 이번 회칙의 일부 구절만 강조하거나 인용하며 회칙이 이전까지 발표된 사회교리 문헌과 큰 차이나 구별이 되는 주장이 있는 것처럼 잘못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하기에 「찬미받으소서」가 생태 문제를 다룬 최초의 회칙이지만 교회의 사회교리나 환경 관련 문헌들과 비교할 때 분명히 연속성 안에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연대성’과 ‘공동선’ 그리고 ‘보조성의 원리’를 주축으로 전개되는 사회교리의 연장선에 있으며, 지금까지 환경과 관련하여 보여준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속성과 함께 회칙의 전체적 이해를 통해 세부 항목에 접근한다면 더욱 풍부하고 실천적인 이해와 행동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따라 교회와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회칙의 전체적 구성을 개괄적으로 조망하고 다달이 한 부분씩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학문적이라기보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인 삶과 사목의 지평에서 접근하여 ‘사회교리’와 ‘회심’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래서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정리하려고 한다. 아울러, 세계 각 교회와 우리나라 교구들의 회칙 관련 활동도 부분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회칙의 출발점과 구성


교황청이 밝힌 것처럼, 회칙의 밑바탕에 깔린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이다. 이 질문은 결코 부분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또한 환경만을 따로 떼어놓고 던질 수 있는 질문도 아니다.


이러한 질문 자체가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세상에 온 목적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지에 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 전체와 개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의미, 그리고 가치에 관한 고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안의 우리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을 그 물음과 방향전환의 자리에 초대하고 있다.


회칙은 6개의 장으로 나누어 전개된다. 우리의 환경파괴 현실을 파악하고(1장), 유다-그리스도교 전통과 성경을 분석하며 피조물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돌아보도록 한다(2장).


또한 기술 관료제가 가진 문제의 뿌리를 살펴보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자세를 분석한다(3장). 회칙은 통합적 생태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며(4장), 실제적인 접근법과 행동양식을 제안한다(5장).


마지막으로 교황은 우리 모두를 회심의 자리로 초대한다(6장). 구체적인 교육과 훈련의 장에서 어떻게 우리 삶의 습관과 행동을 개선해 갈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처럼 회칙은 문제의 진단, 신학적 성찰, 대안과 방법의 제시로 구성된다.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회칙


회칙을 자세히 분석하면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타원과 같은 구조가 감지된다. 현재의 위기가 해결되는 실질적 변화를 희망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교회는 생태문제의 진단이나 신학적 성찰을 진행하면서 지금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가치관을 버리고, 전일적인 생태계에 입각한 가치관으로 전향할 것을 촉구한다. 여기서 두 개의 축이 나타난다.


첫 번째 축은 우리가 당연하고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며 행동하는 가치관의 비판이다. 회칙의 비판은 지금 현재의 상황이 우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결과적 집약물이라는 판단 아래 놓인다.


회칙에 따르면, 정의와 자연 모두를 무시하며 더 이상의 번영을 꿈꾼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시점에 다다랐다. 또한 현대인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도덕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이성적이지도 않은 모습이다. 가치관의 반성과 재정립을 통해 당면한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안하는 가운데 전 세계의 동참과 논의, 곧 변화의 행동을 요청하는 것이 이번 회칙의 궁극적 목표라고 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회칙에서 근대가 미신처럼 빠져드는 진보와 기술 관료적인 패러다임을 되돌아보기를 요청한다. 더불어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 없이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들을 되돌아보라고 촉구한다. 교황이 가장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기술 만능주의와 자유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환상이다.


회칙에 따르면, 이러한 허상적인 신념이 모두 작용한 결과, 우리는 내 앞에 놓인 무언가가 나의 사용을 위해 존재하는 가운데 현재의 구조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기대를 지닌 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발전과 번영, 자유와 행복의 원천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회칙은 이러한 가치관들로부터 돌아설 것을 제안하며 촉구한다. 그 대안이 통합적 생태관이다. 이는 창조로부터 서로에 대한 연대성과 책임감을 강조하며 과학과 기술이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되는 가치체계이다.


이 지점이 두 번째 축인, 지구까지로 확대된 상호 연결성과 이에 따른 상호 책임성이 놓이는 지점이다. 회칙의 첫 항목에서부터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을 인용하며 이를 명시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이며 어머니인 대지로 찬미받으소서. 저희를 돌보며 지켜주는 대지는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게 하나이다’”(1항).


회칙이 제시하는 상호 연결성과 책임성의 뿌리는 ‘창조’와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런데 연결성과 책임성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환경과 인간이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이지 않는다. 곧 ‘환경이냐, 인간이냐?’ 하는 선택 자체를 없애는 데에서 모든 논의가 출발한다.


그러나 결코 인간 중심을 포기하거나 ‘청지기’로서의 인간 이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또한 회칙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배려’라는 원칙을, 이전의 사회교리들을 통해 언급한 것과 같이, 환경파괴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들에게 가중되는 피해와 가장 약하고 가난한 형제로서 환경을 바라보는 점에서 적용한다. 이처럼 회칙은 사회교리의 견고한 축 위에 생태계 파괴의 진원과 해결을 위한 대안을 찾고, 논의를 전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생태문제를 주제로 다룬 역사상 첫 회칙인 「찬미받으소서」의 구성과 출발점, 그리고 그 축을 살펴보았다. 앞으로 다달이 각 장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이처럼 전체적인 구도를 먼저 바라보고 파악하는 것은, 각 장의 내용을 다루는 가운데 전체 그림을 놓칠 수 있는 실수를 피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이번 글을 포함해 앞으로 연재할 글이 회칙의 신학적 깊이와 선구자적인 실천 행동의 제안, 그리고 영성적 깊이가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생태문제에 대한 성찰과 환경운동의 성숙에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유흥식 라자로 주교 - 대전교구장,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1월호, 유흥식 라자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2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파리 기후협약 회의의 폐막을 지켜보며


지난해 12월 12일, 예정보다 하루 늦은 날에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가 최종 합의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이 합의문에서는, 지구 온도의 상승을 새 기후 변화의 체제에 대한 장기 목표로, 지구 평균 온도의 산업화 이전 대비 상승 폭을 2℃보다 훨씬 작게 제한하며 1.5℃를 넘지 않기로 했다.


합의문에 구체적인 온도가 제시될 만큼 지구 온난화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1℃ 상승한 수준이지만, 현재 상황을 그대로 두면 2100년에 4℃가량 상승하고 미국 뉴욕과 중국 상하이 등이 모두 수중 도시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사실 이상기온 현상과 기후 변화는 지난해 성탄의 기온을 생각해 보면 곧바로 실감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의 극심한 가뭄이 농민의 마음을 바짝 태웠고, 미국 뉴욕은 23℃의 성탄 전야를 경험했으며, 우리나라도 예년에 비해 많이 포근한 가운데 성탄을 지냈다.


2020년부터 발효될 이번 협약에서는 195개국 모두가 감축 의무를 지며, 선진국이 개도국에게 해마다 1천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것이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구를 구할 최선의 기회’이며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 온난화는 인류와 모든 생명체의 존폐가 걸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회칙 1장의 전개 구조


이번 글에서 살펴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제1장은 파리 기후협약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환경 파괴의 실상을 주로 다루는 제1장의 도입 부분에서 회칙은 이렇게 밝히며 시작한다. “오늘날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그러한 결과가 우리 마음 깊이 다가오게 하고, 이에 따른 윤리적 영적 여정을 위한 구체적 기초를 마련해 주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15항).


이 1장은 이어지는 장들의 논의 전개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다. 곧, 오염과 기후 · 식수 · 생물의 다양성을 중심으로 생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1-3장),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구조적이며 생활윤리적인 면에서 개략적인 반성의 틀을 놓고 있다(4-7장).


생태 파괴의 현실(I-III)


1장에서 다루는 생태 파괴의 실상 진단은 오염과 기후 변화, 식수 문제, 그리고 생물 다양성의 감소이다. 회칙은 이러한 파괴의 근본 원인에 소비 중심적 생활방식과 즉각적인 이익에만 눈이 먼 기술과 금융에 휘둘리는 정치가 있다고 연결시킨다. 또한 파괴의 피해가 무엇보다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된다는 점도 분명히 밝힌다.


오염과 기후 변화를 다루면서 회칙은 관계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기술과 생산과 소비문화의 변화를 연결한다. 회칙에 따르면, 오염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더 가난한 이들의 건강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실은 자연 생태계의 순환과정을 깊이 인식하지 않는 ‘버리는 문화’로 말미암아 더욱 악화된다.


이에 맞서 재생 불가능한 자원 사용을 최소화하고 소비를 절제하며 효율을 극대화하는 가운데, 재사용과 재활용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한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회칙이 ‘한정적인 효과’로 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치관의 대대적인 전환과 사회와 경제 구조의 변화가 병행되지 않는 한, 현재의 파국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염과 기후 변화


기후를 ‘모든 이의,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로 규정하는 회칙에서 기상이변 현상은 조심스럽게 온난화와 연결된다. 이는 현재의 기상이변을 지구 온도의 주기적인 변화설이나 지구 자체의 활동(화산, 궤도와 축의 변화 등)과 관련시켜서 해석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고려한 것으로 짐작된다.


회칙은 이어서 온난화를 악화시키는 근원을 온실가스로 규정하고, 화석연료의 사용과 열대림의 파괴를 구체적인 원인으로 제시하는 가운데 생산과 소비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구체적으로 에너지와 원료를 적게 사용하는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 건물의 건축과 개조 등이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먼워치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후 변화의 대응 지수를 평가했을 때 한국이 58개국 중에서 54위로 나타났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 9천만 톤으로 세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석탄 수입을 보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으며, 이렇게 수입하는 석탄의 많은 부분이 화력발전소에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산업체에 대한 전기료 지원정책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생산 방식은 저효율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2030년 배출 전망치 대비 37% 감소 이행을 제시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대로 이행되어도 지구의 온도는 3-4℃ 상승할 것이라며 더욱 강화된 에너지 정책의 개선을 요구하는 현실이다.


물의 문제


한편, 세계 물 부족 국가에 포함된 우리나라에서도 물 부족은 곧 경험하게 될 심각한 문제이다. 회칙에 따르면 물 문제는 교육과 문화의 문제이다(31항). 이와 관련하여 회칙은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며, 다른 인권을 행사하는 전제 조건이라고 천명한다. 이는 물을 시장논리에 지배되는 상품으로 유입시키는 민영화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며, 물을 마실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의 생명권을 고려한 주장이다.


생물 다양성의 감소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생태학자들이 주장했지만, 지구가 경험하고 있는 생물 멸종의 속도는,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에 따르면, 공룡의 멸종 시기인 6500만 년 전 이후 가장 빠른 속도에 해당한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200년이면 양서류의 41%, 조류의 13%, 포유류의 25%가 멸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 과학자는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물의 75% 이상이 사라지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적하는 생물 멸종의 주범은 서식지 파괴와 기후 변화 등 급격한 환경 변화와 관련이 있다.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해안가 주변의 주요 동식물 서식지가 사라지며 멸종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칙에 따르면, 생물종들은 중요한 미래 자원이며, 다양성은 환경 문제의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그러나 사라지는 생물종들을 위한 인간의 개입에 대해서 회칙의 입장은 환경 전문가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회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개입이 종종 기업의 이익과 소비주의를 위한 것이기에, 그 결과는 지구를 더 빈곤하고 추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회칙은 생태계 보호를 위해 앞을 멀리 내다보고 쉽고 빠른 금전적 이익만을 얻으려 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특히, 경작을 위해 열대림을 불태우거나, 단일 작물의 재배를 위한 처녀림 파괴 문제를 강력히 비난한다. 해양 생태계와 관련해서는 특정 어류의 남획과 산호초의 멸종을 경고하면서, 사랑과 존경으로 모든 피조물을 대하고 멸종 위기에 놓인 생물종을 가족처럼 보살피자고 촉구한다.


삶의 질 저하와 사회 붕괴, 세계적 불평등


회칙은 생태 파괴가 사회를 파괴시키며 그 원인과 결과의 영향의 측면에서 세계적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먼저, 회칙은 환경 파괴의 원인으로 앞서 지적했던 개발, 생산, 소비의 방식이 도시 집중에 따른 지나친 에너지와 물 낭비로 이어진다고 언급한다. 이어서 사회적 화합과 통합이 와해되는 현실을 최근 두 세기 동안의 급작스러운 발전이 보여준 병폐로 진단한다. 또한 자기 성찰과 대화, 참된 만남을 통한 지혜가 결여되어 가는 삶의 방식도 문제로 지적한다.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우울하고 외로운 감정들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관심을 기울일 것도 요청한다.


회칙은 1장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세계적 불평등’에 할애하면서, 환경과 사회의 파괴가 미치는 영향이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되는 점을 분명히 짚고 있다. 동시에, 원인 제공의 입장에서 남반구와 북반구 간의 상업적 불균형이 식량과 자원의 소비 불균형을 초래하며, 북반구에 거점을 두는 다국적 기업들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사업진행 과정에서 남반구의 수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점을 자세히 지적한다.


윤리와 삶의 방식이 변해야


파리 기후협약이 약소국들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강대국들의 지원금 지급을 의결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 문제는 회칙이 정확히 분석하고 제안하듯, 생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삶의 기반인 사회, 정치, 경제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적 성찰, 곧 윤리와 삶의 방식이 변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지평에서 회칙은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윤리가 어떻게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이어지는 부분들에서 자세하고 꼼꼼하게 전개한다.


* 유흥식 라자로 주교 - 대전교구장,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2월호, 유흥식 라자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3


제2장은 회칙 전체의 교두보


제1장에서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의 파괴 실상을 다룬 회칙은 이제 제2장을 통해 유다-그리스도교에서 나오는 원칙을 성찰하면서 인류에게 주어진 엄청난 책임감을 규명한다(90항 참조). 이로써 자연과 하느님에 대한 의무와 피조물 안에서의 책임이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그에 따른 생태적 의무를 더 잘 깨닫게 하려 한다. 이러한 성찰은 ‘상호 연결성’과 ‘책임감’이라는 회칙 전체의 축을 세우는 주요 대목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한 세계와의 대화


그리스도교 신자뿐 아니라 무신론자를 포함한 전 세계 선의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말하고 싶다고 분명하게 밝힌 회칙(3항 참조)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칙은이 질문에 응답하며 제2장을 시작한다.


먼저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우리가 파괴한 모든 것을 바로잡는 생태론을 발전시키고자 종교와 그 고유 언어를 포함하는 모든 학문 분야와 지혜가 배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63항 참조). 여기서 말하는 모든 학문 가운데 철학과 과학, 그중에서도 과학의 비중은 매우 크다. 회칙은 과학과 종교가 각자의 고유한 현실 접근방식으로 생산적이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상정하며, 제2장 전체를 통해 다른 종교들과 과학적 세계관과의 깊은 대화를 시도한다.


생태계 파괴의 주역이란 비판에 대한 방어


환경문제를 다루는 입장은 기술 중심주의, 인간 중심주의, 생태 중심주의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의 관건은 ‘누가’, ‘왜’, ‘어떻게’ 생태문제 해결의 책임을 맡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관한 답변이 그리스도교 신앙인에게 조심스러운 이유는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요 성서학자인 린 화이트(Lynn White Jr.)가 1967년 ‘생태 위기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논문을 통해 환경파괴의 원인이 유다-그리스도교의 인간 중심적 가치관, 곧 땅을 다스리라고 하는 성경 말씀에 담겨있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린 화이트는 하느님께서 첫 인간에게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과 이름을 붙이는 권한을 주심으로써, 인간이 다른 피조물보다 우위를 가지는 것을 정당화했다고 비판했다. 하느님의 명령을 담은 성경 구절이 인간의 목적 실현을 위한 자연의 착취를 합법화시켰다는 점이 그리스도교를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한 근거였다. 회칙은 이러한 비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반박하며 같은 구절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생태적 의무의 기초를 구축한다.


“사람들은 인간이 땅을 ‘지배’(창세 1,28)하게 했다는 말이 창세기에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인간을 본성적으로 지배적이고 파괴적인 존재로 묘사하면서 유다-그리스도교 사상이 무분별한 자연착취를 조장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교회가 이해한 바른 성경 해석이 아닙니다. …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우리에게 이 땅에 대한 지배가 부여되었다는 사실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강력하게 부인해야 합니다.


… ‘일구다’라는 말은 밭을 경작하고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하며, 감독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모든 공동체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풍요로운 땅에서 얻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보호하고 후손들을 위하여 이 땅이 계속해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절대적 소유에 대한 인간의 청구를 모두 거절하십니다”(67항).


“하느님께 속한 땅에 대한 책임은, 지성을 지닌 인간이 자연법과 이 세상의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교한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68항).


분명한 인간 중심주의 위에 세운 생태적 책임


회칙은 인간 중심주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중심주의를 분명히 드러내면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근거로 피조물이 지닌 고유한 선과 완전성이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인간의 생태적 책임을 강조한다. 회칙이 말하는 책임감은 창조의 지평에서 인간의 삶과 자연이 맺은 관계를 올바로 돌보는 형제애, 정의, 다른 이에 대한 충실함과 연결된다(70항 참조).


인간 중심주의를 견지함으로써 자연 안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주장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자연이 지닌 가치와 취약함을 동시에 인식하는 가운데(78항 참조), 인간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과 책임을 정교하게 정리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 중심주의를 탈피하여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를 중시하는 생태 중심주의의 경우, 인간 고유의 가치가 상실되거나 지구를 신격화함으로써 지구와 더불어 그 취약점을 돌보는 인간의 소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논리적 오류를 완벽하게 방어하는 것이다(89항 참조).


한편, 성경에 나타난 노아의 방주와 안식년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회칙이 제시하려는 원칙은, 땅과 맺은 관계에 균형과 공정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땅이 주는 모든 것이 모든 이에게 속해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회칙이 구원과 창조의 하느님 분리가 빚어낸 신학적 오류들을 바로잡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해방시키시며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그 권능에 대한 신뢰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가야 한다(73항 참조).


진화론과의 대화


창조와 구원의 이분법적 구도를 극복하려는 회칙은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진화론적 지평을 수용하는 동시에 창조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이해하고, 피조물 안에서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한다.


잘 알다시피, 진화론은 생물학적 이론으로서의 영향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물질과 정신의 경계, 그리고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정초할 근간이 사라진다는 점이 진화론이 함축하는 가장 큰 도전이다. ‘무질서로부터 질서가 저절로 나온다.’(카오스 이론)는 논리의 연장에서 정신과 인간의 출현을 설명하고, 모든 행동과 심리, 그리고 윤리를 같은 창을 통해 해석하기 때문이다.


회칙은 시편의 구절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저들이 창조되었다.”(148,5)를 인용하며, 혼돈으로부터 질서가 저절로 나타나는 과정으로 생명과 정신, 인간의 출현을 설명하는 카오스 이론과의 거리 유지로 시작한다. ‘혼돈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의 결단으로 만들어진 세계’임을 강조하고 있다(77항 참조).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당위성과 자연 그 자체가 신성을 가지지 않음을 동시에 규정함으로써(78항 참조) 자연 안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책임의 자리를 마련한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세계 안에서 모든 피조물은 자율성을 가지며,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의 그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으시면서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에 현존하시어 현세 사물의 합당한 자율성을 가져온다고 밝힌다. 하느님의 현존이 모든 존재의 생존과 성장을 보장하며 창조 사업을 이어간다는 말로, 진화론의 핵심을 수용하는 면모를 분명히 드러낸다.


모든 존재의 진보는 인간을 통하여 인간과 더불어 하느님의 초월적 충만 안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지성과 사랑이 부여된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이끌려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창조주께 인도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고 명확하게 선포하는 것이다(81항 참조).


창조된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생태적 임무


회칙은, 하느님의 현존이 머무르며(88항 참조) 다양성과 차별성을 지닌 자연과(86항 참조)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기반으로 피조물을 보호할 책임을 부여받은 인간의 자리를(90항 참조) 명확하게 규정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맡겨진 피조물에 대한 책임은 결코 자연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과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과 연결된다(91항 참조). 평화와 정의를 피조물 보호와 연결하여 생태적 임무를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온전히 실현하는 일로 귀결시키는 것이다.


회칙은 분명한 태도로 사유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고, 재화가 소수를 위한 사용이 아닌 하느님의 보편적 목적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천명한다. 특히 자연환경은 인류의 유산이며 공공재로서 사유화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바라본다.


회칙 제2장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한 논리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기술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 그리고 생태 중심주의의 비판으로부터 지켜낸다. 자연이 지닌 자기 조직적이며 창발적인 속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존재의 근원임을 밝힌 것이다. 또한 창조의 지평에서 자연과 인간의 형제적 관계를 규정할 뿐 아니라, 인간의 지위와 임무를 생태적 약자인 자연과 사회적 약자에게 적용하는 가운데 생태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의 공통적 요소를 드러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창조, 구원, 완성의 구도가 자연과 인간의 형제적 관계 안에서 이분법을 드러내지 않는 구도로 완결된다. 이어지는 장들은 이처럼 탄탄한 기반 위에서, 기술 중심주의의 여러 면모를 비판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한 생태론과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밝히는 회심으로 전개된다.


이런 의미에서 제2장은 회칙의 교두보이자 도약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


* 유흥식 라자로 주교 - 대전교구장,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3월호, 유흥식 라자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4


제3장 무엇이 생태계를 파괴시켰는가


회칙의 반환점인 제3장의 좌표와 구성


지금까지의 연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회칙은 제1장에서 지구에서 진행되는 생태계의 파괴양상을 고발하고, 제2장에서 그리스도인 신앙의 뿌리와 생태문제의 연관성을 정리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에 바탕을 둔 청지기 정신이 그 뿌리이며, 따라서 생태문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확고한 기반은 인간 중심주의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는 자연에 대한 지배적이며 독점적인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살피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도 알아보았다.


이제 회칙은 제3장에서 생태 위기의 근원을 분석한다. “인간의 삶과 활동을 이해하는 특정한 방식이 왜곡되어 현실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빗나가게 되었습니다”(101항). 이러한 잘못된 특정한 방식은 제3장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지배적인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과 ‘그릇된 인간 중심주의’이다.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의 문제점


과학기술 발전의 공로 인정


회칙은 기술 발전의 공로와 인간에게 선사한 혜택, 과학 기술자의 노고를 치하하는 데에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증기기관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공학이 제공한 엄청난 가능성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인간 창의력의 놀라운 선물(102항)로 인정한다. 더 나아가, 회칙은 핵에너지, 유전공학 등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엄청난 힘도 인정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언급한다(104항).


회칙이 기술 발달에 치하하는 긍정적인 기여는 소중한 수단의 생산에 그치지 않고, 과학기술이 창출해 낸 아름다움이 인간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까지 포함한다(103항).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는 예술가가 그러하듯, 과학자가 기술 개발의 발전에 헌신하도록 이끌었다는 이해가 깔려있음을 볼 수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의 핵심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과학기술에 대한 회칙의 비판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과학기술 자체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과학기술 자체가 아닌, 과학기술에서 그 힘의 분배 방식과 성장 방식, 성장 속도 그리고 기술 중심적 가치관이 내포하는 위험을 인식하지 않는 가운데 그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삶의 전반에 흡수시키는 우리의 맹목적인 신뢰에 대한 비판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회칙의 우려는 그 엄청난 힘이 소수의 힘에 집중되어 있는 점(104항)과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성숙에 집중된다. 과학기술의 힘이 늘고 진보가 이루어질수록 “안전, 유용성, 복지, 활력, 가치 충만의 증가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경향”을 지적하는 것이다(105항).


또한 회칙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책임과 가치관 그리고 양심의 발전 속도를 지적하고 있다. “자유의 규범이 아니라 이른바 유용성과 안전만이 요청되는 경우에는 인간이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할 위험이 지속적으로 증가합니다”(105항). 회칙이 지적하는 문제는, 인간이 과학기술의 한계를 정하고 자제력을 길러줄 건전한 윤리와 문화, 영성을 지니지 못한 점이다.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의 위험성


과학기술의 발달 그 자체보다는 이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회칙은, 우리 삶의 가치관으로 스며들어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패러다임이 지니는 문제점의 시작은, 사물 자체의 가능성을 존중하며 더불어 존재하는 방식을 모색하기보다 외부 대상을 파악하고 지배하려는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자세(106항)이다.


이때 소유, 지배, 변형의 의도를 지닌 채 무한 성장의 개념을 탑재하고, 지구가 지닌 한계를 넘어 최대한 쥐어짜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106항) 회칙의 비판 요지이다.


동시에 기술의 산물을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단지 도구로만 이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세도 경고한다. 이는 기술의 산물이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권력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적 기회를 통제하는 점에서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도구로서의 기술 인식과 관련하여 회칙은, 기술을 대표하는 요소들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요소들과 자연의 요소들을 모두 장악하려 함에 따라, 개개인의 결단력이나 온전한 자유, 고유한 창조성 등의 자리가 좁아지는 사태를 고발하고 있다(106항).


회칙은 인류가 현재 경험하는 놀라운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점차 가속화하는 불균형의 현실을 직시하자고 제안하면서, 기술이 통합적인 발전보다 세분화되어 발전되는 양상에서 그 문제점을 찾아낸다(109-110항).


곧, 세분화되는 만큼 구체적인 적용의 효율은 증가하지만 사물들 사이의 관계나 과학과 인간의 관계, 생태계를 감안하는 통합적 안목과 감각을 상실한다. 또한 이 기술이 구체적인 삶의 의미를 해석하는 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인류는 이제 다른 시각과 사고방식에 입각한 정책과 교육, 생활양식, 영성을 확립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이 좀 더 건전하고 인간적이며 사회적인 온전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111항).


이 지점에서 회칙은 ‘용감한 문화혁명’을 제안한다. 곧, 과학기술의 속도를 줄여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긍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과대망상으로 잃어버린 가치와 중요한 목표를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스도교적 인간 중심주의의 필요성


회칙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인간 중심주의를 그리스도교적 인간 중심주의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기술 이성을 앞세운 현대의 인간 중심주의가 인간의 지위와 자연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는 공동 관심사와 사회적 결속 강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저해한다(116-117항). 협조자가 아닌 하느님의 자리에 인간 자신을 올려놓으려고 하는 인간 중심주의가 올바른 인간관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회칙은 그릇된 인간 중심주의가 결코 생태 중심주의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한다. “생태 중심주의는 오늘날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며, 문제들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불균형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지성, 의지, 자유, 책임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이 세상을 책임 있게 대할 것을 바랄 수 없습니다”(118항).


회칙은 다른 모든 피조물에 견주어 인간의 특별한 가치를 인정하는 그리스도교 사상만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전개된 그릇된 변증법을 극복할 새로운 종합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121항).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만이 온전한 생태적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열어준다고 밝힌다.


바람직한 인간 중심주의의 구성요소


제3장의 후반부에서는 실천적 상대주의를 비판하며, 객관적 진리나 확고한 원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123항). 그 원칙은 노동의 가치를 배제하지 않는 것과 하느님의 창조활동에 책임 있게 참여하는 인간 소명의 숭고함에 대한 인식이다.


회칙은 무엇보다도 창의력, 미래 설계, 재능 계발, 가치 실현, 타인과의 대화, 경배로 정리되는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강조한다(127항). 또한 기업이 단기간의 금전적 이익보다 안정된 고용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128-129항).


한편, 회칙은 과학기술 종사자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사를 귀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힘의 위험성을 늘 경계하라고 하며, 인간 활동의 목적과 효과, 맥락과 윤리적 한계를 끝없이 성찰할 것을 조언한다.


또한 피조물의 본질에 따라 자연이 발전하도록 자연에 영향을 주는 개입은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동시에 경제적 이익에만 좌우되지 말라고 강조한다. 유전자 변형 곡물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개발이 가져온 정보의 편향적 소유와 통제, 그리고 인간 배아의 연구에서 보이는 인간 가치의 평가절하를 경계하라고 경고한다.


제3장은 회칙 전체의 중심점에서 현재 인류가 직면한 생태문제의 위기를 기술 과학적 패러다임과 인간 중심주의에서 찾으면서, 그리스도교적 세계관과 인간관이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렇듯 정교한 논리의 전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교회 내의 환경운동이 신앙에 입각한 인간 중심주의를 정확히 이해하며 실천적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늘 점검하고, 행동수칙과의 일관성과 정합성(整合性)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톨릭교회의 신앙은 신학적 틀 내에서 다듬어져 전승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은 불투명한 이론으로 교회가 혼란에 빠지는 위험을 방지하려는 교회의 지고한 투신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두 개의 장은, 지금까지 탄탄하게 다진 이론적 기틀 위에 실천적이며 신앙적인 측면의 반성과 제안이 주를 이룬다. 우리는 그 내용을 점검하며, 회칙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신학적 일관성과 엄밀한 논리, 그리고 탄탄한 구조를 보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함께한 독자 여러분도 실천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기 전에, 다소 지루한 경향이 있는 지금까지의 이론적 부분을 꼼꼼히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 유흥식 라자로 주교 - 대전교구장,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4월호, 유흥식 라자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5


제4-5장은 생태문제를 해결할 청사진


이번 글은 「찬미받으소서」 제4장과 제5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재를 시작한 1월 호에서 언급했듯이, 회칙의 전반부는 생태계 파괴의 현실(제1장), 그리스도인들의 책임 근거와 입각점(제2장), 생태계 위기를 불러일으킨 가치관에 관한 문제(제3장)를 제시하였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후반의 세 장은 당면한 생태문제를 해결할 청사진을 제시한다. 환경과 사회를 아우르는 전망에서 제시되는 온전한 생태론을 제4장에서 다룬 뒤, 생태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법과 행동방식을 정리하고(제5장), 마지막 장에서 뿌리에서부터 변화가 가능한 회심(제6장)을 촉구한다.


인간과 생태를 동시에 고려하는 생태관


먼저 온전한 생태론을 다루는 제4장을 살펴보자. 회칙의 문제의식은 인류가 환경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위기가 복합된 하나의 위기에 직면했다(139항 참조)는 데서 출발한다. 이때 회칙이 제시하는 온전한 생태론은 자연 안에서 인간이 지닌 고유한 지위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생태론을 말한다(15항 참조).


이는 생태 중심적인 생태론도 아니며, 인간 중심적으로 환경을 이용대상으로 보는 생태론도 아니다(139항 참조).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에 근거해 생태계를 보호할 책임을 부여받은 인간이 피조물의 세계에 대한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생태론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스스로를 하느님의 선물로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이 온 세계를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우리가 더불어 사는 집으로 받아들이는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155항 참조).


온전한 생태론에서 환경(자연)문제는 인간 삶의 모든 분야, 곧 경제, 정치, 문화와 긴밀한 관계 안에서 성찰한다. 이에 따라 사회제도의 건전성이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되며, 공동선의 추구가 고민의 중앙 자리에 놓인다. 회칙이 공동선의 실현에서 역점을 두는 부분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과 연대성이다. 이때의 연대성은 동시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세상을 넘겨주려는 확장된 연대성을 말한다(162항 참조).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환경인식이 사회교리의 지평선상에 놓여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곧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이라는 사회교리의 원리가 환경회칙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빛으로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조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교회의 가르침에서 자연은 가장 가난한 형제로 받아들여지며, 인류의 모든 죄로 말미암은 피해를 가장 결정적으로 받는 대상으로 인식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생태계 문제를 인간 사회와 자연환경의 통합적 지평에서 조명하는 회칙은 개인과 집단의 선택과 성찰을 촉구한다. 사회의 삶과 존속이 가능한 조건에 대하여 발전, 생산, 소비의 모형들에 대한 시각 전환(138항 참조)과 모든 결정을 창조된 세계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세계라는 입각점에서 고민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특별히 회칙은 개별 생태계의 재생력을 감안한 지속 가능한 이용을 논의하고, 연대와 민간 우호를 포함하는 사회제도의 건전함을 성찰하기를 제안한다. 회칙에 따르면, 투명하고 건전한 사회제도가 지역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국제적인 삶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각 지역사회의 건전함이 실현되는 것이 생태문제 해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142항 참조).


인간 생활의 영역 전반과 연관된 통합 생태론에서 소비주의적 관점과 기술 중심주의는 인류가 가장 주의와 경계를 해야 할 점이다. 이는 소비주의적 관점이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약화시키고, 기술 중심주의적 사고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경우에는 생태문제의 본질과 무관한 증상만을 다룰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143-144항 참조).


어떻게 접근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제4장을 통해 통합적 생태론의 지평과 입각점을 제시한 회칙은 제5장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한다. 가장 먼저 제시되는 것은 국제정책뿐 아니라 개인이 참여하는 대화와 행동을 위한 제안이다. 회칙은 이러한 제안이 현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자기 파괴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천명한다(163항 참조).


회칙에서 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교회가 제시하는 대화는 특정 이익이나 이념이 공동선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사안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솔직하고 열린 토론이다.


한편, 지난해에 개최된 ‘파리 환경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이번 회칙에서 교황님은 이제까지의 세계 환경회담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음을 정면으로 지적하셨다. 그 지적의 핵심은 정치적 의지의 결여이다. 이는 1992년에 개최된 ‘리우 환경회의’ 때부터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감시와 정기검사,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를 위한 적절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음으로써(167항 참조)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회칙은 이러한 현상이 세계적 공동선보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나라들의 입장 때문에 빚어진다고 진단한다(169항 참조).


그런데 환경 관리의 책임에서 교황님이 제시하시는 공동 책임은 획일적이고 균등한 책임이 아니다. 회칙은 공동의 책임을 언급하면서도 문제 발생의 정도에 따른 차등 책임의 부과를 주장하며(170항 참조), 선진국들의 자발적 책임의 수행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교황님은 가난한 나라들은 자국민의 빈곤 퇴치와 사회 발전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며, 선진국들은 가난한 나라들에게 기술 이전, 기술과 재정 지원을 통해 도움을 주기를 강력하게 요청하신다(172항 참조).


전체적인 맥락에서 회칙은 각 나라들이 앞날을 설계하고 보호하는 데 공동선에 비추어 행위 규정을 마련하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관련하여 단기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힌다. “정부는 선거권자들의 이해에 부응하여 소비 수준에 영향을 미치거나 해외 투자를 위협하는 조치로 국민들을 쉽사리 자극하려 들지 않습니다. 근시안적인 정권 수립으로 환경에 관한 장기적 안건들이 정부의 공공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합니다”(178항).


이에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복음의 기쁨」 222항을 언급하며 회칙은 장기적 공동선을 배려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회칙이 제시하는 정책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원료 사용의 절약을 통해 산업의 생산방식을 촉진하는 것과 에너지 측면에서 비효율적이거나 오염을 가중시키는 상품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것에 이른다. 이러한 일이 진행되려면 정책의 연속성과 정책 결정과정의 대화와 투명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생태계를 고려한 인간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요청된다.


회칙은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줄여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확신을 가지자고 제안한다(191항 참조). 더 나아가 경제의 의미와 그 목표를 더 나은 세상과 전체적으로 더 높은 삶의 질을 이루어낸 것과 관련한 발전의 개념을 정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194항 참조). 이에 따르면, 이윤 극대화의 원칙을 고수하는 경우 미래 자원이나 환경의 건강을 희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공동의 환경자원을 이용하는 데에 드는 경제적 사회적 비용은 이용자가 온전히 부담하고, 투명하게 이를 공개해야 한다(195항 참조).


아시아 국가의 환경문제와 한국교회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된 지 일 년이 되어간다. 생태와 환경문제를 다룬 최초의 회칙이어서인지, 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기에 따른 후광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교회 안팎에서 회칙에 관한 수많은 세미나와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많은 이가 가장 많이 언급하고 인용하며,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내용은 아마도 이번 글이 다루는 제4-5장일 것이다. 강대국에 대한 책임을 묻고, 약소국에 대한 보호를 요청하는 점이나, 마치 자본주의 이론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는 몇 구절이 일부의 활동가들에게 반가운 소식처럼 다가올지 모른다.


분명, 회칙은 급박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을 새롭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회칙과 차별성을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 인간학이나 사회교리 측면에서의 뿌리와 가지, 열매는 크게 변함이 없음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통합적 생태론과 온전한 생태론이 생태 중심적 생태관으로만 받아들여질 때 회칙 전체의 치밀한 구조적 완결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같은 행동을 전개할 때 그 과정과 결과가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회칙이 분명하게 언급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맡겨주신 선물로서의 세계라는 인식’이 없다면 동일한 행동의 결과는 다른 열매를 맺을 것이다. 회칙을 근간으로 환경운동을 전개하는 교회의 환경운동 단체들의 숭고한 활동과 노력을 경하하며, 회칙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풍부한 교회 전통의 양식이 더욱 풍성한 열매와 하느님 나라 실현을 위한 투신의 힘으로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시아 지역에 속한 한국교회는 회칙을 연구하며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남미 주교회의와 아시아 주교회의가 지금까지 환경문제를 자신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과 관련하여 신앙의 눈으로 처절하게 반성하고 고민했는지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단 하나의 구절도 인용되지 않은 한국 주교회의와 한국교회의 문헌은 우리 교회의 사목이 당면한 신학적 과제에 관하여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얼마나 게을리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부끄러운 우리 교회의 자화상이다.


* 유흥식 라자로 주교 - 대전교구장,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5월호, 유흥식 라자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6


「찬미받으소서」를 마치며


지난 다섯 차례에 걸친 연재를 통해 생태와 환경에 관한 최초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제, 그 마지막 장이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을 마음과 정신, 그리고 생활에 깊이 새기며 새롭게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나갈 때이다.


제6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모두를 생태적 회심의 장으로 초대하신다. 제5장에서 전세계인들의 관심을 요청하신 자세와 비교하면 이번 장은 더욱 분명하게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초대와 촉구의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개인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생태계의 치유


문제가 감지되었을 때 많은 경우 우리 자신과 사회는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하는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갈등, 도덕적 가치의 몰락으로 말미암은 사회문제 등이 일어났을 때 언제나 우리는 무엇이 문제이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물었다.


시장경제의 문제가 점차 심화될 때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대안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한동안 세계인들을 사로잡았다. 여기서, 나 자신의 변화보다 사회 체제와 구조의 변화가 늘 논쟁의 중심에 놓였던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이상과 정치적 대안이나 철학도 파멸의 절벽을 향해 질주하는 탐욕과 이기심의 열차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우리 인류는 역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의 사랑과 능력을 신뢰하며 변화되는 개개인의 삶과 사회의 변화를 강조하신다.


이 점은 그동안의 모든 그리스도교 가르침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특징이다.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구체적인 삶의 장에서 실현되고, 연대성 안에서 체제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제6장은 “많은 것의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202항)라는 의미있는 발언으로 시작한다. 앞의 제1-5장의 모든 내용을 통해 생태계 위기가 사회, 정치, 윤리 문제가 모두 결합된 결과임을 분명히 드러낸 뒤, 마지막 장에서 개인의 변화, 곧 신앙에 입각한 투신의 자리에 우리를 세우고 있다.


인류 자신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신념, 자세, 생활양식을 이끌어낼 때 가능하다(202항 참조). 회칙은 이러한 변화의 구체적인 방안을 ‘생태적 회심’이라는 주제 아래 펼쳐나간다. ‘회심’이라는 단어가 함축하듯,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회칙이 최종적으로 귀착하는 곳은 하느님의 사랑과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교황님은 온전한 응답만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여 자연과 인간세계를 포함하는 생태계 질서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길임을 천명하신다.


생태적 회심과 영성을 제시하다


아홉 개의 토막으로 구성된 제6장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과 영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때 회칙에서 사용하는 ‘영성’이라는 단어는 최근 교회 밖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영성의 의미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체험이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실천되고 증언되는 모습’으로 정의되는 영성은 회칙에서도 철저히 그리스도교 신앙과 삶의 관계에서 조명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회칙이 말하는 생태영성은 생태 중심적 가치관에 입각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회칙의 생태영성은, 예수님을 인류의 죄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의 틀에서 현재의 문제를 분석하고 반성하여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전환과 선택에서 생태 문제도 해결된다는 확신을 포함하는 것이다.


생활양식의 변화와 환경교육


새로운 생활양식을 모색하는 회칙이 맨 먼저 지적하는 오늘날 생활양식의 문제점은 기술 · 경제 체제의 영향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빠져있는 집착적 소비주의의 태도이다.


은연중에 우리는 소비의 자유가 존재의 자유인 양 인식하며(203항 참조), 점차 자기중심적인 의식 안(204항 참조)에 머묾으로써 점차 커가는 탐욕이 우리를 집어삼킨 형국에 놓여있다. 소비지향적인 이러한 생활양식에 대한 집착이, 소비가 불과 소수에게만 자유로이 허락되는 상황 속에서 폭력과 상호파괴를 일으킨다고 회칙은 지적한다.


이에 회칙은 「진리 안의 사랑」 68항을 인용하며 소비자의 사회적 책임을 부각한다. “구매는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경외를 일깨우고 지속 가능성을 이룩하려는 확고한 결심, 그리고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신이 있어야 실현된다(207항 참조). 피상적인 현실의 지평을 벗어나는 자기초월의 자세로 자기중심성과 자아도취를 거부할 때 우리는 모든 개인적 결정에서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208항 참조).


회칙은 환경교육의 변화 과정을 되짚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학문적 정보, 의식화, 환경 위기 예방에 중점을 두었던 초기를 지나, 개인주의와 경제, 소비주의, 규제 없는 시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후의 환경교육은 내적으로는 우리 자신과, 연대의 차원에서는 다른 이들과, 자연의 차원에서는 모든 살아있는 것과, 영적으로는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단계의 회복을 추구한다. 이 지점에서 “신비이신 분께서는 환경윤리에 가장 깊은 의미를 주십니다.”(210항)라고 언급함으로써 환경교육이 궁극적으로 어디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하는지를 밝힌다.


이제 회칙은 환경교육의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씩 제시한다. 여기서 제시하는 환경교육은 행동과 습관, 곧 물 절약, 쓰레기 분리수거, 불필요한 전등의 소등, 대중교통 이용이나 승용차 함께타기 등 매우 구체적인 일상에서 실천하는 교육이다(211항 참조). 이러한 실천이 폭력과 착취와 이기주의의 논리를 타파하는 행동이며, 사회에 선(善)을 퍼뜨림으로써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체험을 하게 한다(212항 참조).


이를 위해 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가정은 죽음의 문화라고 불리는 것에 반대하여 생명문화의 중심을 이룹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보여주는 법을 처음 배웁니다”(213항).


또한 책임 있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감사하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교육, 가난한 이들의 어려움과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는 교육도 강조한다(214항 참조).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생태적 회심


회칙은 그 핵심이자 제6장의 중심내용인 ‘생태적 회심’을 천명한다. “환경 위기는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합니다. … 따라서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적 회개입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217항).


회칙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영성의 전통에서 피조물과 맺는 건전한 관계가 인간의 온전한 회개의 한 차원으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의 행위가 하느님의 피조물에 어떤 해를 끼쳐왔는지를 깨닫고 마음을 바꾸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회심이다.


여기서 말하는 회심은 개인적 차원에서 하느님 앞으로 돌아서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회심으로 귀결된다. 우리에게 만연한 소비주의적 태도와 그로 말미암은 사회적 문제들은 공동체의 협력을 통해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심에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연에 대한 감사와 모든 피조물 간의 보편적 친교를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방식을 제안하는 가운데 검소함과 절제, 겸손 등의 덕목을 강조한다. 모든 것이 신앙에서 나오는 관상적 관점에서 시작될 때 쉬워질 것이며, 하느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과 우리를 맺어주시는 유대를 세상과 우리 안에서 관찰하는 관상이 더욱 큰 창의력과 열정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창조와 사랑의 지평에서 모든 것을 반성할 것을 촉구하는 회칙에서 식사 전후의 기도와, 사회적 사랑과 정치적 사랑의 실천이 제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회칙은 두 가지의 기도를 제안하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와 함께 드리는 기도인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와, 복음이 제시하는 피조물에 대한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이도록 청하는 기도인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이다.


대장정을 마치며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앞둔 2015년 5월 24일 성령강림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서명하신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우리나라 교회뿐 아니라 전세계 교회와 나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던 그리스도교가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인과 세상이 무엇을 어떻게 반성하고 지향해야 하는지를 밝힌 점에서 인류사적 의의를 갖기 때문이었다.


반포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수많은 토론회와 세미나, 교육 등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다. 관련 학계의 세미나에서도 회칙을 중심주제로 다루었다. 그 가운데는 회칙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회칙을 무책임하게 인용하는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독서 가이드’의 형태로 회칙을 철저히 이해하고 생활의 반성을 구체적으로 이끌어내는 외국의 활동에 비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러나 회칙을 사목문서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각 나라가 놓인 현실을 회칙에 따라 분석하고 행동지침을 이끌어내는 아시아 각국의 반응에서 이 회칙의 진정한 효력을 거듭 확인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여섯 차례 연재한 것은 회칙의 확고한 기반,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를 온전히 드러내고, 그 논리적 전개 과정을 꼼꼼히 정리해 보려는 노력이었다. 회칙이 교회 안에서 우리의 회심과 생태환경 운동을 올바르게 이끄는 지침서로 활용되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겨울부터 시작하여 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파리 기후변화 협약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규제효과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회칙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교회 안팎에서 그 열기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그러나 생태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찬미받으소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방식과 영성의 지침서로서 그 빛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희망이며 믿음이다.


다양한 학문과 활동과 소통하며, 세상에 대한 광란의 질주를 어떤 지평에서 왜 멈추어야 하고, 또 어떤 방향으로 선회하여야 하는지를 제시한 회칙의 의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높이 드러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많은 나라의 주교회의 문헌이 인용되었지만 한국 주교회의 문헌은 없었다는 비판이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외국어 번역 작업을 소홀히 한 이유도 있겠지만, 철학적 신학적 성찰을 치밀하게 전개하여 이론을 구축하고 그 위에서 활동하려 하지 않았던 우리의 접근방식도 반성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은 성경과 성전이라는 두 개의 축이 뻗어온 신학적 성찰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전개되는 거대한 강물이다. 그런 한에서, 국지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신학이나 신앙을 연관시킬 때 반드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철저함의 부족이 교회의 여러 사회활동에 대한 신자들로부터의 불편함의 호소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우리가 신앙하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내용이 온 우주와 인간의 존재 가치, 관계성 이해에 풍부한 영감과 힘을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이나 자비의 특별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에 비해 조금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이 과학과 여러 학문들의 소통에 어떤 자세로 다가서며 협력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교과서이다.


더 나아가 회칙은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의 창조와 구원, 종말 신앙과 영성이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드러내었다. 무엇보다도 회칙은 하느님을 관상하는 일이 신비적 체험의 일시적 순간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일, 모든 존재 안에서 우리 존재의 근원이 하느님이심을 확인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일이 관상이다. 또한 이러한 관상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회심이자, 하느님 나라를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인 것이다.


나와 이웃, 사회와 자연의 모든 관계를 하느님과 연관하여 이해하고, 창조의 시각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을 실천하는 바로 그 영성이 관상의 열매임을 회칙은 우리에게 잘 말해주고 있다.


이제 회칙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 기도는 입으로만 바치는 기도나 머리와 마음으로만 하는 기도가 아니다. 우리의 온 존재와 삶으로 바치는 회심의 기도이며, 투신의 기도, 의탁의 기도, 관상의 기도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나와 가족, 인류 공동체와 생태적 형제자매를 위해 겸손과 절제와 검소함을 선택하는 기도를, 소비주의의 유혹을 거부하고 나눔과 섬김과 찬미의 기도를 실천하는 약속을 다짐해 본다.


* 유흥식 라자로 주교 - 대전교구장,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6월호, 유흥식 라자로]